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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37화 (237/398)

◈ [237화] 연회 (8)

연회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율적인 의사는 아니었다. 이건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고요함이다.

에단이 핸더슨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짙게 깔린 고요함으로 인해 에단의 발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핸더슨은 목석처럼 굳어 있었다.

아니, 굳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살짝 시선을 내리자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는 핸더슨의 다리가 보였다.

피식.

에단이 씨익 웃었다. 꼬라지를 보니 같잖지도 않았다. 에단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핸더슨을 바라봤다.

에단과 마주한 핸더슨의 눈동자가 거칠게 요동쳤다.

에단은 무미건조한 눈으로 핸더슨을 응시했다. 검은 동공은 심연처럼 깊었고, 고요했다. 핸더슨의 안색이 점점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에단이 스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핸더슨은 입을 뻐끔거릴 뿐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음? 왜 대답을 못 하지? 내 귀가 이상한가?”

에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를 후볐다.

“아니면…… 내가 병신 새끼로 보여서 질문에도 대답을 안 하는 건가?”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고는 핸더슨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빠악!

핸더슨의 정강이 쪽에서 강력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핸더슨이 눈을 부릅떴다.

순간 상체가 수그러졌지만 에단이 어깨를 붙잡고 있었기에 핸더슨의 상체는 꼿꼿하게 서 있었다.

“음? 갑자기 왜 무릎을 꿇으려고 하지? 몸이라도 안 좋은 건가?”

에단은 진짜 모르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핸더슨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것 참 이상한 친구네. 아무리 내가 망나니 취급을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초대받은 입장인데 말이야. 섭섭하기 그지없어.”

에단이 고개를 돌려 전 약혼자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피어로 인해 심신을 제압당한 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지장처럼 하얘진 얼굴의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꺽꺽거리고 있었다.

피어는 드래곤의 권위였다. 하찮은 아랫것이 감히 자신에게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권위.

여기서 피어를 더 끌어올린다면 이 자리의 대다수는 그대로 심장이 멎어 죽게 될 것이다.

에단은 그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피어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이들의 무례를 방관할 생각은 없었다.

‘참을 만큼 참았고.’

에단은 본디 인내심이 깊지 않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치워 버리는 게 적성에 맞았다.

“거기까지 하는 게 어떤가?”

고요함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이 고개를 돌리자, 1황자 크리스토가 옥좌에서 내려와 에단을 향해 다가섰다.

‘그래도 한가락 한다 그거지?’

에단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크리스토에게 국한되게 피어를 더욱 강하게 분출했다.

잠시 멈칫거린 1황자가 웃음기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거 정말 자칫하면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데? 거의 드래곤의 피어라고 봐도 무방하겠어.”

“칭찬 고맙군.”

“정말 드래곤의 피어를 손에 넣은 건가? 그렇다면 정보가 사실이었나 보군.”

“글쎄, 그것까지 대답을 해 줘야 하나?”

에단의 비아냥거림에도 크리스토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건 그렇군. 자네가 나한테 그런 것까지 대답해야 할 이유는 없지.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군. 단순한 호기심이네.”

“그래? 그럼 나도 호기심으로 질문 하나 하지. 너희들 목적은 ‘지하’를 여는 건가?”

그 순간 크리스토의 웃음기가 지워졌다. 그가 싸늘한 눈초리로 에단을 바라봤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지?”

“우리는 귀도 없는 줄 아는 건가? 그렇게 냄새를 풀풀 풍기고 다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크리스토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러 사람이 들을만한 얘기는 아니군.”

“그렇긴 하지. 뭐, 정 그러면 죄다 죽이면 그만이지 않나?”

에단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크리스토도 다시금 입꼬리를 올렸다.

“구미가 당기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조금 난감한 소리야.”

“그것참 아쉽네.”

크리스토가 에단에게서 시선을 돌려 칼베리안을 바라봤다. 크리스토를 마주한 칼베리안의 눈이 흔들렸다.

‘피하면 안 된다.’

이전이라면 감히 마주 볼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크리스토는 그에게 있어 괴물보다도 두려운 존재였으니까.

평소엔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리깐 채 덜덜 떠는 것만이 칼베리안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금이라고 각인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염치라는 게 있지.’

여기서 고개를 숙이면 에단 곁에 있을 자격이 없었다.

칼베리안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주먹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부릅뜬 눈에서는 핏발이 섰다. 비슷한 듯 다른 눈이 서로를 응시했다.

“호오.”

크리스토는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칼베리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크리스토의 시선이 다시금 에단을 향했다.

“자네 때문인가?”

크리스토의 물음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글쎄, 내 덕이 지대하기는 하지만, 결국 해낸 건 스스로 한 것 아니겠어?”

“그거 맞는 말이군.”

크리스토가 칼베리안을 스윽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시 보이긴 하는군.”

“그래야지. 누구랑 같이 있었는데.”

“그럼 이제 슬슬 그것 좀 풀어 주는 게 어떻겠는가? 나도 견디기가 영 쉽지 않군.”

“그래? 근데 어쩌지 내 기분은 아직 덜 풀렸는데. 이 새끼가 말했다시피 내가 또 한 망나니하거든. 한번 눈이 돌아가면 어지간해서는 못 말려.”

