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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25화 (225/398)

◈ [225화] 대비 (2)

하루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물론 칼베리안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동안 많이 쉬었지? 우리 뺑이 칠 동안 차나 홀짝거리고.”

“……억울하다. 그건 네가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오, 아직 대답할 여력이 있나 보네?”

에단의 발이 칼베리안의 등을 지그시 눌렀다. 팔굽혀펴기를 진행 중이던 칼베리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끄으으으!”

칼베리안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단이 히죽 웃었다.

“체력이 많이 늘었는걸?”

에단의 비아냥에도, 대답할 여력조차 사라진 칼베리안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결국 지옥 같던 마지막 횟수까지 채운 칼베리안이 바닥에 엎어졌다. 에단이 감탄 어린 휘파람을 불었다.

“많이 늘었네. 아주 만족스러워. 그럼 여기 다 닦고 준비하고 있어. 내일 갈 거니까.”

쾅!

에단이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갔다. 칼베리안이 황망한 눈으로 닫힌 문을 바라봤다.

부들부들.

본인도 모르게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괜히 왔나?”

서러움이 북받치듯 차올랐다.

* * *

하루간의 단비 같은 휴식.

모두 각자만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한 뒤 저택 앞에 집결했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는 밤새 연구에 매진했는지 얼굴이 퀭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히죽히죽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어딘가 모르게 섬뜩함이 느껴졌다.

에단은 두 대마법사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더 이상 잡아 둘 수 있는 게 없군.’

드래곤은 토벌했고, 원하던 부산물도 어느 정도 얻었다. 이제 그들은 에단의 말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

‘남은 게 있다면 드래곤 하트와 마석인데.’

그건 에단이 따로 사용할 생각이기에 보상으로 걸어 둘 수 없었다.

‘알아서 하겠지.’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붙잡아 둘 생각은 없었다. 에단은 주위를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헨리, 너는 어제 아주 거하게 마셨나 본데. 안색이 창백한 걸 보니까.”

“헤헤.”

헨리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에단은 미간을 조금 찌푸린 뒤 본론으로 넘어갔다.

“토벌은 무사히 끝났다. 다들 수고 많았고, 우리는 이제 다음 일로 넘어가야 한다.”

“……다음 일?”

에르미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에단이 답했다.

“너희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이제 아카데미로 복귀할 생각이야.”

“……아, 그러셔?”

에르미온의 이마에 선이 몇 개 그어졌다. 데아티르가 에르미온을 힐긋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단순한 복귀라면 이런 자리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따로 이유가 있나?”

“눈치가 빠른데.”

에단이 데아티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대충 알 만한 사람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에단이 뒤편에 서 있던 칼베리안을 앞으로 내세웠다.

잠시 얼굴을 찌푸린 칼베리안이 차가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칼베리안이다.”

짤막한 소개였지만 표정과 어투에는 기품과 근엄함이 서려 있었다.

에단이 씨익 웃었다.

“다들 알고는 있겠지만 다시 소개한 이유가 있어. 이제 얘를 전면에 내세울 거거든.”

“……너의 정확한 목적이 대체 뭐지? 정말 전쟁이라도 벌일 셈인가?”

“전쟁?”

에단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한기가 서린 눈으로 데아티르를 응시했다.

“상대가 원한다면.”

“…….”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에단의 말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지 않았다.

진심으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첸은 말없이 에단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에단은 이미 블란테라는 가문 외에도 많은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가주의 자질.’

그 철혈의 빈센트조차 취임 초기 때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시험은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군.’

블란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반드시 충족되어야만 했다.

무력과 세력.

거칠고 난폭한 흑사자들을 이끌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증명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아직 십 대의 나이에.’

편법을 동원했다고는 하나,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선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만한 세력의 구축.’

첸이 주위를 둘러봤다.

대륙에 위명을 떨치는 대마법사들과 자신이 봐도 뛰어난 실력의 엘프 부대, 그리고 거상이라는 칭호를 지닌 부호와 정보 길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첸은 칼베리안을 바라봤다. 제국의 황자까지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이제 에단이 가진 세력의 규모는 대륙을 아우른다.

‘믿을 수가 없군.’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에단은 그들 앞에 섰음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강렬한 카리스마로 압도하고 있었다.

“제국의 부름이 있었다. 의도는 빤히 보이지. 아카데미를 토해 내고, 이 녀석을 넘겨라. 그 정도겠지.”

에단이 씨익 웃었다.

“다들 알고 있을 거야. 나는 성격이 조금 지랄 맞아서 남들이 뭘 시키면 그대로 듣는 법이 없거든? 제국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

에단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오히려 보여 주려고. 우리가 누구인지. 한번 먹은 걸 그대로 토해 낼 만큼 호락호락한 녀석들이 아니라는 걸 각인시켜 줘야지.”

비리와 추악한 사생활들. 그걸 터트릴 적기가 다가왔다.

“명심해. 우릴 건들면 상대가 누구든지 철저하게 되갚아 줄 테니까.”

