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과욕 (1)
깨갱 깨개갱!
처절하고 애처로운 비명 소리가 울렸다.
여관 뒤편 공터에서 치른 수련이라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다가왔지만, 헨리가 입구 앞에 쳐 둔 나무들로 이목이 몰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수련이란 명목의 폭행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다. 휴고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공격 따위는 에단이 모조리 흘려 냈다.
슥, 빡!
휴고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불쌍해.”
타미가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실력의 격차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일방적인 폭력이 일어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래야만 안전했다. 실력이 비등하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에단은 템포와 타이밍을 적절히 조절하며 휴고를 타격했다.
“그, 그만…….”
휴고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에 에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말도 하네?”
“……어, 어라?”
휴고는 시선을 내려 은색 털이 수북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매가 약이네. 어째든 각성은 한 거 같으니 그만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에단은 느끼고 있었다. 휴고를 때리면 때릴수록 휴고의 반응도 기민해지고 있었다. 휴고의 몸속에 마나가 스며들고 있는 것이리라.
‘방법이 이거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에단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휴고의 성장을 위해서는 방도가 없었다. 참된 지도자란 매를 들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휴고야. 네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정말 아프구나.”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고는 에단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휴고가 섬뜩함을 느끼며 에단에게서 멀어졌다.
“어딜 가니? 아직 덜 끝났단다.”
에단이 휴고에게 달려들었다. 휴고의 곡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 * *
부르르.
휴고가 바닥에 엎어진 채 몸을 떨었다. 어느새 휴고의 야수화는 완전히 풀려 있었다.
눈을 까뒤집은 채 가늘게 경련하는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에단이 후련한 표정으로 숨을 돌렸다.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닌데.”
에단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타인을 지도하는 일은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에단이 고개를 돌렸다.
“왜? 뭐 할 말 있어?”
“……아니요.”
“……없어.”
헨리와 타미가 안타까운 눈초리로 쓰러져 있는 휴고를 바라봤다.
‘……불쌍해.’
휴고의 저항은 정말 처절했지만, 그만큼 보람은 있었다.
휴고는 성장했다.
근육과 뼛속에 마나가 각인되었다. 시간이 지나 몸이 회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내에 마나가 축적될 것이다.
타미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의 무력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다.
‘……마나 컨트롤도.’
이 방법이 위험하고 어려운 이유가 바로 마나 컨트롤이다.
너무 소량 주입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너무 많은 마나를 싣게 되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된다.
득보다도 실이 더 많게 되는 것이다.
회복하고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마나.
그런 정밀함이 요구되는 게 바로 이 수련법이었다. 하지만 에단은 무리 없이 진행했다.
수련을 빙자한 폭력인 것 같았지만, 휴고의 전신에는 양질의 마나가 퍼져 있었다.
그 사실에 타미는 적지 않게 감탄했다.
하지만 타미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에단은 가만히 휴고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몇 차례 더 해 줘야겠어.’
휴고의 한계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이 방식으로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몇 차례는 더 시도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조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수련을 빙자한 폭력은 즐거운 법이었다. 한층 상쾌해진 표정의 에단이 타미를 바라봤다.
“단원들은 뭘 하고 있는지 한번 가 볼까?”
에단의 물음에 멀뚱거리고 있던 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쾅!
광견 칼릭스가 눈을 부라렸다. 주위에 살벌한 살기가 넘실거렸다. 마치 살기가 유형화된 것 같았다.
“……지금 뭐라고 지껄였지? 다시 한번 말해 봐.”
칼릭스의 얼굴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그가 제대로 된 저항도 해 보지 못한 채 무참히 패배하게 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벌건 대낮에 벌어진 일이었고, 보는 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입이 저렴하고 소문을 부풀리는 용병들이다.
기본적으로 용병들은 가십거리를 좋아했고, 덕분에 악명 높은 금패 용병인 광견의 평판이 바닥에 처박혔다.
광견이란 이름이 유명한 이유에는 금패 용병인 그의 실력도 있지만, 잔학한 성징도 한몫 차지했다.
칼릭스의 흉흉한 살기에 그의 뒷담을 내뱉던 용병들이 침을 삼켰다. 붕대 사이로 드러난 칼릭스의 눈빛이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그, 그게 아니라…….”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용병들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칼릭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신같이 당했다고? 똑같은 경험 한번 시켜 줄게.”
칼릭스가 둘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두 용병이 저항하기 위해 힘을 썼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쾅!
둘의 머리가 거칠게 바닥에 처박히며 붉은 피가 바닥을 적셨다.
즉사였다.
뿌드득.
순식간에 두 명을 참살한 칼릭스가 이를 악물었다. 살면서 이 정도의 치욕을 받아 본 기억이 없었다.
그 누구든지 자신을 모욕하면 그 배로 되갚아 줬었다.
한데 가장 화가 치미는 것은 그 둘을 떠올릴 때면…….
덜덜.
칼릭스가 자신의 다리를 바라봤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쾅!
칼릭스가 본인의 다리를 후려쳤다. 묵직한 통증과 함께 떨림이 멈췄다.
‘……내가 두려워한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다친 건 얼굴뿐이 아니었다. 겉에 난 상처와 평판이야 복구하면 그만이다. 악명 높은 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자존심의 상처였다. 마음이 굴복하면 그건 돌이킬 수 없었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칼릭스의 눈에 짙은 살기가 맴돌았다.
* * *
블란테의 기사들은 조용히 회군하고 있었다.
