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드래곤 (4)
일이 끝나고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었다.
에단이 헨리를 이용해 지하 갱도를 무너트리려고 하자, 그 순간 드워프들이 입을 열었다.
“……무너트리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오.”
“이유는?”
에단은 먼저 이유를 들어 보기로 결정했다. 에단의 시선이 바크락에게로 향하자, 바크락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가 어째서 지하 갱도를 뚫었는지를 생각해 보시오.”
“마석 서리하려고 그랬겠지. 너, 나랑 지금 말장난하냐?”
에단의 얼굴이 사나워지자 바크락이 황급하게 설명했다.
“겨, 결국 마석을 가지고 돌아가야 하는 건 매한가지요. 그것을 짊어지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기에 우리는 부족이 있는 곳까지 길을 만들어 놨소.”
바크락의 말에 에단이 턱을 쓰다듬었다. 나름의 합리성이 있는 말이었다.
“위치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데.”
“……부족까지는 대략 보름 정도 걸리오.”
꽤나 먼 거리다. 에단은 머릿속에서 상황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보름이면 늦는군.’
이미 중앙 회의에서 에단을 소환했다.
응하지 않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곧바로 제재가 들어올 확률이 높았다.
‘일단 옮기고 있는 중에 생각해야겠는데.’
마침 대마법사 둘이 상주해 있었다.
결정을 마친 에단이 바크락에게 말했다.
“그럼 사람 몇 명 붙여 줄 테니까, 이것 좀 옮겨.”
“그러도록 하지.”
바크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은 곧바로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를 만났다.
“이제 약속대로 드래곤을 잡으러 가려고 하거든?”
에단의 말에 둘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언급되는 존재가 자그마치 드래곤이었다. 마법을 탐구하는 그들로서 흥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당연히 준비가 좀 필요하겠지? 가자마자 무턱대고 칼을 들이대기는 좀 무리가 있으니까.”
두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맞는 말이다. 드래곤이라는 규격 외의 존재를 상대함에 있어 아무런 대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 갈래?”
“……?”
에단의 질문에 두 마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동의했잖아?”
“말이 조금 이해가 안 되는군.”
“내가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너희들은 아무것도 안 하려고?”
“……그럴 의도는 없었다.”
“그래, 그러면 가야겠네. 일단은 거기까지 가야 준비를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고, 그쪽들도 꽤나 바쁠텐데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움직일 필요가 있어? 둘 다 내로라하는 대마법사잖아.”
“큼!”
“크흠.”
에단이 띄워 주는 말을 내뱉자, 둘의 목이 빳빳해지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단순하기는.’
내심 실소한 에단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마법진을 이용하면 병력 이동이야 수월할 테니까, 한 명이 먼저 가는 게 맞단 말이지.”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누가 갈래?”
“…….”
“…….”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잠시 서로를 마주 보다가 에단을 바라봤다.
“……시간을 얼마나 소요되지?”
“보름 정도 걸린다더라.”
보름이라는 단어에 데아티르와 에르미온의 얼굴이 굳었다.
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 봤다. 교차하는 시선에서 불꽃이 튀었다.
“……네가 가는 게 어때, 데아티르?”
“그게 무슨 헛소리지?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에 문제가 생겼나?”
“허!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나이 타령이야! 얼굴은 늙어 빠진 게!”
“발끈하는 모습을 보니 정곡을 찔렸나 보군.”
둘이 티격태격하며 다투고 있자, 에단이 한심함이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이따가 올 테니, 알아서 정해 놔.”
에단이 팔을 휘적이며 자리를 떴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격렬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에단이 고개를 저었다.
* * *
드워프들은 다시 뇌옥에 수감되었다. 불만이 없잖아 있었지만, 불평을 토로할 담력은 지니지 못했다.
사미라가 벽에 걸터앉아 하품을 내뱉었다.
“흐아암, 지루해 죽겠네.”
용병들과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는 것도 질렸다. 사미라가 뇌옥에 앉아있는 드워프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땠냐?”
그녀는 이번 계획에 함께하지 않았기에 소식만 전해 들었을 뿐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궁금증이 일었다.
사미라에 물음에 드워프들이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놈들은 괴물들이야.”
거칠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창백해진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완전히 겁에 질린 모습을 보자 사미라는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사미라가 품을 뒤적였다. 육포 같은 것들이 나왔다. 심심한 입을 달래기 위해 준비했던 것이다.
“음……. 역시 이 정도로는 부족한가?”
사미라가 뒷머리를 긁적이는 순간, 드워프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들의 입가에서 침이 주르륵 흐르는 걸 본 사리가 흠칫 놀라며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줄까?”
조심스럽게 묻자, 드워프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격렬한 반응이었다.
“……있었던 일들을 말해 주면 줄게.”
“내, 내가 말해 줄게!”
“아니야! 내가 말해 줄게!”
“너희들은 위아래도 없냐?! 어디서 어른이 말하는데!”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그러슈! 어른이면 양보를 해야지!”
“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드워프들이 투덕거리며 소란스럽게 굴자, 사미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조용히 안 해?”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사미라의 목소리에도 소란은 멈추지 않았다. 사미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등에 메여 있는 양손 도끼를 풀었다.
