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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82화 (182/398)

◈ [182화] 처분 (1)

한니발은 잔뼈 굵은 상인답게 빠르게 안정화시키고 있었다. 이런 작은 영지를 통솔하는 것 따위는 그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보다 훨씬 큰 대도시도 실질적인 통치를 하는 게 한니발이었다.

게다가 이번 영지전이 생각보다 싱겁게 승리하게 된 덕분에 신경 쓸 것도 많지 않았다.

‘거슬리는 거라고 해 봤자 날아드는 부나방들이 전부겠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 하이에나는 예측하고 있었지만, 협상을 위해 만난 영주의 옆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가 있었다.

‘……드워프라니.’

한니발도 이건 예상치 못했다. 드워프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질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는 존재였다.

그런 드워프가 냉랭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니발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드워프를 흘겨보고 영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영주 대리인 한니발이라고 합니다.”

“……오늘 내 눈앞에 영주 대리인이 두 명이나 나타나는군. 누구 말을 믿으면 좋은 거지?”

팔론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한니발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앞서 만났던 대리인은 저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서로 이야기는 되어 있으니 괘념치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

팔론이 입을 다물었다. 한니발은 은연중에 자신의 권위를 짓누르는 언행을 내뱉었다.

영주인 자신의 의지와 의사를 묻는 게 아닌, 상호 간의 얘기가 끝났으니 신경을 끄라는 소리나 매한가지였다.

팔론이 눈을 감았다. 모멸감이 치밀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후, 이렇게 된 거 하나 묻지. 우리 같은 약소 영지를 노린 이유가 뭔가? 왕실이 묵인하는 것으로 보아 뇌물도 적지 않게 먹인 것 같은데. 대체 뭘 위해서 이런 거지?”

“저는 일개 상인에 불과합니다. 저 따위가 저희 영주님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한니발이 싱긋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영주님께서 생각이 너무 앞서 나가시는 것 같습니다.”

“…….”

팔론이 침묵했다. 그러자 옆에서 대화 내용을 지켜보던 드워프가 코웃음을 쳤다.

“인간 놈들은 이렇게 예의 없고 건방진 녀석들밖에 없나?”

한니발이 시선을 돌려 바크락을 바라봤다. 바크락은 양팔과 다리가 묶여 있었다.

가뜩이나 짧은 신장인 드워프가 묶인 채로 앉아 있으니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한니발이 턱을 쓰다듬으며 바크락을 바라봤다.

“듣던 것보다 더 작은 것 같군요.”

“……뭐라고?”

“제가 한 번 꺼낸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죠. 혹시 귀가 먹은 게 아니라면 되묻지는 말아 주실 수 있으신가요?”

거듭되는 모욕적인 언사의 바크락의 수염이 푸들거렸다.

한니발은 순식간에 상황을 인지했었다. 영주와 드워프가 서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아, 드워프는 에단에 의해 구속당한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한니발은 바크락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한니발의 도발은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효과적이었다. 붉으락푸르락하는 낯빛을 보며 한니발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부디 주제를 파악하시길 바랍니다.”

“감히 인간 놈 주제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바크락이 노성을 터트리자 에단이 묶어 둔 밧줄이 터져 나갔다.

그 순간 문이 거칠게 열렸다.

“뭐 하냐?”

갑자기 나타난 에단의 눈에서 살기가 넘실거렸다. 바크락의 몸이 일순 경직됐다.

“……퉁카?”

에단은 한 손에 퉁카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뭐 하냐고. 대답 안 해?”

“바, 바크락, 이놈은 괴물이야. 빨리…….”

“넌 조용히 하고.”

에단이 들고 있던 퉁카를 흔들었다. 퉁카가 붙들린 채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퉁카…….”

참담한 광경에 바크락이 침음을 흘렸다. 퉁카는 일족의 원로였다.

부족 내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는 퉁카가 저런 처우를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을 더는 보기 힘들었는지 바크락이 눈을 질끈 감았다.

“어쭈, 대답 안 하지.”

에단이 눈살을 좁혔다. 들고 있던 퉁카를 그대로 바닥에 꽂았다.

쾅!

지면이 파이며 퉁카가 바닥에 처박혔고, 에단의 발이 그대로 퉁카의 몸 위에 올라갔다.

꾸우우욱.

“끄어어어억…….”

퉁카의 입에서 애처로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그만……!”

“뭘 그만해.”

에단이 밟고 있는 힘을 가중시키자 퉁카가 바동거렸다. 눈을 질끈 감은 바크락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오…….”

“하오?”

“……죄송합니다.”

모든 게 끝났다.

착잡했다. 변수까지 고려해서 계획을 세웠고, 마석 채취만 끝나면 미련 없이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 괴물 같은 인간에게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끝까지 휘둘리는 운명인가.’

광산에서 지낼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자신들의 의지와 의사는 아무짝에 쓸모없었다.

바크락이 짙은 절망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한니발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군…….’

가당치도 않은 협박과 협상이다. 아니, 저건 그것조차 뛰어넘었다. 에단은 상대를 굴복시켰다.

불가해한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며 저항이나 반항의 의지조차 지르밟았다.

노련하며 잔뼈 굵은 상인인 한니발은 수많은 사람을 마주해 왔다. 하지만 에단 같은 자는 처음 겪었다.

‘예측할 수가 없어.’

자신이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를 떠올려 봤지만, 마땅히 에단을 저지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에단은 블란테라는 막강한 가문의 적통이었다. 블란테를 뒷배로 둔 채 힘과 권력을 휘둘렀다.