회군하기 전, 잠깐 사이에 적지 않은 소란이 있었다. 렉사르가 에단에게 참패하고 에단은 다시 한번 본인의 실력을 증명했다.
이제 블란테의 기사들 중 그 누구도 에단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는 남아 있지 않았다.
기사들은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본인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단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발을 들이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렉사르의 실력도 예상 이상이었다. 렉사르는 최소 최상급의 경지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봤기 때문에 기사들은 어서 빨리 가문으로 돌아가 검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들은 기사이기 이전에 한 명의 검사이자, 전사였다. 힘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것은 카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론의 가슴에도 불꽃이 피어올랐다. 카론은 뜨겁게 달아오른 가슴을 진정한 채 길을 걷고 있었다.
기사들은 평소처럼 길에서 야영을 하며 밤을 넘겼다. 문제는 다음날에 있었다.
날이 밝으며 다시 이동을 재개하려 한 순간, 카론이 먼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렉사르는 어디 갔지?’
눈에 띄는 인물이었기에 그의 부재는 순식간에 인지되었다.
기사들이 멍한 표정으로 렉사르가 있던 장소를 바라봤지만 증발하듯 사라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카론은 포기가 빨랐다. 아무리 기를 쓰고 찾아봤자 추격할 자신이 없었다.
“……일단 가문으로 돌아가시죠.”
렉사르가 어디로 향했는지 얼추 예상이 갔다.
‘……어휴.’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때로는 빠른 인정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 * *
렉사르는 휴고에게 징표를 남겨 놨다. 그의 눈과 후각은 대상을 추적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뿌득.’
렉사르가 이를 갈았다.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두 번째는 완전한 패배였다.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확인할 것이다.’
에단에게 분노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아직 저력을 숨기고 있는 괴물이라는 것은 확실히 인지했다. 렉사르가 노리는 것은 에단이 아니었다.
‘휴고.’
그 녀석의 눈빛, 채취, 그리고 순간 변화한 팔.
털과 골격, 그리고 강철처럼 날카로운 발톱.
이것은 의심이 아닌 확신에 가까웠다. 렉사르는 자신의 확신에 못을 박기 위해 지금 달려 나가고 있었다.
타닷.
렉사르의 움직임이 더욱 기민해졌다. 그의 추적 능력은 블란테에서 따라올 이가 없었다. 렉사르의 금빛 안광이 빛을 발했다.
* * *
칼릭스가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광견이 보복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그 말이 사실이야?”
“그래.”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상황 보니까 작정하고 덤빌 생각이던데? 영지전을 앞두고 진짜 전쟁을 하려나 봐.”
“……아니, 용병단 하나로 부족해서 더 모은다고?”
“그래. 듣기로는 검은 도끼도 재낀다는데?”
“미친…… 하긴, 시기는 지금이 적절하긴 하겠네.”
“그치? 검은 도끼는 세력을 잃었으니까. 또 처벌하기도 마땅치 않잖아. 곧 영지전이 코앞인데.”
“……피바람이 불겠네. 큭큭.”
“그러니까. 좋은 구경을 하게 생겼어. 크하핫!”
용병들은 우려를 표하기보다는 즐거워했다. 그들은 늘 가십거리를 고파했다.
지금 같은 상황은 용병들에게도 드문 일이었고, 그만큼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미라는 미처 그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 나름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탓이었다.
광견은 건물 내에 있는 용병을 소집했다. 기세가 살벌한 그들은 모두가 실력을 입증한 베테랑 용병들이었다.
“내가 내건 제안은 다르지 않다. 내 보수와 영지전 때 얻는 수익의 전부다. 나눠 가지는 건 알아서 해.”
칼릭스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을 이었다.
“대신 그 두 새끼의 목은 내가 딴다. 방해하는 새끼는 죽여 버릴 테니까 명심해.”
붉게 충혈된 칼릭스의 눈빛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용병들도 시선을 회피했다. 그 정도로 칼릭스의 살기는 흉악했다.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며 후드를 눌러쓴 남자가 들어섰다. 용병들의 안광이 남자에게로 집중됐다.
“뭐야, 저 새끼는?”
“……물을 게 있어서 왔다.”
쇠가 갈리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찾아온 거야?”
“킥킥, 목소리는 또 왜 저래?”
조소와 비아냥이 남자에게로 향했다. 칼릭스는 말없이 남자를 노려봤다.
‘뭐지?’
서늘한 느낌이 목을 타고 올라온다. 후드 사이로 비치는 안광이 칼릭스에게로 향했다.
“네가 광견인가?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
렉사르가 칼릭스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용병들이 렉사르 앞을 막아섰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컥!”
렉사르가 용병 하나의 목을 움켜쥐었다. 목을 붙잡힌 용병이 버둥거렸다.
“길을, 막지, 마.”
렉사르가 씹어뱉듯 내뱉은 경고에 분위기가 냉각됐다. 용병들이 본능적으로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렉사르가 붙잡고 있던 용병을 가볍게 집어 던지자 용병의 몸이 거칠게 바닥에 처박혔다.
“……역시 말로는 못 알아듣는 건가.”
렉사르가 후드를 벗었다.
얼굴을 가득 메운 빼곡한 흉터가 드러난다. 용병들이 흠칫 놀랐다. 렉사르가 품에서 작은 톱날 검 하나를 꺼냈다.
군데군데 피딱지가 묻어 있고, 이가 나가 있는 요사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칼이었다.
“같잖은 새끼들이.”
렉사르가 차갑게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