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218화 (218/398)

◈ [218화] 페온 (2)

“크하하하하!”

순간, 페온이 폭소를 터트렸다.

웅혼한 웃음소리에 대지가 진동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단 일행은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뭐지?”

드래곤이 등장했을 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기운이 주위에 휘몰아쳤다.

살기를 내뿜은 것이 아닌, 존재 자체에서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피부가 저릿했다.

페온과 조금 떨어져 있던 에르미온과 데아티르의 안색이 굳었다.

“……꼬맹이, 저건 또 뭐야?”

에르미온의 물음에 데아티르가 침음을 삼켰다.

“지금 나한테 그 질문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나?”

“자존심은 더럽게 부리는 주제에 이럴 때는 도움이 안 돼.”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검은 돔, 그리고 검은 돔을 두드리는 정체불명의 남자.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돔은 걷혔고, 드래곤은 쓰러져 있었다.

에르미온이 주변을 둘러봤다.

얼굴이 굳은 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만한 전력이 모였음에도 저런 기세를 뿜어낸단 말이야?’

헛웃음이 나왔다.

비록 인원은 적었지만, 지금 이 전력은 한 국가와 대적해도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저 남자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에 모두가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

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또한 위험한 감각을 느끼며 붙잡고 있는 칼자루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가주님보다는 아래다.’

그렇다면 승산은 충분하다.

첸은 후위에서 쏟아지는 화력을 경험했다. 귀가 먹먹해지는 재앙 같은 공세였다.

지금 앞에 있는 인원과 후위의 인원이 동시에 공격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겪어 보고 싶군.’

호승심이 일었다.

무릇 기사라는 존재는 강자를 만나면 피가 끓기 마련이다.

첸은 지금 피가 끓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당장에라도 지면을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은 감각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남자 앞에 선 에단이 자신의 의사를 공표했다.

“끼어들지 마.”

고저 없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에단의 의사가 강하게 깃들어 있었다.

말없이 에단의 모습을 지켜보던 첸이 검집에 검을 밀어 넣었다.

“기다린다.”

첸의 명령 한마디에 모든 기사들이 전투태세를 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르미온이 물었다.

“……진심이야?”

“도련님을 믿을 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에단의 저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것은 첸 또한 알지 못했다.

이윽고 웃음을 그친 페온은 싸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신감은 갸륵하지만, 아직은 이른 것 같은데.”

“글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타인의 몸에 기생하면서 몸을 부풀린 주제에.”

에단의 신랄한 말에 페온의 이마에 줄이 그어졌다.

“이거, 내가 당하는 입장이 되니까 감회가 새로운데.”

“그래? 그럼 이것도 경험해 볼래?”

에단이 손을 휘젓는 시늉을 하자, 페온이 피식 웃었다.

“정말 나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야.”

에단의 눈이 깊어졌다.

페온이 그런 에단의 눈을 응시하다가 답했다.

“주제 파악을 시켜 줄 필요가 있겠어.”

이번에는 에단이 웃었다.

팔과 고개를 저으며 몸을 푼 에단이 자세를 잡았다.

“기대할게.”

“……역시 도발에는 재능이 있구나.”

탓!

페온의 몸이 순간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에단의 눈이 빠르게 굴러갔다.

발을 디딘 방향. 에단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파밧!

에단이 스텝을 밟으며 미끄러지듯 거리를 벌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에단은 상체를 쑥하고 젖혔다.

그리고 그 순간, 에단이 있던 자리에 섬뜩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광경에 에단이 히죽 웃었다.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페온이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에단이 거리를 벌리며 공격들을 피해 냈다.

에단은 단순히 회피에만 신경 쓰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면서도 수시로 기회를 노렸다.

발등과 무릎을 노리는 발차기.

페온이 주먹을 뻗을 때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주먹.

페온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반격을 했다.

잠깐의 시간 동안 무수한 공방이 오갔다. 페온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너 같은 녀석은 처음이구나!”

에단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빛냈다.

페온의 공세는 빠르고 날카로웠다. 빈틈을 찾기도 어려웠고, 중심의 회복도 매우 빨랐다.

해법은 단순하다.

에단도 저 속도를 맞추든가, 아니면 속도를 줄이게끔 제동을 걸든가.

에단의 선택은 후자였다.

에단이 동작이 큰 주먹을 날렸다.

기회를 노린 페온이 에단에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에단이 페온을 잡았다.

꽈아악!

“……이 앙큼한 녀석이!”

치열한 중심 싸움이 시작된다.

아무리 몸이 빠르다고 한들, 몸이 엉키는 클린치 상황에서는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쾅!

에단이 클린치하는 와중에도 페온의 발을 노렸다.

페온이 인상을 찌푸리는 그때, 에단의 발이 페온의 오금을 걸며 그대로 중심을 넘겼다.

휘릭!

페온이 재빠르게 몸을 틀었다.

‘그라운드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건가?’

에단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현대화된 레슬링의 기술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지면을 짚어 되치기를 막아 낸 에단이, 그대로 페온의 목을 잡고 끌어내렸다. 그걸 막기 위해 페온이 주먹을 내지르려 했지만, 에단의 무릎이 먼저였다.

뻐억!

가슴이 들썩임에도 페온의 신음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에단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전신을 이용해서 페온을 끌어내린 에단의 팔이 순식간에 목을 휘감았다.

페온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에단의 손을 막으려고 했지만 에단은 물 흐르듯 방어했다.

다스 초크에서 순식간에 아나콘다 초크로.

꽈아악!

강한 압박감이 페온을 휘감았다. 본래라면 여기서 상황은 종료됐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두근.

에단의 등줄기에 소름이 질주했다.

팟!

