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너, 정체가 뭐야? (2)
블란테의 장인들은 드워프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드워프들은 불쾌한 기색을 띠었지만 차마 싫은 소리를 내뱉지는 못했다.
‘장인이라고 해 봤자 인간일 뿐이지.’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뛰어나다고 해 봤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이었다. 드워프들은 일평생을 광산에서 망치질을 하며 살아가기에,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오래 살다 보니 정말 신기한 걸 다 보는구먼.”
“동감이야. 듣자 하니 드워프들이 그렇게나 망치질을 잘한다던데.”
“그것참 궁금하군.”
대장장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
그리고 자존심이 상한 것 같은 표정의 드워프들.
원하던 상황이었기에 에단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일손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허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아직 실력을 보지 못해서…….”
대장장이가 말끝을 흐렸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장인이니만큼 보는 기준도 까다로웠다.
“시험은 충분히 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쪽도 실력이 만만치 않아서요.”
“도련님이 보증하시면 믿어도 될 것 같군요.”
“네, 믿어 보시죠. 그리고 여기까지 온 김에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에단은 자기가 생각하던 물건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장장이들이 진지한 자세로 에단의 말을 경청했다.
“흐음, 이번에도 범상치 않은 부탁이긴 한데, 크게 어려울 건 없을 것 같은데?”
“이제 일손도 보충됐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대장장이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철이 부족합니다.”
“아, 그게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에단이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대장장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구해 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런 쪽에 특화된 적당한 상인이 있었다.
* * *
가토와 에밀라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둘의 목적은 같은 것 같았다.
“……어디로 가신 거지?”
가토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향했다. 에밀라도 가토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뒤를 따랐다.
이윽고 도착한 곳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가토!”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당황해하던 둘은 때마침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휴고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가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일은 무사히 끝났어?”
“음…… 이걸 무사히 끝났다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소리야?”
“설명하자면 좀 긴데…… 아무래도 도련님께서 설명해 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 알다시피 내가 이런 쪽은 좀 약해서.”
휴고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휴고의 성격을 알고 있는 가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뭐……. 그나저나 꽤나 강해진 것 같은데?”
가토가 휴고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 말에 몸을 움찔한 휴고도 이내 가토의 몸을 슬며시 관찰했다.
“……전보다 조금? 그러는 너도 많이 강해진 것 같은데.”
“……그래?”
묘한 신경전과 함께 가토와 휴고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둘은 누구보다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으면 오랜만에 몸이나 풀까?”
먼저 입을 연 것은 가토였다.
“그래도 돼? 가토 너 요즘 바쁘지 않나?”
“그다지 바쁘진 않아. 어디까지나 임시로 지도하고 있던 거니까. 바쁜 건 오히려 너겠지.”
“나도 뭐…….”
휴고가 씁쓸한 얼굴로 답했다. 이번 일을 통해 휴고는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통감하고 말았다. 휴고가 고개를 들고 가토를 향해 말했다.
“그럼 몸 좀 풀어 볼까?”
둘의 부딪치는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실례지만 에단 씨는 어디로 가신 건지 알 수 있습니까?”
말없이 둘을 지켜보던 에밀라가 물었다.
“아, 도련님이요? 그건 저도 잘……. 급한 용무가 있다며 가시더라고요. 지금 아시다시피 상황이 좀 정신없는데…….”
에단이 엘프들을 기숙사에 몰아넣긴 했지만, 급작스러운 등장에 학생들의 관심이 쏠린 것이 문제였다.
기숙사 주위로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아.”
에밀라가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에단은 올 때마다 사건을 몰고 오는 것 같았다.
에밀라가 피로에 젖은 얼굴로 학생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 * *
에밀라에게 상황을 떠넘긴 휴고와 가토는 적당한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으로 향하면서도 둘은 아무런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 묘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연무장의 문을 열고 들어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가토는 휴고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드래곤은 어땠는지 등등.
나누고 싶은 대화가 많았으나,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휴고의 힘이었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휴고를 바라보자 묘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싹 말라 온 가토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긴장을 하기는 휴고도 매한가지였다.
휴고는 긴장을 풀기 위해서 가벼운 심호흡을 하며 제자리에서 통통 뛰었다.
별것 아닌 동작이었지만, 휴고의 탄력이 느껴졌다.
휴고가 가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시작할까?”
“……그래.”
가토가 칼을 꺼내자 맑고 서늘한 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대련에서 진검을 꺼내 들었지만 휴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토가 굳은 표정으로 휴고에게 물었다.
“……강도는 어떻게?”
“진심으로 하자.”
휴고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그 순간,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휴고에게서 짙은 야성이 넘실거렸다.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순박해 보이던 시골 청년의 눈에서 사나운 포식자의 눈으로 바뀌었다.
누렇게 물든 휴고의 눈이 번들거렸다.
뿌득 뿌드득.
기괴한 소리를 내며 휴고의 골격이 바뀌었다. 가토는 굳은 얼굴로 휴고를 지켜봤다.
