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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61화 (161/398)

◈ [161화] 냄새가 나네 (1)

“그 시험 보도록 하지.”

에단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테이블에 팔을 걸치며 중년 남자를 응시했다.

“이름이?”

“……도란이라고 합니다.”

“좋아, 도란. 용병 길드의 규율은 지켜야지. 내가 그렇게 몰상식하지는 않아.”

에단이 사미라를 바라봤다.

“사미라, 시험은 보통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지?”

“보통은 시험용 임무가 따로 있습니다. 혹은 실력을 입증하는 경우도 있죠.”

“시간을 허비하는 건 싫으니 후자로 택해야겠네. 실력은 어떻게 입증하면 되지?”

“보통은 담당관이 따로 있죠.”

사미라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에단이 웃음기를 머금고 도란을 바라봤다.

“저 말이 맞나?”

“맞습니다. 하지만…….”

후자를 택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모난 돌은 정을 맞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용병들은 심성이 뒤틀려 있는 탓에 신입의 객기를 좋게 보지 않았다.

평소라면 칼을 뽑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감히 용병 길드의 문을 박살 내며 난동을 부렸으니.

용병들은 그 누구보다 이기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용병’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높은 단합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용병들은 허투루 움직일 수 없었다.

에단이 기세를 거뒀음에도, 에단과 휴고가 보였던 충격적인 모습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저런 처참한 몰골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으니까.

“담당관이 누구야?”

에단의 물음에 용병들의 시선이 천천히 한쪽으로 몰렸다.

“……뭐, 뭘 봐, 병신들아!”

주목을 받은 용병 하나가 몸을 돌린 채 빠른 발걸음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단이 피식 웃으며 도란을 바라봤다.

“쟤야?”

“…….”

수치심이 치밀은 도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등급을 원하십니까?”

“은. 나를 포함해서 애들 전부. 더 요구하는 건 없어.”

에단이 담백하게 말하자 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권한에서 가능한 수준을 요구해서 다행이군요. 당신과 저 남성분은 실력을 입증했지만, 아무래도…….”

“사족 그만 붙이지. 어차피 용병은 성과로 입증하는 것 아닌가?”

에단이 손가락을 이용해 동전 모양을 만들었다.

“결국에는 이게 중요하잖아.”

씨익 웃으면서 말하는 에단을 보며 도란이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가 없군요.”

결국 용병이라는 족속들은 돈을 좇는 하이에나였다. 그 정체성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증명은 영지전에서. 그럼 되는 것 아닌가?”

‘원래라면 들을 것도 없이 거절했었겠지만.’

에단은 무언가가 달라보였다. 도란이 바 테이블 아래에 손을 넣더니 은색 용병패를 꺼냈다.

“당장은 모든 인원에게 배포할 용병패가 부족하니, 일단은 이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이제 당신들의 신원은 용병 길드가 보증합니다. 용병단도 개설한다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 주먹 용병단.”

에단의 말에 도란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설마 이름의 뜻이…….”

에단이 말없이 씨익 웃자, 도란이 헛웃음을 지었다. 용무가 끝난 에단이 몸을 돌렸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 누구도 에단에게 시비를 거는 이는 없었다.

* * *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다음날이 되자 단원들은 은색 용병패를 모두 수령할 수 있었다.

단원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용병패를 받아 들었다.

“저…… 두목 님.”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 어안이 벙벙해서…….”

동패도 아닌 자그마치 은패였다.

은패 용병은 세간에서 거의 수습 기사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물론 정식으로 기사 임명을 받은 평기사보다는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노략질이나 일삼던 그들에게는 감개무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저희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을까요?”

단원들은 그 자리에서 입증하거나 보여 준 것이 없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어디까지 에단과 휴고였으니까.

“……모르겠다.”

“저희 이대로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지금부터라도 수련을 더 해야 할 거 같은데…….”

단원들이 그런 원초적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다가왔다.

“좋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단원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들의 뒤편에서는 사미라가 살벌한 미소를 걸친 채 서 있었다.

“……사미라 님?”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며? 보아하니 몸은 조금 쓸 만한 것 같은데, 이제는 실전을 경험해야지 않겠어?”

“시, 실전 말씀입니까?”

“그래, 실전. 내가 애들 가르칠 짬은 아니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사미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단원들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영지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대충 쓸 만하게 개조를 해 놔야지.”

이어지는 사미라의 말에 단원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안 일어나고 뭐 해?”

밍기적거리는 단원들을 보며 사미라가 표정을 굳히려고 할 때, 에단의 목소리가 단원들의 귓전에 파고들었다.

“그러게. 뭘 하는지 모르겠네. 요즘 아주 살 만해졌나 봐?”

“히, 히익!”

그들에게 악몽을 선사해 준 목소리였다. 단원들이 기겁하며 몸을 일으켰다. 과거의 기억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에단이 팔짱을 낀 채 단원들을 바라봤다.

“왜? 하기 싫어? 하기 싫으면 말해. 내가 도와줄게.”

‘……대체 뭘 도와준다는 거지?’

