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용병 길드 (1)
“……불가능합니다.”
칼센이 확답했다. 에단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왜?”
“……제 능력 밖이기 때문입니다.”
칼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도시의 주인인 체이베르 브릭스는 대외적인 활동이 매우 적었다.
그저 수하들을 통해 의사를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칼센의 설명에 에단이 턱을 쓰다듬었다.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블란테라는 것을 이용한다면…….”
“기각.”
“……네?”
“나는 블란테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거든.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블란테가 개입한 것이 밝혀지면 어떤 파장이 벌어질지.”
“그거야…….”
사실이었다.
최근 보인 블란테의 심상찮은 행보와 더불어 타국의 영지전에도 발을 들이밀었다는 게 밝혀지면 큰 지탄과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제게도 방도가…….”
“한니발.”
에단의 말에 칼센이 고개를 들었다.
“그 녀석이랑 연관이 있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저희도 추측만 하고 있을 뿐…….”
“뭐 안 봐도 빤한데 추측까지야. 딱 보니까 한니발이 흑막인 것 같은데. 붉은 곰, 영주, 그리고 영지전까지. 돈 되는 것투성이 아니냐?”
“…….”
“이 영지전의 배경이 뭔데? 뭐 금광이라도 나왔나?”
“저희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대외적으로 밝혀진 이유 없이 이뤄진 두 영주의 충돌이라…….”
“개소리하네.”
“동감입니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국왕조차 묵인하고 있다는 것인데…….”
“뭐, 그거야.”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어깨를 풀며 상쾌한 미소를 지은 에단이 칼센과 사미라를 바라봤다.
“찾아보면 알겠지.”
“말씀드렸다시피 영주는…….”
“영주 말고. 방금 계속 언급되던 새끼가 있잖아?”
“한니발 말씀입니까? 하지만 그쪽도 만만치 않은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어지간한 고위 귀족보다 경계가 삼엄해서…….”
히죽.
칼센의 설명에 에단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진심이십니까?”
“어. 진심이야.”
에단의 시선이 사미라에게로 향했다. 사미라가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좀이 쑤시던 찰나였는데 간만에 몸 좀 풀겠군.”
“사미라 당신마저…….”
칼센이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이미 둘은 결정을 마친 상태였다.
“자, 그럼 슬슬 움직여…….”
“음식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에단 앞 테이블에 음식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에단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간 에단은 용병단원이 준비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당연히 성에 찰 리가 없는 음식들이었고, 허기를 달래는 수준에서 그쳤다.
그렇다고 군소리를 하거나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음식과는 비견할 수가 없었다.
에단이 착석함과 동시에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칼센과 사미라가 시선을 교환했다. 눈을 끔뻑이던 둘도 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쳤다.
달그락.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를 얼추 끝낸 에단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 냈다. 사미라가 에단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상당한 대식가군요. 저번에 제 음식도 그렇게 맛있게 먹어 줬던가요?”
“여기보다는 네 음식 솜씨가 더 뛰어난 것 같군.”
“그거 영광이군요. 그래서 생각은 그대로입니까? 영주나 한니발을 만나겠다고?”
“왜? 문제가 있어 보여?”
“아니, 문제랄 것까지는 없죠. 규칙과 법칙은 강자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제게 당신을 말릴 권한도 없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사미라의 모습에 칼센이 적지 않게 놀랐다.
칼센은 평소 사미라의 자존심 강한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미라가 저렇게까지 평가하다니.’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외모였기에 은연중에 에단을 저평가하고 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천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아직 용병패의 각인도 받지 못한 무명들이지 않습니까? 한니발이 쉽게 만나 주진 않겠죠.”
사미라의 말에 에단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사미라가 말을 이었다.
“뭐, 어떻게든 만날 생각이면 가능하겠죠. 그쪽은 그만한 실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본래의 의도랑은 달라지게 될 텐데. 경비원을 죽이고, 병사를 죽이고, 기사들까지 죽여서 이목을 집중시킬 생각입니까?”
“생각보다 이성적인데?”
에단의 의외라는 표정에 사미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전 원래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운 여자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런 선택을 했고?”
“그때는……. 시간이 지나니까 감을 좀 잃어버려서 말이죠.”
큭큭.
웃음을 흘린 둘이 다시 마주 봤다. 에단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추천하는 건 뭐지?”
“구두상 인정이 아닌, 정식으로 용병 지부에서 명패를 받는 게 우선이겠죠. 그러면 한니발이나 영주와 만나기도 수월할 테고.”
“이유는?”
“용병들이 여기에 온 이유가 뭐 같습니까? 아시다시피 돈 때문이죠. 전쟁은 돈을 몰고 오니까. 하지만 용병들마다 몸값이 대동소이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측정하겠습니까? 판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등급뿐입니다.”
“네, 등급은?”
에단의 질문에 히죽 웃은 사미라가 품에서 명패를 꺼냈다. 빛바랜 금색의 명패에서 세월의 흔적이 물씬 느껴졌다.
“짠돌이 같은 녀석들이 도금한 명패로 생색을 부리더군요. 이 위에는 등급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백금’ 녀석들. 대륙에 몇 있지도 않고, 활발하게 활동하지도 않는 녀석들이죠.”
“자랑을 돌려서 하는 건가?”
“정답. 녹슨 몸이지만 아직 값은 쳐주더군요.”
사미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칼센은 알고 있었다. 저 금색 명패가 지닌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많이 쳐 봐야 열 명.’