“……이제 다루게 됐구나.”
“응. 어쩌다가 보니까.”
휴고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흘러나오는 입김에서 짐승의 냄새가 느껴졌다.
가토가 이전에 봤던 야수화와는 조금 달랐다. 완전한 야수화가 아닌, 신체의 일부만 조금씩 변화한 모습.
‘……오히려 이게 더 까다로울 수도 있겠어.’
이성을 잃은 휴고는 대단히 흉폭하고 위협적이었지만, 그만큼 단순했다.
단순한 움직임은 예측하기가 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의 휴고는 흉흉한 안광 속에 날카로운 이성이 존재했다.
‘도련님의 말이 사실이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좌절하는 건 성미에 안 맞았다.
‘인정하기도 싫고.’
가토도 휴고와 마찬가지로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날카로운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휴고가 눈을 가늘게 뜬 채 가토를 바라봤다.
“…….”
스윽.
정적이 깨졌다. 평소와 다르게 먼저 달려든 것은 가토였다.
‘뭐가 달라졌는지 한번 볼까?’
쏘아지듯 튀어 나간 가토가 검을 휘둘렀다. 경로를 읽기 쉬운 찌르기는 재미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먼저 반응부터.’
달라진 휴고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전까지의 휴고였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가볍게 거리를 벌린 뒤, 빠르고 기민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농락시키며 잠식할 터였다.
하지만 휴고는 제자리에 서서 가토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이해 못 할 휴고의 행동에 가토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 순간, 정지한 것만 같던 휴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앙!
“크윽!”
갑작스러운 충격에 가토가 신음을 터트렸다. 손아귀가 터져 나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휘두르던 검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가토의 시선이 휴고의 팔로 향했다.
‘이건 반칙 아니야?’
가토가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이제 휴고는 화려한 움직임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휴고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가토를 바라봤다.
‘쓸데없는 움직임을 줄이고.’
곁가지를 쳐 낸다. 휴고의 머릿속에서 에단의 모습이 떠올랐다. 에단의 동작은 효율 그 자체.
‘모든 걸 따라 할 수는 없어.’
에단과 휴고는 달랐다.
에단은 휴고보다 강했지만, 모든 점에서 휴고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렉사르의 조언 이후, 휴고는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휴고가 상체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가토가 이를 악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자세.
타닷!
휴고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가토는 휴고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의식을 집중했다.
이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졌고, 가토가 지면을 밟으며 칼을 내밀었다. 휴고의 공격을 예측한 움직임이었다.
속도는 휴고가 빨랐지만, 닿는 것은 가토가 먼저였다.
뚝.
그때 갑자기 휴고의 움직임이 멎었다. 예상 못 한 움직임에 가토가 눈을 부릅떴다.
뻗어 나온 휴고의 발이 가토의 정강이와 부딪혔다.
“크윽!”
정강이에서 밀려온 아찔한 통증에 가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가토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휴고의 움직임은 예상을 벗어났다.
가토는 중심이 흐트러졌지만, 어떻게든 대응을 위해 검을 휘둘렀다. 유효타를 입히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거리를 벌리고 자세를 가다듬기 위함이었다.
그 순간, 휴고의 모습이 사라진 걸 확인한 가토가 아래를 바라봤다.
타닷!
휴고가 네 발로 질주했다. 상식을 벗어난 움직임과 속도였다. 가토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면 꼼짝없이 뒤를 붙잡히고 말 것이다.
패배하더라도 이런 식의 패배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휘릭!
가토가 몸을 내던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몸을 일으킨 가토가 뒤를 돌아봤다.
휴고는 자리에 서서 가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억, 허억.”
가토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짧은 공방이었지만, 체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정말 까다롭네.’
휴고는 이전과 달라졌다.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까다로워졌다.
‘……마치 도련님을 보는 것 같아.’
물론 에단처럼 노련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에단은 언제나 몇 수 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후우.”
가토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달아오른 머리가 차게 식었다.
‘시야를 넓게.’
좁아진 시야가 트인 기분이 들었다.
넓어진 것은 시야뿐이 아니었다.
‘……비할 수는 없겠지만.’
빈센트의 앞에 선 날.
가토는 그날의 기억을 회상했다.
가토가 검을 들었다. 그의 검 끝이 휴고에게로 향했다.
‘시야를 넓게.’
하지만 시야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가토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이 암전되며 칠흑 같은 어둠이 엄습했다.
난데없는 행동에 휴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는 거야?”
“후우…….”
가토는 대답 대신 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휴고의 몸이 움찔거렸다.
“……역시 너는 감이 좋아.”
가토가 웃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휴고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빈센트의 ‘그것’은 감히 따라 하거나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따라 할 수 없다고 아무런 영감조차 얻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가토가 눈을 떴다. 가토의 눈은 평온하고 고요했다. 휴고는 말없이 가토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와.”
가토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