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드워프의 목적
영주의 응접실.
마련된 의자에 에단이 걸터앉았다.
“자, 이제 본격적인 대화를 나눠 볼까?”
에단의 앞에는 팔론과 바크락이 있었다.
“먼저 선처에 감사드리겠습니다.”
“됐어. 나도 죄 없는 애들 죽이는 걸 즐길 만큼 쓰레기는 아니라서. 그리고 우리는 서로 목적이 있잖아?”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해 봐.”
“당신은 누구시죠?”
팔론의 질문은 이상하지 않았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상대 영주가 앉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데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에단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용병 겸 영주 대리인. 내 말이 곧 영주의 말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에단의 보여 준 압도적인 위압감과 기세는 사실이었다.
팔론이 한숨을 내쉬고는 에단을 향해 물어 왔다.
“정말 이 아래에 무언가가 매장되어 있습니까?”
“어, 맞아.”
에단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에단의 대답에 바크락이 테이블을 쾅 치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너희가 무슨 짓을 벌이는지 알고 있나?!”
“시끄러.”
에단이 싸늘한 표정으로 바크락을 노려봤다.
“지금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선처는 내가 하고 있는 거야.”
“…….”
할 말이 없어진 바크락이 침묵하자, 에단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너희야말로 솔직해지자고. 밑에 있는 마석, 너희가 욕심내고 있는 것 아니야?”
“……!”
순간 바크락의 눈이 흔들렸다. 에단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정곡을 찔렸나 보네. 내가 드워프들에 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욕심이 더럽게 많은 새끼들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거든.”
“그게 무슨 모욕적인……!”
“입 다물어. 아직 내 말은 다 안 끝났어.”
에단이 상체를 기울이며 팔론을 응시했다.
“드워프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한번 읊어 봐.”
팔론이 에단과 바크락을 번갈아 바라봤다.
“쟤는 신경 끄고. 목숨 줄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잊지 마.”
에단의 눈은 깊고 고요했다. 이미 선택지는 하나였다.
“……저희는 원래 항복하려 했습니다.”
“영주!”
쾅!
바크락이 소리치자 에단이 테이블을 걷어찼다. 에단의 눈빛은 흉흉했다.
“한 번만 더 주둥이를 열어 봐. 그대로 찢어 줄 테니까.”
에단의 몸에서 막대한 기세가 피어오르자 바크락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에단이 다시 의자에 걸터앉았다.
“계속 말해.”
“……후우.”
팔론이 돌처럼 굳은 얼굴로 숨을 가다듬었다. 팔론이 바크락과의 조우를 설명했다.
“흐음.”
에단이 바크락과 팔론을 번갈아 바라봤다.
‘얼추 맞는 소리긴 하군.’
에단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마석은 결국 한니발의 손에 들어갔을 테고, 바크락의 말대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걸리는 것은.’
그 사실을 바크락이 어째서 알고 있냐는 것이다. 드워프는 광산이나 땅속에 숨어 지내는 녀석들이다.
‘마석의 위치는 먼저 발견했다고 쳐도…….’
가능성은 충분했다. 광물을 탐지하는 것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게 바로 드워프였으니까.
‘미래의 일까지 꿰고 있다고?’
한니발이 마석을 차지하고, 통로를 열려고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에단은 물끄러미 바크락을 응시했다.
“우리가 저걸로 뭘 할 줄 알고?”
“……저 불온한 광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정해져 있지 않나.”
바크락의 말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개소리는 그만 지껄이지. 너도 알고 있잖아? 마석으로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쯤은.”
마석은 죽은 마나를 품고 있는 보석이며 광물이다. 사용법은 다양했다. 레벨린도 마석을 이용해 수많은 밑 작업을 해 왔다.
‘더군다나 드워프들이라면 더 말이 안 되지.’
기운을 내포하고 있는 마석의 가치를 모를 리가 없었다.
‘당장 나에게는 별다른 쓸모가 없지만.’
가지고 있는 마나는 이미 차고 넘쳤다. 적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에단에게는 별다른 가치가 없는 물건이다.
‘돈은 꽤 되겠지만.’
에단에게 있어 돈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
에단의 말에 바크락이 침묵했다. 이미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그것뿐이 아니란 말이야. 제 목숨을 누구보다 아끼는 것들이 끝까지 맞서려고 했던 것도 이해가…….”
잠깐.
에단의 표정이 바뀌었다. 무언가가 거슬렸다.
‘……설마.’
에단이 지면 쪽을 향해 기감을 넓게 펼쳤다.
꿈틀.
죽은 마나가 마석에 반응한다. 매립되어 있는 막대한 마석이 느껴진다. 그런데 느껴지는 기운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 앙큼한 새끼들이.’
에단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에단이 바크락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바크락이 버둥거렸지만 에단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새끼들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네?”
드워프들은 이미 마석을 채굴하고 있었다.
* * *
에단은 바크락을 구금하고는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에단의 앞에 한니발이 나타났다.
“에단 님, 전과는 전해 들었…….”
“잡소리 그만하고 영주실 가서 영주랑 면담이나 하고 있어. 네 특기잖아.”
“네?”
에단이 한니발을 뒤로한 채 발을 옮겼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휴고와 헨리가 에단의 눈에 포착되었다.
에단이 뒷덜미를 움켜쥐자 휴고가 화들짝 놀라며 바라봤다.
“너희들 땅 좀 파자.”
에단은 휴고에게 간략하게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저더러 냄새를 맡으라는 건가요?”
휴고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 시간 없으니까 빨리 변하기나 해.”
