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215화 (215/398)

◈ [215화] 드래곤 (21)

길을 뚫는 작업이 재개되었다.

슬슬 도착할 기미가 보였기에 일행은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본가에 말을 해야 하나?’

에단은 고민했다.

빈센트는 든든한 우군이다. 대가 없이 도와준다고 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빈센트가 움직이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다. 그리고 아무리 에단의 친부라고 한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먼저 뚫어 본다.’

에단은 먼저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준비는 갖추어졌고, 일행의 전력도 최상이다.

“이제 곧 도착할 것 같아요.”

헨리의 말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뒤따라오던 드워프들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봤다.

“……이야기가 정말이었군.”

말도 안 되는 속도에 드워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제 유일한 특기마저 밀렸네?”

그때 들려오는 엘프의 비아냥에 드워프들이 표정을 구겼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지만, 드워프들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

쾅!

그 순간 굉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음, 도착한 것 같은데요?”

헨리의 대답에 드워프들이 앞으로 나왔다.

“……마을이다.”

드워프들의 마을에 도착했다.

* * *

갑작스러운 소란을 듣고 드워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선두에 선 드워프들이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명해 주겠네.”

바크락이 일련의 일들을 설명하자, 드워프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그러고는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일행들을 흘겨보기 시작했다.

“임무는 실패했고…… 드래곤을 토벌한다고? 족장, 지금 이 소리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가능성은 충분히…….”

“부족의 명운을 맡겼건만.”

“…….”

아픈 곳을 찌르는 말에 바크락이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에단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외지인은 잠깐 빠져 있어라.”

경계심 가득한 드워프의 말에 에단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은데. 형편 좋게 협력을 구할 상황인 거 같아?”

마을 드워프들의 경계가 짙어졌다. 바크락이 낭패에 젖은 표정으로 상황을 중재하려 들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면 내가 상황을…….”

“보니까 이미 그른 것 같은데 가만히 있어.”

“……인간,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인가?”

“전쟁?”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력 차이가 어느 정도 비슷해야 가능한 소리라고 생각 안 해?”

에단이 뒤편을 바라봤다.

블란테의 기사들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고, 엘프들은 활을 들었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도 언제든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진짜 강압적으로 나가 줄까?”

에단이 으르렁거렸다. 에단은 평화로운 협상을 가정하고 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명예를 우습게 알지…….”

마을 드워프의 대답에 에단이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드워프의 목을 잡아챘다.

“이건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거든?”

에단의 눈이 번들거렸다. 목을 붙잡힌 드워프가 눈을 부릅뜨며 버둥거렸다.

“확인할 게 있어서.”

에단이 죽은 나무의 힘을 통해 드워프의 몸을 확인했다.

‘역시나.’

죽은 마나의 편린이 발견되자, 에단이 곧바로 그것을 추출했다. 그 순간 드워프의 몸이 빳빳하게 굳더니 추욱 늘어졌다.

“이거 아무래도.”

에단의 목소리가 지하를 울렸다.

“이것들 전부 제압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 *

제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어지간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전력이었다.

대부분의 전투원들이 사전에 제압을 당한 그들에게 승산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에단은 순식간에 드워프들의 몸속에 있는 죽은 마나를 추출했다.

‘초반에 죽은 나무를 습득하지 않았으면 일이 매우 번거로웠겠어.’

죽은 나무의 힘을 습득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인 것 같았다. 에단의 행위는 강압적이었지만, 그만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자, 이제 다시 대화를 나눠 볼까?”

“지금 이런 행패를 부리고 그런 소리가…….”

“싫으면 이대로 돌아가고. 어차피 너희들한테는 선택지가 없을 텐데?”

“…….”

정곡을 찌르는 말에 드워프가 침묵했다. 에단의 말은 사실이었다. 곧 기일이 다가온다. 이대로 저들이 돌아간다면 드워프들은 결국 몰살될 것이었다.

절망에 젖어 있는 드워프들을 바라보며 에단이 말을 이었다.

“주제를 알라고.”

평화로운 설득 따위를 시도할 생각은 없었다. 에단은 하루빨리 드래곤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놀랍군.’

한편 뒤에서 에단의 모습을 지켜보던 첸은 적지 않게 놀랐다.

에단이 뛰어난 통솔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압도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비록 과격한 면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블란테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 여기는 곳이었다.

“쯧.”

이야기를 전해 듣던 에단이 혀를 찼다.

‘도움 되는 건 없군.’

사전에 입수한 정보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얻은 정보라고는 초췌한 인상을 지닌 흑발의 여성.

상대가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방문 주기는 어떻게 되지?”

“……규칙적이지 않은 편이나, 내일은 아마 찾아올 겁니다.”

드워프에 대답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시간은 충분하겠어.”

에단이 힘겹게 가져온 마석 덩어리를 드워프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걸로 상대를 꾀어내. 어차피 드래곤의 첫 번째 목적은 이 녀석일 거 아니야.”

에단이 마석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압도적인 크기에 위압된 드워프들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준비해 보자고.”

