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97화 (197/398)

◈ [197화] 드래곤 (3)

‘뭐, 뭐 이런…….’

항의하던 귀족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없었다.

이런 엄청난 소란과 행패를 벌여 놓고 저런 강짜를 부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많은 이들의 증언이 두렵지도 않소? 어떤 대응을 하든 우리가 힘을 모으면…….”

푸들거리며 소리치는 귀족의 말에 에단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를 후볐다.

“야, 검들 뽑아.”

에단의 말에 기사들이 허리춤에 채워진 검을 뽑았다.

스릉.

피 묻은 검이 서늘한 소리를 내며 뽑혔다. 묶여 있던 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에단이 귀찮음 가득한 얼굴로 손짓했다.

“들었지? 이대로 가면 피곤해지니까 대충 정리하자.”

기사들이 에단의 말대로 검을 휘두르려 들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저, 저런 놈 말 듣지 않아도 되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소!”

묶여 있던 남자 한 명이 사태의 발단이 된 귀족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욕을 얻어먹은 귀족이 무언가 말을 하려 들었지만, 주위에 있던 수많은 이들의 고성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는데?”

판세가 뒤바뀌자 자신만만하던 모습의 귀족이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에단이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지켜보다 뚜벅뚜벅 다가갔다.

에단이 그를 향해 다가서며 주위에 굴러다니는 검 하나를 쥐었다. 귀족의 표정이 굳었다. 불길한 예감이 치솟았다.

“내, 내가 실언을 했던 것 같소. 이제 그런 소리는…….”

에단이 무심한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으어어어!”

귀족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자빠진 귀족이 몸을 굴렀다.

“사, 살아 있어?”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얕게 베인 살가죽에서 핏방울이 맺혔다.

“두 번은 없어.”

에단의 스산한 목소리에 귀족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린내가 코끝을 찌르는 탓이었다.

“지렸냐?”

에단이 경멸 가득한 눈초리로 귀족을 노려보자, 귀족이 푹 고개를 숙였다. 곁에 있던 다른 이들도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한심하기는.”

“그러게 뭐 하러 나서 가지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등을 돌렸다. 에단은 그들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슬슬 분위기를 휘어잡을 시간이다.

에단이 고개를 돌리자, 한니발이 한 발자국 앞에 나서 에단을 향해 장부를 건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몇몇이 이를 갈았다. 블랙마켓의 관계자들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한니발과 블란테 사이에 모종의 협약 관계가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저들의 독기 어린 시선에도 한니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흘겨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장부를 받아 든 에단이 천천히 장부의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레벨린, 정보 길드, 한니발이 수집한 내용이다.

저들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모든 실체가 까발려지고 말았다.

“이야, 아주 대단들 하시네. 겉으로는 그렇게 위선을 떨더니.”

에단이 끌끌거리며 혀를 찼다.

“뒤늦게 덮으려고 하거나 뭐 허튼 짓거리 하려고 해도 소용없는 거 알지?”

에단이 칼베리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중년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물었다.

“……황위를 노리는 것이오?”

에단은 별다른 대답 없이 미소로 응수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든 권력을 잃은 줄로만 알았던 2황자가 무기를 숨기고 있었다. 모든 판도를 뒤집어엎을 만한 무기였다.

눈치가 빠른 이들 몇몇이 입을 열었다.

“2황자에게 적극 협조하겠소!”

“우, 우리도 돕겠소!”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1황자인 크리스토는 황위를 계승하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는 권력을 휘둘렀다.

제국의 실권은 1황자의 손에 떨어졌고, 당연히 그들도 1황자의 뒤에 붙었다.

그동안 2황자는 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뒤늦게 권력 다툼을 시작한다고 한들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

권력자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 그들은 약점을 잡혔다.

2황자의 단독 소행이었다면 무시하면 그만이다. 2황자 자체는 전혀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란테가 개입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졌다. 허울뿐이던 2황자라는 신분이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었다.

블란테가 세간에 개입하지 않은 기간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블란테는 잊히고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옅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블란테의 송곳니는 녹슬지 않았고, 그들은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아.’

이미 구석에 몰려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

“……우리가 무얼 하면 되오?”

한 귀족이 물었다. 그 물음에 에단의 눈꼬리가 휘었다.

“이제야 대화가 조금 통하네.”

* * *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탓에 지하가 피로 젖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풀어줬다.

“……이대로 보내도 괜찮은 건가?”

칼베리안의 물음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속에서는 쌍욕을 퍼붓고 있겠지만, 지들이 뭐 어쩔 건데.”

“내 말은 저 노괴들이 과연 순순히 협력할 거냐는 소리다.”

“왜? 걱정돼?”

에단이 칼베리안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놀림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칼베리안이 얼굴을 구겼다.

“협력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진행하는 거지. 상관없어.”

“……내가 아무리 황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내 말에는 그 정도의 영향력이…….”

“그건 알고 있어. 뭘 새삼스럽게.”

“……개 같은 자식.”

“욕심내지 마. 지금 너한테는 우리도 과분해. 지금은 뺏는 걸로 족해.”

에단의 말에 칼베리안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칼베리안이 입을 열었다.

“……그렇군. 내가 너무 조급했어.”

칼베리안에 빠르게 수긍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단이 피식 웃었다.