가문의 위세만 믿거나, 자신의 힘만을 과신한다면 상대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에단은 두 가지 모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상대를 휘두르는 법은 다양하다.

가족과 지인 같은 주변인들부터 압박하기 시작하면 결국 자멸하게 된다.

‘하지만 감히 누가 블란테를 노린다는 말인가.’

블란테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륙에는 블란테 외에도 언급되는 수많은 세력들이 있었다.

대륙에 존재하는 검술 명가는 블란테뿐만이 아니었고, 굴지의 마법 가문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가문도.’

블란테의 아성을 넘을 수는 없다.

한니발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블란테는 오랜 기간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블란테의 힘과 세력이 축소된 것은 아니다.

블란테라는 검은 사자가 몸을 일으키면 대륙에는 피바람이 몰아칠 터.

한니발이 침을 삼켰다.

상인으로서 그는 수많은 선택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모든 선택을 확신 끝에 해 온 것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확신했다.

‘잡아야 한다.’

에단이라는 줄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줄이었다. 레빌린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렬한 확신을 느꼈다.

에단이 싸늘한 눈으로 퉁카와 바크락을 번갈아 바라봤다.

“일단 범죄자 녀석들을 모아 놔야겠네.”

에단의 눈이 번들거렸다.

* * *

순식간에 열 구가 넘는 시신이 만들어지며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렉사르가 쓴 사자탈의 군데군데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넝마가 된 시체들을 바라보던 렉사르가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레 여러 기운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곧장 몸을 움직여 그곳에 도달한 렉사르가 멈칫했다.

‘……뭐지?’

집채만 한 광석이 갑자기 등장한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대뜸 나타난 짧은 팔과 다리를 지니고 있는 이들은 뭐란 말인가.

게다가 헨리와 휴고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자탈을 발견한 헨리가 손을 흔들었지만, 렉사르는 곧장 질문을 던졌다.

“설명해라.”

“어…….”

렉사르의 질문에 헨리의 말이 흐려졌다.

‘이걸 뭐라고 대답하지?’

헨리가 고개를 돌려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 씨, 대답해 줘요.”

“어…….”

휴고도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전의 상황들을 어떻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단 말인가.

‘……심지어 약간 껄끄러운데.’

휴고와 렉사르의 관계는 친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휴고가 우물쭈물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그건 아닌데…… 여차저차해서 땅속에서 저분들을 만났다가 끌고 올라왔다고 할까요?”

“…….”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렉사르가 말을 잃었다. 상황 설명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답이었다.

그 순간 기류가 바뀌었다.

에단이 사라지자 드워프들이 저항의 기세를 내비치기 시작했고, 렉사르는 불순한 감정을 빠르게 감지한 것이다.

렉사르가 으르렁거리듯 휴고를 향해 물었다.

“풀어 줘도 되는 건 아니겠지?”

“어…… 넵.”

“좋아.”

“아, 근데 죽여도 안 될걸요?”

“……알겠다.”

휴고와 렉사르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드워프의 굵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이야!”

드워프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휴고와 렉사르가 움직였다.

쾅!

렉사르가 드워프 하나의 머리통을 움켜쥔 채 바닥에 처박았다.

퍽!

휴고는 드워프의 머리를 걷어찼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퍼억! 뻐억! 빠악!

살벌한 타격음과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휴고의 공세는 끊어지지 않았고, 공중에 떠오른 드워프는 바닥에 떨어지지 못한 채 들썩였다.

렉사르가 말없이 휴고를 지켜보고 있었다.

“……죽이면 안 되는 것 아니었나?”

“안 죽어요. 제가 많이 맞아 봐서 압니다.”

그간의 분풀이를 하듯 휴고는 경쾌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드워프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마, 막아!”

남은 드워프들이 달려들자 고개를 돌린 휴고의 노란 동공이 빛을 발했다.

휘릭!

휴고가 몸을 회전시키며 달려드는 드워프를 걷어차자 렉사르도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드워프들의 제압이 끝났고, 헨리가 드워프들을 철저히 묶었다.

렉사르는 말없이 제압당한 드워프들을 바라보다가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적잖은 시선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드워프들, 거대한 광석, 그들을 거친 손속으로 순식간에 제압한 휴고와 렉사르.

이목이 집중되고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소란을 접한 단원들도 휴고와 렉사르에게 뛰어왔다.

“무슨 일 있으셨던 겁니까?”

그 대답은 다른 이에게 나왔다.

“어. 있었어.”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에단이 퉁카와 바크락을 양손으로 들어 올린 채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 된 게 생각하는 게 그렇게 똑같지?”

“…….”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크락과 묶여 있는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바크락은 말이 없었다.

“헨리, 이 둘도 꽁꽁 묶어 놔.”

마치 짐짝을 취급하듯 퉁카와 바크락을 툭툭 던졌다. 짜리몽땅한 드워프 둘이 바닥을 굴렀다.

“바, 바크락 님!”

“퉁카 님!”

드워프들의 탄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에단을 향한 원망은 없었다. 이미 드워프들에게 에단은 악마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퉁카와 바크락을 묶었다.

“자, 이제 얘네를 어떻게 할까?”

에단이 한니발을 향해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니발이 에단의 귓가에 속삭였다.

“노예로 팔아 버리는 건 어떨까요?”

“그거 괜찮네.”

대화는 듣지 못했지만 입꼬리를 올리는 에단의 모습에 불길함이 강하게 치밀었다.

드워프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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