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접점 (1)
짧은 기간이지만 에단이 직접 지도한 덕분에 단원들의 수준은 그리 낮지 않았다.
체력과 신체 능력은 손볼 것이 없다. 그것이 사미라의 평가였다.
‘어떻게 굴렸길래 몸이 이따위야?’
상의를 탈의한 단원들의 모습은 살벌했다. 그들의 근육은 비대하기만 한 것이 아닌, 날렵하고 날카로웠다.
도드라져 있는 혈관은 효율적으로 혈액을 운반했고, 심폐 능력 또한 절정에 달했다.
또한 격투술에 대한 이해도도 뛰어났다. 마나를 운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싸우면 사미라가 밀릴 정도.
‘하지만 문제는…….’
부족한 실전 경험과 맨손이라는 제약이다. 사미라는 그 점을 인지했다.
‘최소한 쓸만하게 만들려면 살상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해.’
단원들은 태생이 도적이며, 산적이었기에 살생에 있어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구를 이용했을 때다. 맨손으로 적의 목숨을 끊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훨씬 부담스럽고 피곤한 일이었기에 권장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작은 날붙이 하나만 있어도 노력의 수준이 달라지니까.
‘뭐, 까라면 까야지.’
사미라가 피식 웃었다. 갑을 관계가 명확하니 이럴 때는 속이 편했다.
사미라가 채찍을 꺼내 들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다.
촤악!
사미라가 채찍을 휘둘렀다.
땅이 한 움큼 파이며 단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버러지들.”
사미라가 사나운 미소를 머금었다.
훈련의 내용은 단순했다. 도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면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지역이 있다.
“인원수를 맞춰!”
출몰하는 몬스터의 머릿수에 맞춰 단원들이 나선다. 협공이나 협력은 허용되지 않는다. 몬스터의 수준도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진심으로 싸워야 할 거다.”
사미라의 스산한 목소리에 단원들이 몸을 벌벌 떨었다.
몬스터들은 사납게 소리 지르며 단원에게 다가왔다. 체구가 작은 몬스터들도 저마다의 무기가 있다.
몽둥이부터 시작해서 조악한 날붙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도 가지고 있다.
보통은 인간도 가지고 있는 무기로 대응하기 마련이었지만…….
단원들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다. 절망스러운 표정의 단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어, 어쩌죠?”
에단에게 배웠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당장에라도 몸을 돌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걸 허용할 사미라가 아니었다.
촤악!
거친 채찍 소리, 깊게 파인 지면.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으, 으아아아!”
코볼트에게 달려든 단원들은 에단에게 배운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프론트 킥으로 포문을 열고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직 엉성하기 그지없었고, 몬스터들의 화만 돋게 만들었다.
단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갈 길이 멀군.’
사미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 * *
하지만 생각보다 단원들의 적응은 빨랐다.
맨손으로 몬스터를 죽이는 것에도 점점 익숙해졌고, 사미라의 흉악한 채찍이 휘둘러지는 일도 드물어졌다.
‘이건 아쉽네.’
아직 종종 위협용으로 휘두르고는 있었지만, 단원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어, 왔어?”
사미라가 고개를 돌려 에단과 일행을 바라봤다. 에단은 구르고 있는 단원들을 바라보며 감탄 어린 어조로 말했다.
“오, 생각보다 잘 굴리고 있는데?”
“그럼, 내가 누군데.”
사미라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미라의 어투가 평대로 바뀌었지만, 에단은 구태여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성과만 나온다면 호칭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에단이 팔장을 낀 채 단원들을 바라봤다.
아직 어설프고 엉성했다. 곧 실전에 투입된다는 걸 생각해 보면 부족한 점이 많이 보였다.
휴고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전투 센스를 자랑했다.
‘이 녀석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에단이 타미를 흘겨봤다. 타미 또한 휴고에게 뒤지지 않는 감각과 본능을 지니고 있을 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타미의 물음에 에단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훈련. 아까 말했잖아. 쟤네가 너무 약해서 쓸모 있게 만드는 중이라고.”
에단의 대답에 타미가 물끄러미 단원들을 바라봤다.
“너무 약해.”
“나도 알아.”
타미의 말에 에단이 동조했다. 단원들은 객관적으로 약했다.
“내가 알려 줘도 돼?”
타미의 입에서 예상 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에단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타미를 바라봤다.
“의외네. 안 귀찮겠어?”
“내 부하들. 내가 관리해야 해.”
타미의 대답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휴고는 미묘한 표정으로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분들의 의견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네.’
몬스터들과 처절하게 구르고 있는 모습을 보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걱정할 때는 아니지…….’
휴고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조만간 그 끔찍한 구타를 다시 겪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찔했다.
타미가 터벅거리며 앞으로 나서자, 사미라가 눈을 끔벅이며 타미를 바라봤다.
“저 꼬맹이는 누구야?”
“얼마 전에 데려왔어.”
“……뭐, 이상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니죠?”
사미라의 말투가 경어로 바뀌며 갑작스레 경계의 기색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무슨 개소리지?”
“크흠, 비슷한 나이대의 딸이 있다 보니…….”
사미라가 멋쩍은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다비는 그녀에게 있어 친딸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비는 잘 있겠지?”