‘역시 쓸 만한 놈이군.’

두뇌 회전이 나쁘지 않은 녀석이다. 이성적이고 침착하다.

1황자처럼 막강한 카리스마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칼베리안 또한 충분히 황제의 재목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 대륙은 1황자를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에단의 목적은 그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협조해도 좋다.

하지만 누구 하나가 에단을 배신한다면 그 순간 균열이 생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건 아니고, 경고는 해야겠지.’

에단이 가진 모든 비리를 터트림과 동시에 블란테가 움직일 것이다.

배신한 이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 그 누구도 2황자와 블란테를 경시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뭐든 좋다. 이제 명분은 에단과 블란테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변수가 있다면 신성 왕국이겠지만.’

그를 위한 대비도 하고 있었다.

‘조만간 잘하고 있나 확인해야겠군.’

자그마치 성검을 쥐여 줬다. 그런데도 유의미한 성장을 보이지 못했다면 에단이 직접 나서서 굴려 줄 생각이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에르미온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자, 그제야 에단이 시선을 돌렸다.

“아.”

기다리게 해 놓고 잠시 잊고 있었다.

에단의 반응을 지켜본 에르미온의 얼굴이 짜증으로 물들었다.

“편의도 봐줬으니, 너무 쪼잔하게 굴지는 말자고.”

“……진짜 어이가 없네.”

“자, 그럼 못다 한 얘기를 나눠 볼까?”

에단은 에르미온과 데아티르의 편의를 봐줬다. 손발을 묶거나 하는 제약을 면하게 해 준 것이다.

가만히 에단을 응시하고 있던 데아티르가 물었다.

“대체 우리한테 뭘 원하는 거지?”

“고상하신 마법사 두 분께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역시 드래곤 때문이겠지?”

“…….”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에르미온이었다.

“그래. 마법사인 이상 흘려들을 수 없는 정보지. 그래서 굳이 이딴 장소까지 찾아와 이렇게 발목이 묶여 버린 거지.”

한숨을 내쉰 에르미온이 한탄하듯 말을 이었다.

“반신반의했지만…….”

에르미온의 시선이 헨리에게로 향했다. 헨리가 눈을 끔뻑였다.

“……어떻게 드래곤의 협력을 구한 거지?”

“뭐?”

에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드래곤? 쟤가?”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건가? 일평생 마법에 종사하며 살아왔어. 그런 우리 둘의 마법을 동시에 파훼시켰는데, 저게 드래곤이 아니면 뭐지?”

에단이 헨리를 지그시 바라봤다. 헨리가 헤헤 웃으며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음.’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둘을 향해 말했다.

“안타깝지만 쟤는 드래곤이 아니야.”

“……뭐라고?”

에르미온과 데아티르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헨리를 드래곤이라고 여기며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에단은 그것을 정면에서 반박했다.

“말도 안 돼…….”

에르미온이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간의 자부심이 통째로 흔들리는 모습이다.

‘쯧.’

에단이 속으로 혀를 찼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인물이다.

“뭐 길게 설명해 줄 건 없는 것 같고. 너희들이 원하는 드래곤에 관해서는 해 줄 말이 있지.”

“…….”

둘은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단은 괘념치 않고 말을 이었다.

“드래곤의 위치.”

“……드래곤의 위치라고?”

흐릿하던 동공에 초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둘이 고개를 들어 에단을 바라봤다.

“그래. 이건 확실한 정보야. 아니면 이 녀석들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지.”

에단이 뒤편에서 쭈그리고 있는 드워프들을 가리켰다. 드워프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 정보를 넘기겠다는 소리인가?”

“내가 미쳤어? 그걸 공짜로 넘기게. 당연히 조건은 있지.”

“조건?”

“먼저 묻지. 드래곤의 위치를 알면 어떻게 하려고 한 거지?”

“…….”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입을 다물었다. 둘이 서로를 바라봤다.

‘……어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던 에단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명성이 자자한 대마법사라고 한들 드래곤과 정면으로 맞서기는 좀 그럴 거 아니야. 쟤한테도 털렸는데.”

에단이 헨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두 사람은 감정이 상했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본론이 뭐야.”

“사냥 한번 하자.”

“사냥이라고?”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에르미온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에단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혼자서는 힘들겠지. 하지만 드래곤의 위치를 특정해서 어쩔 건데. 뭐 협상이라도 하면 드래곤이 옳다구나 하고 너희들이 원하는 걸 줄 거 같아?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

“드래곤 성격이 괴팍하거나 지랄 맞으면 어떻게 할 건데? 쉬고 있었는데 침입했다고, 노발대발하며 죄다 쓸어버리고 대륙 엎어 버리면 책임질 거야?”

“……알겠으니까 계획을 설명해.”

에르미온이 조금 풀 죽은 기색으로 말하자, 에단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협력해 주겠다 이거 아니야.”

에단이 가슴팍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멀뚱거리며 서 있는 첸과 기사들을 가리켰다.

“쟤네들 봐봐. 어때, 든든하지 않아? 특히 저 앞에 있는 저 아저씨 좀 봐라. 인상 한번 살벌하잖아. 드래곤을 상대로도 쉽게 안 밀릴걸?”

강렬한 시선이 등판에 느껴졌지만, 에단은 애써 무시했다.

맞는 말인데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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