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수련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것처럼 보이던 타미는 금세 에단 일행에게 동화되었다.
“이제 내 말에는 절대 복종해야 해.”
“아무렴요.”
헤실헤실.
줄리엔의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벌써부터 타미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뭔가 꼴 보기가 싫었다.
‘그나저나 쓰는 말투가 꽤나 고상한데.’
한니발 곁에 있어서 그런 건가? 잘은 알 수 없지만, 나이와 목소리에 비해 타미의 어휘 수준은 높아 보였다.
“버러지들아! 날이 밝았다!”
그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여관 밖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단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창백해졌다.
“……왜 그래?”
타미의 물음에 줄리엔이 음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훈련을 해야 합니다.”
“훈련?”
에단이 한 발 앞으로 나가 대신 답했다.
“얘들 수준이 어디 가서 객사하기 딱 좋아서 좀 고쳐 써야 해.”
에단의 말을 들은 타미가 단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건 그렇네.”
타미의 반응에 단원들이 서글픈 표정으로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건장한 남성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나가는 모습이 영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제일 늦는 녀석은 오늘 뒈졌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거야!”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사미라의 말에 단원들이 거칠게 뛰쳐나가자,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원들의 소란에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 시끄러운 녀석들이라니까.”
에단은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옆에 있는 휴고를 바라보았다. 휴고는 아직도 어딘가 멍청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휴고.”
“아……. 넵, 부르셨습니까?”
“우리도 이제 슬슬 시작해야지.”
“……어떤 걸 말입니까?”
“들었잖아.”
에단이 타미를 힐긋 바라봤다. 휴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제가 기억이 잘…….”
“아, 그래? 기억 못 해도 괜찮아. 기억은 내가 하고 있거든.”
“하, 하하…….”
휴고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에단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바로 나와.”
* * *
하아.
휴고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풀었다. 벌써부터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대련은 오랜만인데.’
휴고는 본인의 실력에 조금씩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취월장하는 실력. 사람들의 경탄 어린 시선을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휴고는 본인이 깨달을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에단에 비교하면 반딧불에 불과했다.
‘……비교가 안 돼.’
에단이 괴물이라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나 과거에는 이 정도까지 격차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에단의 가장 큰 강점은 기술과 노련함이었기 때문이다.
경험은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고, 기술은 노력하면 향상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체급의 격차를 느낀 것도 아니다. 전반적인 신체 능력에 있어서는 휴고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개를 들어 봐도 에단의 경지가 가늠되지 않는다.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가 않을 정도로 에단은 높은 곳에 자리해 있었다.
에단이 전투에 나설 때도 매한가지였다. 에단이 가진 힘은 과거와 차원이 달라졌다.
가망이 없는 싸움에 도전하는 것만큼 절망적인 일도 없었다. 그러나 휴고는 절망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를 위해서야.’
휴고는 갈증을 느꼈다. 휴고는 가토를 의식하고 있었다. 휴고가 성장하고 있는 사이, 가토는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토가 마나를 다루기 시작했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막대한 차이가 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휴고는 초조함을 느꼈다.
‘나는 왜 마나를 다루지 못하게 하시는 거지?’
그런 순수한 의문이 오늘로써 해소되었다. 휴고가 타미를 힐긋 바라봤다.
수인.
엘프같은 이종족보다도 더욱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 바로 수인들이었다. 휴고도 지나가면서 몇 번 주워들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내가 수인이라니.’
휴고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뭔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타미도 수인이라고 말했다. 한데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휴고의 시선에 타미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달라.’
구체적으로 어디가 다른지를 짚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과 타미는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발톱은 감출 수 있어도, 본질은 가릴 수가 없는 법이다.
‘……그렇구나.’
자신은 수인이며 야수다. 그 사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이자 휴고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에단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
‘나도 조금 집중해야겠는데.’
기류가 바뀌었다. 휴고의 눈빛이 바뀌었다. 고요한 눈 안에 날카로운 이빨이 숨어 있었다.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에단이 목을 비틀자 섬뜩한 뼈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진심으로 싸워야 효과가 있는 거잖아?”
에단이 타미를 향해 묻자 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서 많이 힘들어.”
타미가 동정하는 시선으로 힐긋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는 굳은 표정으로 에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야, 많이 컸는데?”
에단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에단이 가볍게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주의해라. 저 녀석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으면.
‘알고 있습니다.’
침묵하고 있던 페온이 입을 열었다. 에단이 시도하는 행위 자체가 높은 숙련도를 요하기 때문에 페온은 우려가 되었다.
‘미세한 컨트롤은 부탁드리겠습니다.’
― ……나도 모든 걸 조절할 수는 없어.
‘조금이면 충분합니다.’
에단이 몸에 힘을 풀었다. 승리를 위한 전투가 아니다. 이건 휴고를 성장시키고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도였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인데.’
묘한 신선함이 느껴졌다. 에단이 가볍게 스텝을 밟았다.
통통.
가벼운 움직임이다.
보폭은 좁지 않게, 팔의 위치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쯤.
에단이 자세를 갖추자 휴고도 대비를 시작했다. 호흡을 들이마신 뒤 자세를 낮췄다.
피가 달아오른다. 휴고의 눈이 목표를 포착했다.
파앙!
