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붉은 곰 (6)
“성인식에 대해 알고 있어?”
에단의 물음에 타미가 에단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난 성인식을 치르지 못했어.”
“그건 알고 있어. 성인식을 치렀다면 저 녀석이랑 싸울 때 그 상태로 싸우지는 않았겠지.”
에단이 멀뚱거리며 가만히 서 있는 휴고를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어?”
“글쎄? 나도 어디서 말을 주워들은 것뿐이라서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야.”
원작에서 언급되는 수인의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완벽하게 풀린 설정도 아니었다.
에단이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추 수준. 어쨌거나 지금 휴고를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북부로 넘어가야만 했다.
“나도 자세히는 알지 못해. 아빠와 마을 사람들도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 말한 게 전부였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일부에 불과해.”
“그걸로 충분해.”
“나는 늑대족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저 녀석은 성인식을 치른 줄 알았어.”
“제대로 치른 건 아니지. 애초에 저 녀석은 완전한 웨어울프도 아니야.”
“그, 그런가요?”
당혹스러워하는 휴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수인이며 늑대족이라는 것도 처음 듣는데, 심지어 제대로 된 늑대족도 아니란다.
‘……뭐지.’
충격을 넘어 실감이 가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
휴고를 힐끔 바라본 타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성인식을 치르지 않으면 완전히 변할 수 없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쟤는 완전히 변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야매로 했다고. 쟤는 천적이랑 만났었거든.”
“……정말?”
타미의 눈이 짐짓 커졌다. 살면서 천적을 조우하기는 쉽지 않았다.
“제, 제가 천적을 만났나요?”
휴고의 질문을 무시한 에단은 타미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나를 다룰 줄 알던데. 그건 어떻게 하던 거지?”
“……늑대족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설명해 줄 수 있어.”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타미가 말을 이었다.
“인간들은 마나를 어떻게 쌓아?”
타미의 질문에 에단이 고개를 돌려 휴고와 헨리를 바라봤다. 둘 다 일반적인 케이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음…….’
― 마나 수련법으로 쌓는다.
“마나 수련법으로 쌓지.”
페온의 말을 들은 에단이 답하자, 타미가 눈을 깜빡였다.
“마나 수련법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자연에 있는 마나를 통해서 마나를 쌓아. 보통은 커다란 동물들을 사냥하면서 쌓거나, 아니면 마을의 전사들이 도와줘.”
전자는 에단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에단이 궁금한 것은 후자였다.
“전사들이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지?”
“대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나를 체득하게 만들고, 마나를 몸속에 주입시켜 줘. 꽤나 많은 고통이 수반되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별로 시도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
타미의 말을 들은 에단이 침묵했다. 이야기를 듣던 휴고도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 것 같았다.
‘……잠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블란테의 마나 수련법. 일반적인 마나 수련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타미가 설명한 수인들의 수련법과 블란테의 수련법은 놀랍도록 흡사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고작 있는 차이점이 외부의 마나를 주입한다는 건가.’
에단이 생각에 잠겼다. 읽은 적이 있는 설정 같았다. 타인의 마나 주입. 그것이 안 되는 이유는 마나의 형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서로 다른 성질의 마나를 지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수인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수인은 기본적으로 특별한 수련법이 아닌, 자연의 마나를 그대로 흡수한다.
그렇기에 마나의 충돌이 없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아무리 인간이 수인의 수련법을 따온다고 한들 모든 걸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는 법이다.
‘나의 경우는.’
에단은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마나를 느꼈다.
고요하다. 그리고 깊었다.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마나의 바다가 에단의 몸속에 있었다. 에단이 이 중 다룰 수 있는 마나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내가 가진 마나는.’
근원에 가까웠다.
산 것과 죽은 것.
죽은 나무와 생명의 나무라 불리는 세계수의 힘.
‘이미 경험했어.’
르니엘과 헨리. 둘이 살아 있는 증인이었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헨리를 바라봤다.
‘가능한 건가?’
에단은 전력이 필요했다. 이제는 대비를 갖출 때였다. 곧 전쟁이 벌어진다. 에단이 준비하는 모든 것들은 그를 위한 초석이다.
‘제대로 된 성인식은 북부로 넘어갔을 때. 그때는 늦어. 대비를 해야 한다.’
에단의 형형한 눈빛을 바라본 휴고가 불안감에 짐짓 몸을 떨었다.
‘……왜 또 저런 눈빛으로 보시는 거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에단이 저런 표정을 지으면 보통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페온은 무언가 알고 있겠지.’
하지만 지금도 페온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과연 무엇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꺼림칙함이 느껴졌다. 지금 추궁한다고 한들 페온은 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에단이 표정을 풀고 다시 타미를 바라봤다.
“많은 도움이 됐군.”
“……이제 끝이야?”
“그래. 충분한 대답을 들었어. 정신없을 텐데 고생 많았다.”
“……나 이제 쓸모없어?”
타미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에단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타미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또 혼자야?”
에단이 고개를 돌려 휴고와 헨리를 바라봤다. 휴고와 헨리 모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에단이 한숨을 내쉬며 쪼그려 앉았다. 에단이 타미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니,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그 정도로 쓰레기 새끼는 아니거든?”
“…….”
