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78화 (178/398)

◈ [178화] 영지전 (2)

“곧 공습이 시작될 겁니다.”

수행원의 말에 블로란 팔론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영지전을 공표한 이후 모든 영지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외벽 뒤에 숨어 공성전을 한다고 한들 전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결국 시간은 상대의 편이었다.

몰살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진다고 한들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위가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피해는 발생한다. 그것이 전쟁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죽음이 난무한다.

패배가 정해진 영지전이었기에 영주에 대한 원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주인 팔론은 이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에 찾아온 그들.

팔론은 그들을 떠올리며 곧 전장이 될 지역을 바라봤다.

* * *

팔론은 명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둔하지도 않았다.

지금처럼 전력의 차이가 확연하다면 대가를 받고 영지를 뜨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문이 하나 있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대영지에서 자신의 것과 같은 소영지가 뭐가 탐이나 노린단 말인가.

팔론의 영지는 작농으로 근근이 먹고사는 지역이었다.

특별한 특산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광산 따위도 없었다. 가난한 영지인 만큼 병력도 많지 않았다.

적당히 욕심 없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팔론의 삶이었다.

하여 영지를 넘겨주려고 하던 그때, 팔론에게 접근한 이가 있었다.

아무리 힘없는 영주라고 한들 팔론 또한 귀족이었다. 갑작스럽게 방문한 외부인이 접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병사들과 기사가 저지했지만 그들은 병사와 기사를 가볍게 제압하며 팔론의 앞에 섰다.

“갑자기 찾아와 소란을 피운 것은 미안하오.”

“……얘기를 하려는 걸 보면 이유가 있을 터. 용건을 말하시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그놈들의 협상에 응해서는 안 되오.”

작은 덩치의 사내들이 후드를 벗어던지며 말했다. 이내 드러난 사내들의 몸엔 돌처럼 단단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팔론은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혹시…… 드워프?”

팔론의 물음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바크락이라고 하오.”

‘정말 드워프라니…….’

세간에 꽤나 알려진 엘프들과 달리, 드워프는 정말로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이종족이었다.

실존한다는 것은 전해져 오고 있지만,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광산에 숨어 지내기에 드워프를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접촉을 시도하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는 드워프들도 인간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드워프들은 극도의 폐쇄성을 띠기 시작했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드워프의 무기를 얻기 위해, 또 드워프의 야장술을 배우기 위해서 접촉하는 이들은 꾸준히 존재했다.

하지만 드워프를 찾아다니던 이들은 모두 실패하거나 혹은 실종되었다.

그 정도 베일에 싸여 있는 드워프라는 종족이 직접 영지에 찾아왔다.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필히 중요한 일일 터. 안 그렇소?”

팔론의 물음에 바크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를 넘긴다는 소식을 들었소.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되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오. 이미 결과가 정해진 싸움에서 헛되이 죽게 만들 수 없소. 병사와 기사들도 나의 영지민이오.”

바크락 또한 전력의 차이가 크게 난다는 사실은 알고 방문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찾아온 것이오. 전력의 차이? 우리가 도와주겠소. 공성이나 수성에 있어서 우리는 무적에 가깝소.”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제안에 팔론의 눈이 커졌다. 이해가 안 되는 제안이기도 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당신들이 도대체 왜 우리를 돕는단 말이오?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소.”

“비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도 목적이 있어서 찾아왔소.”

바크락이 지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영지 아래에 매장되어 있는 것이 있소.”

“……광산이 있단 말이오?”

팔론의 목소리가 짐짓 떨렸다. 영지에 있는 광산이라니, 모든 영주가 꿈꾸던 것이 아니던가.

‘그것 때문에 이곳을 노린 것인가?’

하지만 자신도 모르던 사실을 어떻게 알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체이베르 정도 되는 대영지가 고작 개발되지 않은 광산 하나 때문에 움직인다니.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혹시 밑에 깔려 있는 게 전설의 광물 같은 거요?”

팔론의 물음에 바크락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헛소리오?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없지 않소.”

바크락의 확언에 팔론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그런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왜…….”

“전설의 광물 같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더 위험한 물건이 될 수도 있소. 그렇기에 우리가 저지하려 한 것이고.”

“도대체 그게…….”

“정상적인 광물과는 거리가 멀다, 그 정도만 알고 있어도 되오. 어차피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오.”

“…….”

황당했다. 저런 두루뭉술한 소리를 과연 믿어야 한단 말인가?

팔론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소. 이미 나는 마음을 굳혀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로는 설득되지 않으니 미안하지만 이만 돌아가 주시오.”

“후우…….”

바크락이 예상했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협력을 한다면 우리 드워프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겠소.”

“허,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니. 도대체 이 아래에 있는 게 무엇이길래 그렇소? 나는 이 영지의 주인이오. 충분한 설명이 없다면 협력할 수 없소이다.”

“……어쩔 수 없군.”

바크락이 굳은 얼굴로 영지 아래에 매장되어 있는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팔론의 얼굴이 점점 황당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지금 나더러 그 소리를 믿으란 말이오?”

“믿기지 않는 얘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소. 그렇기에 나도 꺼리던 것이고……. 하지만 이제 시간이 없소.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도 시간이 빠듯하니 부디 결정해 주시오.”

