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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57화 (157/398)

◈ [157화] 입성 (1)

“하암∼ 거참, 엿 같네.”

고참병사가 욕지기를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성문 앞에 길게 늘어서 있는 줄.

“야, 이게 맞다고 생각하냐?”

고참병사가 발끝으로 후임병을 툭툭 건드렸다. 후임병 또한 짜증 어린 얼굴로 투구를 벗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루 이틀 이러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같이 이런 짓을 합니까?”

“내 말이, 씨이발.”

고참병이 걸쭉한 욕설을 내뱉으며 행렬을 바라봤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체이베르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녀석들이다.

‘어차피 죄다 받을 거면서 이게 뭔 지랄인지.’

체이베르는 영주의 뜻으로 제한 없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의 검문은 형식상의 절차에 불과했다.

‘거슬리는 놈들이 있기만 해 봐.’

고참병이 가시 돋친 눈초리로 사람들을 노려봤다. 한 놈만 걸려 보라는 심정이었다.

그때, 마차를 필두로 거친 인상의 사내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고참병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찔거렸다.

‘……뭐야, 저 새끼들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옷가지는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표정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초췌한 얼굴만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새끼들은 위험하다.’

오랜 병사 생활을 통한 관록이다. 이 녀석들은 들여보내서는 안 되는 녀석들이었다.

“정지.”

고참병이 목소리를 가다듬은 채 읊조렸다.

무게감 있는 목소리에 후임병이 힐긋 바라보더니 덩달아 긴장을 머금었다.

“신원 확인하겠습니다. 소속을 밝히시죠.”

고참병이 마른침을 삼켰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천천히 고참병을 바라봤다.

“……소속?”

주먹 용병단원 중 하나가 고참병을 지그시 바라봤다. 감정 없는 시선에 짙은 꺼림칙함이 느껴졌다.

“네……. 소, 소속을 밝히십시오.”

꽈악.

고참병이 창 자루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이 새끼들은 도대체 뭐야?’

검문 경력이 많은 고참병이었지만 이들은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마차 위에 있던 큰 덩치의 남성이 마차 안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도련…….”

“미쳤냐?”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살벌한 목소리에 남자가 찔끔하며 말을 정정했다.

“……단장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알겠어.”

이윽고 마차에서 젊은 청년이 내려왔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미남자였다.

‘얘는 또 평범하네?’

곁에 있던 이들과는 전화 상반된 모습에 고참병은 볼을 씰룩였다.

‘별것도 아닌 놈들이면 아주 죽을 줄 알아라.’

비교적 어려 보이는 에단의 모습에 긴장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남자가 터벅터벅 다가오더니 고참병 앞에 섰다.

“체이베르에 들어가고 싶어서 왔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습니까? 이 긴 줄이 모두 체이베르에 들어가려고 있는 사람들인데.”

고참병은 불편한 심기를 표정에 드러내며 까칠한 반응으로 응수했다.

에단이 그런 고참병을 멀뚱멀뚱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 그럴 수 있죠. 당연한 얘기를 했네요. 저희는 용병단입니다.”

“용병단이라고? 영지전을 준비하러 왔습니까?”

“네, 뭐 그런 거죠.”

“그럼 용병단 이름은 뭡니까?”

“주먹 용병단입니다.”

“주먹 용병단?”

고참병의 얼굴에 웃음기가 맺혔다. 듣자마자 조소가 터져 나올 거 같은 우스꽝스러운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 ……에단아.

페온의 목소리에도 민망함이 묻어나왔다. 그저 옆에서 듣고 있던 페온마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에단은 태연했다. 이름 따위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결국 중요한 건 실력과 성과였다. 아무리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다고 한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비웃음에도 에단이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자, 기분이 상했는지 고참병의 미간이 좁혀졌다. 고참병은 에단 일행을 쓱 둘러보더니 이내 말을 낮추었다.

“혹시 기분 나쁘다면 사과하지.”

“별로 신경 안 씁니다.”

“그래? 나라면 쪽팔려서라도 말을 못 할 것 같은데. 킥킥.”

고참병이 웃음을 터트렸다. 들어 보지도 못한 이름이 언급된 만큼 무게를 잡을 필요도 사라진 탓이었다.

“이름이 이상합니까?”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야, 쟤 머리가 이상해 보이는데 들여보내면 안 될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말입니다. 들어가서 사고 칠 것 같은데. 그런데 주먹 용병단이면 정말 주먹밖에 안 쓰는 것 아닙니까?”

“그러네? 뭐야 당신들. 그러고 보니 무기 한 자루도 없잖아?”

고참병이 묘한 눈초리로 에단과 단원들을 훑어봤다. 정말 몸에 지닌 게 없어 보였다.

“설마……. 진짜로 무기를 사용 안 하는 거야?”

“그럼요. 왜 주먹 용병단이겠습니까.”

“……미친놈들.”

고참병이 기가 차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태연히 지껄이는 고참병의 욕설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줄리엔과 단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저 미친 새끼가!’

미친 건 본인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 누구 앞에서 저따위 망발을 내뱉고 있단 말인가.

초조함에 턱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에단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는 걸 보니 당장에라도 사고가 터질 것 같았다.

“아…….”

줄리엔이 입을 벌렸다. 하지만 고참병은 아직도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에단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용병 패나 빨리 내놔.”

에단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코웃음 쳤다.

“없는데?”

“……뭐?”

