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너, 정체가 뭐야? (1)
처음부터 의아한 점은 있었다.
성검이란 존재.
성검이란 무엇인가.
또 신성력이란 무엇이고, 카이나는 도대체 왜 있는가.
단순한 에고 소드로서?
원작에서 등장한 에고 소드는 카이나가 유일하다.
아니, 에고 소드라는 설정 자체가 언급된 적이 없었다.
완전한 자아, 그리고 페온과의 안면.
‘그 심상에서의 카이나는 인간이 확실했다.’
카이나는 검의 이름을 ‘아슬란’이라고 불렀다. 단 한 번도 성검이라고 지칭한 적이 없었다.
거기서 에단은 묘한 꺼림직함을 느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할 수도 있었지만, 지적하지 않은 이유는.
‘상황이 내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던 페온과 카이나.
성검의 존재는 에단에게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하다. 신성력과 회복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능력이 존재했기에.
그래서 에단은 꺼림직함을 느꼈음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주인공이 사용하던 무기라는 것 하나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에단이 사나운 눈초리로 카이나를 노려보자, 카이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대뜸 무슨 지랄인데? 설명을 해 줘야…….”
카이나는 그제야 페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페온은 어디 갔어.”
“어딜 갔겠어. 내 뒤통수를 후려친 뒤에 튀었지.”
에단이 으르렁거리며 카이나에게 다가갔다. 카이나는 황당한 얼굴로 에단에게 되물었다.
“뒤통수를 쳤다고? 그 녀석이?”
“내가 속이 좀 좁아. 그래서 살가운 소리는 못 해 주겠네.”
에단이 목을 풀며 다가서자 카이나 눈살을 찌푸렸다.
“너……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냐?”
그 질문에 에단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잘 아네. 한번 해보자고.”
타닷.
에단이 달려들었다. 카이나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애송이가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구나!”
어느새 카이나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검의 외향은 성검, 아니, 아슬란과 완전히 판박이었다.
에단이 눈을 부릅떴다.
순간 에단에게서 압도적인 기세가 발산하자, 카이나의 몸이 움찔거렸다.
“너 이 새끼……!”
“뭐, 그러면 봐줄 거라고 생각했어?”
에단이 지면을 디뎠다. 중심이 이동하며 대기가 찢어지는 흉악한 소음이 들려왔다.
후웅!
매서운 기세와 함께 에단의 정강이가 카이나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빠아악!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고통에 카이나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녀의 공간이었다.
촤악!
그 와중에도 카이나는 검을 휘둘렀다. 검에는 살벌한 오러가 넘실거렸다.
상체를 젖히며 검을 피해 낸 에단이 그대로 발을 차올렸다.
퍽!
에단의 발이 카이나의 손목에 적중했다. 하지만 카이나는 검을 놓치지 않았다. 에단이 상체를 세운 뒤 카이나에게 달라붙었다.
카이나는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리려고 들었지만, 에단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결국 에단은 카이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꽈악!
그녀가 검을 휘두르려 들었지만, 에단의 손에 단단히 잡혀 풀리지 않았다.
“이 개자식이!”
“극찬해 줘서 고맙네.”
카이나의 욕지기에도 에단은 콧방귀를 꼈다. 에단이 남은 손으로 카이나의 목을 휘감았다.
빠악!
“커헉!”
에단의 무릎이 카이나의 복부를 가격했다. 카이나의 눈이 부릅떠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단의 공세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뻐억! 뻐억! 뻐억!
에단의 무릎이 카이나를 쉬지 않고 가격했다. 에단을 밀어내고 싶어도 완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끄으윽!”
카이나가 실핏줄이 돋아난 눈으로 에단을 노려봤다. 그녀가 순간 에단의 사타구니를 향해 발을 차올렸다.
“어이쿠, 위험해라.”
에단은 목을 붙잡고 있는 손을 놓아 그녀의 발을 막아 냈다.
