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수습 (2)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런 기운을 내뿜을 수 있는 건 드래곤 하트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작업을 진행하던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모든 것을 중단한 채, 드래곤 하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허.”
에르미온이 멍한 눈으로 드래곤 하트를 바라봤다.
푸른색의 결정,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품은 드래곤이 가진 능력의 원천.
“저게 드래곤 하트…….”
에르미온이 중얼거렸다.
화려함은 없었지만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웅혼한 기운이 주변을 압도시켰다. 모두가 인지할 수 있었다.
아, 이게 바로 드래곤 하트…….
“자, 자. 비켜 봐.”
감상에 젖은 분위기를 깨트리며, 에단이 인파를 가르고 다가왔다.
“잘 보이네.”
씨익 웃은 에단이 드래곤 하트를 집었다. 드래곤 하트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에단의 주먹보다 조금 더 큰 크기.
사람들의 시선이 에단을 향해 돌아갔다.
“야, 그걸 왜 네가 가져가!”
“내가 잡았으니까 내가 가져가지. 너희, 주제 파악도 못 하는 거 같은데?”
어이쿠.
에단이 드래곤 하트를 떨어트리는 시늉을 했다. 보는 이들의 눈이 부릅떠진다.
“놀랐냐?”
에단이 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에르미온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재밌냐?”
“어, 엄청. 이거 탐나지? 이해해. 보통 물건은 아니니까.”
에단이 공을 돌리듯이 드래곤 하트를 손가락 위에 세워 돌리고 있었다. 에르미온은 입을 떡 벌린 채 드래곤 하트를 응시했다.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냥 뭐, 심심해서.”
“심심해서라고……? 이, 일단 그거 좀 놓고 얘기하자.”
“놓자고?”
그 순간, 에단이 드래곤 하트를 놓쳤다.
다시금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려던 그때, 에단이 발등으로 떨어지는 드래곤 하트를 받아 냈다.
“뭐야, 다들 나 못 믿어?”
“…….”
에르미온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인내심이 한계치에 가까워졌다.
“하, 하하…… 재밌네. 재밌어.”
데아티르가 에르미온을 힐긋 바라봤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건 좋지 않군.’
에르미온은 다혈질의 성격으로 유명했다. 한번 왈가닥하면 매우 피곤해진다.
‘……하지만 저자도 만만치 않으니.’
문제는 괴팍한 성격으로 따지면 에단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데아티르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드래곤 하트를 다시 받아 든 에단이 웃음기가 사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건 못 넘겨줘. 저기 있는 모든 걸 합해도, 이거랑 비할 바가 아니란 건 다들 알고 있겠지.”
“…….”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내포하고 있는 드래곤 하트. 그것의 가치는 전쟁을 불사할 정도였다.
에르미온의 눈에서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다. 툭 찌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걸 지켜보던 에단이 피식 웃었다.
“뭐, 내가 쓰려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 알다시피 난 이미 넘치는 마나를 가지고 있으니까. 마나량만 따지면 드래곤 하트에 있는 것보다 많을걸?”
“……그래, 너 잘났다.”
“어, 고마워.”
에르미온이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에단을 노려봤고, 에단은 태연자약하게 받았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이건 당분간 내가 맡아 두고 있다가…… 하는 거 봐서 줄 테니까.”
“……!”
에르미온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정말 알기는 쉽네.’
에단이 피식 웃었다. 에르미온 경악에 찬 표정으로 에단에게 물었다.
“그, 그 말이 사실이겠지?”
“난 거짓말 안 해. 물론 뭐…… 하는 걸로 봐서는 네가 얻을 확률은 낮을 것 같지만…… 쓸모만 놓고 보면 아큐르의 가주가 더 나았던 거 같은데?”
에단의 말을 들은 데아티르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에르미온을 힐긋 바라봤다.
고의성이 다분한 비교에, 에르미온의 낯빛은 붉으락푸르락한 상태였다.
‘……더럽게 단순하군.’
급격한 피로감을 느낀 데아티르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 상황을 재밌다는 듯이 지켜보던 에단이 말했다.
“앞으로 처신 잘하고 있으라고. 그럼 대충 상황도 정리됐으면 돌아갈까?”
이제 복귀할 시간이다.
* * *
대규모 이전이었기에 준비할 게 많았다.
드워프들의 짐수레만 해도 수십 개가 넘게 나왔다. 드워프들이 지닌 물건과 드래곤의 부산물들이었다.
“다 옮기려면 고생 꽤나 하겠네.”
에단이 혀를 내둘렀다.
돌아갈 때는 전이 마법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이 정도 물건들을 옮기려면 한두 번으로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것들을 옮겨야 할 당사자인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는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더러 이걸 다 옮기라고?”
“명색이 대마법사잖아. 이것도 못 해?”
“야, 이! 대마법사라는 단어가 무슨 마법 주문이라도 되는 줄 알아?!”
“뭐, 마법 쓰는 건 맞잖아. 그런데 지금 역정 내는 건가?”
에단의 눈이 가늘어지자, 에르미온이 다급하게 팔을 휘저었다.
괜히 트집을 잡혀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해 보면 될 거 아니야.”
에르미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진의 설치 작업이 곧장 시작되었다. 대마법사 둘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니 거대한 마법진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내 팔자야.”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해라.”
“데아티르, 이제 너까지 시비냐?”
“……말을 말자.”
데아티르가 한숨을 내쉬면서 마무리 작업을 끝냈다. 완성된 마법진을 보며 에단이 감탄 어린 박수를 쳤다.
