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접점 (2)
에단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파들파들.
에단의 손에 붙잡혀 있는 비둘기가 몸을 떨었다. 물끄러미 손을 지켜보던 에단이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어디 한번 얼굴이나 보러 가 볼까?”
음산한 목소리에 에단 주위에 있던 이들이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혼자 다녀올 테니까 알아서 시간 때우고 있어.”
* * *
정보 길드와 접촉을 끝낸 한니발이 저택에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고용인을 통해 시신을 정리하고 새로운 경호원들을 뽑았다.
“……곧 오겠군.”
한니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단과 접촉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전서구를 이용했다. 평범한 전서구가 아닌, 냄새를 바탕으로 대상을 찾아가는 전서구였다.
당연히 드높은 몸값을 자랑했지만, 한니발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는 돈 몇 푼보다 시간이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잠깐.’
그때, 한니발의 뇌리에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 뽑은 경호원들은 따로 정신을 조작한 이들이 아니다.
나름대로 돈을 들여 실력이 보장된 이들을 뽑았다. 어지간한 상대는 모두 제압할 수 있겠지만.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잖아.’
불길함이 느껴졌다.
한니발이 재빠르게 방을 나섰다. 미리 말을 전달해야 한다.
조만간 저택에 방문할 자가 있다고. 그래야만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었다.
쾅!
살벌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한니발이 우두커니 멈춰 서더니 마른세수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콰앙!
사람 한 명이 벽을 관통하더니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게 구멍 난 벽으로 에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뚜둑. 뚜두둑.
“환영 인사 한번 거하네?”
에단이 사나운 미소를 띤 채 다가오자 한니발이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빠른 인정과 사죄가 먼저였다. 한니발이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
에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한니발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바보같이 경호원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지 못했습니다. 제 실책입니다.”
한니발이 고개를 숙였다. 에단이 멀뚱거리며 한니발을 응시했다.
“그게 끝이야?”
“……네?”
“그게 끝이냐고.”
“제가 어떻게 해야…….”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에단이 한니발을 가리켰다.
“네가. 나를. 여기까지 불렀잖아.”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누구보고 오라 마라야?”
에단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한니발이 침을 삼키며 재차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했지만, 에단의 얼굴을 보고 포기했다.
‘아…….’
에단은 지금 즐기고 있었다. 말과 달리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한 자에게 더 말해 봤자 사족일 뿐이었다.
한니발이 빠르게 포기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에단이 한니발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뭐, 됐어. 그래서 나를 부른 이유가 뭐지? 쓸데없는 이유면…….”
흥이 식은 에단이 차게 식은 눈으로 한니발을 응시했다. 서늘한 눈초리에 한니발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이제 준비하려고 합니다.”
“영지전?”
“그렇습니다. 사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고, 타이밍만 재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 뭐, 나도 슬슬 지루하던 참이었어. 지체해서 좋을 건 없지.”
한니발이 고개를 끄덕이며 에단의 눈치를 살폈다.
“……영주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영주? 아, 여기 영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영주는 지금 한니발의 꼭두각시였다. 그렇기에 한니발이 지금까지 별 탈 없이 계획을 진행할 수 있던 것이다.
에단이 눈을 끔뻑이며 한니발을 바라봤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네?”
“알아서 해.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에단이 별 관심 없다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한니발이 눈을 끔뻑였다.
“……그래도 됩니까?”
“안 될 게 뭐가 있어?”
“아, 알겠습니다.”
한니발은 에단의 대한 생각을 수정했다. 악인은 아니었지만, 선인 또한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면 에단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행이군.’
만일 에단이 영주에게 걸린 암시를 곧장 해제하라고 명했으면 일이 귀찮아졌을 것이다.
이미 닦아 놓은 길을 놔두고 크게 돌아가는 상황은 한니발에게도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그 일은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이후인데…….”
“말해 봐.”
“블랙마켓은 언제 흡수할 계획이십니까?”
한니발의 질문에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이게 뭔 개소리야?’
블랙마켓이 왜 언급된단 말인가.
하지만 에단은 여기서 한니발에게 되묻는 멍청한 짓은 벌이지 않았다. 에단이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머리를 굴리던 에단은 이내 한니발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눈치챘다.
‘앙큼한 녀석이.’
에단이 씨익 웃었다.
“영지를 접수한 이후 우리가 거기 마석을 죄다 먹은 뒤. 그때 시작하자고.”
“……과연.”
한니발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에단의 방식이 가장 깔끔했다. 마석을 모두 채취한 뒤 채취한 마석을 바탕으로 블랙마켓과 접촉.
블랙마켓 입장에서는 물지 않을 수가 없는 미끼였다. 그리고 그 미끼를 문 순간.
‘블란테가 개입하겠군.’
그렇게 되면 상황은 정리된다. 소문이 퍼질 염려도 적었다. 장은 언제나 음지에서 열렸으니까.
최적의 기회이며 명분이었다. 자본과 인맥 무력을 모두 갖춘 상황이다.
실패할 확률이 더욱 희박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한니발의 얼굴이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에단이 상기되어 있는 한니발의 얼굴을 응시했다.
“내가 시킨 것들은 다 했어?”
“네?”
“애들 약점 잡을 만한 것들.”
“아…….”
한니발이 말끝을 흐렸다. 당연히 준비되지 않았다. 그가 느끼기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정신 나갔냐?”