“아쉽네. 으깨 버렸어야 하는데.”
“하하, 안타깝게 됐네!”
쑤욱!
다리를 붙잡은 에단이 그대로 카이나를 넘겼다.
완력에는 상대가 되지 않고, 레슬링에 조예가 없는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바닥에 몸이 뉘어졌다.
에단은 순식간에 카이나 위에 올라탔다. 저항을 하려고 해도 이미 양팔은 에단이 무릎으로 봉쇄하고 있었다.
“……숙녀한테 행동이 조금 과격하네?”
그녀의 말에 에단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왜, 반했냐?”
우웅.
에단의 주먹에 회색 마나가 짙게 서렸다. 카이나의 안색이 굳어졌다.
“설마…….”
“어. 그 설마가 맞아.”
쾅!
에단이 그대로 주먹을 내려찍었다. 카이나가 질끈 감은 눈을 떴다.
“……뭐 하자는 거야?”
“마지막 기회를 줄게. 순순히 대답해. 너희들 정체가 뭐야.”
“하, 꼴에 여자라고 봐주는 거냐? 난 모르는 일이야.”
“하하,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에단이 씨익 웃었다. 지금과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여자라고 봐준다고?”
그럼 한번 경험해 봐.
쾅! 쾅! 쾅! 쾅! 쾅!
흉악한 파운딩이 카이나의 얼굴에 쏟아져 내렸다. 주먹에 마나를 싣지는 않았다. 그녀가 즉사한다면 대답을 들을 수 없을 테니까.
파운딩이 꽂힐 때마다 그녀의 몸이 들썩거렸다.
파운딩은 멈출 줄 모르고 지속되었고, 꽉 붙들고 있던 칼자루도 결국 놓치고 말았다.
에단이 파운딩을 멈췄다. 카이나의 얼굴은 처참했다.
“엄살 부리지 말지. 어차피 바로 회복하잖아?”
“……카악, 퉤!”
카이나의 피가래를 피해 낸 에단이 카이나를 응시했다.
처참하게 뭉개졌던 카이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원상 복구됐다.
“살면서 이렇게 얻어터져 본 건 또 처음이네. 너 인간 맞냐? 여자를 이렇게 팬다고?”
“차별을 안 하는 성격이라.”
“그래 네 똥 굵다. 염병할. 뒈지는 줄 알았네. 무거우니까 비켜!”
카이나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에단이 몸을 일으킨 뒤, 무릎을 털어 냈다.
“하아, 씨발. 진짜 기분 뭣 같네. 저런 놈한테 얻어터지다니.”
“그건 나도 매한가지야. 아직도 뒤통수가 얼얼해.”
“너는 뒤통수겠지만, 나는 지금 앞 통수가 묵사발이 났거든? 어?”
“객기 부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앙탈이야?”
“아앙탈? 이제 말까지 놓네? 진짜 저 새끼를 그냥!”
벌떡 일어나려던 카이나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말 사실이야?”
“어.”
“구체적으로 설명해 봐.”
에단이 드래곤을 토벌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돼서 너를 찾아온 거다. 이 얘기만 지금 몇 번째 반복하는 건지 모르겠군.”
이야기를 들은 카이나가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머저리 같은 새끼가…….”
“이제 솔직하게 말해.”
“못 하겠다면 어떡할 건데.”
“내가 뭘 할지 궁금하면 해도 좋고.”
번들거리는 에단의 눈을 본 카이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개 같은 새끼. 너처럼 협박하는 놈은 처음 봤다. 하지만…….”
카이나가 씁쓸한 얼굴로 에단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는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말 못 해. 네가 무슨 짓을 하든지 이건 변하지 않아.”
카이나의 말에 에단이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일으켰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군.”
“또 두들겨 패려고? 알고 있겠지만 그딴 걸로는…….”
“아니, 그럴 생각 없어.”
