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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09화 (209/398)

◈ [209화] 드래곤 (15)

“흐어어엉엉.”

망령들이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물어보지도 않았건만 망령들은 주저리주저리 자신들의 한탄을 시작했다.

졸지에 신세 한탄을 듣게 된 에단이 얼굴을 구기며 망령들의 말을 잘랐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억울하다 그거지?”

“……흑흑, 맞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째.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고 억울해. 꼬우면 강하든가.”

에단이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망령들이 절망 어린 눈초리로 에단을 바라봤다.

그 순간 망령들의 눈에 에단의 뒤편에 있던 어떤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어?’

뭔가 익숙한 기운이다. 짧은 머리칼과 얼굴에 흉터가 많은 사내였다.

― 나를 봤군.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페온의 존재를 한낱 망령이 인지했다.

‘헉!’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이미 멎어 있었지만) 저 남자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위압감에 심령이 제압당하는 것 같았다.

망령들이 몸을 덜덜 떨었다. 자리를 뜨려던 에단이 망령들을 힐긋 바라봤다.

‘흐음…….’

망령이라는 존재.

이대로 지워 버리기에는 뭔가가 아까웠다. 어딘가 쓸모가 있을 것만 같았다.

“야.”

“……네?”

가뜩이나 창백했지만 더욱더 창백해진 얼굴을 들어 에단을 바라봤다.

“살고 싶어? 아, 이건 좀 앞뒤가 안 맞는 얘기인가…….”

“사, 살고 싶습니다!”

“죽은 놈이 뭘 살고 싶대. 뭐, 복잡하니까 살고 싶은 걸로 치고, 네 부탁을 들어줄 수 있거든? 대신에 조건이 있어.”

“마, 말씀만 해 주세요!”

“지금 필요한 건 아니고…… 계약이나 하자고.”

에단이 씨익 웃었다. 그 섬뜩한 미소에 망령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 * *

“허억, 허억.”

드레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금발의 머리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빠득.

드레이가 이를 악물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검을 바라봤다.

그저 바닥에 놓여 있을 뿐인 검이었지만,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 진짜 너 더럽게 재능 없다. 그냥 접는 게 어때?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조롱하고 있었다.

드레이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저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닙니다.”

― 늬예늬예, 흐구 시퍼서 하는 건 아니구요∼

부들부들.

드레이의 손이 거칠게 떨렸다.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검이었지만, 지금은 꼴도 보기 싫었다.

‘제기랄.’

검을 쥘 때마다 지옥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처음 성검을 쥘 때는 별다른 반발력을 느끼지 않았다. 반발력은커녕 오히려 친밀감에 가까웠다.

‘그런데 무슨!’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성검의 힘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문이 있었다.

카이나는 그 관문을 보고 ‘시험’이라고 불렀다. 성검에 걸맞은 자질이 있는지를 판별하기 위한 시험이라고.

드레이는 그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이겨내리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시작도 못 하고 있잖아!’

성검의 신성력이 강해진다. 반발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너무 궁합이 잘 맞아서 문제였다.

‘감당할 수가 없어.’

신성력이 증폭됐는데, 단순히 플러스가 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폭주하기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었다.

넘쳐흐르는 신성력에 몸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신성력의 힘은 진탕되는 내부도 순식간에 회복시켰다.

드레이의 동공에 두려움이 맴돌았다.

끔찍한 고통이다.

한번 성검을 쥘 때마다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내질렀음에도 드레이의 목은 쉬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다.’

폭주하는 신성력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드레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수한 시도가 트라우마로 각인되었다.

쾅!

“귀청 떨어지겠다.”

문이 덜컥 열리며 들려오는 소리에 드레이의 고개가 획 하고 돌아갔다.

“……교수님?”

“잘 지냈냐?”

이를 드러내며 웃는 에단의 모습에 드레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잘 지내는 걸로 보이십니까?”

드레이가 꾀죄죄한 얼굴로 웃었다. 어딘가 궁상맞은 모습에 에단이 큭큭 거렸다.

“뭐, 때깔은 좋구만. 어때, 저 지랄 맞은 칼은 쓸 만해?”

에단이 턱짓으로 성검을 가리키며 말하자 드레이가 질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마시죠. 진짜 하루하루가 곤욕입니다.”

“대충 예상은 했어.”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에단의 곁에 선 에르미온이 흥미 가득한 눈으로 부담스럽게 드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 사람? 에르미온이라고, 마탑의 탑주야.”

“……예?”

드레이가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드레이가 이해하거나 말거나, 에르미온은 자신의 궁금증이 먼저였다.

“야, 쟤 도대체 뭐야? 무슨 교황이나, 성자라도 돼?”

에르미온이 손가락으로 드레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직접 보니 더 믿기지가 않을 지경이었다. 마법사는 신비를 탐구하는 자. 그 탓에 기이한 현상을 접하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드레이는 신기했다.

‘뭐 저런 괴물 같은.’

머리가 핑 돌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신성력이다. 교황과 대면해 본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의 신성력은 느끼지 못했다.

“어, 성자 맞아.”

“……뭐?”

이번에는 에르미온이 얼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녀가 멍한 눈으로 끔뻑였다.

“……성자?”

“……마탑주라고요?”

지금 무슨 얘기를 듣고 있는 거지?