도마뱀을 잡을 시간이었다.

일행은 마을에서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결전의 순간이었기에 드워프들도 최선을 다해 도왔다.

“……무기를 맡겨 주겠소?”

바크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검사에게 있어서 검이란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첸이 바크락을 바라봤다.

바크락의 눈은 진심이었다. 첸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집 채로 무기를 넘기자, 기사들도 차례로 드워프들에게 검을 넘겼다.

“……훌륭한 검이군.”

인간의 실력을 경시하던 드워프들이었지만, 기사들의 검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수준 높은 검이었다.

‘관리도 잘되어 있고.’

기사들이 얼마나 검을 소중하게 여겼는지가 느껴졌다.

‘별로 할 것도 없겠어.’

해야 할 것은 기껏해야 날을 점검하는 것 정도.

드워프들은 심혈을 기울여 검을 갈고 닦은 뒤 기사들에게 넘겼다. 검을 받은 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는 마법진을 설치했다. 마법진의 도움을 받으면 큰 마법을 구사함에 있어 한결 수월해진다.

“가능하다면 대화도 나눠 보고 싶은데.”

하지만 그 바람이 욕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상대는 드래곤이다. 교만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렉사르가 지니고 있던 무기들을 꺼내 놓고 정비했다. 무기의 정비를 돕기 위해 다가왔던 드워프가 혀를 내둘렀다.

‘……무슨 무기들이.’

살벌하기 그지없는 모습들이었다.

무기라기보다는 사냥 도구나 고문 도구에 가까운 모습들이었다.

대략의 준비가 끝나자 이제 전열을 갖췄다. 에단의 목적은 상대가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어야 할 것이 있지만.’

여지를 둘 생각은 없었다.

‘드래곤의 힘이 전설대로라면.’

시작부터 전력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설렘에 에단이 왼손을 응시하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슬슬 뭐라도 말 좀 해 주시죠?’

―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냐.

‘드래곤에 대해 뭐라도 아는 게 있습니까?’

― 내가 아는 드래곤은…….

무언가 말을 하려던 페온이 침묵했다. 에단의 이마에 줄이 그어졌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됐습니다.’

몸을 돌린 에단은 마무리 작업을 진행했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드워프들은 계획대로 마석을 가지고 드래곤을 기다렸고, 에단과 일행은 거리를 벌린 채 준비했다.

“음…… 드래곤한테도 통할지는 자신할 수 없어요.”

헨리가 몸을 감추는 장막을 펼치자, 에르미온 데아티르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정말 일일이 놀라기도 지치는군.”

“……저게 드래곤이 아니라니.”

지금껏 걸어왔던 길에 대해 회의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뒤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드래곤이 찾아올 때까지.

시간이 흘렀다. 사사로운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에단은 고개를 돌려 긴장한 드워프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단은 헛웃음이 내뱉었다.

‘곧바로 걸리겠군.’

아무래도 드워프라는 종족은 연기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에단을 포함한 모두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순간 전신에 솜털이 하나하나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이 집중된다. 첸과 기사들의 손이 칼자루 위에 얹어졌다.

엘프들은 활을 들었고, 휴고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의도하지도 않았음에도 골격이 뒤바뀌었다.

본능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에단이 웃음을 지었다.

‘이건 뭐 확인할 것도 없네.’

레벨린 따위가 아니다.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존재감이 느껴진다.

“옵니다.”

헨리가 눈을 좁히며 말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이거 엄청난데?”

에르미온이 흥분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비를 탐구하는 마법사조차 겪어 보지 못한 힘이었다.

이내 허공이 일그러지며 무언가가 나타났다. 막강한 존재감이 엄습해 온다.

에단이 숨을 죽이며 그 존재를 주시했다. 드워프들의 설명 대로였다. 검은 머리를 지닌 초췌한 인상의 여성.

갑작스레 등장한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숨어 있는 일행 쪽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걸렸나?’

에단이 언제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의 끈이 유지되고 있을 때,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드워프들은 감히 그녀의 얼굴조차 마주 볼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며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었다. 그녀의 시선은 마석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떻게 됐지?”

부드러운 미성이 들려왔다. 드워프들은 공포에 젖은 얼굴로 넙죽 엎드려 있었다.

“마, 말씀하신 대로 인간들에게서 마석을 탈취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그, 그것은…….”

드워프가 머뭇거렸다.

말투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에단이 손을 들었다.

에단이 힐긋 뒤를 바라보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신호하는 순간 전력을 쏟아부을 것이다.

‘이거 흥분되는데.’

피부가 저릿거렸다.

류태신 시절에서는 겪어 본 적 없는 강자에게서는 풍기는 특유의 위압감.

긴장과 흥분, 피가 달아오른다. 심장이 요동치는 이 기분 자체가 즐거웠다.

드래곤이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워프들의 행동에 이상한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왜 대답을 못 하지?”

“왜 못 하기는.”

그녀의 물음에 에단이 답했다. 헨리의 장막이 걷힌다. 에단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도마뱀한테 할 말이 없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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