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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21화 (221/398)

◈ [221화] 어이가 없네 (2)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라는 첸의 말.

에단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에단이 더욱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에단의 급격한 성장은 편법에 가까웠고, 사전에 전례조차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경우였다.

죽은 마나의 위험에서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됨으로써 지금의 에단은 누군가의 조언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회색 마나는 무한에 가까운 보유량과 회복력을 지니기는 하였으나, 그 끝이 결국 파멸일지 알 수 없었다.

‘설사 그렇지 않을지라도…….’

에단은 마스터로 향하는 관문을 완전히 부수고 들어왔다.

일반적인 경우처럼 깨달음과 경험을 쌓아 나가며 얻은 경지가 아니란 소리였다.

당장은 많은 이점이 있을 것이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에단은 마스터의 경지까지 올라섰고, 마스터라는 위치에 오른 자와 오르지 못한 자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알고 계신다면 말을 아끼겠습니다.”

에단의 씁쓸한 웃음에 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에단이 처한 상황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만큼, 함부로 조언을 해 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는군.’

아무리 천재라고 가정한들 에단의 성장세는 납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에단의 해명을 듣고 나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대체 그 정보들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파른 성장세를 수긍할 수는 있었다.

에단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은 확실하였지만, 마스터로서 가져야 할 소양을 모두 갖춘 것은 아니었다.

‘……이건 가주님과 상의해야 할 문제다.’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하기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자칫 실수하게 되면 에단은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만큼이나 에단이 쌓아 올린 성은 위태로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기술…….’

에단이 뻗은 손, 그러자 사라진 마나의 흐름.

‘그건 분명…….’

마스터들의 비기.

그동안 쌓아 올린 자신만의 심상을 현실로 구현시킨 결과물.

첸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마나의 흐름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볼 때 마법적 작용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만.”

“맞아. 마법적 작용은 보이지 않았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르미온도 끼어들었다. 그녀가 보증한 이상, 확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몇 번 본 경험이 있습니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거나 숨길 내용은 아니었다.

“그 말은…….”

첸의 동공이 떨렸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첸이 충격으로 물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르미온도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야? 너 허세를 부리거나 그러는 건 아니지?”

“지금 상황에 허세를 부릴 것 같아?”

“……재수 없는 새끼.”

에르미온이 고개를 가로저었고, 첸은 멍한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페온이라는 분이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가 되는군요. 마스터의 비기는…… 결코 따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첸의 말에, 이번에는 에단이 미간을 좁혔다.

“그렇습니까?”

“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모두 각자의 길을 개척한 사람입니다. 사용하는 검술이 같더라도 그 종착지는 다릅니다. 끝에 도달하면서 저와 가주님의 검에도 많은 차이가 생겨났습니다. 서로 향하는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죠.”

첸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그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타인의 심상은 결코 모방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심지어 도련님의 말처럼 몇 번 본 게 전부라면 더더욱.”

“…….”

첸의 말에 에단은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군.’

다른 이의 말도 아닌, 블란테의 기사단장이 한 말이었다. 첸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나도 설명할 수가 없어.’

그 기술은 의식해서 사용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에단의 몸을 이끈 것은 본능이었다.

첸이 물끄러미 에단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기서 도련님을 추궁해 봤자 해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겠죠.”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조차 설명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저에 대한 설명은 대략 끝났으니 이제 다른 문제로 넘어가죠.”

에단이 첸에게 말하자, 옆에 있던 에르미온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근데 왜 우리한테만 반말을 찍찍 내뱉냐?”

에르미온이 첸과 에단을 번갈아보더니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이만 따져도 첸보다 그녀가 위였다.

“그럼 할머니라고 불러 주리?”

“하, 할머니……?!”

“그게 싫으면 그냥 있어.”

“……진짜 너 두고 봐.”

에르미온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에단을 노려봤다. 에단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럼 드래곤 사체에서 네 지분은 없는 걸로 할게.”

“……뭐라고?”

에르미온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부터 저 드래곤을 어떻게 처리할지 말하려고 했는데, 그런 사소한 걸로 트집을 잡으니까 빈정이 상하네.”

에단이 거드름을 피우며 목을 매만졌다.

“그, 그게 왜 그렇게 돼?”

“뭐가. 그쪽이 원래 원한 건 드래곤의 정보, 그리고 드래곤을 실제로 보는 거 아니었어? 부산물을 원한 건 아니잖아.”

“지금 장난해?! 그거야 당연히……!”

“어? 지금 나한테 역정을 내는 거야?”

에단의 눈이 가늘어지자, 에르미온이 몸을 움찔거렸다.

“……진짜 치사하게 굴지 말자.”

“나도 그러고 싶진 않거든? 그러니까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가자고, 그리고 이번 토벌에서 그쪽은 별로 한 것도 없잖아?”

