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62화 (162/398)

◈ [162화] 냄새가 나네 (2)

“칼센.”

에단의 목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칼센이 긴장한 기색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이제 돌아가 봐.”

“……무슨 일을 벌일 생각이죠?”

“궁금하면 여기 있든가.”

“……아닙니다.”

정보 길드원의 본분과 자신의 안위 중, 칼센은 안위를 택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득이 되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결국 죽으면 끝이지.’

칼센은 미련을 버렸다. 칼센이 움직이기 전 에단을 향해 말했다.

“부디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오냐.”

에단의 대답에 칼센이 피식 웃더니 멀어졌다. 에단이 주위를 둘러봤다.

‘유동 인구가 없군.’

방금까지만 해도 바글거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거리에는 스산함이 감돌았다.

‘작업을 쳐 뒀어.’

죽은 마나의 기운.

결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산 자의 접근을 차단하기에는 충분한 농도였다.

‘요즘에는 말이 없으시군요.’

에단이 페온을 향해 물었다.

― ……기분 탓이다.

페온의 말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변명같이 들리는 말이었다.

‘무엇을 숨기는지는 모르겠지만.’

페온에 관해서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블란테의 선조, 무투, 그리고 성검과의 연관성.

에단이 잡생각을 털어 냈다. 그때 헨리가 다가왔다.

“에단 님, 저곳에 들어가려고 하시는 건가요?”

“어, 지금 고민 중이야.”

무력을 행사한다면 경비원쯤은 어렵지 않게 제압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보는 눈이 줄어 있다고 한들 그 정도 소란을 벌이면 내부에서 눈치챌 가능성이 농후했다.

‘다 깨부술 수는 없으니.’

그렇게 되면 결국 덜미를 잡히게 되거나 상대가 도주할 수도 있었다. 그건 에단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게 방법이 있어요.”

“……그래?”

에단의 미지근한 반응에 헨리가 상처 입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그렇게 못 미더우신가요?”

“조금.”

“……그럴 수가.”

헨리의 충격받은 얼굴에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건데?”

“……보여 드리죠. 휴고 씨도 이쪽으로 와 보세요.”

“아, 넵.”

휴고가 다가오자 헨리가 손을 들었다. 그 주위로 산뜻한 바람이 일더니 에단의 주위를 휘감았다.

― ……은신인가.

“이제 보이지 않을 겁니다.”

페온과 헨리가 엇비슷하게 말했다. 에단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가린 장막을 바라봤다.

‘세계수의 숲과 비슷한 작용인가.’

외부의 침입자를 걸러 내는 숲의 장막. 그것과 흡사한 기운이었다.

“이제 꽤나 쓸 만해졌는데?”

“……기뻐해야 하는 건가요?”

“어, 칭찬이야.”

“……감사합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헨리가 담장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또 뭘 하려고?”

“잠시만 보고 계세요.”

헨리가 눈을 감고 담장에 손을 얹었다. 그 이후 꽤나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스스스.

헨리가 담장과 융화가 되고 있었다. 마치 헨리의 몸이 담장에 흡수되는 것 같았다.

에단과 휴고가 감탄하며 헨리의 뒤를 따랐다. 셋의 몸이 담장을 무사히 통과했다.

“됐죠?”

헨리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확실히 놀랐다. 처음으로 쓸모 있다는 걸 입증했네.”

“…….”

에단의 신랄한 평가에 헨리가 입을 다물었다.

“이거 유지 시간을 얼마나 되지?”

“마음먹으면 하루 종일도 가능합니다.”

헨리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휴고가 떫은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보자 에단이 물었다.

“휴고, 네가 보기에도 띠껍지 않냐?”

“……그 정도는 아닙니다.”

휴고의 반응에 헨리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는 소리는 대체…….”

“잡담은 그만하고 움직이자고.”

헨리가 찝찝한 표정을 지은 채 에단의 뒤를 따랐다.

안으로 들어서 둘러본 저택은 광활했다. 내부에도 몇 명의 경비원이 자리해 있었다.

‘안쪽으로 갈수록 상태가 안 좋군.’

경비병들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모두가 몽롱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에밀라와 만났을 때 느꼈던 감각이 경비원들에게도 느껴졌다.

‘수작질을 부리기는.’

쯧.

에단이 혀를 차며 내부로 깊이 들어섰다. 담벼락을 지났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저택 내부에 들어섰다.

저택에 들어서자 죽은 마나의 기운이 더욱 농후해졌다.

“조금 불쾌하네요.”

헨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견디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는지 크게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긴 복도를 걸을수록 냄새가 짙어진다. 휴고의 눈살이 좁혀지며 동공이 누렇게 물들기 시작했다.

‘휴고가 제일 먼저 반응하는군.’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에단이 감각을 집중하자 걸음의 끝에 문이 하나 보였다.

‘뭐지?’

강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음험한 기운은 아니었다. 굳이 흡사한 것을 찾으라고 하면 휴고와 비슷한 기운이었다.

강렬한 야성. 하나 휴고와는 그 결이 달랐다. 휴고의 야성이 칼날처럼 날카롭다면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묵직했다.

에단이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야.”

“……네?”

흐릿하던 휴고의 눈이 색을 되찾았다.

“정신 차려라.”

“……죄송합니다.”

“알면 됐고.”

에단이 문을 열었다. 문안에는 짙은 어둠이 가득했다. 에단의 눈이 어둠을 관통했다.

‘저 녀석인가.’

어둠 속에서 보이는 하나의 인영.

