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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13화 (213/398)

◈ [213화] 드래곤 (19)

“혼자 궁상 떨고 있네.”

에단이 신랄한 말을 토해 냈자, 칼베리안이 얼굴을 구겼다.

“내가 언제 궁상을 떨었다고 그러지?”

“왜 보여 줘?”

에단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면서 칼베리안의 모양새를 따라했다.

코를 벌렁이면서 차의 향을 음미하는 시늉을 하는 모습에 칼베리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 내가 언제 그랬어! 그만 안 해?”

“원래 사람은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법이야.”

에단이 피식 웃었다.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보니 심기가 뒤틀렸다. 저 재수 없는 낯짝에 주먹을 꽂아 버리고 싶었다.

‘……내가 참는다.’

시도해 봤자 결과는 빤했다.

에단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몇 번 대들면 그 배로 되갚아 주는 데다가 에단의 주먹은 뼈를 울렸다.

칼베리안이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화를 삭혔다.

“시킨 건 잘하고 있냐?”

“……그래.”

“흐음.”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자 칼베리안의 몸이 움찔거렸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뭐 의심하는 건 아닌데…… 지금 한번 해 봐.”

“지금?”

칼베리안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등은 축축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큰일이군.’

근래 며칠 동안 칼베리안은 제 나름대로 방탕한 삶을 살아왔다.

새장에 갇힌 채 평생을 살아온 칼베리안에게 자유는 낯설면서도 달콤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큰일이다.’

에단이 시킨 운동도 빼먹었다.

칼베리안은 최대한 태연하게 굴었다. 이 사실을 에단이 알게 되면 몇 날 며칠을 갈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며칠 안 했다고 달라지기야 하겠어?’

칼베리안이 자세를 다잡았다. 가장 먼저 보여 줄 것은 팔굽혀펴기였다.

“보고 놀라지나 말아라.”

칼베리안의 호언장담에 에단이 코웃음을 쳤다.

“야, 윗통 까.”

“……뭐라고?”

에단의 발언은 정말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에단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래 태도를 고수했다.

“귀가 막혔어? 까라니까.”

“……나는 제국의 황자다.”

“어쩌라고. 맞고 깔래, 그냥 깔래.”

에단이 으르렁거리자, 칼베리안이 고개를 숙였다. 결국 주섬주섬 윗도리를 벗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수치심이 치밀어 올랐다. 뽀얀 살결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 정말 백숙 같군.’

근육 하나 없는 야들야들한 모습이다. 에단이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 칼베리안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만 봐라.”

“개소리 그만하고 엎드려.”

“크흠.”

칼베리안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비록 시킨 운동을 며칠 쉬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고작 며칠 쉬었다고 눈치채겠어?’

태연한 태도만 고수하면 그만이다. 칼베리안의 상체가 내려갔다.

부들부들.

상체가 안쓰럽게 떨리기 시작했다. 에단이 칼베리안을 지긋이 바라봤다.

‘안 했네.’

사실 에단도 정확히 판별할 수는 없었다. 며칠 쉬었다고 한들 수행 능력에는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에단이 확신하는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감.’

딱 보니 안 한 것 같았다.

칼베리안의 운동신경은 절망적인 수준이다. 팔굽혀펴기를 하나 함에 있어서도 처절함이 느껴졌다.

칼베리안은 나름대로 최대한 태연하게 수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의심을 가중시켰다.

‘근육통도 없어 보이고.’

그동안 아주 안락한 휴식을 취한 것 같았다.

‘누구는 개처럼 굴렀는데.’

제 형한테 불려 가 온갖 추궁과 문책을 당했는데, 자기는 팔자 좋게 티타임이나 즐기고 있다니.

괘씸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거 안 되겠네.’

에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어서.”

“허억, 허억.”

칼베리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벌써 이마에서는 땀이 방울방울 맺혔다.

“……이제 내 말을 믿겠나?”

칼베리안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단이 곧장 답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솔직히 말해. 그동안 쉬었잖아.”

“…….”

칼베리안이 입을 다물었다.

에단이 저벅저벅 걸어와 칼베리안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칼베리안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히죽.

에단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누굴 속이려고?”

“…….”

칼베리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 *

에단이 방을 나섰다.

그 뒤로 칼베리안에게는 새로운 운동이 추가되었다. 얼굴에 강아지 탈을 쓴 채 영지를 뛰는 일이었다.

‘얼굴이 팔려서 좋을 건 없으니까.’

이건 감히 속이려고 들지도 못했다. 워낙 보는 눈이 많았으니, 덜미를 잡히기도 쉬웠다.

‘자기가 부탁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재능은 일천했지만, 꾸준함은 결국 그를 성장시킬 것이다.

에단이 영주성에 들어섰다.

영주는 본래의 자리에 돌아왔지만, 실권은 여전히 한니발이 쥐고 있었다.

에단이 집무실에 들어서자, 한니발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셨습니까.”

“어.”

자리에 앉은 에단은 곧장 일련의 상황들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니발의 안색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음…….”

한니발이 깊은 신음을 흘렸다.

그렇게나 사고를 치지 않기를 바랐건만, 결국에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건 거의 제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매한가지인 상황.