‘정상적인 건 아닐 거 아니야!’

그간의 경험으로 눈치가 빨라진 용병들이 잽싸게 대꾸했다.

“아닙니다!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마, 맞습니다! 너무 감격을 받아서 잠깐 멍 때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진심이라고는 조금도 첨가되지 않은 거짓말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면 이렇게라도 넘어가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미라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애들은 괜찮네. 그럼 움직여 볼까?”

‘어, 어디로 움직인다는 거지?’

‘더는 가고 싶지 않아…….’

마음은 그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단원들이 음울한 표정으로 사미라를 뒤따랐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 같은 얼굴이었다. 에단은 조소를 머금은 시선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단원들을 바라보다 시선을 옮겼다.

“이제 대충 요구 사항은 충족한 것 아닌가?”

“…….”

에단의 말에 칼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바뀌실 일은 없으시겠죠?”

“잘 아네.”

“하아, 지금 바로 움직이실 생각인가요?”

“뭉그적거릴 필요는 없지.”

“알겠습니다. 바로 안내해 드리죠.”

칼센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자, 헨리가 다가와 에단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에단 님.”

“왜.”

“지금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네 빚 갚으러.”

“……한니발 씨?”

에단이 무언의 긍정을 보이자, 헨리가 사색이 된 얼굴로 에단에게 말했다.

“에단 님, 그 사람은 진짜 위험한…… 어라?”

헨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간 겪어 온 에단의 모습과 한니발의 모습 중 과연 누가 더 위험하단 말인가.

“…….”

헨리가 생각에 잠겼다. 그런 와중에도 에단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꽤나 보는 눈이 많군.”

“단번에 유명 인사가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칼센의 목소리에는 책망이 섞여 있었다. 대놓고 일행을 응시하는 자들은 없었지만, 힐긋거리는 시선은 확실히 느껴졌다.

“뭐,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고.”

에단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칼센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단과의 대화는 하면 할수록 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언변에 능하다거나 협상을 잘한다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야.’

에단이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은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에단은 가진 힘을 이용할 줄 아는 자였다.

‘아직 어린 나이임을 감안하면 미래가 두렵군.’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어느덧 원하던 위치에 도착했다.

“호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엄청난 규모의 담장이었다. 과장을 조금 더한다면 성벽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확실히 돈을 바른 흔적이 있군.”

담장의 입구에는 경계를 서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도시의 병사들은 아닌 것 같았다.

“저택의 주인이 사비로 고용한 경비원들입니다.”

“확실히 돈 많다고 자랑하는 게 눈에 보이는구먼.”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최소 중급 이상의 실력자들. 어디 가서 기사 임명을 받아도 부족하지 않은 실력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고작 저택의 경비나 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한니발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에단이 팔장을 낀 채 저택 방향을 응시했다. 코끝을 스치는 미약한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역시나인가.’

“에단 님.”

에단이 시선을 돌리자 심상치 않은 헨리의 표정이 보였다.

‘느끼고 있군.’

헨리의 뿌리는 세계수에 있었다.

비록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마나를 감지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 어떤 존재보다 예리하고, 예민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세계수의 힘을 융합하고 흡수한 것은 에단도 마찬가지. 에단에게도 익숙한 잔향이 느껴졌다.

‘죽은 마나.’

레벨린과 엮여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대담한 것 같았다.

* * *

“하하하! 한니발 자네 덕에 정말 웃음이 끊이지가 않는구먼.”

“과찬이십니다.”

한니발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내 처음에는 자네를 의심했지만 괜한 의심이었어. 자네 말을 들은 이후 안 풀리는 일이 없으니 말이야.”

“저는 단지 조언을 드릴 뿐입니다. 모든 일은 브릭스 백작님의 능력이십니다.”

“자네가 그리 말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그래서 이번에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마음이 급한 것은 이해합니다만,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보시죠. 아직은 적기가 아닙니다.”

“흐음, 병력의 차이는 확연하지 않나? 자네도 알다시피 이 많은 병력과 인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많은 재화가 들고 있네.”

“제가 어찌 그 사실을 모르고 있겠습니까? 저 또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내 괜한 의심을 했어…….”

브릭스 백작의 눈이 몽롱해졌다. 한니발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몽롱해진 브릭스의 눈을 바라봤다.

“걱정은 접어 두셔도 됩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백작님은 모든 것을 쥐게 될 것입니다.”

“그래……. 나는 자네만 믿네…….”

“네.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백작 님.”

덜그럭.

찻잔을 내려 두는 동시에 한니발이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한니발이 옷가지를 정돈하며 싸늘한 눈빛으로 브릭스를 바라봤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게.”

한니발이 냉소적으로 몸을 돌려 방을 나왔다.

‘구역질이 치미는군.’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은 한니발이 복도를 지났다.

‘이 짓도 얼마 남지는 않았으니.’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한니발은 귀가 많았고, 덕분에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도 이미 알고 있었다.

‘조급함을 느껴서는 안 되지만.’

여유를 가질 때도 아니었다.

한니발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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