“그것참 우연의 일치로군. 그건 나도 매한가지라네.”

“아, 그래? 궁금하지도 않던 걸 알아서 잘 말해 주네. 근데 왜 나만 망나니 취급이지? 이거 억울하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원하면 대신 처리해 주지.”

“오, 얘네를?”

에단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꽤나 마음에 들었거든.”

“사내자식 관심은 썩 달갑지 않은데.”

“그것도 참 안타까운 사실이군.”

에단은 잠시 고민하며 턱을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러지 뭐.”

에단이 대답한 순간, 연회장을 가득 메운 피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억!”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가 바닥에 쓰러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개중에는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핸더슨은 몸을 옥죄던 피어가 해제되자마자 정강이를 부여잡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크리스토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핸더슨을 응시했다.

“흐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생각이지?”

귓가를 파고드는 섬뜩한 음성에 핸더슨이 힘겹게 일어났다.

방금까지 보여 줬던 득의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화, 황자님…….”

“아, 질문은 내가 할 테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군. 그래, 나를 모욕한 이유가 뭔가?”

“황자님을 모욕하다니요? 저는 결코 그러지…….”

“음? 내가 잘못 들었나? 제국의 피가 흐르는 하나뿐인 동생을 괄시하고, 내가 초대한 손님을 모욕하던데 말이야. 심지어 그것도 내가 연 연회에서, 버젓이 내가 있는데도.”

크리스토의 눈에는 살기가 없었다. 정말로 천진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핸더슨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그건…… 저자들이…….”

핸더슨이 떨리는 손으로 에단과 칼베리안을 가리켰다.

“그렇지. 네가 삿대질하며 가리킨 자들은 블란테의 이공자와 제국의 황자 아닌가? 반면 너는…….”

크리스토가 턱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카이제르의 방계 따위가 아닌가?”

“…….”

핸더슨이 입을 다물었다. 수치심과 모멸감, 절망 따위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저, 저는 가문에서 촉망받…….”

“음, 더는 듣고 싶지가 않군.”

크리스토의 손은 어느새 칼자루를 쥐고 있었고, 눈으로 좇기도 어려운 쾌검이 핸더슨의 목을 향했다.

하지만, 그때.

쾅!

굉음과 함께 불똥이 튀었다. 에단의 왼손이 크리스토의 검을 붙잡고 있었다.

콰드드드득!

움켜쥔 손에서 듣기 싫은 소음이 흘러나왔다.

“오, 자네는 역시 대단하군. 근데 나를 막은 이유가 뭐지? 자네도 처벌을 원하지 않았나?”

크리스토가 감탄과 의아함이 공존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이 이맛살을 좁히며 말했다.

“처벌을 원하긴 했지. 근데 왜 다 너만 해 먹으려고 하냐?”

“음?”

“욕 처먹은 건 나잖아. 열받은 것도 나고.”

에단이 고개를 돌리자 황망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핸더슨이 보였다.

후웅!

에단이 붙잡은 검을 밀어내며 그대로 허리를 비틀었다.

콰앙!

에단이 휘두른 주먹이 핸더슨의 얼굴을 가격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핸더슨이 공중을 비행했다.

한참을 날아가던 핸더슨이 그대로 벽에 처박힌 채 추욱 늘어졌다.

“……하하하핫!”

눈을 끔뻑이던 크리스토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 * *

에밀라는 습격이 있을 당시의 기억을 상기했다.

그때 본 1황자는 숨이 막히는 위압감을 보여 주었다.

‘……고작 그 정도 나이에.’

믿을 수 없는 경지와 기세였다.

에밀라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습격을 막고, 1황자가 물러난 뒤 에단이 한 말이 있다.

― 한 가지 묻지. 정말 여기 온 이유가 뭐야?”

에밀라는 에단의 물음에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에밀라가 생각에 빠졌다.

‘나는…… 여길 왜 온 거지?’

스스로 생각을 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황을 돌이켜 보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당시는 정말 막무가내로 내질렀다.

‘……단순한 소외감?’

에밀라 본인도 스스로에 대한 감정에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해 봤지만 명확한 답이 나오진 않았다.

에밀라가 고개를 내려 자신이 입은 차림새를 바라봤다. 어색했다.

백색의 드레스.

제국에 비치되어 있는 것 중에 가장 무난한 것을 입은 것임에도 거북함이 느껴졌다.

동작 하나하나가 불편했다. 에밀라는 언제나 움직임에 제약이 되지 않는 편한 옷들을 선호했다.

디자인은 고려하지 않았다. 입는 것들의 색상들도 거의 무채색에 한해서 입었다.

‘……이걸 입고 나가라고?’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몸의 라인이 여실히 드러났다. 굽이 높은 구두는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신가요?”

에밀라 곁에 있는 하녀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는 남은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준비됐습니다.”

눈을 질끈 감은 에밀라가 결심했다.

이내 연회장의 문을 열려던 그 순간.

에밀라의 몸과 표정이 굳었다. 발이 지면에 박힌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이질적이고 공포스러운 기운이 에밀라를 덮쳤다.

‘……이건 대체?’

저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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