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블랙마켓 (7)
“……이상으로 보고를 마칩니다.”
집사장의 보고에 남자가 다리를 꼬며 물었다.
“마탑의 고양이 년도 이 소식을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검증되지 않은 정보인 터라…….”
“흥, 아직도 마법사라는 족속을 제대로 모르는군.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마법과 연관되어 있다면 그 누구보다 광기를 보이는 게 바로 마법사야. 그 고양이 년이라면 더욱더 나서겠지.”
“……준비할까요?”
“거창한 준비는 필요없어. 결국 그놈들이 원하는 것은 돈뿐이니.”
“가용 가능한 재산을 모아 보겠습니다.”
“불가능한 자산도 쓸 수 있게 만들어 놔.”
“명심하겠습니다.”
집사가 고개를 숙이며 가주실을 나섰다.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의 이름은 데아티르.
대륙에 있는 마법사 집단으로서, 그 위세는 마탑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비교적 자율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는 마탑에 비해서 권위주의적인 면모가 있었지만, 가신들은 그만큼 가주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절대 너한테만큼은 넘겨줄 생각이 없다.’
가문의 예산을 모두 소진해서라도 얻을 생각이었다. 드래곤에 관한 것은 마법사들에게 있어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아큐르는 마탑과 다르다. 마탑보다도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데아티르는 가주이기 이전에 마법사였고, 경지를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드래곤에 관한 정보가 거짓이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만들 생각이었다.
데아티르의 푸른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 * *
잭슨이 엘프들을 대거 이끌고 블로란 영지에 들어섰다.
엘프들은 전부 마차에 실은 상태라 간단한 검문만 받은 후 통과할 수 있었다.
경비병들은 미리 한니발에게 언질을 받은 터라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영지에 무사히 들어서자 바로 익숙한 얼굴들이 대거 보였다.
“어? 잭슨 씨 아니십니까!”
용병단원들이 잭슨을 알아보고 우르르 다가왔다.
“형씨 오랜만에 보는군! 간만에 보니까 신수가 훤한 게 보기 좋구려!”
반갑게 맞이하는 단원들을 보며 잭스도 밝은 미소를 지었다.
“반갑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째 안색이 별로 좋지 못하다?”
“…….”
잭슨의 말이 비수가 되었는지 단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잭슨이 눈을 끔뻑였다.
“왜, 왜 그래?”
“그게 말이요…….”
단원들이 그간의 서러움을 토로하려는 그때,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고 있냐?”
잭슨과 단원들의 고개가 획 하고 돌아갔다. 에단이 벽에 몸을 기댄 채 물끄러미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원들이 입을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것이…….”
하지만 에단은 단원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에단의 시선은 마차에 머물러 있었다.
‘엘프들은 무사히 모아 왔군.’
이제 얼추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았다. 에단이 잭슨에게 손을 까딱이자, 잭슨이 마차를 이끌고 에단에게 다가섰다.
에단이 마차를 향해 걸어가더니 얼굴을 집어넣었다.
“용사님!”
마차에 있던 르니엘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에단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몸을 뺐다.
르니엘이 따라 나오려는 모습을 보이자 에단이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
에단의 말은 곧잘 듣는 르니엘이 잠자코 있었다. 에단이 잭슨에게 턱짓했다.
“일단 옮기자.”
엘프들은 일단 드워프들이 자리해 있는 지하 뇌옥으로 옮겼다. 물론 죄를 지은 드워프들과는 처우가 달랐다.
음습한 뇌옥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엘프들은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으며 에단을 따라갔다.
에단은 뭔가 꺼림칙했지만, 지적할 만한 사항은 아니기에 딱히 말없이 따랐다.
뇌옥에 들어서자 간수를 맡고 있던 단원 몇과 줄리엔이 에단을 바라보고 몸이 경직됐다.
“에, 에단 님! 저희는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
“시끄럽고, 얘들도 적당히 돌보고 있어라.”
에단이 엘프들을 향해 턱짓하자 단원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분들은…….”
줄리엔과 단원들이 엘프들을 바라봤다. 줄리엔의 목 위에 올라타 있는 타미가 엘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귀쟁이.”
“타, 타미 님!”
줄리엔이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엘프들은 그다지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저분도 용사님의 일행이신가요?”
“내가 용사라고 하지 말랬지. 일행 맞아.”
“그렇군요!”
르니엘이 생긋 웃었다. 르니엘은 타미가 수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르니엘이 고개를 돌려 쇠창살 안에 갇혀 있는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드워프와 엘프 일행이 시선을 교차했다.
“……저 망할 귀쟁이 년들이 여길 왜 기어들어 온 거지?”
“두더지?”
“누구더러 두더지라는 거냐!”
순식간에 언성이 높아졌다. 드워프들과 엘프들은 한눈에 봐도 사이가 좋지 않은 듯 보였다.
“조용히 안 하냐?”
“…….”
에단이 사납게 중얼거리자 둘이 입을 다물었다.
“너희들은 잠깐만 여기에서 지내고 있어.”
“네!”
르니엘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오자마자 옥살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을 가질 법도 했지만, 에단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조금의 불만도 토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흔쾌히 뇌옥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옆에서 곧바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흥, 명예 따위는 없는 귀쟁이 새끼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꼬라지가 아주 가관이군.”
퉁카의 도발에 반응한 것은 엘프가 아니라 에단이었다.