사미라의 물음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어. 네 딸도 못 믿나?”
“그럴 리가. 걔가 어디 가서 당하고만 있을 성격은 아니거든.”
“걱정할 것 없어.”
“그거 다행이군.”
사미라가 히죽 웃었다. 그녀는 다비가 어디 가서 당하고 살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저 꼬맹이는 도대체 뭐야?”
“눈썰미가 많이 죽었네.”
사미라가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사미라가 움직이려고 들었다. 위협적인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어린아이가 다가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후웅!
그때,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흘러나오는 기세에 사미라의 눈이 커졌다.
숨길 수 없는 위압감.
공기가 무거워지며 왜소한 체구의 타미가 커져 보였다.
터벅터벅.
타미가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단원들의 다리가 멈췄고, 몬스터도 움직임을 멈췄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가 타미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안녕.”
타미가 손을 흔들었다. 단원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대장님?”
“응. 너희들 생각보다 너무 약해.”
타미의 신랄한 말에 단원들이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단원들은 지금 기세에 압도되어 타미를 말린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었다.
타미가 앞으로 다가가자 몬스터들은 조금씩 주춤거렸다.
“일로 와.”
타미가 기세를 조금 죽였다. 몬스터를 제약하던 기운이 사라지자 그들은 타미를 적으로 인식했다.
키에에엑!
몬스터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매섭게 달려들었다. 타미는 물끄러미 몬스터를 지켜보다가 손을 들었다.
탁.
타미가 몽둥이를 움켜쥐었다. 손에 힘을 가하자 나무로 된 몽둥이가 힘없이 바스러졌다.
후웅!
타미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지만 들리는 파공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기가 으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몬스터의 머리가 타미의 손에 얻어맞자…….
퍼엉!
순식간에 터져 나가며 푸른 피가 비산했다. 머리가 날아간 몬스터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타미는 대수롭지 않게 똑같은 행위를 이어 나갔다.
몬스터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으나 타미는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몬스터가 뒤돌며 도망치려 하면, 타미가 달려들어 몬스터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디 가.”
후웅!
쾅!
발목을 잡고 그대로 휘두르자 몬스터가 바닥에 처박혔다. 몬스터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즉사였다.
그때부터 타미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시작됐다. 저항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타미의 힘은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열 마리 가까이 되던 몬스터가 모조리 도살당했다. 타미의 옷과 머리에 피가 덕지덕지 튀어 있었다.
타미가 고개를 돌렸다. 전과 다를 바 없는 무감각한 표정이었지만, 그 때문에 단원들은 더욱더 강한 섬뜩함을 느꼈다.
“……이렇게 하면 돼.”
타미의 말에 에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쟤들이 저걸 따라 할 수 있겠냐?”
“……못 해?”
타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대한 단순하고 간단하게 보여 줬는데 이걸 왜 따라 하지 못한단 말인가.
“말했잖아. 쟤들 생각보다 더 약하다니까.”
에단의 말에 타미가 단원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정말이야?”
단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에단에게 자주 듣던 비난이었지만, 타미에게 듣는 한마디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한편 사미라는 멍한 표정으로 타미를 바라봤다.
“……쟤는 또 뭐 하는 녀석이야?”
“처음부터 알아볼 줄 알았는데 실망인걸. 제대로 일하고 있던 거 맞아?”
“그게 무슨…….”
이해 못 할 에단의 말에 사미라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마?”
“그 설마가 아마 맞을걸.”
“아니, 쟤가 붉은 곰이라고? 듣던 거랑 너무 다른데?”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
“허.”
사미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붉은 곰이 저런 어린아이일 것이라 상상한단 말인가.
한편 타미의 모습을 지켜보던 칼센의 입도 떡 하고 벌어졌다.
‘저, 정말 사실이었어…….’
이렇게 두 눈으로 본 이상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타미의 무력은 그야말로 괴물 같았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붉은 곰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이다.
사미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 녀석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군.”
“내가 원래 흔한 걸 싫어해.”
에단이 씨익 웃었다. 슬슬 준비는 갖춰졌다. 단원들은 아직 부족했지만, 그것은 실전으로 쌓아 가면 될 부분이다.
‘애초에 승리가 확실시된 전쟁이니.’
전력 차이는 명확했다. 상대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해 봐야 수성이 전부. 전면전은 꿈도 꿀 수 없는 전력 차이다.
퍼드득.
에단이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레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에단이 날아드는 새를 순식간에 낚아챘다.
“뭐야?”
하얀 새 한 마리가 당황한 듯 눈을 끔뻑였다.
“자, 잠깐만요!”
멍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보던 칼센이 호다닥 뛰어왔다. 칼센이 새를 바라보더니 에단을 향해 말했다.
“서, 서신인 것 같습니다.”
“서신?”
칼센이 가리킨 곳을 보자 새의 다리에 종이가 묶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에단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종이를 떼어 냈다.
‘쓸데없이 판타지스럽네.’
에단이 서신을 펼쳐 훑어보기 시작했다. 유려한 글씨체였다.
[한니발입니다.]
자기소개로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본문을 대충 확인한 에단은 종이를 그대로 구겨 버렸다. 서신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허, 이 새끼가.”
기가 찼다.
지금 누구더러 오라 마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