에단이 굳은 표정으로 선언했다.

* * *

일행은 아카데미에 순차적으로 복귀했다. 에단의 예상과는 반대로 에르미온은 일행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어딜 가든 내 마음이야.”

에르미온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에르미온과는 반대로 데아티르는 아큐르로 복귀 의사를 밝혔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군. 좋은 경험을 했다.”

데아티르가 에단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손을 바라보는 데아티르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폭풍이 몰아치겠군.’

비록 에단은 나이가 어렸지만,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손을 맞잡은 에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또 보지.”

“그래.”

처음에는 건방지다고 느낀 평대였지만, 이제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데아티르는 그렇게 가문으로 복귀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도 돌아가 볼까?”

다들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 * *

아카데미에는 많은 소란이 생겼다.

갑작스레 엄청난 인원이 아카데미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법진에 관리를 맡은 크러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 이게 무슨…….”

“이건 언제 타도 기분이 별로네.”

에단이 뒷목을 쓰다듬으며 앞으로 나왔다.

갑자기 등장한 대규모 인파에 크러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안 쓰는 건물이랑 방 좀 있지? 대충 선별해서 좀 넣어 줘. 아, 그리고 올 애들 아직 남았으니까 알아 두고.”

“……수업 중이었다.”

“뭐 얼마나 훌륭한 수업을 한다고 유세를 떨어. 보나 마나 지 자랑만 하루 종일 늘어놨을 텐데.”

“이, 이익…….”

크러쉬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에단은 크러쉬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수업 보충은 저기 저 누나가 해 줄 거야. 그게 학생들 만족도는 더 높을걸? 그러니까 잔말 말고 빨리 시키는 일이나 해.”

“……뭐라고?”

에르미온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에단을 노려봤다.

에단은 에르미온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크러쉬를 향해 물었다.

“드레이는 지금 어디 있지?”

“드레이는 지금 본관에서 검술 수업…….”

에단은 크러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움직였다. 발을 옮기는 에단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뭐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 봐야지.’

에단의 안광이 흉흉하게 빛났다.

* * *

드레이는 폐건물에서 나와 반으로 돌아왔다.

학생들은 드레이를 반갑게 맞이했고, 드레이도 금세 학생들 사이에 동화되었다.

오늘은 검술 수업 시간이었고, 에밀라와 가토가 학생들의 검술을 봐주고 있었다.

학생들이 우렁찬 기합을 내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에밀라와 가토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학생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작은 실수나 습관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시선 처리, 보폭 불량.”

“죄송합니다!”

에밀라의 무덤덤한 지적에 학생이 우렁찬 목소리로 사과했다.

학생들은 지적당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수업 수준이 말도 안 되게 발전했네.’

확실히 블란테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드레이는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거친 소리와 함께 연무장의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문이 열린 곳에는 에단이 매서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도련님?”

가토가 에단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에단은 가토나 에밀라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드레이.”

갑작스러운 호출이었지만, 드레이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와 에단 앞에 섰다.

에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드레이의 얼굴도 긴장으로 물들었다.

“잠깐 가져간다.”

에단이 드레이의 허리춤에 묶여 있는 성검을 그대로 붙잡았다.

드레이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나중에 설명해 줄게. 수업을 방해해서 미안하군.”

성검을 낚아채듯 받아 든 에단이 몸을 돌려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조용히 하고 수업에 집중해라.”

에밀라가 학생들을 통제하자 수군거리던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궁금증을 느낀 것은 에밀라도 마찬가지였다. 에단은 그녀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

자존심이 상했다. 에밀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 * *

에단은 성검을 쥔 채 말없이 어디론가 향했다. 카이나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갑자기 또 왜 난리야?

“…….”

에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향하는 장소는 드레이가 홀로 수련을 하는 폐건물이었다. 에단이 건물에 들어서려고 하자, 망령들이 화들짝 놀라며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건물에 들어선 에단이 성검을 툭하고 바닥에 던졌다.

그제야 카이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

에단이 말없이 성검을 응시하다가 물었다.

“너, 정체가 뭐야?”

― ……정체? 질문의 의도가 뭔데.

“지랄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에단이 으르렁거렸다.

살기가 넘실거렸다. 드래곤에게서 흡수한 피어가 미세하게 흘러나왔다.

― ……너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닌 거야?

기세만으로도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카이나의 눈에는 에단 주위에 있는 마나가 겁먹은 듯 진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성검을 바라보는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꾸 말을 돌리겠다 이거지.”

성큼성큼 다가간 에단이 칼자루를 쥐었다. 그러고는 강제적으로 심상에 들어갔다.

눈을 뜨니 풍경이 바뀌었다.

에단이 처음 눈을 떴던 그 장소였다. 수많은 검들과 그 가운데에 서 있는 카이나.

에단이 고개를 들어 카이나를 바라봤다.

“다시 한번 묻지. 너,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냐.”

에단이 씹어뱉듯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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