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연회 (3)
두 사람과 렉사르와의 첫 만남은 그리 좋지 않았다.
렉사르의 반감과 적의는 분명했고, 적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먼저 다가온 것은 렉사르였다.
휴고와 가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렉사르의 조언을 들은 경험이 있던 휴고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감사합니다.”
휴고가 대뜸 렉사르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가토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
“전에 도움받은 게 있어서.”
휴고는 렉사르의 말을 잊지 않았다.
짧은 조언이었지만 그로 인해 휴고는 성장했다. 그렇다면 먼저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렉사르가 묘한 눈초리로 휴고를 바라봤다. 느껴본 적이 없는,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렉사르는 그 기분이 썩 어색했다.
“……감사를 듣고 싶어서 했던 말이 아니다.”
“그래도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휴고가 렉사르를 똑바로 마주 봤다. 휴고의 눈은 올곧았다.
렉사르는 휴고의 눈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피식 웃었다.
‘……웃었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토가 입을 벌렸다. 렉사르가 웃는다는 사실이 매우 기이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방금 전 대련에서 느낀 점을 말해 주지.”
렉사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 * *
주먹 용병단이 여정을 떠나기 전, 에단의 당부가 있었다.
“너희들이 뭘 가졌는지는 알고 있지?”
용병들은 각기 마나 수련법을 전수받았다. 그들은 마나 수련법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기껏 귀한 걸 멕여 놨더니, 제대로 된 성과도 없이 탱자탱자 놀기만 하면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부르르.
줄리엔이 몸을 떨었다.
에단의 눈빛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건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어떨 것 같냐니까 왜 대답이 없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한다고? 근데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잘해야지. 내 말 이해했어?”
“이해했습니다!”
“이해한 것 맞아? 내가 분명 잘해야 한다고 했잖아. 지금 이게 잘하는 게 맞아?”
“…….”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에단은 사람을 갈구는 것에 있어 도가 튼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 선 줄리엔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절부절못했었다.
“뭐,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 이해해. 기껏 멋진 이름도 지어 줬는데 통탄스러울 따름이지만 어쩔 수 없지.”
주먹 용병단이 과연 멋진 이름인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렸지만, 감히 에단 앞에서 의문을 제기할 용기는 없었다.
“그래도 난 너희를 괜찮게 생각해. 네가 말했잖아. 열심히 한다고. 맞지?”
“마, 맞습니다!”
“좋아. 잘하지 못하면 열심히라도 해야지. 그러면 복귀하면서 뭘 해야 될까?”
줄리엔은 찰나의 순간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했지만, 에단이 원하는 답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그걸로 끝나?”
줄리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에단이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농담한 것 가지고 뭘 그렇게 놀라. 내 말은 그냥 열심히 하라는 거야. 돌아가면서 의뢰도 좀 받고, 도적이나 그런 애들 있으면 소탕도 좀 하고. 애써 만든 용병단인데 이름값 좀 높여야 하지 않겠어?”
“마, 맞습니다!”
“그래. 이제 열심히 하고, 잘하기도 할 거라고 믿어. 너도 알지? 내가 귀가 많은 거.”
은근한 협박에 줄리엔이 침을 꿀꺽 삼켰다. 줄리엔도 알고 있었다. 에단의 뒤에는 정보 길드가 있다는 사실을.
‘마, 만일 실수라도 했다가는…….’
줄리엔이 휘청였다. 상상하기도 싫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에단이 씨익 웃으며 줄리엔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하자?”
그렇게 주먹 용병단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래, 내 팔자에 무슨.’
애초에 속 편하게 게이트를 이용할 자금 따윈 없었다. 그나마 붉은 곰으로서 많은 재산을 축적한 타미가 있었지만…….
“돈? 그거 과자 사 먹는 데 썼는데?”
순진무구한 눈빛을 보니, 그 이상 물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돈이 있다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타미 개인의 소유였다.
‘……일이나 하자.’
답은 일밖에 없었다.
그 뒤로 주먹 용병단은 닥치는 대로 의뢰들을 수락했다. 단원들의 반발도 조금 있었다.
“대, 아니, 임시단장. 이거 너무 빡센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말입니다. 발 뻗고 잔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
기본적으로 거칠고 억척스러운 성향을 지닌 단원들이다.
최근 에단으로 인해 반강제적인 성실성을 띠긴 했지만, 본성은 숨길 수가 없는 법이다.
하지만 단원들의 불만을 일시의 잠재우는 말이 있었다.
“……대장님 명령이야.”
“…….”
단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 뒤로는 그 어떤 불평불만도 없이 묵묵히 의뢰들을 수행해 나갔다.
그로 인해 용병단의 명성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행선지가 블란테의 영지 방향이라면 어떤 의뢰라도 닥치는 대로 수락했다.
우락부락한 외모의 용병들을 본 의뢰인들이 흠칫하기도 했다. 하지만 용병들은 의뢰주를 향한 예의를 갖췄다.