에단이 무심한 표정으로 카이나를 응시했다.
“그럼 대체 뭘…….”
에단이 카이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카이나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순간 불길함이 엄습했다. 에단의 입술이 들썩거렸다.
[좌절]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오진 않았지만, 에단의 의도는 명확히 발현된다. 카이나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손끝에서 발현된 검은 연기가 부정하게 움직였다.
“이딴 걸로!”
카이나의 주위에서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휘몰아치는 신성력에 꿈틀거리는 불길한 연기는 흩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다시 형체를 갖췄다.
카이나가 이를 악물며 다시 신성력을 휘둘렀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검은 연기는 결국 카이나에게 도달했고, 카이나의 몸을 휘감았다.
“너……! 이거 도대체 뭐야!”
“나도 몰라.”
저게 어떤 것인지는 에단도 알지 못한다.
에단이 알고 있는 것은, 전에 얻었던 룬어와 달리 이 룬어는 습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용법을 체득했다는 것뿐이다.
검은 연기는 카이나를 칭칭 옭아맸다. 그녀는 에단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지만, 에단의 시선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더 이상 너를 믿을 수 없어. 그게 최소한의 조치다.”
그 말을 끝으로 에단은 카이나의 심상에서 빠져나왔다.
“…….”
눈을 뜬 에단이 바닥에 누워 있는 성검, 아니, 아슬란을 바라봤다.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옅어졌다. 더 이상 카이나의 시끄러운 음성도 들려오지 않았다.
에단이 검을 붙잡았다.
신성력은 느껴졌지만, 이전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옅은 기운이었다.
칼자루를 붙잡은 에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뭘 숨기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머저리같이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에단은 검을 허리춤에 찬 뒤 방을 나섰다. 에단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망령들이 화들짝 놀라며 구석으로 숨었다.
“숨으면 내가 못 찾을 거 같아?”
소름 끼치는 소리에 망령들이 후다닥 에단 앞에 뛰어와 넙죽 엎드렸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결코 숨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잘해라.”
에단이 스윽 흘겨보며 망령들을 지나갔다. 망령들은 안도에 한숨을 내쉬었다.
폐건물을 나서고 숲을 지나치자, 에단은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꽤나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갑작스레 많은 인원들이 이동했으니, 어쩔 수 없겠지.’
대뜸 엘프와 드워프들이 대규모로 몰려왔으니 놀라지 않은 게 이상했다.
에단은 아직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것을 보며,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인파를 뚫자 허둥지둥하고 있는 크러쉬가 있었다.
에단이 눈살을 찌푸리며 드워프와 엘프들을 향해 말했다. 에단을 본 르니엘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쪽으로 따라와.”
“네! 용…….”
“한마디만 더 해 봐.”
에단의 사나운 눈빛에 르니엘은 내뱉으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죄송합니다.”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따라와.”
에단은 먼저 엘프들을 적당한 기숙사에 던져 놨다. 이제 인원을 수용할 건물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에단은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면서 따라오는 드워프를 흘겨봤다. 드워프들은 갑자기 드는 오한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뭐, 인력은 충분하니까.’
드워프들을 이끌고 향하는 장소는 바로 블란테의 야장들이 지내는 대장간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풀무질 소리에 드워프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장인이라 그건가.’
피식 웃은 에단이 대장간에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에단의 인사에 망치를 두드리던 야장이 고개를 돌렸다.
“어, 에단 도련님 아니십니까! 안 그래도 일전에 말하신 것들 좀 보여 드리려고 했는데.”
“오늘은 그것 때문에 찾아온 건 아닙니다. 많이 바빠 보이셔서 죄송하네요.”
“끌끌, 아닙니다. 이게 저희들의 낙입니다. 그나저나 그럼 무슨 일로…….”
야장의 물음에 에단이 씨익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일손이 부족해 보여서 일꾼을 조금 데리고 와 봤습니다.”
에단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드워프들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