“이번에도 촉매 같은 게 필요한가?”
“우리를 뭐로 보는 거야? 대마법사가 둘이나 있는데 그런 게 필요할 거 같아?”
“아까는 뭐 아무 데나 갖다 붙이지 말라고 역정을 부리더니, 이제는 또 바뀌었어?”
에르미온이 앙칼진 표정으로 에단을 노려보다가 획하고 고개를 돌렸다.
“전부 옮길 수는 없어. 인원이랑 짐만 해도 얼만데. 대충 보니까…… 다섯 번 정도면 끝날 거 같은데. 하아, 진짜 이 짓을 다섯 번이나 해야 한다니.”
“부산물 얻은 것치고는 저렴하네. 원래 뭐든지 날로 먹으려고 들면 안 되는 거야.”
“너는 시비를 안 걸면 어디 문제 생기는 거야?”
드워프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에단에게 덜미를 잡힌 것도 있고, 빚을 진 것도 있어서 거부하는 자들은 없었다. 모두 순순히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이거 안전한 것 맞겠죠?”
“글쎄? 나 말고 쟤한테 물어보지 그러냐.”
드워프 몇 명이 떨리는 눈초리로 에르미온을 바라봤다. 에르미온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으며 답했다.
“믿어. 마법으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으니까.”
자신감이 드러나는 확답에 드워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한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영창을 시작하자 마법진이 발동했다. 마나의 흐름이 시작되며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마법진 위에 있던 자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저, 정말 사라졌어…….”
남은 드워프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에르미온이 귀찮다는 듯이 드워프들을 향해 손짓했다.
“다음.”
마법진을 몇 차례 발동시키자, 그 많던 물자와 인원들이 모두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에단과 일행들이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고생했다.”
“알면 잘해.”
퉁명스럽게 대답한 에르미온이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에단이 눈을 감았다 뜨자 풍경이 달라졌다.
영지로 돌아왔다.
한니발은 마법진 앞에서 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에단은 가볍게 손을 들며 화답했고, 곧바로 한니발에게 지시했다.
“어. 일단 여기 인원부터 모두 통제해. 말 새어 나가지 않게.”
“알겠습니다.”
한니발은 곧바로 지시를 수행했다.
“드워프들은 일단 저택으로 몰아넣어. 공간이 부족하면 뇌옥까지 쓰고. 이미 알 사람은 알겠지만 괜히 귀찮아지는 건 사절이야.”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한니발이 수행원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드워프들은 어리둥절한 채로 수행원들을 따라갔다.
에단은 고개를 돌려 다른 일행들을 바라봤다.
“고생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일이 수월했습니다. 편히 휴식하셔도 됩니다. 상황을 정리하면 다시 부르겠습니다. 너희들도 알아서 쉬고 있어.”
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과 첸이 같이 자리를 떴고, 헨리와 휴고를 포함한 다른 일행들도 해산했다.
“한니발, 올라가자.”
에단은 한니발과 함께 저택의 개인 집무실로 향했다.
“차라도 내오겠습니다.”
“필요 없어. 여유롭게 티타임이나 즐길 생각도 없고. 메이는 아직 영지에 남아 있나?”
“그렇습니다. 불러올까요?”
“어, 최대한 빨리.”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이군요.”
“형식적인 소리는 그만하고 자리에 앉아.”
가면을 쓰고 있는 메이가 자리에 앉자, 에단이 상체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주위에 있는 인원들 모두 물러.”
에단의 표정은 진지했고, 한니발과 메이도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에단은 일행에게 설명해 주었던 내용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핵심만 요약해서 둘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둘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건 생각보다 더 대단하군요.”
“……내가 뭘 들은 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에단은 둘의 반응을 무시한 채 곧장 말을 이었다.
“잘 들어.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야. 정보의 검증. 블란테, 페온, 성검, 성자와 성녀, 신성 왕국, 수인.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아.”
에단의 시선이 메이에게로 향했다. 메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정보길드로서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말씀해 주신 것 중 대다수가 확실한 정보를 얻기 힘든 사안들입니다. 그나마 확인이 가능한 것이라고는 둘째 가주라고 알려진 페온……. 그분에 관해서는 조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해.”
에단이 옅은 숨을 내뱉었다. 메이를 응시하는 에단의 눈은 번들거리고 있었다.
섬뜩한 모습에 메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이미 뒤통수를 얻어맞았어. 그리고 나는 한 번 맞으면 곱절로 대갚음해 줘야 직성이 풀리거든?”
에단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했다.
이쯤 되면 원작에서 얻은 정보조차 불확실했다. 그것도 결국에는 떡밥에 불과했으니.
‘테이블의 남아 있던 흠집도.’
거슬리고 꺼림칙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에단은 그것에서 짙은 짜증을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정보를 구해 와. 너희들 정보상이랑 상인 아니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반드시 얻어 오겠습니다.”
“그리고 드래곤을 토벌했다는 건 절대 새어 나가게 하지 마. 시기를 봐서 내가 터트릴 거니까.”
에단의 의중을 이해한 메이와 한니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래곤은 잡았지만 기분은 아주 더러워. 이런 기분은 오랜만인데.”
에단이 입술을 핥았다. 짜증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내가 두 번 말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다시 말할게. 어떻게 해서든지 얻어 와.”
에단이 메이와 한니발을 흘겨보며 말한 뒤 자리를 떴다.
둘은 에단이 문밖으로 나간 이후에도 잔뜩 긴장한 채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