그립을 푼 에단이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감이 좋구나.”

스산한 페온의 목소리가 들려온 후, 그의 근처에서 회색 마나가 소용돌이쳤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마나는 주변의 모든 것을 갈아 버리고 있었다.

“더럽게 비겁하시네.”

“여기서 치사하고 말고가 어디 있다고 이제 와서 불평이냐.”

“그건 그렇지.”

우웅!

에단의 체내에서도 마나가 꿈틀거렸다. 페온과 같이 능숙한 제어는 하지 못했으나, 단순무식한 방출은 에단도 충분히 가능했다.

에단이 왼손을 들고 마나의 포문을 열자, 거친 해일이 페온을 덮쳤다.

원래라면 마나를 방출한 손이 너덜너덜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식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타이탄의 장갑이 보호하는 에단의 왼손은 멀쩡했다.

한 차례 왼 주먹을 폈다가 쥔 에단이 마나의 해일을 따라 질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페온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웃었다.

페온이 팔을 천천히 뻗었다. 페온의 동작은 에단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에단의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에단!”

첸의 목소리가 에단의 귀를 꿰뚫었다. 에단이 순식간에 지면을 박차며 방향을 틀었다.

쿵.

작은 소음, 그리고 마나의 급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켜보던 이들이 입을 벌렸다. 그러나 에단은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이미 봤었어.’

지금이 두 번째이니 이미 예측은 하고 있었다.

정신을 다잡은 에단이 뛰어들자, 페온이 씨익 웃더니 다시 손을 뻗었다.

“이것도 부숴보든가!”

에단이 왼손을 뻗으며 다가오자, 페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쾅!

다시금 힘 싸움이 시작됐다. 에단이 페온을 마주 보며 사납게 웃었다.

“가르쳐 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걸 써먹고 앉았어.”

“기술 시연 모르나?”

“하! 금방 익힐 테니까 놀라지나 마.”

“그거 기대되는군.”

치열한 눈싸움이 한창일 때, 에단이 페온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첸!”

에단의 외침에 첸의 신영이 에단 앞에 나타났다. 페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끼어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 질문의 답은 에단이 했다.

“글쎄? 미안하지만 기억이 안 나는데?”

탓!

에단이 다시금 뛰어들었다. 전투에 개입한 것은 첸뿐만이 아니었다.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휴고도 합류했다.

동시다발적인 습격.

페온은 재빠르게 눈을 굴렸다. 전세가 뒤집어졌다. 하나하나가 경시할 수 없는 실력자였다.

특히 섬뜩한 눈빛으로 달려드는 기사, 첸은 더욱 주의해야 했다.

‘상대의 패를 모른다.’

하지만 페온은 자신의 패를 드러냈다. 게다가 마나의 여유도 많지 않았다.

페온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

쯧.

페온이 혀를 찼다.

공격들이 퍼부어진다.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인다. 매섭고 날카로운 검극과 주먹들의 향연이다.

“알아서 피해!”

에르미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공격이 멈췄다. 그리고 길이 터졌다.

화르르륵!

후끈한 열기와 함께 화염의 길이 새겨진다.

페온이 순식간에 홍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동시에 데아티르의 창과 르니엘의 화살이 페온에게 꽂혔다.

쾅! 콰과가강!

무지막지한 화력으로 인해 지면과 천장이 들썩였다.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대로 끝날 것 같은 화력이었지만, 페온은 먼지 속에서 뛰쳐나왔다.

빠져나온 페온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멈춰라.”

그 순간 첸의 스산한 목소리가 페온에게 향했다. 페온의 시선이 첸에게 향했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뚝.

그리고 그 순간, 페온의 시간이 멈췄다. 첸은 여느 때와 같이 군더더기 없는 검격을 휘둘렀다.

페온의 목을 노리고 검이 휘둘러지는 그때, 굳어 있던 페온의 얼굴에 금이 그어졌다.

쾅!

마나가 실린 페온의 팔이 첸의 검을 막아 냈다. 하지만 반탄력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던 모양인지, 페온은 그대로 허공을 비행하며 벽에 곤두박질쳤다.

쾅!

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판단은 빨랐다. 기사들과 첸이 쏜살처럼 뛰어갔고, 에단이 그들을 앞질렀다.

타다다닷!

벽에 꽂힌 페온을 향해 다가가는 도중, 익숙한 마나의 기류가 느껴졌다.

“두 번 당하라고?”

에단이 사납게 으르렁거렸고, 페온은 미소를 지었다.

회색 마나가 거칠게 소용돌이쳤다. 마치 모든 걸 찢어발길 것처럼 포악한 기세였다.

우웅―

에단의 왼손에 마나가 깃들었다. 성공은커녕 시도한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에단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까짓것!’

에단이 이를 악물었다.

머릿속에선 페온의 움직임이 선명하다. 일점을 향해 내지르는 주먹.

그 순간, 페온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개소리하지 마라!”

페온의 외침과 함께 마나의 폭풍이 더욱 격렬해졌다. 에단의 주먹이 폭풍에 빨려 들어갔다.

쩌엉!

거칠게 휘몰아치던 마나의 폭풍이 순식간에 소멸됐다. 페온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렇게 쓰는 거 맞아?”

에단이 입꼬리를 올리며 페온을 바라봤다. 페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단의 발이 페온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턱.

페온은 손을 들어 에단의 발을 어렵지 않게 붙잡았다.

“그럴 줄 알았어.”

에단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휘리릭!

에단의 다리가 뱀처럼 페온의 목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트라이앵글 초크가 완성됐다.

“자, 기분이 어때?”

“……이것도 독학으로 배웠다고 할 셈이냐?”

“어. 불만 있어?”

내가 독학이라면 독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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