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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67화 (167/398)

◈ [167화] 붉은 곰 (3)

처절한 비명이 숲속을 가득 메웠다.

백색 갑주를 걸친 기사들은 무심하게 일을 진행했다. 그들에게 이 행위는 단순한 업무일 뿐이었기에 죄책감이 자리할 공간 따위는 없었다.

땅이 피에 젖었다. 아이들의 죽음에 어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멈춰라!”

타미의 아버지가 소리쳤지만 기사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이 한 명씩 목숨을 잃어 가자, 결국 무릎을 꿇은 것은 마을 사람들, 아니, 수인들이었다.

타미의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불굴의 전사였던 그도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는 한 명의 아버지일 뿐이었다.

“……저항하지 않겠다. 부디 아이들만큼은 살려 다오.”

그를 비난하는 이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따뜻한 심성을 소유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빠!”

그는 아버지였기에 차마 타미를, 그리고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이해했다.

“사과하지 않아도 돼.”

“그래. 괜찮아.”

“너는 잘못 없어.”

선두에 서 있던 백발의 남성은 여전히 무감정한 눈초리로 수인들을 응시했다. 그에게 있어서 수인족은 가축 이하의 해충들이었다.

“짐승 새끼 주제에 인간을 따라하는 건가.”

남자의 목소리에는 조소가 담겨 있었다. 그걸 들은 타미의 아버지는 눈에 핏발이 서도록 이를 꾹 다물었다.

“……부디 아이들만은 살려 주시오.”

이가 갈렸다. 억울하고 분통이 치밀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저항하지 않는다고 했나?”

백발의 남자가 뚜벅뚜벅 다가왔다. 남자의 눈에는 짙은 경멸이 서려 있었다.

타미의 아버지가 고개를 들려고 하던 순간, 그의 목에 실선이 그어지며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감히 짐승 새끼 주제에!”

남자의 손에는 아름다운 검이 들려 있었다.

한 사람의 목을 잘랐음에도 그 검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남자는 피를 묻히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

그 뒤로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어른들은 초연히 죽음을 맞이했고, 아이들은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마을의 어른들을 모두 죽인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짙은 혐오가 담긴 얼굴이다.

“모두 죽여.”

남자는 처음부터 협상이나 타협 따위는 가정해 두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아이들은 수단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해충의 말 따위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이 죽기 시작했다.

아직 수인화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저항은 의미 없는 행위에 불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그때, 한 여성이 백발의 남성에게 다가왔다.

“라오나드 님.”

“……무슨 일이지?”

라오나드에게 다가선 여성은 레벨린이었다. 수인들의 위치를 알려 준 이가 바로 그녀였다.

그들과 레벨린은 협력을 맺은 관계였기에 라오나드는 탐탁지 않았음에도 그녀에게 존중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 하나는 제가 데려가고 싶습니다.”

“……이유는?”

라오나드가 인상을 찌푸리자, 레벨린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또 수인들의 마을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

빠드득.

라오나드가 작게 이를 갈았다. 그의 눈에 살기가 맴돌았다. 당

장에라도 눈앞에 있는 가증스러운 여자의 모가지를 비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라오나드의 권한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마음대로 해라.”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라오나드가 싸늘하게 몸을 돌렸다. 라오나드가 돌아서자 레벨린의 눈도 차게 식었다.

“들으셨죠. 그 아이는 제가 넘겨받겠습니다.”

레벨린은 타미를 넘겨받았다. 타미의 눈은 죽어 있었다.

소녀는 아직 어렸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타미의 아버지가 죽은 이유는 자신들 때문이었다.

모두가 죽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은 이제 모두 말 못 하는 시신이 되었다.

아이가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탓에 타미의 마음은 이미 죽어 버렸다. 레벨린이 타미를 데려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시험하기는 좋겠구나.”

레벨린이 싱긋 웃으며 타미의 머리에 마석 파편을 밀어 넣자 얼굴에 검은 혈관이 돋아났다. 바닥에 쓰러진 타미는 거칠게 경련했다.

한참을 그렇게 경련하던 타미의 몸이 어느 순간 추욱 늘어졌다.

레벨린은 그런 타미의 모습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어나.”

타미가 몸을 일으켰다. 레벨린의 표정에 만족감이 서렸다. 첫 시도가 성공적이라니, 운이 좋았다.

레벨린은 타미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타미는 도구에 불과했고, 도구에게는 이름이 불필요했으니까.

그 이후 타미는 감정을 거세당한 채 도구로 이용되었다.

* * *

쾅!

에단이 거칠게 여관 문을 열어젖혔다.

“뭐야, 아무도 없네?”

에단이 여관을 훑어보며 말하자, 다가온 종업원이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최근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 손님들이 많이 나갔습니다.”

“안 좋은 소문?”

“……객실에서 남자들의 신음 소리가 너무 크게 난다고…….”

종업원이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에단의 얼굴에 짙은 혐오감이 생겨났다.

“무슨 그런 개 같은 소문이 돌아?”

“……죄송하지만 손님분 일행께서 그러시는 것 같아서…….”

“…….”

에단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먼저 사과하지.”

에단이 종업원에게 은화 몇 닢을 건네주자 종업원이 깊게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금방 해결할 테니까, 주인한테는 걱정 말라고 해.”

“넵!”

에단이 순식간에 계단을 올라갔다.

여관방의 방음은 없는 수준인 탓에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목, 아니, 이제 두목도 아니지. 형씨 대답 좀 해 보쇼.”

