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219화 (219/398)

◈ [219화] 페온 (3)

강해지는 압박에 페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 푼다면…….’

그럼 곧바로 첸을 비롯한 기사들이 난입할 테고, 마법과 화살 세례가 퍼부어질 것이다.

페온의 마나는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어?”

에단의 말에 페온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이번에는 내가 졌다.”

“두 번은 없을…….”

말을 하다가 멈춘 에단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과 같은 거?’

아니다.

에단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페온에게 남은 게 무엇이 되었든,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에단이 그립을 풀고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페온이 천천히 일어났다.

방금 전과 같은 기세와 위압감은 없었지만, 훨씬 불길하고 꺼림직한 분위기가 풍겼다.

“도련님.”

첸과 휴고를 비롯한 기사들이 에단의 곁에 나란히 서 있었다.

“……느껴지나?”

첸과 휴고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식은땀이 흐르고 등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에단, 역시 너는 감이 좋구나.”

페온이 웃었다.

꺼림칙한 미소였다. 갑작스레 페온의 주변에서부터 바닥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밟으면 안 된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요사스러운 기운이 퍼져 나오는 걸 확인한 에단과 일행이 거리를 벌렸다.

검은 그림자는 어느 구간부터는 더 커지지 않았다.

“하하.”

페온의 웃으며 에단을 바라봤다. 마치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즐거웠다. 조만간…… 다시 보지.”

검은 바닥에서 문이 열리고, 귀곡성이 터져 나왔다.

끼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소리에 일행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후웅!

거친 광풍이 휘몰아치며 문에서부터 검고 거대한 손이 쑤욱 빠져나와 페온을 붙잡았다. 페온의 몸을 붙잡은 손은 다시 문안으로 돌아갔다.

쾅!

검은 문이 닫히고, 검게 물든 바닥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헛것을 본 것 같았다.

털썩.

에르미온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팔을 붙잡더니 덜덜 떨었다.

“……내가 뭘 본 거지?”

초점 잃은 동공이 흔들렸다. 이빨이 부딪치며 딱딱딱, 소리가 났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공포.

원초적인 감정이지만, 그녀에게는 낯선 감정이다.

그 무엇이 마탑의 탑주에게 공포를 심어 준단 말인가.

하지만 방금 느껴진 기운,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온 거대한 손.

그것을 보자마자 에르미온은 다리가 풀렸다. 드래곤 따위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기운이었다.

저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지만, 머리가 하얘졌다.

입을 다물고 있던 데아티르도 비틀거렸다. 두 대마법사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에단은 고개를 돌려 일행들을 바라봤다. 모두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나는 큰 지장이 없어.’

그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한 건 에단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이들 중 가장 멀쩡했다.

‘첸은…….’

에단이 첸의 얼굴을 바라봤다. 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도련님.”

“……어.”

“설명을 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 * *

드워프의 마을은 무너지지 않았다.

헨리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천장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한 덕분이었다. 헨리는 그 후에 곧바로 탈진해 쓰러졌다.

헨리를 제외한 이들이 에단에게 다가왔다.

모두 입을 열지 않았지만, 해명을 요구하는 시선이었다.

“입을 다물려는 건 아닌데, 일단 저것부터 좀 해결하지?”

에단이 턱짓하는 방향에는 드래곤의 사체가 누워 있었다. 사체에서는 방대한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기랄!”

에르미온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녀가 순식간에 뛰쳐나갔고, 데아티르도 비슷한 때에 사태를 파악했는지 에르미온의 뒤를 따라 뛰었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손을 뻗고 마나를 집중했다.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는 얼핏 봐도 심상치가 않았다.

에단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저게 본 모습이 아닐 테니까.’

본체로 돌아가려는 증상일 것이다.

원작의 묘사로는 수십 미터는 가뿐하게 넘는 거대한 크기라고 말했다.

에단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꽤나 널찍한 크기였지만 수용이 가능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헨리를 바라봤다. 헨리는 지금 제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였다.

‘……이거 좀 큰일 난 것 같은데?’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식은땀을 흘리며 드래곤이 본체로 돌아가려는 것을 막아 내고 있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지금도 사력을 다해서 막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땅이 버틸 수 있어야 할 텐데…….’

이건 확신할 수 없었다. 갑자기 엄청난 질량의 드래곤이 나타날 테니 어떠한 확신도 할 수 없었다.

‘이거 위험한데.’

이건 정말 위험했다.

어서 빨리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때 에단의 눈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바크락이 보였다.

“야!”

“……네?”

“뭐, 방법 없어?”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손을 뻗고 마나를 집중했다.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는 얼핏 봐도 심상치가 않았다.

에단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에단의 물음에 바크락이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말했다.

‘저게 본 모습이 아닐 테니까.’

“어,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본체로 돌아가려는 증상일 것이다.

바크락이 짧은 다리로 후다닥 뛰어가더니 드워프들을 이끌고 모아 왔다.

원작의 묘사로는 수십 미터는 가뿐하게 넘는 거대한 크기라고 말했다.

에단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 자제 좀 옮기는 데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꽤나 널찍한 크기였지만 수용이 가능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헨리를 바라봤다. 헨리는 지금 제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였다.

바크락의 말에 에단과 일행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일행이 순식간에 자재를 옮겨왔고, 드워프들이 순식간에 어떤 구조물을 만들고 있었다.

‘……이거 좀 큰일 난 것 같은데?’

