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블랙마켓 (2)
준비는 분주하면서도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정보 길드는 총력을 다해 이번 블랙마켓에 관한 정보를 흘리기 시작했다.
귀족, 상인, 돈 많은 용병이나 벼락부자에게까지.
은밀한 척 접근해서 은근슬쩍 정보를 흘리는 것은 정보 길드의 특기였다.
한니발도 자신의 거래처를 이용해 특별한 정보인 것처럼 포장하여 이번 장을 홍보했다.
이내 소문은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고, 블랙마켓도 그 사실을 인지했다.
에단이 헨리를 이용해 정비한 지하 공간을 확인한 블랙마켓의 관계자가 혀를 내둘렀다.
한니발의 사업 수완이나 능력을 믿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니발이 가져온 상품의 희소성과 그 장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특별했다.
혹여 거짓일까 싶었지만, 그마저도 한니발이 직접 마석의 유무와 드워프의 존재를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모든 걸 확인한 블랙마켓 관리자에게 한나발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혹시 제가 아는 지인이 장에 참가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원래라면 불가능하지만 그 대상이 한니발 님이니 거절할 수가 없겠군요.”
“하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특별한 물건을 입수한 노예상이 있어서요.”
“특수한 물건이라면…….”
관계자의 물음에 한니발이 귀를 툭툭 건드렸다. 한니발의 제스처를 확인한 관계자의 눈이 흔들렸다.
‘이번 거래는 대박이다.’
한니발의 제스처는 엘프를 뜻했다.
비록 한 번도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드워프보다는 희소성이 떨어졌으나, 여타 노예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가치를 지닌 것이 바로 엘프 노예였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흘리듯 중얼거린 한니발의 말에 관계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본 한니발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 * *
잭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나야?”
위에서 지시가 떨어졌다.
목적지는 세계의 중심. 극한의 폐쇄성을 자랑하는 엘프가 있는 장소였다.
뛰어난 침투력을 자랑하는 정보 길드의 요원조차 뚫지 못한 장소였지만, 지시는 떨어졌으니 움직이긴 해야 했다.
잭슨은 명령을 하달하던 메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 그렇게나 그 사람을 신용하니, 당연히 이번 일도 맡으셔야겠죠?
명백한 비아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잭슨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 헛, 그렇다는 것은 감봉 조치도 해제되는 겁니까?
― …….
잭슨은 그 말을 꺼내자마자 메이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후우.”
잭슨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앞을 바라봤다. 눈앞에는 드넓은 지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이라면…….
잭슨이 자신의 허리춤을 바라봤다. 블란테에서 받은 검이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하게 느껴졌다.
“까라면 까야지, 뭐.”
피식 웃은 잭슨이 말 위에 올라타 질주해 나갔다.
* * *
정보 길드는 마법사들에게도 접촉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의 괴팍한 성격은 일반 시민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실이었다.
자존심 세고, 괴팍하고, 고지식하고, 오만한 존재가 바로 마법사라는 족속이었다.
그들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정보 길드도 마음의 준비를 갖춰야만 했다.
메이는 조급함에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 먼저 마석에 관한 것으로 마법사들을 꾀어내기 시작했다.
마석이라는 특별한 광물은 마법사들에게도 희소성이 짙은 물건이었고, 연구할 만한 것이 무궁무진한 녀석이었기에 마법사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특별히 말씀드리는 내용인데…….”
정보 길드 측은 조심스럽게 드래곤에 관한 정보를 흘렸고, 예상한 대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임에도 마법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위에까지 뻗어 나갔다.
마법 명가 아퀴르의 가주 데아티르와 마탑의 탑주 에르미온.
소식을 들은 대륙의 두 거물이 반응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메이도 직접 움직였다.
그만큼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중대 사항이다.
메이는 여지를 남겨 뒀다.
당연히 드래곤이 상품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 드래곤에 관한 정보 자체가 상품이라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두 거물은 움직였다. 만일 일확천금을 위해 거짓을 꾸민 이가 있다면 대가를 치르게 하면 그만이다.
그 둘은 마탑주이자 가주이기 이전에 한 명의 마법사였다. 그리고 마법사에게 있어서 드래곤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특별했다.
아퀴르와 마탑이 움직이자, 규모는 더욱 커졌다.
에단은 여유롭게 몸집을 불리는 눈덩이를 관망했다.
‘계속 몸을 불려라.’
저 눈덩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파장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시기가 조금 아쉽긴 한데…….’
에단에게는 세력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블란테의 세력이 없었다.
블란테는 그 자체로도 엄청난 단체이지만, 블란테의 힘이 되어 줄 곳은 없었다.
아카데미를 점거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명분은 챙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블란테가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의 보증으로 신빙성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대륙 연합회의 귀족들이 수긍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었다.
대륙에서는 블란테가 아카데미를 불법 점유하고 소유화시킨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대륙이 작정하고 힘을 모아 압박한다면, 제아무리 블란테라도 방도가 없었다.
‘패가 하나쯤은 필요해.’
명분과 지지 세력.
외부가 아닌, 내부의 세력이 필요했다.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되겠어. 내가 직접 찾아가면 그만이지, 뭐.’
상대측의 대응이 굼떴기에 에단은 직접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녀석이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에단은 헨리를 대동하여 이동했다.
향하는 장소는 제국이었다.
* * *
제국의 수도.
