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드래곤 (6)
공세를 파훼하고 적중시킨 일격.
타이밍과 기회를 만들어 내지른 공격에 리사의 입이 벌어졌다. 대련은 끝났다.
고통을 억지로 억누른다고 한들 더 이상의 승부는 무의미한 집착일 뿐이었다.
“……제기랄.”
리사가 이를 갈며 가토를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가토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꽤 하는데, 가토.”
“그러게 말이야. 너보다 센 것 같은데?”
“제길, 부정할 수가 없군.”
대련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휘파람을 불며 가토를 칭찬했다. 익숙지 않은 민망한 상황에 가토는 차마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갑자기 그렇게 강해진 비결이 뭐지?”
“꾸준한 훈련과…….”
“그런 고지식한 대답 말고, 다른 것 없어?”
“알려 줘?”
“그래. 알려 주면…… 어?”
가토에게 어깨동무를 하려던 기사가 고개를 돌렸다. 방금 들린 목소리의 근원지가 뒤편이었기 때문이다.
“도련……님?”
“그래, 도련님이다. 강해지는 법이 그렇게 궁금해?”
에단이 씨익,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섬뜩한 미소에 기사가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괘, 괜찮습니다.”
“왜? 괜찮은데. 언제든지 궁금하면 찾아오라고.”
“네, 넵.”
그와 달리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돌린 가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도련님, 일은 모두 끝나신 겁니까?”
“아니. 아직 한참 남았어.”
“그, 그렇습니까? 그러면 대체 여긴 왜…….”
“뭐야? 내가 온 게 마음에 안 들어?”
에단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가토가 황급하게 팔을 휘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실망이 크다. 여기서 애들 좀 잘 가르치고 훈련이나 열심히 하라고 했더니만 아주 본인의 사리사욕만 채우고 있고 말이야.”
“사리사욕이라고요?”
가토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자신이 무슨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단 말인가.
“와, 이제 따박따박 말대답도 하는 거야?”
“그, 그게 아니라…….”
“애 좀 그만 놀리지?”
결국 보다 못한 에르미온이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다가왔다. 가토가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이분은?”
가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뜻 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이, 예사 인물이 아닌 듯했다.
가토의 물음에 에단이 에르미온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음…….”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뭐라고 소개하지? 그냥 마법사라고 하면 되나?”
“지금 나랑 장난해?”
에르미온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녀가 찰랑이는 머릿결을 넘기며 가슴을 폈다.
“에르미온이야.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르미온은 부연 설명 없이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짧은 정적 이후, 곧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에, 에르미온?!”
“마탑의 탑주?”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에르미온의 외향을 보며 정말 당사자가 맞다는 것을 확인한 학생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뵈,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로아넬 가문의…….”
“저, 저는…….”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을 소개하기 바빴다. 그만큼 에르미온이 가진 입지와 영향력이 크다는 소리였다.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인 에르미온이 거만한 눈초리로 에단을 흘겨봤다.
하지만 에단은 에르미온이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이든지 말든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체 뭐 하다 이제 온 거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가 쌍심지를 켜며 다가오자, 에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애먼 사람한테 쥐어 터지고, 나한테 화풀이를 하냐?”
“쥐, 쥐어 터져?”
리사의 볼이 꿈틀거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차마 반박할 말이 없는 리사가 간신히 끓어오르는 속을 삭였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진 건 아니거든?”
리사가 곁에 서 있던 가토를 노려보며 읊조리자, 가토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왜 나한테까지 불똥이…….’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넘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에단은 반발하는 리사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윌봥적으로 쥔 건 아뉜데~”
“…….”
부들부들.
주먹 쥔 리사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붉으락푸르락거리는 안색만 봐도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 같았다. 가토가 샐쭉한 얼굴을 하며 멀어졌다.
“뭐, 리사 네가 가토에게 두드려 맞는 건 상관없고, 아직 일은 덜 끝났어. 따로 볼일이 있어서 온 참이라 금방 돌아갈 거야.”
“……빨리 꺼져 버려.”
리사가 까칠하게 몸을 돌리며 거친 발걸음으로 멀어졌다.
‘성질하고는.’
피식 웃은 에단이 가토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가주님은 지금 학장실에 계실 겁니다.”
“꽤나 오래 계시네.”
“가문에도 도련님 두 분이 계시니까요.”
“너넨 걔네를 믿을 수 있냐?”
“…….”
카론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에단이 말을 이었다.
“실력은 좀 늘고 있냐?”
“부족한 실력이지만, 남들을 가르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으로는 안 될 텐데.”
“그렇습니까?”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가토가 멋쩍은 웃음을 짓자, 에단이 히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휴고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거든. 너희들, 라이벌 아니었어?”
“……휴고가 말입니까?”
가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휴고의 성장 소식은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었다.
“어. 아마 지금 붙으면 네가 무조건 질걸?”
“…….”
가토가 입을 다물더니, 침중한 얼굴로 에단을 향해 말했다.
“혹시…… 비교가 가능하시겠습니까?”
에단은 이채가 서린 눈으로 물끄러미 가토를 바라보다가 씨익 미소 지었다.
“후회해도 늦는다?”