휴고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에단은 차가운 눈으로 휴고의 움직임을 좇았다. 섬광 같은 움직임이다.
파앙!
에단이 가볍게 뒤로 물러서며 달려드는 휴고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힘을 뺀 가벼운 일격이었음에도 휴고의 몸은 휘청거렸다.
휴고가 이를 악물었다.
이 정도쯤은 감안하고 있었다. 휴고가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자, 에단이 연속으로 휴고의 안면에 잽을 날렸다.
팡! 팡! 팡!
보이기는 가벼워 보였지만, 소리가 에단의 주먹을 따라오지 못했다.
휴고의 동체 시력은 아주 뛰어났다. 하지만 에단의 주먹을 좇을 수는 없었다. 주먹을 읽으려는 순간, 얼굴이 뜯겨 나갈 것 같은 충격이 엄습했다.
“크윽!”
휴고가 멈칫하는 순간, 에단의 눈빛이 바뀌었다. 에단이 주춤하는 휴고의 앞발을 삼켰다.
허리가 비틀리며, 숨죽이고 있던 뒷손이 튀어나온다. 휴고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에단의 주먹은 그만큼이나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이윽고 주먹이 휴고의 안면에 꽂히려던 그때, 에단이 손을 거뒀다.
“긴장 마.”
힘 조절할 테니까.
에단의 미소에 휴고의 얼굴이 굳었다. 그 또한 남자이며 기사였다. 휴고의 자존심에 생체기가 생겼다.
“후우우.”
휴고의 호흡 소리가 바뀌었다. 휴고의 움직임에 본능이 더욱 가미되었다. 그때, 에단의 손이 휴고의 시야를 가렸다.
‘슬슬 두드리면 되려나.’
달려들 타이밍을 읽기 어렵다. 그게 휴고의 장점이다. 본능에서 나오는 짐승 같은 움직임. 그것을 읽어 내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면 그만이다. 에단은 휴고의 진심을 최대한 끌어내야만 했다.
타닷!
마치 상대를 제치듯 휴고가 방향을 급격하게 전환했다. 에단의 팔을 피해 쏜살처럼 달려들었다. 휴고의 주먹이 에단의 얼굴을 향했다.
슥.
하지만 에단은 휴고의 공격을 피해 냄과 동시에 발을 걸었다.
훽!
휴고의 중심이 뒤집혔다. 공중에서 재빠르게 몸을 틀어봤지만, 에단이 손바닥이 먼저였다.
에단은 휴고의 머리를 틀어잡고 그대로 바닥에 꽂았다.
콰앙!
“커헉!”
휴고의 입이 벌어지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자기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인지가 되지 않았다. 그때, 에단의 주먹이 휴고의 복부를 후려쳤다.
뻐억!
끔찍한 통증이 타고 올라왔다.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다. 지금껏 겪어 본 적 없는, 뼈에 사무치고 뇌리에 꽂히는 격통이다.
“이런 방식인가?”
에단의 주먹에서 마나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휴고의 몸을 부수기 위한 타격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휴고의 몸속에 마나를 새기기 위한 타격이었다.
‘뭔가 재밌는데?’
에단이 씨익 웃으며 다시 타격을 이어 나갔다.
뻐억! 뻐억!
“끄으으윽!”
휴고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나왔다. 휴고가 격렬히 저항하며 에단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허억, 허억.”
“왜 그렇게 숨소리가 거칠어?”
“…….”
휴고가 원망 어린 눈초리로 에단을 노려봤다.
정말 치가 떨려 오는 고통이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고통을 감수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 고통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도련님…….”
“왜?”
“제가 생각해 보니까 조금 천천히 강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소리 그만하고.”
“…….”
휴고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타미를 바라봤다.
“타미, 얘 좀 변하게 해 봐.”
“……응. 알겠어.”
“자, 잠깐…….”
휴고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타미의 행동이 먼저였다.
타미가 곰족 특유의 야성을 끌어올리자, 휴고의 동공이 누렇게 물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짐승의 누린내가 진동했다. 골격이 뒤바뀌며 주둥이가 길어졌다.
날카로운 송곳니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사나운 야수가 에단을 포착했다.
“…….”
하지만 휴고는 에단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멀뚱거리며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주춤.
야수화한 휴고가 뒤로 물러났다. 에단이 물끄러미 휴고를 바라봤다.
“……너 뭐 하냐?”
“…….”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고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에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쩔 수 없네.”
에단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내가 먼저 가야지.”
타닷!
에단의 신형이 사라졌다.
휴고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에단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역시 감은 좋아. 짐승이라 그런가?”
휴고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쾅!
에단이 왼손으로 패링하자, 휴고의 몸이 훤히 드러났다.
“그럼 이제 제대로 해볼까?”
― ……끄응.
에단이 품으로 파고들자 휴고의 누런 눈이 흔들렸다.
퍽! 퍼버버버버벅!
현란한 바디 연타가 배에 꽂히기 시작하자 휴고의 몸이 거칠게 들썩였다.
에단의 주먹에는 마나가 넘실거렸다. 한 방, 한 방이 살벌한 일격이었다.
위험한 곳은 노리지 않았다. 적당히 힘 조절도 하고 있었다. 세세한 마나 조작만 페온에게 맡겼을 뿐이다.
“조금만 참아 봐.”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깨, 깨개개갱!
휴고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