대륙에 포진해 있는 금 등급 용병들의 숫자였다. 이 넓은 대륙에 고작 열 명. 아니, 열 명이 채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사미라가 가진 위상은 낮지 않았다.
“그래서? 몸값이 얼만데?”
“300골드.”
“호오.”
에단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헨리의 빚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거야 협상을 통해 매듭을 지으면 그만이었다.
“용병단의 등급 측정 기준은 다른가?”
“뭐, 아무래도 차이 정도야 있죠. 저 녀석들 수준이 어떻습니까?”
사미라가 고개를 돌려 구석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용병단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에단이 간략하게 설명하자, 사미라가 미간을 좁혔다.
“잘 쳐 봐야 은 등급이겠군요.”
“생각보다 후하네.”
“그것도 힘들 수 있습니다.”
“뭐, 감안하고 있던 부분이야.”
용병단원들은 아직 마나도 다루지 못하는 햇병아리들이었다. 더군다나 맨몸 격투라는 제약도 걸려 있었다.
‘나중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긴 하지.’
명성을 빠르게 얻고 후일 북부로 건너가기 위해선, 격투술은 포기하기 아쉬운 부분이었다.
에단이 웃음기 서린 표정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나랑 이 녀석이면 대충 은보다야 높게 받지 않겠어?”
에단의 말에 휴고가 눈을 끔뻑거리며 자신을 가리켰다.
“저 말씀입니까?”
“어. 내가 너 말고 누구를 가리키겠냐?”
에단이 한심하다는 어조로 말하자, 휴고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미라가 피식 웃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그걸 빼면 시체지.”
“확실히 당신 둘이면 은 등급은 어렵지 않습니다. 거기에 저까지 보증을 해 줄 테니 어지간해서는 용병단도 은 등급이 보장될 겁니다. 단체명이야 좀 황당하긴 하지만, 실력만 뒷받침된다면 문제될 건 없죠.”
“그거참 다행이군.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 * *
용병단원과 헨리가 침울한 표정으로 에단의 뒤를 따랐다.
‘아직 부족한데.’
헨리는 슬슬 취기가 올라오던 도중 에단에게 끌려 나왔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렇다고 에단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시던 헨리는 주변을 둘러봤다.
도시는 번잡했고,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에단이 보였다.
‘저 사람도 주변을 보긴 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씩 웃던 헨리는 순간 에단과 눈을 마주쳤다.
“뭘 봐?”
“아, 아니에요.”
헨리는 목을 쏙 집어넣고는 시선을 피했고, 에단은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그런 에단을 본 사미라가 피식 웃었다.
“죄다 어중이떠중이들이죠?”
“뭐, 딱히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있는데.”
“전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더군요. 전쟁을 우습게 아는 거죠.”
“상대는 대비를 안 하고 있나?”
이 질문에는 칼센이 나서서 대답했다.
“자체적인 병력만으로 영지전을 준비 중인 것 같습니다.”
판을 벌이려는 체이베르와는 달리 상대 진영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근황을 알기 위해 찾아가는 자들도 문전박대를 당하는 상황이었다.
‘무슨 생각일까.’
에단은 고민했다. 여기부터는 원작에서 나오지 않은 내용들이다. 온전히 에단의 생각과 판단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
하지만 대충 보더라도 결과가 예측됐다. 병력의 차이가 극명했기 때문에 전술로 뒤집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유가 뭘까.’
머저리가 아니라면 결과가 보이는 영지전을 행할 이유가 없다.
‘자포자기한 상태이거나,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든가.’
에단이 생각하는 것은 후자였다. 자포자기를 한 상태라면 국왕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게 더 옳은 상황이다.
‘갈등 요인은 모르고.’
둘의 목적은 무엇일까.
에단이 생각에 잠긴 채 걸어갔다. 그러던 도중 사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야.”
에단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봤다. 투박한 글씨체가 새겨진 현판이 보였다.
“또 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사미라가 달갑지 않은 기색으로 말했다. 에단이 그 이유를 물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소란이 벌어졌다.
쾅!
문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비산했고, 이내 사람이 튀어나와 거칠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에단이 휘파람을 불었다. 꽤나 화려한 시작 아니던가.
“그딴 실력으로 입을 털어?”
기골이 장대한 민머리 남성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크, 크윽…….”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미라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또 시작이군. 제가 이래서…… 어디 갑니까?”
에단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저런 이벤트도 괜찮지만, 딱히 지켜보면서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대범한 행동은 민머리 남자의 시선을 끌었다.
“넌 뭐지? 분위기 파악할 줄 모르나?”
“볼일이 있어서.”
무덤덤한 표정의 에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민머리 남자의 눈썹이 휘었다.
“저 꼴을 보고도 무섭지 않나 보지?”
민머리 남자의 말에 에단이 고개를 돌려, 꿈틀거리고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에단의 시선이 다시금 민머리 남자에게로 향했다.
“저게 뭐?”
“……뭐?”
민머리 남자의 입에서 황당해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 혹시 머리가 아프기라도 한 거냐? 그러면 지금 말해라. 내가 어디 아픈 새끼는 건드리지 않…….”
“아픈 거는 너 아닌가?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걸 보니 꽤나 심각해 보이는데.”
“…….”
아…….
에단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멍하니 에단을 바라보던 민머리 남자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오냐. 죽는 게 소원이라면 그 소원 들어주지. 후회해도 늦었…….”
“머리는 없는 게 혀는 길구나.”
에단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뭐 해. 안 덤비고.”
나 바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