“제가 개도 아니고…….”
“혀가 길다?”
에단의 표정이 매서워지자 휴고가 찌그러졌다.
“……하아.”
복잡한 심경이 섞인 한숨 소리와 동시에 휴고의 주둥이가 길어지며 골격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절반쯤 야수화가 된 휴고가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가 날 리가…….”
휴고가 말끝을 흐리며 어디론가 이동했다.
“……나네?”
휴고의 얼굴에서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에단이 히죽 웃었다.
“냄새나는 곳 위로 정확히 안내해 봐.”
에단도 기감을 끌어 올렸지만, 워낙 깊은 곳에 매장되어 있는 마석의 특성 탓에 정확한 위치는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약간 누린내 같은 게 나는 쪽으로 가면 되는 건가요?”
“정확해.”
휴고가 네발로 기면서 어디론가 움직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헨리가 착잡한 표정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 씨.’
네 발로 움직이며 냄새를 맡고 있는 휴고를 보자니 안쓰러웠다.
“이쪽인 것 같습니다!”
“잘했어.”
휴고가 헥헥 거리며 위치를 특정하자, 에단이 휴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휴고는 자기도 모르게 에단의 손에 머리를 비비다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형용할 수 없는 자괴감이 느껴졌다.
“자, 헨리.”
“넵.”
“땅 파.”
“……네.”
헨리가 지면에 손을 가져다 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지가 울컥거리며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쭉 내려가면 되나요?”
“어. 쭉 내려가.”
에단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도둑질하는 새끼들 잡아야지.”
* * *
깡! 깡!
사정없는 곡괭이질에 마석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드워프들의 곡괭이질은 예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리듬과 힘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거대한 마석 덩어리를 두드렸다.
마석 채광을 맡은 드워프 퉁카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나 큰 마석을 볼 줄이야.”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석은 마나를 내포하고 있는 광물이다. 힘을 지니고 있다는 특성만 놓고 본다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머저리 같은 놈들은 마석의 가치를 모르고 있겠지만.’
깡! 깡! 깡!
드워프들이 쉴 새 없이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마을에 있는 대다수의 드워프들이 투입된 상황이다.
매장된 마석의 양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모두 채굴하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을 것이다.
쿠구구.
그때, 천장이 흔들리며 흙가루가 떨어졌다.
“뭐지?”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에 퉁카가 인상을 찌푸렸다. 가벼운 지진이려니 싶어 무시하려던 찰나.
쿠구구구구.
진동이 더욱 거세졌다.
“저, 정지!”
퉁카가 소리쳤다. 쉼 없이 곡괭이를 휘두르던 드워프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지, 지진인가?”
“지진은 아닌 것 같은데? 천장 쪽만 움직이는 것 같던데…….”
“어떤 새끼가 굴을 이따위로 팠어?”
“개소리하지 마. 판 건 다 같이 팠잖아.”
“아, 그러네.”
“닥쳐, 머저리들아!”
신경질적으로 외친 퉁카가 천장을 바라봤다. 흐름이 심상치가 않았다.
바로 그때.
쾅!
천장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며 에단과 휴고, 헨리가 지면에 착지했다. 에단은 드워프들을 보자마자 사납게 미소 지었다.
“너희들이냐? 도굴꾼 새끼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외인에 드워프들의 몸이 얼어붙었다.
“……너희는 누구지?”
“허, 하다 하다 도둑놈들이 먼저 질문을 하고 앉았네.”
뚜둑. 뚜둑.
에단이 깍지를 끼자 손에서 섬뜩한 뼈 소리가 울려 퍼졌다.
퉁카가 에단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인간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그 정도 숫자로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퉁카의 말에 에단은 곧바로 대꾸했다.
“어, 당연하지.”
그 말을 끝으로 에단이 움직였다.
드워프들은 처절한 곡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제압당하기 시작했다.
* * *
헨리를 이용해 드워프들을 모두 묶어 둔 에단이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서 되도 않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앉았어?”
결국 이들 또한 자기들의 배를 불리려 했을 뿐이었다.
퉁카가 독기 가득한 눈초리로 에단을 노려봤다.
“너희들 따위가 이것들을 다룰 수 있을 것 같나? 분수에 맞지 않은 욕심은 독이 될 뿐…….”
“아직 덜 맞았네.”
퉁카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간 에단이 퉁카의 명치를 걷어찼다.
꾸에에에엑!
퉁카가 대굴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에단이 퉁카의 가슴팍에 발을 얹어 놓고 입을 열었다.
“그걸 왜 너희들이 판단하냐? 도둑질이나 하는 새끼들이 건방지게.”
에단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마석 하나를 움켜쥐었다.
“이걸 어떻게 다루냐고?”
확실히 에단은 마석을 완벽히 다루지 못한다.
‘딱히 쓸모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남들이 배를 불리는 꼴을 볼 생각은 또 없었다.
에단이 죽은 나무의 힘을 일으켰다.
스스스스.
마석에 담겨 있던 죽은 마나의 기운이 순식간에 에단에게로 흡수되었다. 에단이 쥐고 있던 마석을 퉁카에게 건넸다.
퉁카의 눈이 바닥을 구르는 마석을 바라봤다. 마석의 빛이 완전히 바래 있었다.
힘을 완전히 잃은 마석은 평범한 돌멩이보다도 낮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너희들 좋은 일 시켜 줄 바에는 내가 다 먹어 치우려고.”
에단이 검지를 들어 올리자, 손가락 끝에서 회색 불길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