쾅!
에단이 쇠창살을 걷어찼다. 쇠창살 하나가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에단이 쇠창살 사이로 뚜벅뚜벅 들어섰다.
드워프들의 얼굴이 굳었다. 퉁카가 그제야 무언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지한 듯 입을 열었다.
“오, 오해가…….”
“야.”
하지만 에단은 퉁카의 변명 따위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에단은 쪼그려 앉으며 퉁카를 바라봤다.
맹수 같은 에단의 눈빛에 차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퉁카가 눈을 내리깔았다.
“장난하냐?”
“……시, 실수였소.”
“실수?”
에단이 퉁카의 뒷덜미를 붙잡아 들었다. 퉁카가 대롱대롱 흔들렸다. 퉁카가 겁에 질린 얼굴로 에단을 바라봤다.
“나도 실수 한번 해도 될까?”
“죄, 죄송하오! 다신 이런 일이 벌이지 않도록 하겠소!”
“흠.”
에단이 물끄러미 퉁카를 응시하자 퉁카의 몸이 덜덜 떨렸다.
“잘하자.”
“…….”
에단이 손을 놓자 퉁카가 바닥에 떨어졌다. 에단이 몸을 일으키며 뇌옥 안을 나왔다.
“……이거 이렇게 둬도 괜찮을까요?”
줄리엔이 떨어진 창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단이 줄리엔을 지그시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왜? 얘들 도망갈까 봐?”
“아, 아닙니다! 저희가 그냥 지켜보고 있겠습니까?!”
줄리엔이 화들짝 놀라며 변명했다. 에단에게 무슨 덜미를 잡힐까 두려웠다.
“도망치라고 해.”
“……네?”
에단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줄리엔이 되물었다. 에단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쟤한테서 도망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닐걸?”
에단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줄리엔과 단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
렉사르가 팔짱을 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인데도 살벌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하하, 그렇네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줄리엔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드워프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하루만 고생해.”
에단이 손을 휘적이며 잭슨을 이끌고 위로 올라갔다.
에단은 곧바로 한니발과 칼베리안을 만났다. 근육통을 호소하던 칼베리안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자리에 함께했다.
“저기…… 이분들은…….”
잭슨의 물음에 에단이 귀찮다는 듯 턱짓했다.
칼베리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칼베리안이라고 한다.”
“……칼베리안?”
잭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잭슨의 눈이 칼베리안에게로 향했다. 화려하게 빛나는 금발과 맑고도 깊은 푸른 눈이 보였다.
‘칼베리안…… 칼베리안…….’
그때 잭슨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혹시…….”
“자네가 생각하는 게 아마 맞을 거야.”
잭슨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잭슨이 고개를 돌려 에단을 바라봤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정말 황자님이십니까?”
“어.”
에단의 대답에 잭슨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간신히 중심을 잡은 잭슨이 이번에는 한니발을 바라봤다.
“그럼 저분은…….”
“나는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아닐세. 보잘것없는 상인에 불과하니. 한니발이라고 하네.”
한니발의 소개에 잭슨의 눈이 부릅떠졌다. 대륙에서 거상 한니발을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 대체 무슨 일을 벌이시려는 겁니까?”
“못 들었냐?”
“……네?”
“모르면 됐어. 그냥 지켜만 보고 있어.”
일일이 설명해 주기 귀찮아진 에단이 그리 말하자, 잭슨은 떨떠름한 얼굴을 한 채 에단을 바라봤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조합이지?’
잭슨이 눈을 끔뻑였다. 지금 이게 꿈을 꾸는 건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지금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는 제국의 황자와 대륙 제일의 무력 집단인 블란테의 적통과 대륙에서 제일가는 상인이 한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잭슨이 아연히 바라보고 있을 때, 에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엘프들은 준비됐어.”
“……허, 정말 그 말이 사실이었군.”
칼베리안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직 에단의 말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군요. 장이 열리는 시간이 내일이니 말입니다.”
한니발에 말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한니발을 흘겨보며 말했다.
“만일 늦었으면 쟤는 지금 저렇게 서 있지 못하지.”
“…….”
소름 끼치는 말에 잭슨의 몸이 얼어붙었다. 잭슨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흘린 에단이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그럼 마지막 대화를 나눠 볼까?”
에단의 말에 한니발과 칼베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수정구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면을 쓰고 있는 메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 ……대뜸 연락하시는 건 여전하시군요.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이쪽은 준비를 끝냈어.”
― 잭슨은 무사히 도착했나 보죠?
메이의 물음에 에단이 잭슨을 가리켰다. 잭슨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 …….
잭슨을 바라본 메이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 그나저나 못 보던 분이 자리에 계시군요.
칼베리안을 지칭하는 소리였다. 에단이 일련의 상황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얘기를 들은 메이의 입이 벌어졌다.
― 왕도에서 벌어진 소란이 당신 짓이었습니까? 설마 2황자를 납치하다니…….
“납치라고 하면 어감이 이상하지 않냐?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쪽은 준비 끝났어?”
― ……네.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신빙성 있게 포장해서 준비해 놨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올 겁니다. 한데…… 괜찮겠습니까? 상대는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대마법사들입니다. 그 괴물들을 꾀어낸다고 해도…….
“누가 걔네들을 족친대?”
메이의 말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내가 말했잖아. 사냥 한번 할 거라고.”
도마뱀 잡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