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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43화 (243/398)

◈ [243화] 벨몬트 (2)

에단과 빈센트가 눈을 떴다.

눈을 뜬 장소는 낯이 익었다. 영지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블란테의 영역.

강력한 힘으로 보호되는 이곳은 언제나 별다른 일 없이 평화로웠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산들바람이 피부를 훑고 지나가는 감각이 더없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바람이 지나가며 코끝을 스치는 진한 혈향 때문이었다.

빈센트의 표정이 굳었고, 에단의 볼이 꿈틀거렸다.

이렇게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코끝을 찌르는 비린내가 느껴진다는 건 큰일이 났다는 것.

에단과 빈센트 사이에서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발에 힘을 실을 뿐이었다.

뿌드득.

지면이 파이며 에단과 빈센트의 신형이 쏘아지듯 나아갔다. 범인이라면 형상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주변 풍경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효율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마나를 흩뿌리며 지면을 박찼다.

영지에 다가설수록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눅진한 습기처럼 피부에 달라붙는 죽은 마나.

줄리엔의 보고는 사실이었다.

수정구로 지켜봤던 상황이 뇌리에 선명했다. 언뜻 보기에도 카론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안일했다.’

눈앞의 이득을 좇는 바람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아카데미라는 당장의 이득을 좇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사태가 벌어진 이상 변명은 통용되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것뿐.

‘감히 내 걸 건드려?’

에단의 눈이 진득한 살기로 번들거렸다.

* * *

“키히히히히히히!”

마크가 환희에 찬 광소를 터트렸다. 그는 이미 정상적인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피부에는 비늘 같은 것이 돋아나 있고, 팔과 다리는 기괴하게 길어지고 두꺼워져 있었다.

부릅뜬 눈은 흰자위가 없이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마크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시체가 산을 이룬다. 이것들은 모두 자신의 손으로 일궈 낸 업적이었다.

마크의 입이 쩌억 갈라졌다.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게 벌린 입에서 야릇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아.”

황홀했다. 전신을 휘감는 전능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마크는 계약을 통해 힘을 얻었다. 일말의 주저는 있었다. 계약에는 무릇 대가가 따르기 마련.

그들이 과연 어떤 것을 대가로 가져갈지 알 수 없었다.

‘쓸데없는 고민이었어.’

마크는 계약을 선택했다.

주저하긴 했지만,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마크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학장이라는 명예도, 아들이라는 존재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남아 있는 건 모든 것을 앗아간 상대에 대한 선명한 적의뿐이었다.

후회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게 마치 벌레를 죽이는 것 같았다.

적의와 복수심이 옅어졌다. 마크는 점점 욕망에 충실해지고 있었다.

벌레들이 두려워할 때마다 마크는 강해지고 있었고, 한계가 가늠되지 않았다.

천하의 블란테가 자신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크는 수습 기사들을 조롱하고 희롱하며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였다.

마나 유저조차 되지 못했던 마크는 이제 블란테의 수습 기사를 손쉽게 가지고 놀았다.

“하하하하―!”

채찍 같은 팔을 움직일 때마다 생명이 사그라든다. 꿀럭거리며 피를 삼킬 때마다 마크의 외향은 점점 인간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크가 고의로 놓친 하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생존을 위해 발악하는 이의 목숨을 앗아갈 때 더할 나위 없는 희열이 느껴진다.

툭.

마크가 눈을 깜빡거렸다.

도망가는 인간의 등가죽을 관통해야 할 손이 바닥에 떨어졌다.

주인을 잃은 마크의 손은 아직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흙바닥 위에서 꿈틀거렸다.

꿈틀거리는 마크의 손을 검은 구두가 사정없이 지르밟았다. 마치 벌레를 밟아 죽이는 것처럼.

콰직!

자신의 손이 짓밟히는 것을 본 마크가 고개를 들려고 했다.

“누가 고개를 들라고 했지?”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귓가를 파고든 목소리에는 강력한 억제력이 깃들어 있었다.

고개를 들려던 마크의 목이 빳빳하게 굳었다. 마크는 눈앞에 누가 나타났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빈센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블란테의 영지였다. 익숙한 풍경의 영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빈센트가 죽은 이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검은 동공에 비친 자들의 얼굴에는 원통함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시종, 하인, 하녀, 수습 기사 할 것 없이, 그들은 블란테의 일원이었다.

말없이 그들을 바라본 빈센트가 마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마크를 바라보는 빈센트의 눈은 무감정했다.

분노도, 경멸도 존재하지 않았다.

덜덜덜덜.

마크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빈센트에게서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시선.

그 눈길을 받은 것뿐인데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힘차게 뛰어야 할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호흡이 어려워진 마크가 입을 벌렸다.

마크의 표정에는 더 이상 환희가 남아 있지 않았다. 복수심과 광기가 사그라지고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먼저 가거라.”

빈센트가 에단을 향해 말했다. 에단은 잠시 얼굴을 일그러트린 후 몸을 돌렸다.

에단이 자리를 뜨자, 빈센트는 천천히 마크를 향해 다가갔다.