비교적 작은 체구와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강한 존재감.

그것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에단이 헨리를 바라봤다.

“야. 불 좀 켜 봐.”

“……네? 아, 알겠습니다.”

화아악!

빛이 번지며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헨리가 다루는 마나의 본질은 세계수에서 비롯된다.

신성력과는 비교하기 힘들었지만 세계수의 힘은 정화의 성질을 띤다.

그 탓에 어둠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 잠식되어 있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아이?”

헨리의 목소리였다. 어둠이 걷히고 보이는 것은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였다. 검은 눈동자가 일행을 주시했다.

“누구?”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가슴을 옥죄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

헨리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크르르르.”

갑자기 뒤에서 들린 소리에 획 하고 고개를 돌린 헨리는 휴고의 모습에 흠칫 몸을 떨었다.

휴고의 동공이 완전히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이빨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에단이 손을 휘둘렀다.

빠악!

휴고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내가 조용히 있으라고 했지.”

휴고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에단이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소녀의 체구는 다비보다도 작았다.

붉은 머리칼을 지닌 소녀는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늑대? 아니야……. 인간……?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소녀가 골똘히 고민하다 에단을 향해 물었다.

“너는 누구야?”

“글쎄.”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에단이 씨익 웃으며 다가가자, 무표정이던 소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다가오지 마.”

“왜?”

“……너 위험해.”

“내가? 딱히 위험하지는 않을 건데 말이야.”

소녀의 시선이 엎어져 있는 휴고에게로 향했다. 휴고를 바라본 에단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건 불가항력이었고.”

“나, 안 믿어.”

소녀의 눈빛에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휴고와는 결이 다른, 묵직한 존재감이 에단 앞에 드러났다.

‘재밌네.’

책으로 보던 것과는 다른 감각이다. 같은 야성도 이렇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신선함이 느껴졌다.

에단이 한 발자국 더 다가서려 할 때, 페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가 왔군.

페온의 목소리와 동시에 에단도 그 존재를 눈치채고는 고개를 돌렸다.

“불청객이 찾아왔군.”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헨리도 눈치챘는지 몸을 틀었다.

한니발이 손을 들었다.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 행위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이 말해 줬다.

헨리가 마나를 끌어 올려 방어하려 들었지만 한니발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러나…….

탓.

그보다 더욱 빠른 것은 에단이었다. 에단이 사납게 미소 지으며 한니발을 바라봤다.

“우리 초면이지?”

한니발의 얼굴에서 미약한 당황이 감돌았다. 그의 손에서 검은빛이 폭사되었다.

쾅!

에단이 팔로 한니발의 손을 쳐 내자, 한니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처리해라!”

가만히 있던 소녀에게서 야성이 폭발했다. 에단이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소녀가 팔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콰앙!

순간적으로 팔을 들어 공격을 방어해 냈지만, 막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에단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에단이 감탄했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보기보다 꽤나 힘을 쓰는데?”

에단이 팔을 털어 내며 말하자, 한니발이 살기 어린 눈으로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지?”

“병신이냐?”

한니발에 물음에 에단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뭐라고?”

“너 같으면 순순히 그걸 대답해 줄 거 같아?”

에단이 손을 풀었다. 손에서 섬뜩한 뼈 소리가 울렸다.

눈이 완전히 검게 물든 소녀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뭔가 있을 줄은 알았다.”

붉은 곰이 어째서 원작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검게 물든 눈이 소녀가 지금 자아를 잃었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뭔가를 알고 왔군.”

한니발이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모르고, 몇 가지 정도는 알고 있지.”

씨익 웃은 에단이 단어들을 나열했다.

“아카데미, 레벨린, 죽은 마나, 검은 보석, 영지전, 붉은 곰.”

이야기를 듣던 한니발의 표정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몇 가지 더 있는데, 시간상 들려주기는 힘들 것 같다.”

“……아무래도 살려 보낼 수 없겠군.”

“그래?”

에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니발이 싸늘한 눈빛으로 에단을 노려봤다.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온 것 아닌가? 너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바로 죽이지는 않으마. 그것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들어야겠으니.”

“아니,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라.”

에단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뭘 믿고 날 이겨 먹으려 하냐고.”

콰아아아앙!

에단이 피어를 끌어 올렸다. 막대한 위압감이 저택에 진동했다.

유형화된 마나와 피어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에단이 지닌 피어는 더 이상 블랙 오우거의 수준이 아니었다.

리치, 그리고 세계수.

둘의 기운을 먹어 치운 에단의 피어는 전설로 전해지는 드래곤의 피어와도 비견될 정도였다.

‘……이게 무슨.’

한니발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나와 붉게 물들었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석상처럼 굳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자는 뭐지?’

한니발은 눈치가 빨랐다. 이자는 범접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사, 살아야 해.’

그러나 입조차 벌릴 수가 없었다. 한니발이 눈을 굴려 옆에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어라!’

한니발이 속으로 되뇌자, 소녀가 몸을 바들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또 개수작을 부리네.”

에단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하지만 한니발의 의도가 먹혔는지 이내 소녀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수인족인가.

수인족은 태생적으로 피어에 내성을 가진다. 저 소녀는 수인족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또 다른 수인족이 존재했다.

크르르.

콰드드득!

휴고가 나무로 된 바닥을 부수며 몸을 일으켰다. 사나운 야성이 피어올랐다.

검은 소녀의 눈과 누렇게 물들어 있는 휴고의 눈이 마주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