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붉은 곰 (4)
에단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동시에 타미가 눈을 떴다.
그 탓에 휴고와 헨리, 그리고 에단의 시선이 동시에 타미에게로 향했다.
“……어디? 여긴.”
타미의 멍한 모습을 본 에단은 흥미로운 듯 바라봤고, 휴고와 헨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어떻게든 해 보라는 듯 눈빛을 나눴다.
하지만 그 둘 또한 이런 상황에 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당혹스러워하는 중이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이는 헨리였다.
“큼, 크흠! 저희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랍니다! 헤헤.”
헨리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가려 하자, 타미의 몸이 움찔거렸다. 타미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 같은데요…….’
휴고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경험이 없는 자기가 봐도 저건 아닌 것 같았다.
“큼! 크흠! 저기…….”
휴고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가서려 하자, 타미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오, 오지 마.”
“…….”
곧바로 찌그러지는 휴고의 모습에 헨리가 비웃음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 둘이 하던 짓을 빤히 지켜보던 에단이 혀를 찼다. 휴고와 헨리는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에단을 노려봤다.
‘아무리 에단 님이라도 다르지 않을걸요!’
‘도련님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둘은 에단이 언제나 거칠게 일을 해결해 왔기 때문에 그 역시 아이를 다루는 법을 모르리라 확신했다.
둘의 생각이 어떻든 에단은 타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오지 말라고!”
타미가 본능적으로 목소리에 피어를 실어 소리치자, 중압감이 방 안을 휩쓸었다.
하지만 에단도 지지 않고 마나와 피어를 동시에 끌어 올렸고, 타미의 기세는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타미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기운이 제압되자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에단 님!’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소녀인데 어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은 휴고와 헨리도 매한가지였다.
두 사람이 안절부절못하며 에단을 바라봤다. 타미에게 다가간 에단이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했다.
“그동안 고생했다.”
에단이 타미를 향해 말했다.
에단은 타미의 과거를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책 몇 페이지에 담긴 내용이 전부였지만, 타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상처였을 과거다.
천애 고아로 살아온 에단, 아니, 류태신은 감히 이해하기 어려운 과거였다.
섣부른 위로나 감정에도 없는 말을 읊을 생각은 없었다. 에단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미를 데려온 것뿐이다.
감정을 꿰뚫는 아이의 눈이 에단에게로 향했다. 에단이 한참 동안 타미와 눈을 마주하다 입을 열었다.
“이름은?”
“……타미.”
타미가 대답했다. 헨리와 휴고가 입을 벌렸다.
‘……저게 먹힌다고?’
‘말도 안 돼…….’
에단이 타미를 바라보다 작게 미소 지었다.
“대답해 줘서 고맙다. 지금 급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아도 돼. 생각이 정리되면 그때 말해 줘.”
“…….”
타미가 입을 다물었다. 에단을 바라보던 타미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타미가 축축이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꿈은 아니지?”
많은 의미를 내포한 물음이었다. 에단은 씁쓸한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타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많은 기억이 뒤엉켰다.
레벨린에게 조종당하며 자신의 의사와 다른 행동을 했을 때의 기억도 타미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간 그녀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타미는 덜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자신이 가진 이 힘으로 죄 없는 이들을 상처 입히고 말았다.
그 사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타미는 아직 가족을 잃은 충격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였다.
에단이 그런 타미를 말없이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뭐라도 먹겠어?”
헨리와 휴고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에단을 바라봤다. 지금 저게 울고 있는 아이에게 할 말이란 말인가?
“……응.”
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와 휴고가 다시 한번 당황했다. 하나같이 예상 밖이었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봤다.
“뭐 하냐?”
“네?”
“먹을 거 가져오라고.”
“아…….”
휴고와 헨리가 서로를 바라봤다. 묘하게 서로 눈치를 보자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둘 다 다녀와.”
“넵.”
휴고와 헨리가 곧바로 방을 나섰다. 방 안에는 타미와 에단이 남았다.
조용해진 방 안에 자그마한 타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
아이이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에단이 피식 웃으며 타미를 바라봤다.
“글쎄?”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자신은 어떤 사람일까. 에단은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에단은 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다. 거기에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류태신일 때도, 에단일 때도 다르지 않았다.
“나쁜 사람은 모르겠고, 쓰레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에단이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타미가 멀뚱거리며 에단을 바라봤다.
“왜? 내가 나쁜 사람 같아?”
“……아니.”
타미가 고개를 저었다.
에단은 그녀에게 꾸밈없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타미는 조금이나마 에단에게 마음을 열었다.
“일단 밥부터 먹어.”
때마침 돌아온 헨리와 휴고의 양손에는 먹을 것들이 가득했다.
타미가 눈을 깜빡거렸다.
* * *
음식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헨리와 휴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멍하니 타미의 모습을 지켜봤다.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 식성을 자랑하던 휴고조차 놀랄 모습이었다.
입을 살짝 벌리고 있던 휴고가 침을 꿀꺽 삼켰다. 먹고 있는 걸 보자니 어째서인지 허기가 느껴진 탓이었다.
이러다간 계속 침을 삼키겠다 싶어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있던 휴고는, 갑자기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주인은 순식간에 음식들을 해치우고 멀뚱거리며 휴고를 바라보는 타미였다.
