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233화 (233/398)

◈ [233화] 연회 (4)

현대에서 봤던 고급 머신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품질.

그러한 운동기구들로 진행되는 수업에 학생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이거 뭐야!”

경험해 보지 못한 자극.

새로운 느낌.

주먹구구식의 운동이 아닌, 고품질의 기구들과 전문성과 체계를 갖춘 프로그램이 더해졌다.

‘밴드나 사슬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운동기구를 붙잡고 신음을 흘리는 학생들을 보며 에단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대체 뭐지?”

에단의 수업을 참관하기 위해 찾아온 블란테의 기사들이 휘황찬란한 기구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학생들이 하는 걸 보니까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그러게…….”

꿀꺽.

기사들이 침을 삼켰다. 경험해 보고 싶었다. 지금만큼은 학생들이 부러웠다.

에단이 참관 온 기사들을 힐긋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수업이 아닐 때는 교직원 우선 사용일 테니까 걱정 마. 기구들도 추가로 보급될 거고.”

“그, 그게 정말입니까……?”

기사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보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로 거짓말 안 해.”

“오오오오…….”

기사들이 감격에 젖은 눈으로 에단을 우러러봤다.

* * *

적당히 수업을 끝낸 에단은 숙소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갖췄다.

채비라고 해 봤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번 연회에서 에단은 어디까지나 초대된 입장이었고, 제국에는 어지간한 건 비치되어 있을 터.

굳이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갈 필요는 없었다.

‘묘한 기분이군.’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경험을 했고, 시간 또한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그 시간의 많은 부분을 페온과 함께했다.

‘알고는 있었어.’

페온의 말에는 분명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결국에는 내 선택이었을 뿐.’

비록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페온과 함께하면서 얻은 이득이 더 컸다.

페온이 아니었다면 그동안의 무모한 행보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에단이 자신의 왼손을 바라봤다. 겉으로 봤을 때는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손이었다.

‘이것도 마찬가지.’

에단이 왼손을 꽈악 움켜쥐었다. 생각할 것이 많았다. 해결해야 할 일들도 산재해 있었다.

‘피곤하긴 하지만.’

썩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매일 권태감이라는 늪에 빠져 살아가던 시절보다는.

‘지금이 낫지.’

비록 소설 속 인물들이었지만, 이제는 에단 곁에 살아 숨 쉬는 이들이었다.

‘할 건 해야지.’

에단이 씨익 웃었다.

* * *

아침이 되자 에단은 빈센트를 찾아갔다. 빈센트는 에단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참견은 안 하마.”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재밌는 것들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소식 들으셨습니까?”

에단이 피식 웃었다. 벌써 빈센트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가문의 대장장이들을 너무 편하게 쓰는 것 아닌가?”

빈센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 인력도 보충하고, 아버지를 위해서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

빈센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학생들과 기사들을 위해 비치해 둔 기구들 있죠? 그것보다 더 신경 써서 만든 것들이 조만간 아버지 개인 훈련실에 비치될 겁니다.”

빈센트의 눈빛이 바뀌었다.

씰룩거리는 입꼬리만 봐도 선물에 꽤나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자원 같은 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문의 재산을 빨아먹을 정도로 양아치는 아니라서요. 가뜩이나 돈 들어갈 데도 많은데. 대부분 드워프들이 가지고 온 것들이랑, 제가 뚫어 둔 거래처에서 받고 있습니다.”

“그렇군…….”

빈센트는 꽤나 당황한 눈치였지만, 본인의 체면 때문인지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많이 좋아하시네.’

진즉에 눈치를 챈 에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 건에 대해서는.”

에단의 말에 빈센트의 표정이 바뀌었다. 에단이 빈센트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아직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이냐?”

“네, 지금은 이릅니다.”

에단의 단호한 대답에 빈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망나니 시절이었다면 의심부터 들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래, 그럼 다녀오거라.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은 안 하겠다.”

“저도 그게 속 편합니다.”

이번에도 폭탄을 하나 터트릴 생각이라서 말이죠.

* * *

에단이 학장실을 나서자 익숙한 얼굴이 에단 앞에 나타났다. 에밀라였다.

“……또 가시는 겁니까?”

“뭔가 말이 의미심장하다? 놀러 가는 거 아니거든? 이제 인력도 충분하잖아.”

“제 말은 그게…… 하아.”

에밀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단의 말대로 더 이상 아카데미는 인력난을 호소하지 않았다.

교수진과 수업의 질, 학생의 만족도도 높았다.

레벨린이 있던 시절보다도 아카데미의 수준은 올라갔다.

에밀라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에단을 응시했다.

“누구랑 가시는 겁니까?”

“음…….”

그녀의 물음에 에단이 턱을 매만졌다.

설명을 해 줄까도 싶었지만,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한 명 있어. 뭐 싸우러 갈 것도 아니고, 주렁주렁 달고 갈 필요는 없잖아. 쟤네들도 좀 쉬어야지. 왜? 제국 한번 가 보고 싶어?”

“네, 저도 가겠습니다.”

“……뭐?”