후웅!
대기를 찢어발기는 흉악한 소리와 함께 쇠창살에 부딪쳤다. 쇠창살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휘었다.
“내 말이 우습냐?”
“…….”
살벌하기 그지없는 경고에 드워프들이 입을 다물었다. 사미라가 흉흉한 안광으로 드워프들을 훑어보다가 개중 하나를 가리켰다.
“너. 너가 설명해.”
사미라가 품에서 육포 한 덩이를 꺼내 한 드워프에게 던졌다. 그 드워프가 육포를 받아들자 살벌한 눈초리들이 꽂혔다.
드워프는 눈치를 살피며 순식간에 육포를 꿀꺽했다. 그러자 드워프들이 죽일 듯이 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눈 착하게 안 떠?”
“…….”
사미라의 경고에 드워프들이 못마땅한 듯 시선을 돌렸다.
며칠째 돌덩이 같은 빵만 씹어 먹던 그들이었다. 고깃덩어리가 그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육포 한 덩어리를 꿀떡한 드워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고 들은 것들은 담백하게 설명할 뿐이었지만, 사미라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과장을 하거나 그런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과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미라도 에단과 다니면서 믿기지 않는 경험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녀는 노련하고 숙련된 용병이며, 그만큼 전투나 전쟁을 많이 겪어 왔다.
하지만 최근 영지전이나, 지금 드워프들에게 들은 블란테의 무력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진짜 괴물 새끼들이 따로 없군.’
그녀가 가진 최상급의 경지. 비록 마스터와 견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딜 가나 환영을 받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에단과 다니면서 점점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사라지는 중이었다.
대륙에는 괴물들이 넘쳐났고, 블란테는 괴물들만 속해 있는 집단이었다.
사미라가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 물끄러미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군.’
사미라가 피식 웃으며 남아 있는 육포를 모두 건넸다.
“내일 되면 더 가져올 테니까 너무 싸우지 마라.”
사미라가 그리 말했음에도 철창 안에서는 드워프들의 고성이 오갔다.
* * *
한니발은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는 귀족이라는 족속을 알고 있다. 누구보다 욕심 많고 이기적인 게 귀족들이다.
지금은 목줄을 쥐고 있기에 통제가 가능할 수 있지만,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게 바로 귀족들이다.
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곧장 제재와 경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다.
‘무력이 있다는 게 이렇게나 편할 줄이야.’
한니발이 헛웃음을 지었다. 블란테라는 막강한 세력이 뒤를 봐주고, 정보 길드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자 일이 매우 수월했다.
한니발이 일 처리를 하던 도중, 에단이 찾아왔다.
“……오셨습니까.”
한니발이 일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바빠 보이네?”
“준비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라도……?”
“슬슬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그렇군요. 더 지체하는 것은 확실히 득이 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는 들르실 생각입니까?”
“어. 마법사 하나 끌고 갈 생각이야.”
“게이트 때문입니까?”
“나도 얻는 게 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좋은 생각이군요.”
한니발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마법사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한데 비용이 나간다고 하더라도 꼭 마법사들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들은 변덕이 심하기로 유명했으니까.
심지어 이번에 대동할 마법사는 단순한 고위 마법사가 아니었다.
마탑의 탑주와 마법 명가의 가주.
둘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를 한니발이 모를 리가 없었다.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도가 텄군.’
작은 미소를 머금은 한니발이 입을 열었다.
“저는 무엇을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딱히 할 건 없고, 걔네들이나 굴리고 있어.”
“용병들 말씀이십니까?”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하려면 실전 경험이 최고지.”
이건 에단의 경험담이기도 했다.
* * *
쾅! 콰광!
폭음이 울려 퍼졌다.
영지민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자, 에단이 인상을 찌푸리며 굉음의 발생지를 향해 다가갔다.
둘은 여전히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꼬맹이가 많이 컸구나!”
“내가 아직 꼬맹이로 보이나? 노인네가 노망이 났군!”
“이, 이 싸가지 없는!”
쾅!
눈이 부실 정도의 살벌한 공방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서 뭐 하냐?”
휴고와 렉사르 헨리가 흥미 가득한 눈으로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먼발치에서 기사들과 첸도 구경 중이었다.
“에휴.”
에단이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한 발자국 다가갔다.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지, 누가 이 난리를 피우래?”
에단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도약했다.
두 마법이 격돌하는 순간 에단이 난입했다. 에르미온과 데이티르가 눈을 부릅떴다.
후웅!
체내의 있던 마나가 꿈틀거리며 방출됐다. 일련의 과정 없는 단순한 행위였다.
하지만 마나의 양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쾅!
두 마법이 파훼되었다. 남아 있는 잔재는 에단이 왼손을 뻗어 찢어발겼다.
“내려와.”
에단이 낮게 으르렁거리자, 공중에 떠 있던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순순히 내려왔다.
에단이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 말했다.
“어떻게 할래.”
“……아직 결정 못 했다.”
둘의 눈에서 다시 스파크가 튀었다. 에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내가 정해 줄게. 손 내밀어.”
“……?”
에단의 말에 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위바위보’라고, 아주 공명정대한 게임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