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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07화 (207/398)

◈ [207화] 드래곤 (13)

에르미온의 살벌한 경고와 함께 이글거리는 분노가 괴한들을 향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화르륵!

에르미온의 마나는 타오르는 화염처럼 붉었다. 언제라도 마법을 구현할 수 있는 상황.

그녀의 모습을 본 괴한들이 침을 삼켰다.

상대는 자그마치 에르미온이다.

그녀의 경고는 과장이 아니었고, 섣부른 행동을 저질렀다가는 순식간에 불타리란 걸 알아차렸다.

에단은 괴한들을 지그시 응시했다.

벌떡 몸을 일으킨 에단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런 에단을 본 에르미온이 물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하지만 에단은 에르미온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괴한들을 훑어봤다.

“1황자인가?”

“…….”

예상대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에단이 수긍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대답을 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어.”

지금 자신은 화풀이 대상이 필요할 뿐이다.

에단은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고 있었다. 편법으로 올랐다고는 하나 에단 또한 마스터의 경지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어중이떠중이는 아니군.’

저들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앞으로 한 발. 그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파앗!

녀석들이 동시에 산개했다. 사각으로 빠진 이들이 넷, 정면에서 주의를 끄는 자들이 둘.

칼이 어디서 뻗어져 오는지 가늠이 되었다.

“감히!”

에르미온이 분개했다. 순식간에 마법을 발현시키려는 에르미온을 향해 에단이 말했다.

“하지 마.”

“뭐라…….”

이해가 안 되는 에단의 말에 에르미온이 뭐라고 하려던 순간.

에단의 몸이 움직였다.

후웅!

‘오랜만에 쓰게 되는군.’

에단이 세계수의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전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강한 친화력이 느껴졌다.

이전과 같이 마나를 조절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한계치까지 마나를 밀어 넣으면.

쩌엉!

목걸이가 반응한다.

― ……이런 무식한.

쩌엉!

마나의 장벽이 전개되자, 막강한 반발력에 달려들던 괴한들이 모두 튕겨져 나갔다.

“커헉!”

에단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목표는 암암리에 괴한들을 지휘하던 녀석.

에단은 녀석이 튕겨져 나간 방향을 향해 뛰쳐나갔다.

파밧!

바닥에 나뒹굴던 녀석이 에단을 보고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쐐액!

에단이 달려오는 방향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에단이 상체를 비틀어 검을 피해 냄과 동시에 검날을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꽈드득!

‘뭐야, 이 괴력은!’

남자가 경악을 삼켰다.

검이 뽑히지가 않았다. 마나를 불어넣었음에도 강한 반발력에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퍼억!

에단의 발이 남자의 명치에 꽂혔다. 괴한의 몸이 붕 뜨며 사정없이 바닥을 굴렀다.

날아가면서 놓친 검을 에단은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다.

꽈득!

검이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그때, 뒤에서 에르미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뒤편에서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에단이 고개를 돌리자, 달려든 괴한 몇몇이 불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죽어 갔다. 에단이 무심한 눈길을 던지고는 쓰러져 있는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

남자는 체념한 기색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더 이상 저항할 것 같은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입은 다물고 있을 거지?”

“……죽여라.”

“그래.”

에단이 남자의 머리를 붙잡고는 그대로 바닥에 꽂았다.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에단이 손을 털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불쾌한 찝찝함은 여전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에단이 고개를 돌렸다.

남은 잔당들은 에르미온이 순식간에 모두 정리했다. 그녀의 경고대로 그들은 잿가루조차 남기지 못했다.

‘단순한 우연인가.’

에단의 시선이 식탁으로 향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여기고 넘어가기는 무언가 신경에 거슬렸다.

* * *

“새벽의 달.”

“…….”

네이드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에밀라의 안색이 굳었다.

“이미 알고 있으니 편하게 대답하셔도 됩니다.”

“……맞습니다.”

에밀라의 대답에 네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드는 천천히 강당을 걷고 있었다. 조명 하나 없는 강당은 어두웠다.

뚜벅뚜벅.

네이드의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밀라는 지그시 네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뭐지?’

분명 시야 속에 있고, 눈앞에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음에도 인지가 잘 되지 않았다.

마치 눈에 안개가 낀 것 같았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옅은 존재감뿐.

에밀라는 감각을 끌어올려 네이드의 존재를 인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뚜벅.

그리고 어느 순간, 네이드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네이드의 모습이 어둠 속에 사라졌다.

‘놓쳤어?’

에밀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손이 칼자루에 올라간다.

피부에 닭살이 올라오며 호흡이 가빠진다. 끈적한 긴장감이 전신을 적시고 있었다.

눈을 뜨고, 귀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놓치고 말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

에밀라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등이 축축했다.

“제 별칭과 조금 닮았더군요.”

뚜벅뚜벅.

다시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다.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감각을 뒤흔드는 기분.

“별칭이라고 함은 혹시…….”

에밀라가 물었다.

그 순간 네이드의 모습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네이드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밝은 달.”

“…….”

“혹시 들어 본 적 있으신지요.”