“아……아……아…….”

마크가 정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을 내뱉었다. 마치 짐승 따위가 내는 소리 같았다.

빈센트는 마크가 내뱉는 소리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시끄럽구나.”

미약한 노기가 서린 목소리.

벌어진 마크의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마크는 바닥에 떨어진 저것이 자신의 혀라는 것을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검은 구두가 바닥에 떨어진 혀를 지르밟았다.

“딱히 묻고 싶은 말은 없구나.”

빈센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감정이 없었다. 마크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빈센트의 목소리가 소름 끼쳤다.

‘어째서지?’

푹 고개를 숙인 마크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자신은 이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을 얻었다.

대륙에 위명을 떨친 블란테의 기사들조차 벌레 죽이듯이 죽일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자신은 지금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것일까.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잘린 혀는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고, 깔끔하게 도려내진 손목에서도 살이 꿈틀거리며 차오르려고 했다.

마크는 더 이상 인간으로 취급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걸 인지한 마크의 가슴속에 분노가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크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슥― 스윽.

빈센트가 허공에 검을 몇 번 휘둘렀다. 느릿하고 권태로운 움직임이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빈센트의 손은 헐거웠다. 마치 장난삼아 검을 휘두른 것처럼.

툭― 툭― 툭― 툭―

마크의 시야가 흔들렸다. 바닥을 보고 있던 마크는 어느새 하늘을 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었다.

마크는 잠시 동안 멍하니 하늘을 응시했다. 맑은 하늘을 응시하던 도중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내가 하늘을 보고 있는 거지?’

의문을 인지하는 순간, 강렬한 통증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사지가 있었을 단면에서 타오르는 고통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끄으……!”

비명을 내지르려던 순간, 마크의 입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마크의 턱이 떨어졌다.

“아, 하나를 까먹었군.”

빈센트가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마크의 목이 얕게 갈라지며 피가 꿀렁꿀렁 흘러나왔다.

턱 근육과 성대가 잘리자 마크의 목구멍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화가 치밀었다.

자신은 대가를 치르고 힘을 얻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나 무력하단 말인가.

저항다운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이렇게 벌레처럼 바닥을 구르고 있단 말인가.

본래라면 즉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피해를 입은 마크는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잘려 있는 마크의 절단면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마크의 몸은 아직도 상처를 회복하려 들었다.

빈센트는 마크의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자네도 뭔가 이유가 있어 이런 짓을 벌였겠지. 하지만 흔해 빠진 사연은 별로 궁금하지가 않군. 자네는 블란테를 건드렸고, 대가를 치르면 되네. 단순한 일이지. 아, 그러고 보니 아직도 하나가 남아 있었군.”

푹― 푹―

빈센트가 칼끝으로 마크의 두 눈을 찔렀다. 마크가 몸을 비틀며 몸부림을 쳤다.

마크는 이제 맑은 하늘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마크에게 어둠이 드리웠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잊어버리는 게 많아졌어.”

빈센트가 혀를 차며 마크의 가슴팍에 발을 얹었다.

“자네에게 죽은 내 가족들이 이리 많은데 쉽게 죽어 버리면 좀 그렇지 않나?”

“…….”

모든 것을 빼앗긴 마크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마크는 이제 움직일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앞을 볼 수도 없었다.

“생각보다 재생이 느린 것 아닌가?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운데 말이야.”

빈센트의 칼끝이 마크의 가슴팍에 얹어졌다.

스윽―

마크의 가슴에서부터 실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살가죽이 쩌억, 하고 벌어졌다.

“시간이 없는 게 아쉽군. 주어진 시간만 많았으면 시도할 게 많을 텐데 말이야.”

빈센트가 힐긋 고개를 돌렸다.

산맥이 있는 방향에서 불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에단은 그곳으로 먼저 움직였다. 빈센트도 같은 곳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지금 이 행위가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었다. 이건 다분히 감정적인 분풀이에 불과했다.

한편 마크는 암흑 속에 갇힌 채 고통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우월감이 무력감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을 축복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원망밖에 남지 않았다. 겪은 적 없는 고통과 엄습한 어둠은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마크는 어둠 속에서 애원하고 구걸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대답이 들려왔다.

【무엇을 원하지?】

어둠이 일렁거렸다. 마크는 주저 없이 답했다.

‘힘을.’

【대가는?】

저것이 과연 무엇을 대가로 가져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는 마치 마크를 비웃는 것 같았다.

‘전부를.’

【계약은 성립되었다.】

키득.

들려오는 웃음과 함께, 마크를 기점으로 바닥이 검게 물들었다.

빛 한 점 투과할 수 없을 것 같은 검고 검은 어둠이었다.

마크가 어둠에 침식되는 그때.

“호오.”

빈센트가 변화하는 마크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여흥은 이미 끝났다.

천천히 지켜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빈센트가 검을 들었다. 느껴지는 기운에 걸맞은 힘을 끌어올렸다.

역천(逆天).

법칙이 어그러졌다.

다시금 전능한 힘을 얻어 환희하던 마크는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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