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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93화 (193/398)

◈ [193화] 블랙마켓 (9)

날이 저물자 에단은 영지를 나섰다. 목적지는 체이브레드. 첸을 포함한 블란테의 기사들과 접선할 장소였다.

“몇 번을 다니는지 모르겠군.”

에단이 가볍게 몸을 푼 뒤 땅을 박찼다. 에단의 머리칼이 거칠게 휘날리며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공기는 좋네.”

가볍게 조깅하듯 뛰어나가는 에단이 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주파한 에단이 미리 잡아 둔 접선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무리 지은 사람들이 보였다.

‘수상하기 그지없군.’

에단이 당부한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나같이 검은색으로 통일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머리까지 눌러쓴 모습이 어쌔신이나 도적 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에단의 존재감을 눈치챈 기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형형한 안광에 에단이 씩 웃으며 다가섰다.

“기다렸지?”

“…….”

첸과 기사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도 자신의 차림새에 썩 불만을 가진 듯 보였다.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군요.”

첸의 목소리에서 불편한 심기가 여실히 드러났다.

“사람이 언제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

“…….”

태연하게 대꾸하는 에단의 모습에 기사들이 할말을 잃었다.

“여기서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 바로 움직이지.”

“이동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말씀하신 대로 말 같은 것들은 준비하지 않았는데…….”

한 기사의 물음에 에단이 눈을 끔뻑였다. 에단의 시선이 기사의 위아래를 훑었다.

“멀쩡한 다리 놔두고 뭐라는 거야?”

“……설마 그 거리를 걸어간다는 말씀입니까?”

“누가 걸어간데?”

에단이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뛰어야지.”

기사들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 * *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디 가서 체력적으로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없는 이들이다.

뜀걸음은 체력의 기본이다. 당연히 블란테에서도 매일 기본적인 뜀걸음은 포함되어 있었다.

경지에 오른 기사들이다.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 궤를 달리하고 동급의 기사들과 비견한다고 해도 체력적으로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미친 괴물 새끼!’

기사들이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적당한 속도만 유지됐어도 이 정도로 체력이 모자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리는 속도가 차원이 달랐다. 이건 사실상 전력 질주나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터질것처럼 박동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질 지경이고, 풍경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유일하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첸뿐이었다. 뒤따르던 기사들이 버거워하는 것을 눈치챈 첸이 에단을 향해 말했다.

“속도를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제야 기사들의 상태를 파악한 에단이 뒤를 흘겨봤다. 파랗게 질린 기사들의 안색을 확인한 에단이 혀를 찼다.

“쯧.”

에단이 속도를 줄이자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지 기사들이 숨을 몰아쉬었다.

“체력들하고는.”

에단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들릴듯 말듯한 혼잣말이었지만, 감각이 예민한 기사들은 에단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빠득.

치욕스러움에 이가 절로 갈렸다. 하지만 차마 에단의 말에는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허이구∼ 이래서야 언제 도착하려나.”

에단의 책망 어린 비아냥에 심기가 뒤틀렸지만, 역시나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지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들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에단의 뒤를 따랐다.

‘……돌아가면 훈련의 강도를 올려야겠군.’

벌게진 기사들의 얼굴을 힐긋 바라본 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에단이 첸과 기사들을 대동하고 영지에 드러섰다. 완전히 무너진 성벽을 보며 기사들이 혀를 내둘렀다.

‘정말 가루가 됐군.’

첸이 새삼스러운 얼굴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의 성장세는 기이할 정도였다. 영지에 들어선 에단은 약속된 장소에서 헨리와 조우했다.

헨리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주 광고를 해라.”

“헤헤, 죄송…….”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인 헨리가 일행과 이동했다. 미로 같은 길을 지난 이들은 작고 허름한 판잣집 안을 들어갔다.

판잣집 아래에는 바닥재 대신 깊게 파여 있는 구덩이가 있었다.

“자신 있겠지?”

“그럼요. 제가 미리 다 준비를 끝내 놨죠.”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하는 헨리를 보며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란이 생기면 곧장 말해.”

“넵!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에단이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불퉁한 표정을 지은 채 에단을 노려보고 있는 칼베리안이 있었다.

“설마 이런 곳에 혼자 처박아 둘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럼 어린애도 아니고 내가 돌봐 줘야 하냐?”

한마디도 지지 않는 에단의 대답에 칼베리안이 얼굴을 찌푸리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아서 해.”

“각오나 해 두고 있어. 이제 곧 있으면 본 무대니까.”

칼베리안의 얼굴이 긴장감이 서렸다. 아무리 담이 크다고 한들 긴장을 안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첸과 기사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거리며 에단을 바라봤다.

“뭐해? 앉아 있어.”

“……저분은 누구시죠?”

“궁금해? 궁금해도 조금만 참아.”

곧 보여 줄 테니까.

에단이 미소를 머금었다.

* * *

블랙마켓에 사람들이 점차 몰려들었다. 한니발이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하나같이 거물들이군.’

블랙마켓은 익명성을 추구한다. 음지에서 비밀리에 열리는 장의 특성상 신원의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얼굴을 가린다고 하여도, 풍기는 분위기는 숨길 수 없는 법이다.