“혀, 형씨?”

“그럼 뭐라고 불러 드립니까? 대장님이라고 듣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건 아닌데…… 형씨는 좀 아니지 않냐?”

“지금 그게 중요하단 말입니까? 양심이 있으면 대답 좀 해 보시죠.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누구 때문입니까?”

“나도 책임이 있긴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새끼 때문 아니냐.”

“그 새끼가 누굴 말하는 겁니까. 설마…….”

“악마 같은 새끼가 그 새끼 말고 또 누가 있겠어? 에단 그…….”

쾅!

에단이 여관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 나무로 된 문이 가루가 되며 방 안이 훤히 드러났다.

방 안에서는 단원들이 침대에 엎드린 채 만담을 나누고 있었다.

눈을 끔뻑이며 가루가 된 문 쪽을 바라보고 있던 단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호, 혹시 전부 들으셨나요?”

줄리엔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에단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걸쳐졌다.

“너희들이 말한 악마 새끼 여기 있다.”

얼굴이 검게 죽은 단원들이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개중 눈치가 빠른 몇몇은 순식간에 무릎을 꿇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 저돕니다! 그 말을 한 건 모두 저 사람입니다.”

단원들의 손가락이 줄리엔을 가리켰다. 줄리엔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이, 이! 배신자 새끼들이!’

줄리엔이 치를 떨었다. 어찌된 녀석들이 전우애나 우정이 이리 없단 말인가.

물론 자신이 내뱉은 말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두목을 저렇게 순식간에 팔 줄은 몰랐다.

줄리엔의 몸이 덜덜 떨리며 이빨을 딱딱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명백한 잘못이었다. 줄리엔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줄리엔은 눈치가 빨랐다. 여기서는 일단 죄를 인정하고 목숨을 구걸하는 게 최선이었다.

에단이 무심한 눈길로 바닥에 엎드려 있는 줄리엔을 바라봤다.

“아니야. 맞는 말 했네.”

“아, 아닙니다! 제가 잠시 미쳤습니다! 남 등골이나 처먹던 기생충 같은 저희를 구원해 주신 은혜도 모르고 잠시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그래? 하긴 도적질이나 하던 새끼 거둬 주니 뒷담이나 까고, 여관에 민폐나 끼치는 새끼들로 거듭날 줄은 나도 상상 못 했네.”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라고 했지? 다행히 죄를 묻기 어렵진 않겠네.”

뚜둑. 뚜두둑.

에단이 손을 풀었다. 소름 끼치는 뼈 소리에 줄리엔의 등이 식은땀으로 푹 젖었다.

줄리엔이 엉금엉금 기어가며 에단의 발을 붙잡았다.

“부, 부디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십쇼!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너 전에도 비슷한 소리를 지껄이지 않았나?”

엎드려 있는 줄리엔의 등에 에단의 따가운 시선이 박혔다.

“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불평불만을 하지 않겠습니다!”

“흐음…….”

에단이 턱을 쓰다듬었다. 에단이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줄리엔이 더 처절하게 애원했다.

“정말입니다! 늘 기쁘고 감사하게 여기며 훈련에 임하겠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일단 일어나 봐.”

“네, 넵!”

줄리엔이 에단 앞에 우두커니 섰다. 우락부락하고 건장한 체격이었다.

줄리엔은 에단과 눈을 마주치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시, 심장이 멎을 것 같아.’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압박감이 아니었다.

“기쁘고 감사하게 여긴다고?”

“……그, 그렇습니다!”

“대답이 느리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웃으면서 지내야겠네.”

“……네?”

“방금 말했잖아. 기쁘고 감사하게 여긴다며. 그럼 웃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이번에도 거짓말을 한 건가?”

에단의 심기가 불편해질 것 같은 기색이 보이자, 줄리엔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웃으면서 살겠습니다!”

줄리엔의 입가가 경련하며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에단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보니까 이번에는 믿어도 되겠네.”

“감사합니다!”

빠악!

그 순간, 에단의 발이 섬광처럼 움직였다. 줄리엔의 정강이가 부러졌다.

“끄아아아악!”

줄리엔이 정강이를 부여잡으며 바닥을 굴렀다. 바닥을 구르는 줄리엔을 바라보며 에단이 눈살을 좁혔다.

“시끄럽네.”

“…….”

줄리엔이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에단의 심기를 한 번 더 거스르면 그때는 진짜 죽은 목숨이었다.

“언제까지 누워 있으려고?”

줄리엔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붉어진 얼굴에서, 얼마나 고통을 견뎌 내고 있는지 느껴졌다.

“음? 아까랑 표정이 조금 다른데? 웃으면서 지내겠다고 하지 않았나? 웃음이 사라졌는데?”

“……!”

줄리엔의 얼굴이 파들거리며 떨렸다. 줄리엔은 눈을 질끈 감으며 억지로 미소를 만들어 냈다.

기괴하기 그지없는 미소였다. 에단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한 말은 지켜야지. 안 웃고 있었으면 그대로 모가지를 비틀어서 죽여 버릴 뻔했잖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에단의 말에,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단원들도 오한을 느꼈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다른 단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

“……네?”

“쟤 웃고 지내는 거 말이야. 아, 너희들은 감사함을 모르는 건가?”

그제야 에단의 말을 눈치챈 단원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미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저, 저희도 웃으면서 지내겠습니다.”

단원들은 동시에 기괴한 미소를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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