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56화 (156/398)

◈ [156화] 입성 준비 (2)

“하앗!”

후웅!

목검이 휘둘러지는 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채웠고, 학생들의 머리는 땀에 푹 젖어 있었다.

“다시.”

이어지는 냉혹한 목소리에 목검이 재차 움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첸이 미간을 좁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다리가 굳어 있잖나. 그딴 느려 터진 움직임으로 적을 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첸이 직접 지도하는 훈련은 엄격했지만, 그만큼 완벽에 가까웠다.

저명한 기사단의 단장이자, 마스터에 오른 이가 하는 수업이다. 이런 기회는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학생들은 일생일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회를 붙잡은 것이었다.

학생들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그만큼이나 고양감과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의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긴 시간 동안 쌓아 온, 검에 관한 관록이 궤가 달랐다.

‘이건 미쳤어.’

‘절대 쓰러질 수 없다. 차라리 죽고 말지.’

‘두 번 다시는 없을 기회다.’

학생들도 이 기회가 소중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를 악물며 지금의 수업을 견뎌 냈다.

“34번.”

“넵!”

“똑같은 지적을 반복하게 할 셈인가?”

“죄송합니다!”

“검을 휘두를 때 좌측 발끝의 각도. 지금이라면 괜찮겠지만, 실전에서 그딴 움직임이라면 곧바로 다리부터 썰릴 텐데, 다리쯤은 내주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내 말을 들어먹지 않는 거지?”

“죄송합니다!”

“주의하도록.”

그 어떤 학생도 첸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공포와 전율을 느꼈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악습관을 귀신같이 지적당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첸의 지도를 받고 있을 때, 에밀라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밀라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자리해 있었다.

첸이 지도하는 검술을 보니, 회의감이 느껴졌다.

에밀라는 수업을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새롭게 떠오르는 신성.

아무리 아카데미의 꽃이니 뭐니 하면서 칭송받는다고 한들, 블란테가 가진 이름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열의에 불타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유치한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

에밀라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오히려 그녀에게도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경지에 이른 검사의 철학을 엿볼 수가 있었다. 에밀라는 검술 교수였다. 검술을 지도하면서 스스로도 많은 것을 깨우친 경험이 있었다.

참고와 도움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발의 각도, 시선의 처리, 검 끝의 움직임, 미세한 호흡 처리.’

큰 틀부터 사소한 것까지 블란테의 색이 녹아 있었다. 에밀라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수업을 지켜봤다.

* * *

“끄아아!”

모든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지도를 받고 있는 이때, 드레이는 수준 높은 수업에 불참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에단이 맡겨 놓은 한 자루의 검 때문이었다.

‘제기랄, 이 시험을 도대체 어떻게 깨라는 말이야?’

이가 절로 갈렸다. 미쳐 버릴 지경이다. 인내심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바닥에 놓여 있는 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성검은 드레이와 엄청난 협응력을 자랑했다. 드레이가 가진 반쪽짜리 성자로서의 신성력과 성검이 가진 막대한 정화의 빛.

두 가지 기운이 합쳐지면서 무지막지한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전신을 휘감은 찬란한 휘광과 막대한 신성력.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이 정도이니, 성검의 인정을 받은 이후는 더욱 기대가 되었다.

‘지금 당장도 여동생과 비교해 밀리지 않아.’

아니, 발산하는 기운만 놓고 보면 드레이는 여동생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반쪽짜리 성자인 드레이가 완연한 성녀인 그녀의 여동생을 잠시나마 압도할 정도였다.

전율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도 느꼈다.

‘부담 따위가 아니야.’

드레이는 본인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이 기운을 컨트롤할 수가 있다고?’

공포를 느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드레이는 그중 일부를 끌어온 것에 불과했다.

일부를 끌어다 썼음에도 몸에 엄청난 부하가 걸렸다. 육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육체의 상처는 성검의 힘으로 순식간에 치유된다.

문제는 정신 쪽이었다. 정신이 압도적인 기운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육체와 정신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녀의’ 욕설이 드레이의 정신을 더욱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악마가 깃든 마검이 이럴까.

검을 쥐면 수많은 욕설이 난무했고,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는 말들이었다.

차라리 그것뿐이면 견딜 수 있었다.

성검을 온전히 다루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문제는 그 시험의 난이도가 이상하다는 것.

‘이건 미쳤어.’

도저히 통과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정신 나간 난이도였다.

‘……교수님은 이걸 통과했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애초에 인간 같지가 않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카이나의 증언을 들으면 더욱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꽈드득!