그 물음에 에밀라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전설적인 어쌔신의 이름을 어찌 모른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그 이름의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설마 당신이.”

“반갑습니다.”

에밀라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어째서 밝은 달이 블란테에?’

심지어 집사라는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니.

두 눈으로 목도하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에밀라가 경악을 삼키고 있자, 네이드가 미소를 머금은 채 에밀라에게 다가갔다.

“원래라면 후대의 양성 같은 건 관심 없었습니다만.”

“어째서죠. 설마…….”

“도련님의 부탁이라는 것도 있지만, 제 심경에도 조금 변화가 생겼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블란테에 종사하면서 살아가는 삶.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네이드는 그 생활에 썩 만족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의 욕심이 생겼다. 그 욕심은 에단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천재나 재능 따위의 흔해 빠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괴물.

에단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갔다. 에단의 변화는 스스로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에단은 주변까지 변화시켰다.

한낱 마구간을 청소하는 하인, 일개 수습 기사.

둘의 재능은 이제 블란테에서도 빛을 발한다. 휴고와 가토가 전력으로 달려들면 네이드 자신조차 진심을 다해야 한다.

‘……나이 먹고 주책이 따로 없구나.’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네이드에게는 명분이 부족했다. 하지만 에단의 명령으로 부족했던 명분이 채워졌다.

비록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으나, 자신의 이름을 계승한 어쌔신.

‘아직 미숙하지만…….’

재능은 있었다.

키워 보고 싶은 인재였다. 네이드의 주름진 눈가가 에밀라를 향했다. 그녀의 눈에는 결의가 차 있었다.

“강해지고 싶습니까?”

“네.”

에밀라는 한 치의 고민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다.

본디 어쌔신은 고독하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달성한다고 한들 그 위명은 결국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에서 비롯된다.

기사와는 전혀 다른, 존중받지 못하는 삶.

‘그렇기에 검을 택했겠지.’

에밀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블란테에서 지내면서 높아진 안목을 감안하더라도 에밀라는 뛰어나다.

‘그러나.’

그 검술은 비어 있었다.

올곧은 중심이 없다. 검이라는 무기를 다룸에 있어, 어쌔신과 검사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기에 에밀라도 큰 무리 없이 검술을 연마해 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결국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상대의 뒤를 노리는 암살자의 것이다.

광명정대한 기사의 것과는 다르다. 네이드는 검술의 극한을 경험했다.

흑사자 기사단의 단장을 역임하고 있는 첸.

그리고 흑사자들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빈센트.

그 둘은 검술의 극한에 도달해 있었다. 네이드는 미래를 점치는 능력은 없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저것으로는 힘들지.’

어둠에서 비롯된 검으로는 결코 진짜 괴물들의 꽁무니도 쫓을 수 없었다.

‘각자의 길이 있을 뿐.’

네이드의 눈에서 한기가 감돌았다. 느껴지는 오한에 에밀라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마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묻겠습니다, 에밀라 씨. 당신은 강해지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위명을 얻고 싶은 겁니까?”

“…….”

이 질문에는 전과 같이 곧장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에밀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쌔신의 삶은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 봤자, 추악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삶이었다.

네이드의 질문.

저 질문의 저의는 다시 어둠 속에 발을 들이겠냐는 의미였다.

에밀라가 이를 바득거리며 깨물었다.

‘결국 내가 뭘 할 수 있었지?’

알량한 힘을 자신한 채 학생들을 위험에 빠트렸고, 에단에게는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처절한 배신을 당했음에도, 에단의 곁에 서서 레벨린을 향해 검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이 모든 건 스스로의 힘을 자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밀라의 눈은 고요하고 깊었다. 은빛 머리칼이 밝은 달빛처럼 서늘하게 빛났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쓸데없는 문답은 그만 멈추죠.”

네이드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네이드가 거리를 벌리면서 에밀라에게 말했다.

“제 모습을 놓치지 마십시오. 흔들리는 인지 속에서 자신의 직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 것을 모두 따라 하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목소리가 흐릿해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분명 눈앞에 존재했음에도 흐릿한 존재감이다. 네이드가 암흑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어쌔신이 어째서 짧은 무기를 고수하는지 아십니까?”

귓전을 파고드는 목소리.

하지만 에밀라는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저건 본질이 아니다. 에밀라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훌륭합니다. 확실히 재능이 있으시군요. 저희는 상대의 인지를 흔들어야 합니다. 비겁하다고 손가락질당할 수도 있지만, 하나만 알고 계십시오. 죽은 자는 말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섬뜩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네이드가 미끄러지듯 사라진다.

“지금부터 실전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전력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허무하게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

뚝.

그 순간, 네이드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소름이 전신을 타고 올라오며, 호흡이 가빠졌다.

에밀라는 자신의 감각을 신뢰할 수 없었다.

시각은 아무것도 잡아내지 못한다.

후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청각은…….

쐐액!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에밀라가 반응했다.

에밀라가 지면을 박차며 비도를 피해 냈다.

“훌륭합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칭찬. 하지만 그 칭찬에 안도할 수는 없었다.

스스스스스슥.

그 숫자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비도가 자신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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