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81화 (181/398)

◈ [181화] 소문

전쟁은 허무하리만큼 싱겁게 끝났다. 일반 시민들이나 병사들은 기뻐했지만, 용병들은 기뻐할 수 없었다.

장기전을 원하는 이는 없었으나, 이러한 결과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전쟁이란 것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폐하지만, 전쟁에 참전한 용병들에게는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 의뢰금을 포함해 많은 돈을 끌어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모두 박탈당했다. 난데없이 등장한 새로운 용병단의 등장 때문이다.

마치 공성 병기 같은 거대한 일격을 막아 내고,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화살과 방벽을 순식간에 지워낸 위용.

그 일은 본래 에단의 계획과는 조금 달랐다. 개개인의 무력을 증명시키며 용병단의 이름을 알릴 생각이었던 의도와는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많은 이들은 에단을 보지 못했다. 주먹 용병단이 거대한 덩치로 에단의 모습을 가렸기 때문이다.

바라보던 입장에서는 용병단 전체의 역량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위용은 정말이지 탄성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모든 이들을 순순히 물러서게 만들지는 못했다.

‘여기서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용병들은 돈의 망자였다. 돈이라는 목적 하나로 뭉치는 것이 바로 용병의 본질이다.

대다수의 용병들은 싸우지도 않고 얻은 의뢰금으로 만족하며 물러섰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기 마련.

‘그딴 푼돈만 가지고 돌아가라고?’

용납할 수 없었다. 용병단이 도적단으로 돌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처벌의 수위가 높을 것이 불 보듯 빤한 일. 하여 병사들이나 지휘관의 눈에 띄지 않고 움직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이 맞는 용병들을 구하기는 쉬웠다. 본래 전쟁을 준비하는 이들은 큰 한탕을 노리기 때문이었다.

‘상단 호위나 고블린 따위를 잡으면서 용병질을 연명할 생각은 없어.’

그들의 눈이 욕심으로 번들거렸다. 지금이 기회였다. 많은 혼란이 있을 때, 최대한 빠르게 털 생각이었다.

방벽은 무너졌고, 너무 빠르게 끝난 영지전 때문에 아직 혼란이 가시지 않았다.

잠입하기에는 적기라 판단한 얼굴을 가린 용병들이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들어가서 저문 후에 나간다.’

그들의 계획은 무모했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곳에 누구보다 구린내를 잘 맡는 이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어디 가는 중이지?”

소름 끼치도록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쇠가 부딪치는 것 같은 거친 음성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그들처럼 얼굴을 가린 남자가 있었다.

“……뭐야?”

용병들의 입에서 황당함이 새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슨 서커스 하냐?”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남자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한 표정으로 혀를 내민 귀여운 사자탈.

위협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몇몇 이들은 주먹 용병단과 함께 지나가는 사자탈의 모습을 봤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있는 용병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용병들의 입에서 조소가 흘러나왔다.

“미안하지만 지금 큰 소란을 일으키면 안 되거든.”

말을 꺼낸 용병을 필두로 그들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여기서 렉사르가 큰 소리 한 번만 내어도 수많은 병사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큭큭.”

렉사르의 입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용병들의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귀여운 사자탈에서 짐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괴리감이 치밀었다.

“정말 운이 좋군.”

렉사르의 시선이 용병들을 관통하자 용병들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소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했지?”

절그럭.

렉사르의 품에서 날붙이가 나왔다. 그의 무기에는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있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어.”

렉사르의 목소리에서 짙은 웃음기가 묻어 나왔다.

“제, 제길!”

그 순간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 용병 하나가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한시라도 바삐 몸을 빼야 했다.

쐐액!

렉사르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투척하자, 출수된 검이 몸을 돌린 용병의 목덜미에 꽂혔다.

푸욱.

목덜미에 단검이 꽂힌 용병의 목에서 피가 울컥거리며 새어 나왔다.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렉사르의 섬뜩한 음성에 용병들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 * *

드워프가 뚫어 둔 지하 갱도.

그곳의 분위기는 에단이 휘어잡았다.

“어디서 같잖은 협박질이야?”

에단은 협박이 통할 인물이 아니었다. 에단이 거대한 마석을 향해 걸어 나갔다.

“자, 잠깐!”

퉁카가 간절한 목소리로 에단을 붙잡았지만, 에단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힘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야! 뭣들 하는 거냐! 저놈을 막지 않고!”

퉁카가 처절하게 소리쳤지만 헨리가 행한 속박을 풀 수 없었다.

에단이 광산의 벽면에 손을 얹었다.

‘확실히 많긴 하네.’

매립되어 있는 마석의 힘이 느껴진다. 막대한 양이다.

‘그래 봤자.’

에단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양의 마나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쿠구구구구.

에단이 마나를 흡수하려 들자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갱도의 천장에서 흙가루가 떨어진다.

“다, 당장 멈춰!”

퉁카가 소리쳤다. 에단이 퉁카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에단이 퉁카의 목소리를 무시하자 그의 목소리가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부, 부디 멈춰 주십시오! 말하겠습니다! 전부 다 말하겠습니다!”

그 순간 에단이 벽을 짚은 손을 뗐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퉁카를 바라봤다.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으면 좋잖아. 서로 기분도 상하지 않고 말이야.”

