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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44화 (244/398)

◈ [244화] 벨몬트 (3)

“크윽!”

레벨린의 입에서 날카로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가슴을 움켜쥔 레벨린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까드드득.

레벨린이 손톱으로 바닥을 긁었다. 마크와 이어진 계약이 끊어졌다. 그것도 강제적으로.

‘죽었다고?’

마크가 치른 대가는 적지 않았다. 그 결과 마크는 본래라면 지닐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되었고, 그 힘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어지간한 마스터가 오더라도 이렇게 쉽게 죽지는 않을 텐데…… 설마 벌써 소식이 전해졌나?’

레벨린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에 여지를 남겨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흐름은 그녀의 의지와는 반대로 흐른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군주는 이기적이다. 애당초 군주를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한 생각이었다.

레벨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역겨운 새끼들.’

레벨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카데미를 빠져나간 직후 레벨린은 곧장 카이제르와 신성 왕국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레벨린을 받아 주지 않았다.

‘이제 뽑아 먹을 만큼 뽑아 먹었다. 이거인가?’

우스웠다.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손을 뻗은 건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용할 만큼 이용하고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망설임 없이 관계를 단절시켰다.

그녀는 더 이상 아카데미라는 배경도,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준비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레벨린을 적대하는 상대는 블란테였고, 블란테가 아카데미를 안정화시킨 이후에는 그녀를 철저하게 쫓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불온한 움직임이 보인다면 곧장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이 블란테의 방식이었다.

난폭하고 야만적이었지만, 그것만큼 효과적으로 상대에게 공포를 심어 주는 방법은 없었다.

화가 치밀었다.

어디서부터 상황이 어그러진 것일까.

천천히 계획을 수정할 시간적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박에 걸었다.

다행히도 블란테는 둥지를 비웠고, 모룬은 망가지기 직전이었다. 망가져 가는 사람을 다루는 것은 레벨린의 특기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 사실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레벨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부름에 군주가 응답했다. 다른 군주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전했지만, 군주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비웃고 조롱했다.

군주의 힘은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만했다. 모든 군주는 독립적이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

베오드라도를 불렀을 때보다 더 서열이 높은 군주가 강림했고, 강림한 육체도 상급품이었다.

마스터를 목전에 둔 육체는 재료로서는 최상급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 예상보다 손쉽게 현혹할 수 있었고, 모룬의 육체에 무사히 군주가 강림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강림한 군주는 레벨린의 통제를 조금도 따르지 않았다.

아예 군주를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했다간 그 이후를 감당할 수가 없어.’

그녀의 통제가 확실히 통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통제를 시도했다는 것 차제만으로도 군주의 적의를 사게 될 것이었다.

그 후에는 당연히 군주의 협력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레벨린의 계획은 무용지물이 된다. 억겁의 시간 동안 쌓아 왔던 노력들이 물거품되는 것이다.

빠드득.

레벨린이 이를 갈았다. 더는 기회가 없다. 여기서 어떻게든 끝내야 했다.

스스스.

갑자기 느껴지는 기세의 레벨린의 눈이 터질 것처럼 부릅떠졌다. 레벨린이 황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검은 장막을 전개하는 순간.

꽈앙!

레벨린의 몸이 사정없이 날아갔다.

몰려오는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레벨린은 꺼져가는 정신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커헉.”

레벨린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속이 진탕된 느낌에 머리가 핑 돌았다.

‘누구지?’

레벨린이 눈과 고개를 돌리며 상대를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레벨린이 죽은 마나를 넓게 퍼트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퍼트린 마나가 조금씩 잠식당하고 있었다. 처음 겪는 불쾌하기 그지없는 감각에 표정을 굳히는 순간.

“어딜 보냐?”

등 뒤에서 살기가 덮쳐왔다.

“에단…….”

에단이 그대로 레벨린의 머리칼을 부여잡았다. 펼쳐 뒀던 검은 장막은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

에단은 손을 뻗음과 동시에 죽은 마나를 먹어 치웠다.

붉은 머리칼이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잡혔다.

죽은 마나의 통제를 에단에게 빼앗기려는 상황. 레벨린은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뻐억!

레벨린의 고개가 높이 들렸다. 오뚝한 코가 무너지며 양쪽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어딜 가려고?”

에단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머리채를 다시 붙잡은 채 복부를 걷어찼다.

뻐억!

“커헉!”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해서든지 저항을 하기 위해 발악했지만, 머리를 붙잡힌 채 죽은 마나를 통제당하니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후웅!

에단이 레벨린의 머리를 붙잡은 채로 바닥에 꽂았다.

콰직!

레벨린의 몸이 경련했다. 에단은 그녀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콰직! 콰직! 콰직!

경련이 점차 멎기 시작했다.

머리가 바닥에 찍힐 때마다 미약한 움찔거림만 있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레벨린이 예상한 것보다 에단은 강해져 있었고, 이제 강자가 된 에단은 머저리처럼 레벨린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으득.