용병들의 낯빛에서 깊은 어둠이 보였지만, 의뢰주인 상인은 그것을 외면했다.
“하, 하하……. 최근 이름을 알리고 있는 용병들에게 경호를 맡기게 되어서 안심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상인은 줄리엔의 위에 올라타 있는 타미를 힐긋 바라봤다. 아주 귀여운 외모를 지닌 꼬마 아이였다.
‘……딸인가?’
궁금증이 일었지만 물어보는 것이 실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타미였다.
“앞에 누가 있어.”
줄리엔과 용병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앞을 막아선 자들의 생김새로 비춰 봤을 때, 도적 떼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큭큭, 오랜만에 대어인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어이, 가진 것 있으면 당장…….”
줄리엔과 단원들이 묘한 눈초리로 도적들을 바라보다가 서로를 마주 봤다.
“임시 단장.”
“어.”
“큭큭큭, 저것들은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 아니유?”
용병들이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기괴한 웃음이었다. 표정과 눈빛에서는 광기가 흘러넘쳤다.
“저런 앙큼한 버러지 새끼들을 봤나.”
“오랜만에 저런 놈들 보니까 너무 신나네? 창자로 줄넘기를 하고 싶은 심정이야.”
“하하하, 너 같은 머저리랑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가슴 한편에 내재되어 있던 폭력성이 튀어나왔다. 그 폭력성에 울분이 더해지자, 용병들의 눈은 광기로 넘실거렸다.
“뭐, 뭐야…….”
도적들이 용병들의 기세에 완전히 눌려 버렸다. 전투의 승패를 가름 짓는 것 중 중요한 요소가 바로 기세였다.
도적들은 기에 눌리지 않기 위해 칼자루를 쥐며 최대한 매섭고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한편 용병들은 그런 도적들을 바라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몇 명은 볼을 씰룩이고, 몇 명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흐. 야, 저게 무섭냐?”
“큭큭큭, 무섭냐고? 장난해?”
용병들은 진짜 무서운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동안 같이 구르고 싸우던 이가 어떤 괴물인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들이 아무리 험상궂은 표정을 지어 본들, 사미라의 호통이나, 에단의 웃음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심지어 렉사르는 곁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왔다.
그런 자들 사이에서 살아왔는데 고작 저런 도적들?
귀엽지도 않았다.
용병들이 각자 고개를 돌리며 목을 풀고 있었다. 그들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반갑다, 애들아.”
쌓인 울분을 토해 낼 시간이었다.
* * *
연회에 참가하기 전, 에단은 남은 시간 동안 그동안 소홀했던 교수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미 아카데미 자체가 꽤나 안정을 찾은 덕에 에단의 필요성이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에단을 반가워하는 학생들도 꽤나 많았다.
“그래, 나를 많이 기다렸나?”
“네!”
학생들의 우렁찬 대답에 에단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었다.
“그럼 즐거운 수업을 시작해 볼까?”
의미심장한 에단의 모습에 학생들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 * *
“끄으으으으윽!”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의 입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힘들게 드워프들을 데리고 온 의미가 있었다.
‘이건 뭐 현대에서 쓰던 것들보다 완성도가 높네.’
에단이 가문의 야장들과 드워프들에게 요청한 것은 트레이닝 장비들이었다.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전에 시험 삼아 쓰던 것처럼 형식만 갖춘 것이 아닌, 제대로 된 물건들.
랙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운동 장비가 배치되었다. 에단은 아예 사용 중인 연무장 하나의 이름을 바꾸었다.
명칭은 체력 단련실.
난생처음 보는 휘황찬란한 기구들의 향연을 본 학생들은 입이 벌어졌다.
드워프와 블란테의 장인들.
처음에는 많은 견제가 있었다. 모두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기술자들인 만큼 서로를 인정하는 기준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서로를 인정했다.
― 아니, 이런 기술이 있단 말인가?
― 허어, 인간들에게 이런 손재주가?
― 그런 방식으로 망치질을 하면 불순물이…….
― 풀무질에 쓰는 장작은…….
― 용광로의 구조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를 끊임없이 나누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게 되었다.
― 자네…… 정말 대단하군!
― 그건 내가 해야 할 소리! 인간이라고 무시했던 과거가 후회스럽군!
드워프와 블란테의 장인들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의기투합했다.
에단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의뢰를 맡겼다.
현대에서 괜찮다고 느낀 운동기구들을 모두 설명했다.
비교적 구조가 단순한 랙과 바벨, 원판들은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에단이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자고로 재미가 있어야지.’
매번 똑같은 것만 하면 질리기 마련이다. 이왕 만드는 거 기구들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다고 한들 현대의 것을 완벽히 구현할 수는…….
‘……이게 되네?’
대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장인들이 머리를 맞대자 어마어마한 물건들이 튀어나왔다.
몇 번 사용해 보니 품질은 오히려 현대의 것들을 뛰어넘었다.
‘이건 뭐…….’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 기구를 만지는 에단의 눈이 몽롱해졌다.
기구를 쓰다듬던 에단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