순식간에 돌변하는 태도에 퉁카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에단을 바라봤다.

‘……당했군.’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저 남자에게 완전히 휘둘리고 말았다.

퉁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후우, 먼저 이것부터 풀어 주시오.”

퉁카의 말에 에단이 눈살을 좁혔다.

“어째 말이 또 짧아졌다?”

“……풀어 주십시오.”

에단이 시선을 주자 고개를 끄덕인 헨리가 식물을 불러들였다.

“뭐 하냐?”

“네? 방금 풀어 주라고…….”

“얘만 풀라고. 머리가 그리 안 돌아가?”

“아…….”

헨리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다른 드워프들의 몸을 묶었다.

“죄송합니다.”

“정신 차려라.”

퉁카는 말없이 에단을 응시했다. 에단에게서는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의자.”

에단이 말하자 헨리가 입술을 삐쭉 내밀더니 순식간에 의자를 하나 만들었다.

에단이 의자 위에 걸터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어디 한번 말해 봐.”

만들어진 의자는 하나였다. 퉁카가 고개를 돌려 헨리를 바라봤다.

“……의자는 하나뿐입니까?”

“꼬우면 바닥에 앉든가.”

에단이 턱짓을 하며 말하자 퉁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도 이런 짓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족 붙이지 말고 본론만.”

“……저희 일족은 타 종족과 많은 교류를 하지 않습니다.”

에단의 이마에 주름이 생기자 퉁카는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겁니다. 저희는 다른 종족들을 기피하는 성향 탓에 광산 속에 조용히 지냈습니다. 별다른 욕심 없이 망치나 두드리며 살아가는 게 저희 인생의 낙이라고…….”

“야.”

“네?”

“진짜 뒈질래?”

에단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내가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했지. 뭐? 욕심이 없어?”

에단이 퉁카를 노려봤다. 에단의 눈을 바라보던 퉁카가 순식간에 시선을 내리깔았다.

“한 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여 봐. 여기 있는 놈들 죄다 죽는 거야.”

살벌한 경고에 다른 드워프들이 몸을 떨었다. 퉁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알겠습니다. 저희 부족이 많은 교류를 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자가 있습니다.”

“말 질질 끌지 말고.”

“……드래곤입니다.”

퉁카가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순간 에단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드래곤이라.’

이건 예상외였다.

대화를 듣고 있던 헨리과 휴고도 적잖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드래곤이었다.

에단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드워프를 바라보자 퉁카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드래곤이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저런 태도를 보인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드워프들에게 있어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에단이 턱을 매만지며 퉁카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 드래곤이 이번 일과 무슨 연관이 있는데?”

“그분께서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저 마석들이 인간들 손에 넘어가면 문이 열리며 끔찍한 재앙이 벌어질 것이라고.”

‘이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은데.’

확실히 그랬다면 납득할 수 있었다. 드래곤에 관해서는 에단도 떡밥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알진 못했다.

‘일단 틀린 말은 아니고.’

인간들 손에 넘어갔을 때 재앙이 벌어지는 것은 맞았다. 당장 한니발만 보아도 겁 없이 지하의 문을 열어젖히려고 했으니.

‘그럼 모든 게 끝이지.’

아무리 에단이 많은 힘을 키운 상태라고 한들 지금 문이 열리면 대항이 불가능했다.

원작에서 몇 차례 언급된 지하 것들의 힘은 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에단이 물끄러미 퉁카를 응시하자 퉁카가 반색했다.

“이제 저희의 입장도 이해가 되시는…….”

“걔는 어디 있냐?”

“……네?”

“그 도마뱀 새끼 어디 있냐고.”

퉁카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에단을 바라봤다.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드래곤은 드워프들에게 있어 초월적인 존재였다. 드래곤이 바라만 봐도 그들은 바짝 엎드린 채 벌벌 떨어 댔다.

그런 막강한 존재에게 하는 말이.

‘도, 도마뱀 새끼……?’

귀가 의심된 퉁카의 동공이 거칠게 떨렸다. 제정신이 아닌 자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미쳐 있을 줄은 몰랐다.

반면 에단의 기색은 태연했다. 에단은 드래곤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뜻밖의 수확인데.’

이건 정말 예측 못 했다.

앞으로 있을 일들을 떠올린 에단의 입꼬리가 휘었다.

“그럼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하겠는데? 헨리.”

“넵.”

에단의 부름에 멍하게 있던 헨리가 대답했다. 많은 경험을 했던 헨리에게도 에단의 대화는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여기 있는 마석 전부 퍼서 올려. 우리도 같이.”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닌가요?”

“빚 잊었냐?”

“…….”

할 말을 잃은 헨리가 입을 꾹 다문 채 손을 들자 지각이 크게 흔들렸다.

“지, 지금 무슨 짓을…….”

퉁카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떠듬거리며 말했다.

쿠구구구구.

흔들리는 지각변동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엄청난 크기의 마석이 그대로 뽑혀 나오며 그와 동시에 갱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

입을 떡 벌리며 멍하니 마석을 바라보던 퉁카의 눈에 한 줄기 빛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이런 지하 깊숙한 곳에 빛이라니.

시선을 올리자 천장에 커다란 구멍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생긴 것이 보였다.

이윽고 여전히 턱이 빠져라 입 벌리고 있던 퉁카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한데 모여 위로 솟구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