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번영했지만, 대륙의 패권을 쥐지는 못했다. 제국이 칼을 뽑아 들기에는 굴지에 자리해 있는 거물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제국은 패도적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다. 사신을 보내고,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대륙을 규합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규합에는 성공했고, 그로 인해 탄생한 것이 ‘중앙 회의’라고 불리는 여태껏 없던 최대 규모의 정상회의였다.
그리고 그 회의 끝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아카데미였다.
아카데미의 중심에 있던 레벨린은 자취를 감췄다. 그걸 빌미로 블란테가 움직인 탓에 명분이라는 검을 휘두르면서 아카데미를 점유했다.
중앙 회의가 곧 준비된다.
이미 소문은 퍼질 만큼 퍼졌다. 사람들은 중앙 회의에서 어떤 대응을 할지 귀추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때, 에단은 제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게이트를 통과한 에단이 작게 감탄했다.
“확실히 제국은 제국이구만.”
“……죽을 것 같네요.”
헨리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스스로 뛰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짐짝처럼 짊어진 채 한 이동은 죽을 맛이었다.
“엄살 부리지 말고. 날이 저물기 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대충 둘러보고 있어.”
“……목이라도 축일까요?”
“마음대로 해. 대신 취하면 각오하고.”
에단의 섬뜩한 미소에 헨리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의 수도는 그 명성답게 번화해 있었다.
에단과 헨리는 적당한 식당들을 방문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거 들었어?”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여러 대화 내용들이 귀에 들어왔다.
아카데미에 관한 것부터 시작해서 블란테가 움직인 것, 그리고 체이베르가 영지전에서 승리한 것까지.
어느 하나 에단이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대화를 듣던 에단이 피식 웃으며 생선 튀김을 입에 집어넣었다.
“음…….”
겉보기는 그냥 그랬지만, 생각보다 입맛에 맞았다. 에단이 거대한 생선 튀김을 통째로 입에 가져갔다.
와그작.
“아…… 내 껀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헨리가 탄식했다.
* * *
날이 저물었지만 숙소는 따로 잡지 않았다. 목적지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정말 저길 들어가라고요?”
헨리가 창백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저택 앞에는 병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왜? 못 해?”
“……하아.”
헨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그마치 제국의 황제가 기거하는 장소였다. 경계가 느슨할 수가 없는 장소였다.
헨리가 눈을 감은 채 입을 중얼거렸다. 마나가 에단과 헨리의 몸을 휘감았다.
‘편리하네.’
책에서 보던 것처럼 복잡한 작용은 일어나지 않았다.
헨리가 쓰는 것이 마법인지 정령술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저 안에 들어가는 거니까.’
마법을 두른 에단과 헨리가 벽에 손을 얹자 그 순간 스르륵 몸이 통과되었다.
“평소보다 조금 많이 신경 쓰고 있거든요? 마나가 거미줄처럼 퍼져 있어서 그걸 피하려면 마나 소모가…….”
“시끄러.”
“…….”
에단의 말에 헨리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뭐 때문에 여기까지 들어온 거예요? 그건 말해 줄 수 있잖아요.”
“내가 말 안 했었나?”
에단의 대답에 헨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린 지금 2황자를 만나러 갈 거야.”
“……황자라고요?”
이제 헨리는 더 놀랄 기운도 없었다.
“왜? 블란테의 둘째는 만만한데, 둘째 황자는 좀 쫄려?”
“아, 아닙니다.”
헨리는 이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에단을 따라다녔다.
생각해 보면 세계수까지 뽑아 버린 자가 에단이었다. 이런 마당에 무서워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래…… 끽해 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헨리와 에단이 내성을 수색해 나갔다.
책에서 또한 둘째 황자가 기거하는 방까지는 언급되지 않았고, 언급되었더라도 기억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귀찮아 죽겠네, 아주.’
대충 고급스러워 보이는 방 안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둘째 황자의 외향적 특징은 금발 벽안에 왜소한 몸밖에 알지 못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금발 벽안은 황제의 적통에게만 발현되는 특징이었고, 첫째 황자는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얘도 아니고, 쟤도 아니고.’
적당히 있어 보이는 방을 뒤적거리던 도중 헨리가 에단에게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에단 님, 이제 한계인 것 같습니다.”
“그래?”
에단이 고개를 돌려 헨리를 바라봤다. 안색을 보아하니 확실히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에단이 헨리의 손목을 붙잡았다.
후욱.
그 순간 에단의 몸 안에 있던 막대한 마나가 헨리를 향해 타고 들어갔다. 헨리가 눈을 부릅뜨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에단이 마나 주입을 끝내자 헨리의 몸이 비틀거렸다.
“풀리면 엿된다.”
그 순간 들려오는 에단의 말에 헨리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 은신을 유지했다.
“……이건 대체 뭔가요?”
헨리는 몸 안에서 느껴지는 충만한 마나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주유.”
“……네?”
의미를 알 수 없는 에단의 말에 헨리가 되물었다. 에단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쓰는 마나는 같으니까 보충해 준 거지, 뭐.”
“……아.”
그렇구나.
그렇게 단순한 일이구나.
에단의 태도에 묘하게 수긍한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에단의 뒤를 따랐다. 다시 마나의 여유가 생긴 에단과 헨리가 복도를 거닐었다.
― ……저 방일 거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페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은 페온의 말을 되묻지 않고 곧장 움직였다.
페온의 말에 따라 들어간 방에는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