‘……오히려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이미 제국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주요 요지 중 하나인 아카데미를 손에 넣었으니 오히려 잘됐다고 볼 수도 있었다.

‘연회에 초대한 의미는…….’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한니발이 생각에 잠겨 있자,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진도는 얼마나 나갔지?”

“헨리 님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일찍 당도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거 잘됐네. 아, 그리고 드래곤 토벌할 때 아버지도 오겠다더라.”

에단이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듯 말했다. 한니발이 잠잠히 있다가 눈을 끔뻑였다.

“……네?”

“못 들었어? 아버지 온다고.”

“……아버지라고 함은, 그 빈센트 경이 오신다는 말씀입니까?”

“어. 간만에 몸이 근질근질하다던데? 아주 주책이야.”

에단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한니발은 기가 막혔다.

‘……이런 중대사를 저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고?’

에단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기 자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한니발이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있자, 에단이 문 앞에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일단 봐서 말하든가 하려고. 괜히 불렀다가 알맹이만 쏙 빼 가면 어떡해?”

“……아.”

덜컥.

에단이 방을 나섰다. 한니발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군요.”

한니발이 헛웃음을 지었다.

* * *

“용사님!”

르니엘이 에단을 마주치자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에단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내가 용사라고 부르지 말랬지.”

이제 성검까지 두고 왔다. 더 이상 에단에게는 용사라고 불릴 이유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한번 용사는 영원한 용사입니다.”

꽈득.

에단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간 주먹이 나갈 뻔했다.

‘그래, 뭐 나쁜 의도는 없으니까.’

하지만 용사라는 단어는 매우 듣기 거북했다. 괜스레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앞으로 더욱 귀찮아질 것이다.

“마지막 경고야.”

“……네?”

“한 번만 더 용사라고 부르면.”

에단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진짜 뒈지는 수가 있어.”

한기가 느껴지는 에단의 말에 르니엘이 뒷걸음질 쳤다.

“아…….”

“대답.”

“……네.”

르니엘이 풀이 죽은 기색으로 답했다. 원하는 답을 얻은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늦게 물어보는 거긴 한데, 족장님은 잘 계시냐?”

“툰나 님 말씀이신가요?”

르니엘이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결심했군.’

리트마의 처형.

유약한 성격을 지닌 르니엘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르니엘은 결국 마을의 중심으로서 결단을 내렸다.

에단이 씨익 웃었다.

만일 에단이 리트마를 죽였다면 르니엘에게는 편했겠지만, 지금처럼 확고한 리더로 자리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잘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용…… 아니, 에단 님.”

“그래. 앞으로 말조심 잘하고. 엘프들에게 헨리에 대해선 말했나?”

르니엘은 헨리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다. 세계수와 함께 살아가는 엘프들에게 있어 헨리는 특별한 존재였다.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잘했어.”

간신히 뭉친 엘프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켜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죄다 몰려오면 세계수는 괜찮나?”

“생명의 나무라면 괜찮을 겁니다. 저희들은 이제 강하거든요.”

르니엘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에단은 그 미소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럼 다행이군.”

* * *

에단은 다음으로 용병들을 만났다. 사실 이제 이곳에서 용병들의 쓸모는 끝났다. 에단을 마주한 용병들이 잔뜩 얼어붙었다.

“뭘 그렇게 긴장해? 뭐 죄라도 지었냐?”

에단의 얼굴이 게슴츠레해지자, 줄리엔이 강하게 부정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 저희는 단지…… 너무 반가워서 그렇습니다. 하핫!”

줄리엔이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덩달아 주위에 있던 용병들도 웃기 시작했다.

“시끄러.”

“…….”

에단의 한마디에 용병들이 침묵했다. 줄리엔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타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줄리엔.”

“……네?”

“왜 거짓말해?”

“…….”

순간 줄리엔의 얼굴이 굳었다. 그 순간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호오.”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단장님.”

“줄리엔 목이 축축해.”

“하, 하하.”

줄리엔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미 땀은 비 오듯이 흐르고 있었다.

에단이 줄리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이번만 봐준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너희들 여기 있을 때는 지났지?”

“그 말은…….”

“동굴로 돌아가서 훈련이나 해. 마나 수련법은 배웠을 거 아니야. 성과는 있나?”

단원들이 머뭇거렸다. 에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렇게 쉽게 뭐가 되면 개나 소나 마나 유저겠지. 거기서 힘이나 기르고, 의뢰 간간이 처리해서 이름값이나 높여 놔. 너희는 내 직속이니까. 알겠지?”

“알겠습니다!”

“만일 내 얼굴에 먹칠이라도 하는 순간.”

에단의 입가에 반달이 그려졌다.

“그때는 기대해도 좋을 거야.”

단원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걸로는 안 돼. 결과가 나와야지. 거기서 탱자 탱자 놀다가 걸리면 뭐…….”

에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저들의 표정을 보니 그 이상은 불필요할 것 같았다.

“……얘들이랑 이제 헤어져?”

줄리엔의 목 위에 올라가 있던 타미가 물었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타미를 바라보던 에단이 피식 웃었다.

“단장이 빠지면 어떡해? 같이 따라가서 얘네 훈련 게을리하면 줘 패. 할 수 있지?”

“응!”

타미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줄리엔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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