‘……지지대를 보강하는 건가?’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식은땀을 흘리며 드래곤이 본체로 돌아가려는 것을 막아 내고 있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지금도 사력을 다해서 막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걸로 될까 싶기는 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확실히 손재주로 유명한 드워프들답게 순식간에 구조물을 쌓아 올렸다.

천장과 벽면을 보강한 드워프들이 흥건한 땀을 닦아 내며 일행 곁에 섰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그래.”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드워프들이 세워 놓은 구조물을 보더니 인상을 팍 구겼다.

“야! 이런 걸로 되겠어?!”

“이런 거……?”

바크락은 상처를 받은 것인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남은 방도가 없었다.

“이게 한계야.”

정말 더 이상은 방법이 없었다.

에단의 말에 에르미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 손 떼면 바로 보호 마법부터 저기다가 걸어. 설마 못 한다고 하진 않겠지?”

“나를 뭐로 보는 거지?”

둘의 시선이 부딪쳤다. 근거 없는 자존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둘은 한 집단을 대표하는 대마법사였다.

“후우…… 지금!”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마법을 해제함과 동시에 드워프들이 세워 놓은 구조물에 보호 마법을 걸었다. 그 순간 에단과 첸이 뛰쳐나가 둘의 뒷덜미를 붙잡은 채 자리를 피했다.

두 사람을 바닥에 내려놓자 그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목을 부여잡고는 캑캑거렸다.

하지만 에단은 그들의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에도 시선을 앞에 고정시켰다.

“시작이다.”

에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체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수인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변화였다. 골격이 뒤바뀌고, 피부가 비늘로 완전히 변화한다.

검고 윤기 나는 비늘 하나의 크기가 사람과 맞먹었다. 일행의 입이 떠억 하고 벌어졌다.

“……이게 드래곤?”

어지간한 것으로는 놀라지 않는 기사가 중얼거렸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드래곤의 크기가 끝도 없이 거대해졌다. 이제 고개를 치켜들어 올려다봐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커지고 구조물과 방어막까지 육체가 닿기 시작했다.

‘아무리 조치를 취했다고 한들.’

한계치를 아득히 뛰어넘으면 이곳은 무너진다.

그 이후부터는 생존의 문제였다.

몇몇은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희생자는 분명히 발생한다.

‘일을 다 끝내 놓고 그럴 수는 없지.’

빠드득.

구조물을 압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무에 금이 가고 쇳덩이가 삐걱대는 소리.

일행이 침을 삼켰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드래곤의 크기 변화는 거기서 멈췄다.

“후우.”

일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름 놓은 것은 에단도 마찬가지였다.

에단이 드래곤 사체를 향해 발을 옮겼다. 이제는 죽어 있는 드래곤에 불과했지만, 숨이 멎은 육체만으로도 막강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에단이 비늘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에서 서늘한 느낌이 느껴졌다.

‘이대로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겠어.’

실제로 마주한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해체하는 것만 해도 많은 기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말없이 드래곤을 바라보고 있던 에단이 말했다.

“……끝났다.”

드래곤을 처치했다.

* * *

일행은 드워프의 마을로 복귀했다.

건물들의 층고가 낮은 것을 제외한다면 딱히 생활하는 데에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다.

헨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어떻게 됐나요?”

눈을 뜬 헨리가 가장 먼저 한 질문이었다.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에단의 말에 헨리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의 시선이 에단에게 집중됐다.

정적이 맴돈 채 해명을 요구하는 눈초리만이 쏘아졌다.

그것을 깨트린 것은 에르미온이었다.

“그래서 그 괴물 새끼는 정체가 뭐야?”

에르미온의 직설적인 질문에 다들 침묵으로 동의했다.

에단은 고민했다.

‘과연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에단의 행보는 기이한 것투성이었다. 사람이 달라졌다, 라는 간단한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읽고 있던 소설 속에 들어왔다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로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정보를 가감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니니까 말해 줄게. 먼저 그 녀석은…….”

에단의 시선이 첸에게 향했다.

“페온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에단의 물음에 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페온이라고 하셨습니까?”

“먼저 그것부터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첸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는 봤습니다.”

“그것뿐입니까?”

“페온…… 제가 알고 있는 그 이름은 블란테의 가주입니다.”

모두의 눈이 커졌다.

에르미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에단이 손을 들며 제지했다.

“……가주라고 하셨습니까?”

“페온 블란테, 블란테의 2대 가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혹시 레일라 블란테라는 이름은 알고 계십니까?”

“그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첸의 대답에 에단은 침묵했다. 페온에게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형제들의 배신.

‘모든 게 헛소리였나.’

하.

웃기지도 않았다. 에단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억누르고 있음에도 은연중에 살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빠득.

이가 절로 갈렸다.

페온을 의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베일에 싸여 있었고, 존재 자체가 의미심장했다.

‘내가 바보였다.’

하지만 알아보지 않은 것은 에단이었다. 에단은 페온을 의심했지만, 한편으로는 신용하고 있었다.

페온이 없었다면 에단은 수많은 위기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후우.”

에단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방금 들은 얘기로 인해 오히려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에단이 입가를 비틀며 말했다.

“저와 싸운 남자의 이름은 페온입니다.”

“…….”

다시금 모두의 안색이 굳었고, 에단은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여 버려야 할 존재이기도 하고.”

상체를 숙인 에단의 눈은 살기로 번들거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