상인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 온 경험이 있는 한니발은 얼굴을 가렸음에도 사람들을 특정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고고한 척하는 놈들이 죄다 몰려왔군.’

한니발이 소리 없이 웃었다. 같잖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결국에는 선량함이라는 가면을 쓴 인간에 불과했다.

한니발이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런 잡다한 것들로 시간을 버릴 수는 없었다.

중심부에 다가서자 그럴듯한 단상이 보였다.

한니발이 다가서자 가면을 쓰고 있는 관계자가 다가오더니 한니발을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둘러 보셨는지요.”

“그다지 흥미를 끄는 것은 없더군요.”

한니발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관계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결국 들러리에 불과하니까요. 결국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경매’ 아니겠습니까?”

“기대해 보겠습니다.”

“하하, 선생님의 상품은 제일 마지막에 등장할 겁니다. 속단일 수도 있지만, 그것들을 뛰어넘는 가치를 가진 상품은 없을 것 같군요.”

한니발은 작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관계자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한 뒤 자리를 떴다.

한니발은 적당한 자리에 앉았고, 그 곁에는 렉사르와 휴고가 나란히 섰다.

숨이 턱턱 막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경매장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니발은 타인들의 행색을 천천히 살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예상했던 대로 거물들이 몰려들었다. 귀족은 물론이거니와 왕족 같은 고위 인사까지 하나둘 착석했다.

‘물고기는 몰려들었고.’

이제 그물로 수확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부터는 에단의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렇게나 많이 몰려드는 건가요.”

강아지 탈을 뒤집어 쓴 휴고가 경멸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니발과 렉사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추악함에 누구보다 익숙해져 있는 이들이다. 이런 상황은 그들에게 있어 큰 감흥을 주지 않았다.

어느새 좌석은 만석이 되었다.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인물들이었다.

‘마탑의 탑주와 아큐르의 가주까지 왔군.’

의도적으로 흘린 드래곤의 관한 정보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 한니발의 곁에 다가오는 한 인물이 있었다. 한니발도 얼굴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오셨군요.”

“조금 늦었습니다.”

한니발의 곁에 다가온 사람은 정보 길드의 수장인 메이였다.

비록 얼굴을 온전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같은 계획을 가지고 일면식을 나눈 사이였다.

메이는 휴고와 렉사르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저자가 추적하는 사자.’

어째서 저런 웃기지도 않는 탈을 뒤집어썼는지는 모르지만, 곁에 서 있기만 해도 솜털이 곤두섰다.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야성이 느껴졌다.

메이는 긴장을 내색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메이의 곁에 서 있던 경호원이 렉사르를 힐긋 바라봤다.

“뽑아 버리기 전에 눈 굴리지 마라.”

렉사르가 사나운 목소리로 경고하자 메이의 곁에 있던 경호원이 몸이 움찔 떨렸다.

한니발과 메이가 정면을 바라봤다. 이제 경매가 시작되기만 기다리면 됐다.

이윽고 단정한 턱시도를 입은 남성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 또한 눈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신사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능숙한 진행이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경매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실 분은 아시다시피 유례없는 규모로 펼쳐진 만큼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관중들의 호응은 없었다. 그저 말없이 남자를 응시했다.

“잡설은 필요 없을 것으로 사료되는군요. 그럼 본격적인 경매에 들어가겠습니다.”

단상 위의 천막이 걷히며 상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매가 시작됐다. 첫 경매임에도 엄청난 가격대로 입찰이 시작됐다.

‘볼품없는 물건이군.’

한니발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쓸 만한 물건은 아직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다양한 물품이 경매에 올랐다.

무기부터 시작해 방어구, 마도서, 약재.

언뜻 보면 흔한 물건처럼 보이지만, 앞에 붙는 수식어가 달랐다.

에고 소드.

저주를 받은 갑옷.

사령술사의 마도서.

사람을 광기에 물들게 만드는 물약.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다. 하지만 한니발과 메이는 알고 있었다.

‘검증되지 않은 것들.’

경매는 낙찰받은 순간 끝이었다. 그렇기에 입찰하는 이의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메이와 한니발은 경매를 관망했다. 적잖은 돈이 오가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것들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된 상품을 보여 드리죠.”

진행자가 입꼬리를 올린 채 상품을 선보였다.

상품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팔다리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그녀는 초점 없는 눈을 뜬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몰락 귀족의 자제입니다. 알아보시는 분들도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경매를 진행하자,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메이와 한니발은 철창 안에 갇힌 여자아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최근 영지전에서 패한 귀족이군.’

영지전에서 패했다고 한들, 저런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국가 차원에서 제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모종의 이유가 있었겠지.’

한니발은 연민 따위의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사연을 가지지 않은 이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계속 말없이 경매를 관망했다. 인간 노예들은 계속해서 상품으로 내걸렸고, 팔려 나갔다.

추악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블랙마켓에서는 늘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모두가 주목할 만한 상품입니다.”

천막이 걷히며 상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거대한 바윗덩어리 같은 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석’의 경매를 시작합니다.”

이제야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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