에단의 머릿속에 지옥도가 된 영지가 떠올랐다. 머리가 터질 것같이 뜨거웠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고막에 직격했다.

이렇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민 적이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름은 모를지라도 얼굴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블란테의 일원이다.

안일했다는 생각이 되새겨졌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어떤 선택을 저지를지 생각했어야 했다.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이 꼬라지라고?’

에단이 이를 갈았다. 레벨린이 어떤 사연을 지녔기에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베일에 쌓여 있던 존재였으니.

에단이 죽은 나무의 힘을 흩뿌려 두며 그녀가 수를 쓰는 것을 미연에 방지했다.

에단은 들끓는 분노를 억누른 채 레벨린의 머리칼을 잡아들었다.

“끄어어어어…….”

피와 진물로 걸레짝이 된 레벨린의 얼굴이 보였다. 에단은 싸늘하면서도 섬뜩한 눈으로 레벨린을 응시했다.

“이번에는 한 방 먹었어.”

“이……대로…….”

“그래. 너도 뭔가 사연은 있었겠지.”

작중에도 수차례 언급되었다.

흔하디흔한 레퍼토리다. 분명 처절하기 그지없는 사연이 지금의 레벨린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뭐?’

레벨린의 사연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본질은 에단의 적이었고,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레벨린의 동공이 길을 잃은 것처럼 떨렸다. 에단의 시선이 느껴진다. 싸늘하고 무심한 눈초리.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한 레벨린이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자.

“잘 가란 말은 못 하겠다.”

레벨린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쾅!

굉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에단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그녀의 몸속에 깃든 죽은 마나를 모두 흡수했다.

에단의 몸 안에 깃드는 죽은 마나의 양이 적지 않았다.

에단은 시체가 된 그녀의 몸을 들어 소지품을 확인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손때가 타 있는 빛바랜 반지 하나와 낡은 수첩이 전부였다.

레벨린의 소지품을 모두 확인한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여유를 부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느껴지는 기세에 피부가 저릿했다. 상대는 이미 에단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터벅.

갑자기 곁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에단의 고개가 획 하고 돌아갔다. 그곳에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빈센트가 서 있었다.

“…….”

에단은 입을 다문 채 빈센트를 바라봤고, 빈센트는 시체가 된 레벨린을 힐긋 바라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자.”

“네.”

무덤덤한 빈센트의 말에 에단이 대꾸했다. 지면을 박찬 둘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뱀파이어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구나. 그런데…… 고작 이 정도 수준이었나?”

모룬이 턱을 긁적였다.

벨몬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펼쳐진 날개는 떨어지기 직전이었고, 왼쪽 눈은 피가 섞인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벨몬트의 창백한 피부는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도 다루지 못하고, 현혹은 사실상 없는 수준에, 당연히 마법도 사용 못 하겠지? 뭐 쓸 줄 아는 건 알량한 신체 능력이 전부인가? 몰락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

치욕스러운 언행에도 벨몬트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군.’

벨몬트가 숨을 몰아쉬며 피식 웃었다. 딱히 화가 치밀지는 않았다. 저 말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벨몬트는 반쪽짜리 뱀파이어였다.

밤의 귀족이라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현재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을 뿐이었지.’

벨몬트가 고개를 돌렸다.

타미가 숨을 쌕쌕 쉬며 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타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샛노란 눈에는 적의가 넘실거렸다.

‘저 꼬맹이한테 밀릴 수는 없지.’

여기에 서 있는 이유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이유는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단지 이 자리에 서서 싸우고 싶다는 마음.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밤의 귀족이니.”

벨몬트가 씨익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모룬도 들었는지 피식 웃었다.

“하하, 꽤나 재미는 있구나. 하지만 이제 슬슬 질리니 끝내 보도록 할까.”

모룬이 한발자국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벨몬트와 타미의 표정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기세가 바뀌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간신히 견뎌 내는 게 전부였다.

“음?”

모룬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이상하군. 죽었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여흥거리가 는 거니 상관은 없겠지.”

“그래?”

에단이 존재감을 숨기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여흥거리한테 한번 처맞아 보는 건 어때?”

콰앙!

에단이 그대로 달려 나가 모룬을 걷어찼다. 몸을 돌려 에단의 공격을 막아 낸 모룬의 눈이 짐짓 커졌다.

“오, 너희인가?”

에단과 빈센트를 바라본 모룬이 비릿한 냉소를 지었다.

“아주 태도가 좆같네.”

에단이 사납게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벨몬트와 타미를 바라봤다.

에단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벨몬트와 타미는 서 있는 게 고작인 것으로 보였다. 둘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다.

“후우.”

숨을 토해 낸 에단은 깊은 눈으로 모룬을 응시했다.

“네가 얘들 저렇게 만들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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