* * *

“정면 승부가 무어라 생각하십니까.”

네이드가 다가왔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발걸음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결코 느릿하지 않았다.

“진심을 다하세요.”

네이드의 진심 어린 경고. 에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본인이 사정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촤악!

칼자루를 쥠과 동시에 검이 발출된다. 어깨와 손목만을 이용한 기민한 발도술이다.

네이드의 형체가 양단된다. 하지만 에밀라는 알고 있다. 저건 허상이다.

툭.

네이드의 손이 에밀라의 어깨에 올라왔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전신에 있는 솜털 하나하나가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에밀라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저희는 암살자입니다. 암살이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게 상책이지만, 언제나 예외란 있기 마련입니다.”

네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등이 축축했다. 꿈속에서 헤매는 기분이다. 자신은 지금 늪에 잠겨 있었다.

‘……이게 밝은 달.’

전설의 어쌔신.

그 힘을 직접 경험하자, 비견되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제가 왜 밝은 달이라고 불렸는지 알려 드리죠. 사실 저는 암살에는 별로 재능이 없습니다.”

암살이란 결국 남몰래 사람을 죽이는 행위다.

굉장히 높은 난이도와 노고, 피로가 동반된다.

에밀라 앞에 선 네이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였지만, 에밀라에게는 더없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대상을 죽이면 그것이 암살 아니겠습니까?”

툭.

네이드의 손에 어느새 단검이 들려 있었다. 손목이 움직이더니 단검이 에밀라를 향해 쇄도해 나갔다.

‘……느려.’

에밀라는 당황했다.

지금껏 보여 준 네이드의 모습을 생각하면 단검의 비행 속도는 너무 느렸다.

‘어떻게 대처하지?’

방법은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에밀라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 갔다.

에밀라의 동공이 단검 한 자루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민하던 에밀라는 결국 검을 휘둘러 단검을 쳐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신의 피가 차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에밀라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

어둠이 걷혔다.

무수히 많은 칼날들이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날을 통해 반사되는 빛은 차가운 달빛 같았다.

에밀라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 자신은 이곳에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네이드가 손을 들었다. 무수히 많던 단검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걸 보고 살아남은 이는 이로써 두 명이 됐군요.”

“……첫 번째는 누구인가요.”

에밀라가 황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네이드가 빙그레 웃었다.

“제가 모시는 분입니다.”

“…….”

네이드는 그날의 일을 회상했다.

‘넘을 수 없는 벽.’

처음 느꼈던 감각이다. 그러나 네이드는 좌절하지 않고, 빈센트와 함께하는 삶을 택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해 보도록 할까요?”

네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 * *

에단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설명을 들은 에르미온과 드레이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진짜 성자라고?”

“마탑주…….”

둘이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어찌 된 게 일의 스케일이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야?’

제국을 대놓고 도발할 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성자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 정신병자 놈들까지 건드리다니.’

신성 왕국에 이 사실이 흘러들어 가면 결코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곧장 성기사들이 움직일 테고, 그렇게 되면…….

‘……그래, 블란테니까 그럴 수 있지.’

상대가 블란테였다.

아무리 막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는 성기사들이라고 한들, 블란테가 수호하는 지금 막무가내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진짜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네.’

에르미온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할수록 황당했다.

한편 드레이는 다른 의미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래곤이라고?’

이제는 하다하다 드래곤을 잡으려고 한단다.

‘내가 들은 게 맞는 거야?’

뭔가 가면 갈수록 현실감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데아티르와 에르미온 둘 모두 어마어마한 위명을 지닌 대마법사였다.

‘……진짜 잡겠네.’

드래곤을 토벌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토벌이 현실성이 있다는 게 더 기가 막혔다.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자괴감이 치민 드레이가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그래서 문제가 뭔데?”

“…….”

드레이가 착잡한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략 설명을 들은 에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거 괜히 꼰대질 부리는 거 아니야?’

― 야! 너 지금 무슨 생각했어!

눈치 빠른 카이나가 빼액 소리쳤다. 에단이 게슴츠레 뜬 눈으로 성검을 바라봤다.

덥썩.

에단이 성검을 움켜쥐었다. 저항은 느껴지지 않았다.

― 이, 이 건방진 놈이!

‘그래서 저거 어떻게 해결합니까?’

여기서 카이나와 쓸데없는 말싸움으로 기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 ……나도 몰라. 나도 저만한 신성력을 지닌 놈은 처음이라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란 건 예상 못 했어.

‘구라 아니죠?’

― ……이 새끼가 나를 뭐로 보고.

카이나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정말 모르나 보군.’

카이나가 성격이 괴팍하기는 하였으나,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위인은 되지 못한다.

‘그럴 지능도 아닌 것 같고.’

그럼 문제는 정말 막강한 신성력에서 온다는 소리인데.

‘……이건 답이 없는데?’

딱히 해결 방안이 없었다. 신성력은 에단이 흡수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에단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드레이를 향해 말했다.

“그냥 써.”

“……네?”

“어차피 보여 주기 식이잖아. 아픈 거 좀만 참고 그냥 쓰라고.”

“…….”

드레이가 눈을 끔뻑였다.

“그냥 소리 지를 때 대사만 조금 바꿔. ‘으아아아!’는 너무 없어 보이니까.”

“……네?”

드레이가 또다시 눈을 끔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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