에단의 어조가 뒤바뀌자 고참병이 되물었다.

‘이게 미쳤나?’

고참병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없다고?”

“어. 잃어버렸어.”

“허, 그런데 왜 이렇게 건방지지?”

“건방지다고?”

뚜둑.

에단이 고개를 꺾자, 뼈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분위기가 돌변했다. 순식간에 에단에게서 압도적인 기세가 피어올랐다.

“건방진 게 누군데?”

에단의 목소리에서 서늘함이 묻어나왔다. 뒤에 있던 단원들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조, 조졌다.’

아직 도시 안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시비가 붙기 시작했다.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지만, 에단을 말릴 수도 없었다.

‘지금 말리면 죽을 거야…….’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괜히 에단을 말리려고 들었다간 맞아 죽을 거 같았다. 줄리엔이 간절한 눈초리로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가 줄리엔의 시선을 느꼈는지 슬며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피했다.

“…….”

줄리엔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제는 믿을 구석이 없었다. 에단이 제발 큰 사고를 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용병패가 왜 없어? 너희들 다 사기꾼들인가?”

고참병이 강하게 나갔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두려움이 치밀었지만, 여기서 기가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잃어버렸다고 했잖아.”

“다른 녀석들은?”

고참병의 시선이 뒤에 있던 단원들에게로 향했다. 에단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쟤들도 전부 잃어버렸는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될 건 뭐가 있어? 너희들 용병패 들고 있냐?”

에단의 질문에 단원들이 목청껏 소리쳤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는데?”

“뭐 이런…….”

고참병이 당황해했다. 지금부터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체이베르가 지금 무제한으로 유입 인원을 받고 있다고 한들, 아예 신원이 확인 안 된 자들까지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지금 무슨 객기를 부리는 거지?’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에단의 태도는 거만했다.

“다들 잃어버렸는데 어쩌지?”

“……그럼 들어가지 못한다.”

“아, 그래?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돌아가라고?”

“지금 감히 겁박을 하겠다는 건가?”

“겁박? 이게 겁박으로 보여? 왜 진짜 겁박하는 게 뭔지 보여 줄까?”

에단이 히죽 웃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각됐다. 후임병이 창 자루를 움켜쥐며 자세를 갖췄다. 언제라도 대응할 수 있는 자세였다.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고참병이 말을 늘여놓자, 에단이 귀를 후볐다.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건 너고. 어차피 보니까 죄다 밀어 넣는 것 같은데, 왜 거들먹거리고 앉았지? 알량한 권력이라도 쥔 것 같아?”

“그러는 너야말로 뭘 믿고…….”

덜컥.

그때, 성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달려왔다.

“뭐야?”

달려온 사람은 곧장 고참병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고참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아, 들어가라.”

고참병이 일행에게 턱짓했다. 에단이 어깨를 으쓱하며 성문을 통과하려 하자, 고참병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 에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넌 안 되겠다.”

빠악!

에단의 허리가 비틀리며 그대로 주먹이 나갔다. 고참병의 턱이 돌아가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웬만하면 사고를 안 치려고 했거든?”

에단의 눈이 방금 전 나온 남자와 후임병을 번갈아 바라봤다.

“일단 너도 좀 자고 있어.”

에단이 터벅터벅 걸어가자 후임병이 당황한 기색으로 창을 찔렀다. 하지만 에단은 순식간에 접근하며 창날을 피했다.

쑤욱!

에단이 창끝을 붙잡은 채 잡아당기자 후임병이 그대로 딸려 왔다. 그리고 후임병을 기다리는 것은 에단의 무릎이었다.

뻐억!

후임병의 고개가 크게 꺾이더니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

정적이 맴돌았다. 줄리엔이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고, 휴고가 고개를 저었다.

‘……결국에는.’

상황이 잘 풀린다 했더니 결국 이 사달이 벌어졌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이 성에서 나온 남자를 응시하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정보 길드냐?’

에단의 입 모양을 확인한 남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문을 가리켰다.

“이, 일단 빨리 들어가시죠!”

에단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성문에 들어갔다. 뒤편에 서 있던 단원들과 휴고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성문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수많은 용병들과 상인들이 빼곡하게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활기와 생기가 넘쳤다.

‘……이럴 수 있는 건가?’

휴고는 의아함을 느꼈다. 영지전이 벌어지기 직전이라기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밝았기 때문이다.

“이쪽입니다.”

에단을 이끌던 남성이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비교적 외곽에 있는 여관으로 향했는데, 여관 앞에는 종업원으로 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대금은 이걸로 처리해 주고, 마차와 말도 부탁해.”

“알겠습니다.”

소년이 고개를 숙이며 마차를 인계받았다. 인계받기 전 헨리가 기지개를 펴며 마차 위에서 내려왔다.

“아∼ 드디어 도착인가요?”

단원들과 휴고가 헨리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갑작스레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헨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었나요?”

“……아닙니다.”

휴고가 한숨을 내쉬었다. 종업원이 마차를 인계받고, 일행은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여관 안에는 사람이 꽤나 차 있었다. 일행을 이끌고 온 남자가 나서서 종업원과 대화를 나누고는 에단을 향해 다가갔다.

“방은 여유분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위로 올라가서 짐을 푸시죠.”

남자의 말에 에단이 계단을 오르면서 물었다.

“그래서 대답은 언제 해 줄 거지?”

“……짐을 풀고 내려오시면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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