타미는 손가락을 들어 휴고를 가리켰다.
“응? 나?”
휴고가 자신을 가리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늑대.”
타미의 말에 휴고가 눈을 끔뻑이며 에단과 헨리를 바라봤다.
헨리가 당황한 표정으로 에단을 향해 입 모양으로 말했다.
‘어, 어쩌죠?’
뭔가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이 발설된 것 같았다.
“어, 늑대가 얘야.”
에단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휴고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에, 에단 님…….”
“왜?”
에단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보자 헨리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어, 어쩌죠?”
“뭘 어째. 딱히 비밀도 아닌데.”
“비밀이 아니라고요?”
“숨겨서 어디다 쓰게.”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까 그런 것 같았다. 휴고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듯 멀뚱거리며 서 있었다.
“죄송한데 무슨 얘기인가요?”
“아, 너 수인이거든. 보니까 늑대족이던데.”
“……예?!”
휴고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에단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인 몰라? 너 막 변신해. 털 숭숭 나고 주둥이 길어지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휴고도 수인에 대해서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자신에게 대입해 본 적은 없었다.
“그……. 농담이죠?”
“아닌데?”
“……근데 왜 말씀 안 해 줬어요?”
에단이 휴고를 멀뚱거리며 응시했다.
“너가 안 물어봤잖아.”
“예?”
“아니, 물어보지도 않은 걸 대답해 줘야 해?”
“……그런가요?”
“그렇지. 아 쟤도 수인이야.”
“……네?”
“헨리도 인간이라기에는 좀 애매하지.”
“에단 님!”
“왜, 딱히 비밀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둘의 대화를 들으며 휴고가 멍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이상한 거구나…….”
뭔가 묘하게 납득이 되는 기분에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타미가 입을 열었다.
“……이상해.”
“이상할 수도 있지.”
에단이 피식 웃으며 타미를 바라봤다.
이상한 게 딱히 죄는 아니잖아?
* * *
잭슨이 복귀했다. 잭슨은 곧바로 메이의 호출을 받고 접견실로 올라섰다.
메이는 잭슨의 모습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음…….”
잭슨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꾀죄죄한 수준이 아닌, 악취까지 풍기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말을 하던 메이가 입을 막았다. 참고 얘기해 보려 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탓이었다.
“왜 이런 꼴로 올라온 거죠?”
“……바로 호출하셔서.”
메이의 말에 잭슨이 억울하다는 듯 대꾸하자, 메이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당장 씻고 오세요.”
“……네.”
잭슨이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다시 접견실로 올라갔다.
“왜 이렇게 늦었죠?”
“꼼꼼히 씻느라…….”
메이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 복귀가 늦은 건 여러 이유 때문입니다.”
“……합당한 설명을 해 주셔야 할 겁니다.”
메이가 엄한 눈으로 잭슨을 바라보자, 잭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한 무리의 수장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블란테에 방문한 이후 산을 올랐습니다.”
“산을 올랐다고요?”
메이의 목소리에서 황당함이 묻어 나왔다.
잭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에단 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산을 오르다 보니 동굴이 하나 보이더군요. 아, 이곳이 에단 님이 말씀하신 장소구나 해서 들어가 보니.”
“보니?”
“인간들과 몬스터, 뱀파이어가 같이 있더라고요.”
“……지금 저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겁니까?”
메이의 표정이 사나워지자 잭슨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잭슨이 다급하게 전후 사정을 포함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메이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야기를 더 들어 보기로 했다.
“일단 말씀해 보세요.”
“그 이후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나가.”
“예?”
“나가라고!”
“서, 설명하겠습니다……. 이것 또한 에단 님의 명령입니다.”
“하…….”
메이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찌된 게 에단만 언급이 되면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거기서 훈련하느라 길드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소리입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뭡니까.”
“그럼 잠시 성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잭슨이 대뜸 옷을 훌렁 벗어젖혔다. 메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메이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지금 뭘 하는 거죠?”
“어떻습니까?”
꿈틀꿈틀.
잭슨이 자세를 취했다. 오밀조밀한 근육이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것이 바로 수련의 성과입니다.”
잭슨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다. 메이가 고개를 숙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쩌다가 정보 길드가 이 정도 수준까지 추락했단 말인가.
암담함을 느꼈다. 메이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잭슨이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크, 크흠!”
잭슨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내뱉으며 메이를 바라봤다.
“그래서 복귀를 하지 않은 이유가 한가하게 수련이나 하고 있었다, 그거입니까?”
“에단 님에게 계획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계획?”
“용병단을 창단하려는 것 같습니다.”
“……잭슨 씨.”
“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럼 징계 내용은…….”
“하, 하나 더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뭔가요.”
잭슨의 다급한 태도에 메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뱀파이어에 관한 사실입니다.”
“……말씀해 보세요.”
메이의 눈에 흥미가 생겼다. 밤의 귀족이라 불리는 뱀파이어는 아직도 세간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 뱀파이어 분이 희대의 신물을 개발해 냈습니다! ‘보충제’라는 근육증강제인데…….”
“잭슨 씨.”
“네?”
“6개월 감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