농담 삼아 내뱉은 말이었지만, 에밀라는 결의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얘가 뭐 잘못 먹었나?’

말없이 에밀라를 응시하던 에단이 피식 웃었다.

“수업은 어쩌고?”

“말씀하신 대로 인력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학생들이 제 수업보다는 다른 분들의 수업을 더 선호하는 것 같더군요.”

에밀라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카데미의 꽃이라고 칭송받던 그녀였지만, 과거부터 명성을 쌓아 온 블란테와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블란테에게 검을 지도받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기회였으니, 에밀라의 수업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래서 삐졌냐?”

에단이 이죽거리며 묻자, 에밀라의 고운 이마에 선이 그어졌다.

“네, 삐졌습니다. 그래서 따라가야겠네요.”

생각보다 더욱 완고한 에밀라의 태도에 에단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얘 진짜 왜 저러냐?’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뜬금없이 돌발 행동을 보이자 꽤나 당황스러웠다.

에밀라를 말없이 바라보던 에단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따라올 거면 준비나 하고 와.”

“……네.”

에밀라가 안색을 밝히며 대답했다.

그녀가 준비를 위해 사라지고, 에단은 칼베리안을 데리러 가기 위해 그가 지내는 숙소에 들어갔다.

쾅!

역시나 노크는 사치였다.

거칠게 문을 열어젖힌 에단을 향해 칼베리안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네겐 배려라는 게 없는 건가?”

“응, 없어.”

뻔뻔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기가 찼지만, 여기서 에단에게 더 따져 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인지한 칼베리안은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제 출발인가?”

“각오는 했어?”

“각오라고 할 것까지야. 연회에 참석하는 것뿐인데.”

“호오.”

칼베리안의 성격은 처음과는 꽤나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본심은 꽤나 긴장하고 있는 듯했지만, 저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걸 뜻했다.

“그럼 가 보자고.”

에단이 칼베리안과 함께 게이트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칼베리안도 에단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짐은 없었다.

수업이 한창인 시간인 터라 교정은 한산했다.

하지만 게이트 앞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이드와 휴고, 헨리가 에단을 보고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뭐 하러 이렇게 모였어? 어차피 금방 올 텐데.”

“정말 제가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괜히 우리 측 전력을 누출할 필요는 없지.”

쓸데없이 상대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가토는 수업 중이라 오지 못했습니다.”

“그래, 수업 열심히 하라고 해. 근데 쟤는…… 쯧쯧.”

에단이 휴고에게서 헨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안색이 파리한 게 딱 봐도 어제 과음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들면 해독을 하지?”

“……그럴 거면 술을 마시는 이유가…… 우읍!”

헨리가 입을 틀어막으며 헛구역질을 하자, 에단이 얼굴을 구겼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길어야 이틀 안에 올 거니까 이제 그만 들어가.”

에단과 칼베리안이 마법진을 향해 다가서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에밀라와 에르미온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단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칼베리안과 에밀라도 에단 곁에 섰다.

“피곤하니까 빨리 가자.”

“너, 정말 쟤랑 같이 가는 거야?”

에르미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에단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은 에르미온이 까칠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꺼져.”

“넌 또 왜 뿔이 났어?”

“닥쳐.”

이해 못 할 에르미온의 반응과 함께 마법진에서 빛이 발산되며, 마법이 발동되었다.

“진짜 못할 노릇이네.”

시야가 바뀌자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속이 울렁거리는 감각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에밀라와 칼베리안도 마찬가지였는지 안색이 좋지 못했다.

에단이 마법진을 타고 넘어오자, 경비를 맡은 병사와 마법사가 에단에게 다가왔다.

“신분과 이용료를…….”

마법사와 경비병은 에단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사색이 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오, 오셨습니까?”

“오랜만이다.”

안절부절못하는 경비병과 마법사에게 에단이 반갑다는 듯 손을 들었다.

“지나가도 되지?”

“무, 물론입니다!”

마법사와 경비병들이 다급하게 길을 열었고, 에단과 일행은 그 사이를 지나갔다.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별거 안 했어.”

“…….”

에밀라가 묘한 눈빛으로 에단을 응시했다. 별거 안 한 것 같은 반응이 아니었다.

에단은 정면을 바라보며 도시를 걸었고, 에밀라와 칼베리안은 주위를 감상하듯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나와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칼베리안이 감상에 젖은 표정으로 말했다.

도시는 이렇게나 번화했지만, 그가 지내던 곳은 작은 방 안이었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칼베리안을 힐긋 바라본 에단이 걸어가면서 말했다.

“지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 도착해서 전부 말해.”

“……그래.”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성에 도착했다.

에단은 성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정지하고 신원을 밝히시오.”

“밝히라면 밝혀야지. 에단.”

“구체적인 신원을…….”

인상을 찌푸리던 경비병이 말을 흐리더니 곁에 서 있던 경비병을 바라봤다.

“설마…….”

경비병이 다시 에단에게 시선을 던졌다. 에단을 응시하는 눈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에단 블란테 님이 맞으십니까?”

조심스러운 질문에 에단이 귀를 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으니까 빨리 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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