에단의 살벌한 목소리에 한니발이 재빠르게 변명하려 했지만, 눈빛을 보자 변명이 쏙 들어갔다.
“죄, 죄송합니다. 금방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정리만 하지 말고 소문도 흘리고, 애들도 낚아 올리라고.”
“아, 알겠습니다……. 엮여 있는 거물들은 아마 블랙마켓에도 관심을 보일 겁니다. 그때를 노리면 충분히…….”
“자신 있어?”
에단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니발을 노려봤다. 한니발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 있습니다. 최대한 판을 키우겠습니다. 연이 닿아 있는 밀수꾼이나 노예상도 동원해서…….”
“흐음…… 믿어 보겠어.”
에단이 턱을 쓰다듬었다. 에단의 표정이 누그러진 것처럼 보이자 한니발이 겨우 안도했다.
“아, 아! 그리고 이제 다시 번거롭게 해 드리지 않기 위해서…….”
한니발이 품에서 수정구를 건넸다. 에단의 얼굴이 귀찮음으로 물들었다.
“이걸 하나 더 들고 다니라고?”
“네? 하지만…….”
“야, 이거 두 개 어떻게든 묶어 봐.”
에단이 품에서 통신구를 하나 더 꺼냈다.
한니발이 눈을 깜빡거리며 통신구를 바라봤다.
“그건 무슨…….”
“정보 길드랑 아버지. 두 군데랑 연결되어 있어.”
“정보 길드와 아버지라고 하면…….”
한니발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에단이 아버지라고 부를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다.
‘비, 빈센트?’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블란테의 주인인 빈센트가 가진 이름의 무게는 제국의 황제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비, 빈센트와 직통되는 수정구라니…….’
한니발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에단이 쥐고 있던 수정구를 툭 하고 던지자, 한니발이 화들짝 놀라며 수정구를 받아들었다.
“내일까지 만들어서 여관으로 가져와.”
“……이걸 저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안 될 게 뭐 있어?”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수정구에 수작질을 하면 내가 아니라 가문이 움직일 텐데.”
“……빠르게 처리해서 드리겠습니다.”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한니발이 굳은 얼굴로 대답하자 에단이 손을 휘적거리며 멀어졌다.
* * *
에단이 저택을 나오고 감각을 집중했다.
‘아직 거기 있으려나.’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미 에단의 감각은 마스터와 견줄 정도로 예민하다.
그 순간 낯익은 기운이 느껴졌다. 일행의 기운은 아니다. 조금 더 거칠고 사나운 기운이었다.
‘렉사르?’
에단이 눈을 감고 기감을 더욱 세밀하게 퍼트렸다. 에단이 지면을 박차고 렉사르가 있는 장소로 질주했다.
에단이 향한 장소의 끝은 여관이었다. 말없이 여관의 문을 열어젖히자, 후드를 눌러 쓴 렉사르의 모습이 보였다.
에단이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렉사르에게 다가갔다. 렉사르는 고개를 숙인 채 빵과 스튜를 먹고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피비린내에 에단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에단이 다가오자 렉사르가 고개를 돌렸다.
“오셨…….”
쾅!
에단이 그대로 렉사르의 머리를 움켜쥐고는 먹고 있던 스튜에 처박아 버렸다.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박살 났다.
렉사르의 품에서 검이 출수되었다. 향하는 장소는 명확했다. 에단의 발목을 향해 검이 그어진다.
“어쭈.”
에단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에단이 그대로 렉사르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무릎을 차올렸다.
쾅!
이번에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마나가 실린 무릎에 렉사르의 고개가 높이 튀었다.
“어딜 가려고.”
그대로 멀어지려는 렉사르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메쳤다.
콰앙!
나무로 된 바닥재가 산산조각 나며 비산했다.
“커헉!”
렉사르의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렉사르는 저항하려 들었지만, 에단이 무릎을 이용해 렉사르의 가슴팍을 제압하는 게 더 빨랐다.
“움직여 봐.”
에단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가문의 일원이라고 언제까지 자비를 베풀 필요는 없었다.
꽈드득.
에단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주먹에서 회색의 마나가 넘실거렸다. 렉사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여기서 검을 휘두르며 저항해 봤자, 저 주먹이 먼저 자신의 얼굴에 꽂힐 것이다.
‘즉사다.’
실력의 차이가 명확하다.
황당했다.
이 정도로 순식간에 제압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전까지의 에단은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왜 여기까지 기어 왔지?”
물음에 망설이는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된다 생각했지만, 에단의 실력에 충격을 받은 렉사르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꾸우욱!
에단의 무릎이 가슴팍을 압박하자 렉사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끄으으윽……! 물을 게…… 있습니다……!”
“물을 거?”
표정을 조금 푼 에단이 몸을 일으키며 렉사르의 팔을 걷어찼다.
퍽!
렉사르가 쥐고 있던 톱날 검이 여관 벽에 꽂혔다.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어디 한번 지껄여 봐. 들어는 줄게.”
에단이 주변에 굴러다니는 의자 하나를 잡고는 걸터앉았다.
에단의 광오하면서도 여유로운 태도에 렉사르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어리석었군.’
과거의 모습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커 봤자 새끼 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미 자격을 갖췄어.’
에단은 렉사르의 위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