“…….”

팔론은 결국 드워프의 제안을 수락했다. 믿기지 않은 말들뿐이었지만 드워프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설령 드워프들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드워프들의 협력이라면…….’

충분히 가망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팔론은 전쟁을 준비했다.

* * *

출전이 시작되기 전 한니발이 수정구를 통해 연락을 해 왔다.

“또 무슨 용무지?”

― 장부에 있던 자들을 포함해 더 세밀하게 조사하고 정리해 뒀습니다.

“호오, 그 많은 놈들을 벌써 끝냈다고?”

― 대륙의 재화는 대부분 저를 경유합니다. 당연히 그 대상이 귀족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죠.

“그런 새끼가 이자 놀음이나 하고, 단돈 몇백 골드를 아껴?”

― 크흠! 그건 레벨린 탓에 어쩔 수 없는…….

“됐고, 병력은 어차피 네가 통제하지? 사실상 물주는 너잖아.”

― 그렇긴 합니다만…….

“좋아. 그러면 애들 죄다 후방으로 밀어 놔.”

그래야 우리들이 돋보이지.

에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병력들이 출전했다. 용병들 또한 군의 통제를 충실히 따랐다.

단원들과 일행은 후방에서 뒤따랐다. 단원들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지만, 눈빛만큼은 단단하고 매서웠다.

‘그럴 만도 하지. 단기간에 그렇게 굴렀으니까.’

사미라와 타미의 집중 훈련을 받은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로 전사가 되었다.

바뀐 건 휴고도 마찬가지였다. 휴고는 반쯤 혼이 나간 것처럼 비틀거렸다.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에단은 그야말로 무자비한 폭력을 퍼부었다. 쉼 없이 얻어맞으면서 휴고는 점차 발전해 나갔다.

반응 속도와 회피 능력이 급상승했지만, 휴고가 빨라진 만큼 에단도 속도를 올렸다.

에단의 주먹질은 날이 갈수록 교활해졌다. 마나가 실린 주먹은 정말로 내장을 파고들고 뼈를 울렸다.

휴고의 경이적인 회복 능력 탓에 금세 회복했지만, 그만큼 자주 얻어맞아야만 했다.

하여 전투를 나서기 전에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고, 부분적인 야수화로는 이성을 잃지 않게 되었다.

행렬의 뒤를 따르던 도중 지휘관이 군대를 정지시켰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홍해가 갈라지듯 인파가 갈라졌고, 단원들은 그 사이를 걸어갔다.

뚜벅뚜벅.

시선이 집중된다. 수많은 이들이 단원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쟤네는 뭐야?”

“……기사들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기사들 옷차림이 저렇다고?”

“그렇네…… 심지어 무기도 없어.”

“저 꼬맹이랑 사자탈은 또 뭐야.”

그들의 독특한 외향에 곳곳에서 황당해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장하지 않은 남자들, 그리고 그 위에 목마를 타고 있는 소녀와 혀를 내민 사자탈까지.

무엇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잠깐, 저 사람 검은 도끼 아니야?”

“……정말이네?”

사미라를 알아보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단과 휴고를 알아보는 이들도 등장했다.

“어, 저 사람 기억해. 그때 용병 길드에서 광견을 박살 낸 사람 아니야?”

“……그 사람이 저 녀석이라고?”

“어. 워낙 충격적인 장면이라서 기억하고 있어. 용병단 이름이 아마…… 주먹 용병단이었나 그럴걸?”

“……무슨 이름이 그따위야?”

“그건 나도 모르지.”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나자 반응도 달라졌다. 에단은 입꼬리를 올린 채 수많은 인파를 지나쳤다.

“쫄지 말고 즐겨.”

“…….”

에단의 말에도 단원들의 잔뜩 굳은 표정은 풀어지지가 않았다. 에단이 시선을 돌려 렉사르를 바라봤다.

다시 봐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맹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자탈 안에 잔뜩 표정을 구긴 렉사르가 있을 걸 상상하니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어느덧 긴 인파를 뚫고, 에단과 일행들이 선두에 섰다.

영지의 방벽이 보였다. 방벽 위에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보면 영지를 포기하고 달아났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한산한 광경이었다.

“진짜 도망친 거 아니야?”

“뭐야, 싱겁게.”

예상하던 상황이 벌어지지 않자, 주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단과 일행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뭔가가 있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본능에 가까운 직관이었다.

“……도련님.”

“지금은 단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그리고 나도 알고 있어.”

곧 시작이다.

투웅!

둔탁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하늘에 거대한 화살이 쏘아져 올라왔다. 어찌나 거대하던지 순간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울 정도였다.

고개가 들어 올린 사람들의 멍한 표정이 곧 당황과 절망으로 물들었다.

“……저게 뭐야?”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후우우웅!

쏘아진 화살촉의 방향이 지면으로 바뀌어 낙하했다. 느릿한 낙하로 보이지만, 그건 화살이 너무나도 거대하기에 느끼는 착각이었다.

그 화살을 피하기 위해 뛰었고, 그 탓에 병력이 분열되었다.

“헨리.”

에단이 부름에 헨리가 앞으로 나섰다.

“막아.”

“네, 대장님.”

헨리가 손을 들자, 그와 동시에 대지가 격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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