* * *
에단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에밀라가 연무장에 들어섰다.
그러더니 곧 북적이는 인파를 바라보며 에밀라가 잠시 멈칫했다.
‘……뭐야?’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에밀라가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자, 에단과 가토가 대치하고 있었다.
마침 에밀라를 알아본 여학생이 인사를 해 왔다.
“앗! 교수님, 안녕하세요!”
“……어. 근데 이게 혹시 무슨 상황이니?”
“어,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갑자기 두 분이서 대련을 하시려는 것 같은데요?”
“……갑자기?”
뜬금없는 상황에 눈을 깜빡이던 에밀라가 근처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에 고개를 돌렸다.
붉은 머리칼을 지닌 젊은 여성의 모습.
아름다운 외모를 제외하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에밀라는 그녀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봤다.
“아, 저분이요? 글쎄, 저 여성분이 에르미온 님이라고 하더라구요!”
학생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학생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에밀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르미온? 마탑의 탑주?”
“네! 저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인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런 분이 왜 여기에 있어?”
“어…… 그러게요? 보니까 에단 교수님이랑 같이 오신 것 같은데요? 헉, 설마 애인분이라도 되는 걸까요?”
한순간에 구설수를 만들어 낸 학생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반면, 에밀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애인이라고?’
에밀라의 시선이 계속해서 에르미온을 향했다.
한편, 에단은 수많은 관중들의 시선을 느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미 몸이 풀린 상태인 가토는 목검을 쥔 채 에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긴장이 흐르는 가토의 표정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긴장돼?”
“……그렇진 않습니다. 제가 긴장하는 이유는…….”
가토는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실력의 성장을 체감했지만,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도 에단과의 거리는 언제나 멀었다.
‘이번에는…….’
과연 그 간극이 좁아졌을까?
가토는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무기 바꿔.”
에단이 가토가 쥐고 있는 목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토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목검을 내려놓으며 허리춤에 매인 검을 뽑아 들었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냐.”
에단이 답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가토가 뛰어들었다. 에단에게 선수를 빼앗기면 위험하다는 본능 때문이었다.
에단은 여전히 자세를 갖추지 않은 채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가토를 응시했다.
가토는 자신의 이점을 잘 알고 있다. 무기를 든 자와 없는 자.
또한 가토는 거리의 이점을 쥐고 있다.
쐐액!
가토가 섬광 같은 찌르기를 선보이자, 학생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가토는 에단이 이 일격을 어렵지 않게 피해 낼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 이후를 대비했다.
사납게 몰아붙인 가토가 에단이 회피한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발이 움직이며 몸이 흐름을 타고, 검 끝에서 선이 그어진다.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올곧은 선이었다.
어깨의 움직임, 허리의 관성.
모든 자세가 안정적이며 가벼웠다.
그야말로 유려하기 짝이 없는 검극이었다.
그러나 에단은 상체의 움직임만으로 검을 피해 냈다. 고작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그러나 겉보기엔 불안정하기 그지없는 자세라 가토는 더욱 파고들었다. 에단은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거리가 좁혀졌다.
퍼억!
그 순간, 에단의 카프킥이 적중했다.
순간, 가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강이에서부터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새 맞은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단순한 고통이라면 억누르면 그만이겠지만, 무게중심이 흔들릴 정도의 위력이다.
빠르게 중심을 되찾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가만히 놓치고 있을 에단이 아니었다.
후웅!
살벌한 파공음과 함께 에단의 오른손이 날아들었다. 가토는 팔을 들어 올리며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에단의 오버핸드는 유인책이다. 가토가 팔을 들어 올린 순간, 에단의 몸이 회전했다.
뻐억!
뻥 뚫린 복부에 에단의 뒤차기가 꽂혔다.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 가토의 입이 벌어졌다.
이를 악문 채 계속해서 거리를 벌렸지만, 에단은 끈질기게 그 뒤를 쫓았다.
떨쳐 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지만, 에단은 손쉽게 모두 피해 냈다.
이윽고 에단이 가토의 손을 붙잡았다.
꽈아악!
힘을 주며 중심을 흔들자, 가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검을 놓치지는 않았다.
그러자 에단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무에타이식 클린치로 가토의 머리를 싸잡으며 무릎으로 복부를 두드렸다.
뻐억! 뻐억!
가토의 입이 다시금 벌어졌다. 에단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상체를 들어 검을 휘둘렀다.
그로 인해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어디 있지?’
에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파밧!
예상 못 한 하단 태클에 가토의 몸이 붕 떠오르며 바닥에 꽂혔다. 더는 저항하지 못하도록 에단이 가토의 검을 쳐 냈다.
가토의 위에 올라탄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에 가토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졌습……!”
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단의 주먹이 내리꽂히자, 가토는 질끈 눈을 감았다.
에단의 주먹이 한 뼘 차이로 바닥에 박혀 있었다. 에단이 가토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항복?”
“……네.”
가토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에단의 손을 붙잡고 일어난 가토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은 했지만…… 분하군요.”
“그런 것치고는 꽤 많이 성장한 것 같은데? 근데 해 보니까 알겠다.”
“어떤 것 말입니까?”
“휴고한테 지겠는데?”
가토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