“그러고 보니 너는 용병단이잖아? 단원들은…… 뭐, 표정을 보니 정상적인 새끼들은 아니었나 보네.”
하기사 타미의 상태를 보면 제대로 된 단원들로 용병단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조금 이상한 놈들이지만, 네 수하를 자칭하는 녀석들은 있어.”
“……?”
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에단이 고개를 돌려 휴고를 바라봤다.
“애들 소집해.”
“아, 넵.”
휴고가 문밖으로 나간 직후, 쿵쿵거리며 건물이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쾅!
문이 벌컥 열리며 단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단원들의 입가에는 여전히 기괴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부, 부르셔서 찾아왔습니다.”
“많이 컸다?”
“네?”
“윗사람이 두 명이나 있는데 그딴 식으로 문을 열어젖히고. 이야, 경첩 헐거워진 거 봐라. 고막 나가는 줄 알았네.”
“어, 어…….”
“얼씨구. 이제 사과도 안 해? 이 새끼 정신 못 차렸네.”
쾅!
줄리엔이 재빠르게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죄송합니다!”
“그래. 알면 됐고. 나 말고 얘한테 인사나 해.”
줄리엔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에단의 옆에 처음 보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분은……?”
“설마 못 알아보지는 않겠지?”
에단의 눈빛이 매서워지자 줄리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소.”
줄리엔은 곧장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머릿속으로 저 소녀가 누구인지 격렬히 생각했다. 고심하던 줄리엔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따님……?”
에단의 미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본 줄리엔이 곧바로 다시 머리를 박았다.
에단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전해 무슨 일을 했지?”
“약탈……을 했죠.”
“그래. 그때 그 개 같은 이름은?”
“……곰 발?”
“누구의 사주를 받고?”
“……붉은 곰입죠.”
“그럼 얘는 누구일까? 이렇게 떠먹여 줬는데도 모르면 그냥 나가 죽어라.”
“설마…….”
줄리엔의 얼굴이 짙은 충격으로 물들었다.
“저 꼬맹, 아니, 저분이 붉은 곰……이신가요?”
“어. 알면 빨리 받들어 모셔.”
“허억!”
줄리엔이 헛숨을 들이켰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간 명령을 하달했던 붉은 곰은 줄리엔보다 거대한 풍채를 지닌 우락부락한 사내였다.
그야말로 붉은 곰이라는 명칭이 어울리는 자였기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소녀는 아무리 봐도 용병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10대 초반의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붉은 곰과 연관 있어 보이는 것이라고는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칼뿐이었다.
“노, 농담이시죠?”
“농담 같냐?”
“…….”
줄리엔이 입을 다물고 타미를 바라봤다. 타미는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줄리엔과 단원들을 바라봤다.
타미가 입을 열었다.
“……누구?”
“있어. 붉은 곰 따라 하던 놈들. 네가 정신적 지주니까 받들어 모실 거야.”
“…….”
타미가 멀뚱거리며 줄리엔을 바라봤다. 줄리엔은 저 소녀가 붉은 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쟤 표정 보니까 아직도 안 믿나 본데? 한번 보여 줘 봐.”
“뭐를?”
“뭐, 없나? 흠…….”
에단이 자신의 허리춤에 착검되어 있던 단검 한 자루를 건넸다.
“이걸로 보여 줘 봐.”
에단이 타미에게 단검을 건네자, 줄리엔이 걱정스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어린아이에게 날붙이는 조금…….”
끼기기긱.
단검이 종이짝처럼 구부려졌다. 줄리엔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저, 저, 저게 무슨…….”
타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타미의 눈이 일순 붉게 물들자, 사나운 기세가 방 안에 맴돌았다.
콰직.
그와 동시에 공처럼 뭉쳐졌던 단검이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줄리엔이 멍청한 표정으로 쇳가루를 응시했다.
“이제 믿겠어?”
“……네.”
줄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모습을 보고도 믿지 않으면 머저리였다.
“그럼 줄리엔은 이제 대장직 내려놓고 얘 시켜. 아, 얘 이름은 타미거든? 말 안 들으면 이것처럼 될 거야.”
에단이 턱짓으로 쇳가루를 가리키며 말하자, 단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 대장은 에단 님 아니었습니까……?”
“아직까진 그렇지. 그런데 내가 언제까지 너희들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잖아. 원래라면 너보고 계속 맡으라고 하려 했는데. 내부에서도 반발이 꽤나 많은 거 같길래.”
에단이 다른 단원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자, 곧바로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맞습니다. 전 두목님보다 타미 님이 대장을 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능력으로나 외관으로나, 전혀 비교가 안 됩니다. 두목님은 리더의 자격이 없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애초에 ‘곰 발’이라는 이름 자체가 붉은 곰에서 따온 것 아닙니까? 당연히 원조를 따라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줄리엔이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단원들을 바라봤다.
“너, 너희들이 어떻게…….”
“뭐가 말입니까.”
“할 말 있으면 해 보십쇼.”
“전부터 짜증 났습니다.”
“양심이 있으면 곱게 내려놓으십쇼. 어차피 거부해 봤자 저 꼴이 될 텐데.”
단원 중 하나가 가루가 된 단검을 가리키자 줄리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희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그날 줄리엔은 두목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