“…….”

할 말을 잃은 에르미온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에단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거지.’

서러움이 북받쳤지만, 토로할 사람이 없었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여기서 역정을 부렸다가는 정말로 그녀의 지분이 모조리 사라질 것만 같았다.

“…….”

에르미온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에단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다들 드래곤을 잡는 데 있어서 고생한 건 알고 있지만, 제일 많은 공여를 한 건 나야.”

에단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번 드래곤 토벌의 주역은 에단이었다.

“그러니까 지분을 나누는 것도 당연히 우리 몫이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도 우리 덕이잖아?”

“동의한다.”

에단의 말에 데아티르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에르미온이 고개를 획 하고 돌리며 데아티르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저 이기적인 놈이!’

이글거리는 에르미온의 눈빛에도 데아티르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좋아, 만족스럽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지?”

에단의 시선에 르니엘은 천진한 얼굴로 답했다.

“저희는 필요 없어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르니엘. 그 모습에 에르미온이 멍한 얼굴로 르니엘을 바라봤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자그마치 드래곤의 사체였다. 그 가치는 금화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드래곤의 사체를 앞에 두고 필요 없다고 하다니.

“네. 저희는 용사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온 것뿐이에요. 저런 것보다 오히려 용사님께 도움이 된 것으로 만족합니다.”

“음, 좋은 자세야.”

에단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질적인 것이 뒤따르자 용사라는 호칭도 크게 거북하지 않았다.

“허, 제정신이 아니야…….”

에르미온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이었다.

“뭐, 그렇다고 저걸 전부 독식하겠다는 건 아니야. 나라고 딱히 저걸 쓸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라서.”

어차피 블란테에 넘겨 봤자, 무기나 방어구로밖에 써먹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에르미온이 눈을 빛내며 바라보자, 에단이 코웃음을 쳤다.

“착각하지는 말고. 공짜로 넘길 생각은 없으니까.”

“……기대도 안 했거든?”

“사체의 가치는 뭐 말 안 해도 그쪽이 제일 잘 알겠지? 마법사라면 눈이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에단의 말에 에르미온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분하지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연구하고 싶은 욕심에 애가 탔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대단한 건 아니고, 서로 이득이 될 만한 일을 하자는 거지.”

에단이 씨익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둘을 고용하지.”

아카데미는 인력난이거든.

결국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는 에단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드래곤의 사체는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일어나자고.”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여유를 부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에단이 건물을 나서서 드래곤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시 봐도 엄청나네.”

드래곤의 사체는 여전히 엄청난 위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사체 주위에는 수많은 드워프들이 모여 드래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드워프들의 얼굴을 설핏 바라보던 에단이 씨익 웃었다.

‘이거 잘만 하면 이용할 수 있겠는데.’

드워프들의 얼굴에는 경탄과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욕망은 이용하기 쉬운 감정이었다.

멍하니 드래곤 사체를 바라보고 있던 바크락이 중얼거렸다.

“……저걸로는 어떤 무구를 만드는 게 좋으려나.”

“그러게 어떤 무구가 좋을까?”

“허억!”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바크락이 화들짝 놀라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뭘 그렇게 놀래?”

바크락은 심장 쪽을 부여잡으며 에단을 올려봤다.

“가, 갑자기 나타나셔서…….”

“저거 보니까 욕심이 생기지 않아?”

“…….”

에단이 드래곤 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크락은 침묵했다.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무릇 장인이라면 탐을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것의 소유권은 엄연히 에단에게 있었다.

“아쉽지만 줄 수는 없고, 만지게 해 줄 수는 있는데 말이야.”

“그, 그게 무슨…….”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거 아니야? 저걸로 뭘 만들게 해 준다고. 대신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지만.”

바크락의 동공이 거칠게 떨렸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 사실 기대도 조금 되거든, 드워프들의 실력이야 워낙 정평이 나 있으니까. 뭐 조금 과장은 있겠지만.”

신경을 긁는 에단의 말에 바크락의 안색이 굳었다. 드워프들은 장인이었고, 장인들은 모두 자존심이 강했다.

“워낙 허황된 소리가 많아야지. 사실 대장술 같은 경우는, 우리 가문의 야장들이 더 낫지 않을까?”

“……그건 인정할 수 없습니다.”

예상대로의 반응에 에단이 씨익 웃었다.

“그래? 믿기 힘든데…….”

“……어떻게 하면 우리 실력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야 있지. 실력 비교가 제일 빠르지 않겠어?”

“실력 비교…… 말입니까?”

“어. 우리 가문이라서가 아니라, 블란테 가문의 야장들 실력은 대륙에서도 알아주거든.”

“……아무리 인간 대장장이가 뛰어나다고 한들 저희들의 상대는 아닙니다.”

“그으래?”

그럼 뭐, 보여 줘야지.

에단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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