드레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깨문 입술에서 붉은 피가 떨어졌다.

“내가 어떻게든 하고 만다.”

드레이가 다시 성검을 쥐었다.

― 어라? 엄마 젖도 덜 먹은 머저리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검을 쥐자마자 카이나의 신랄한 욕설이 들려왔다. 드레이는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꾹 눌러 참았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드레이는 더 이상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 * *

전쟁은 잔혹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죽음이 난무하는 곳에서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시체를 뒤지고, 누군가는 물자를 판다.

실력을 입증한 용병은 돈과 명예를 얻고, 위험과 리스크를 감수하고 물자를 파는 상인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전쟁이라는 잔혹한 단어 앞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막아설 수 없었다.

그리고 에단과 일행도 그 안에 발을 들이려고 하고 있다.

에단은 체이베르에 들어가기 전,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수정구 안에서 이제는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오랜만이다?”

― ……오랜만이군요.

“잭슨은 잘 도착했나?”

― 하아, 네. 얼마 전에 도착했습니다.

“물건은 받아봤겠군. 어때? 쓸 만한 것 같아?”

에단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자, 메이가 고개를 저었다.

― 생각보다 더 큰 거물들이 엮여 있더군요. 위험한 자들입니다. 그자들은 하이에나가 아닌, 이리 떼입니다.

“흑사자를 앞에 두고 고작 늑대 새끼를 무서워한다고?”

에단이 코웃음을 치자, 메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곧장 말을 이었다.

― 두려워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정보 길드니까요.

“그거 다행이네. 그래서 너희와도 엮여 있는 놈들이 있나?”

― 귀족들은 필연적으로 저희와 엮여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개별적인 정보 집단을 구축한 귀족들도 있지만, 저희 수준에서 보면 애송이나 다름없죠?

“그래? 개판 나기 직전인 조직의 수장이 하는 말이라 쉽게 신용이 안 가는데.”

― …….

가슴을 후비는 에단의 말에 메이가 입을 다물었다. 에단이 어떤 일을 언급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뭐, 그건 두고 봐야 할 일이고, 그래서 작업은 시작했나?”

― 네. 처음부터 폭탄을 터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천천히 물밑 작업부터 들어가고 있습니다.

“실망시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너희도 따로 쥐고 있는 게 있잖아?”

― 걱정 마시죠. 물론 저희도 안위를 지키기 위한 것들을 준비해 두긴 했습니다.

“그것도 같이 터트려.”

― 지불할 대가는 있으십니까?

“대가?”

― ……농담입니다.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아 주세요.

에단의 표정이 날카로워지자, 메이가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그것들 말고 추가로 할 일도 있어.”

― ……또 있습니까?

더럽게 부려 먹는구나.

하지만 에단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메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이제부터 체이베르에 들어선다.”

― ……체이베르 말씀이십니까? 거긴 지금…….

“어. 전쟁 직전이지.”

― 또 무슨 일로 가 계신 겁니까?

“몸값 좀 올리려고. 겸사겸사 만날 녀석도 있고.”

― ……한니발 말씀입니까?

“또 누가 있겠어?”

에단이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거상 한니발. 거상이라는 칭호가 붙을 만큼 유명한 상인이다. 상인은 태생부터 선량할 수가 없는 족속이었다.

돈에는 선과 악이 없었고,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는 타인의 손해가 불가피하다.

한니발은 막대한 재산을 지니고 있는 상인이었고, 그만큼 소문도 뒤숭숭했다.

그리고 정보 길드는 그 소문을 파헤치는 녀석들이었다.

“지금 사미라가 붉은 곰과 접촉하기 위해서 영지전에 참전한다고 했지?”

― 그렇습니다.

“그거, 우리도 참전하게.”

― 블란테가 참전한다는 소리이십니까? 그렇게 되면 너무 큰 파장이…….

“아닌데? 이전부터 왜 이렇게 가문을 들먹여?”

― 그렇다면 대체…….

“내가 용병단 하나 창단했어.”

― ……용병단 말씀이십니까?

메이가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만큼 에단이 하고 있는 소리가 황당했기 때문이다.

“어, 이름은 주먹 용병단.”

― …….

촌스러운 단체명에 메이가 차마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에단은 메이의 반응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에단이 메이를 향해 말했다.

“대충 절차 좀 밟아 둬라. 들어설 때 귀찮은 일 안 생기게끔.”

용병단을 창설했다고 해서 누구나 용병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용병이 되고, 용병단을 창설하면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만 했다.

― 알겠습니다.

에단이 내뱉은 황당한 말에도 메이는 그저 알겠다고만 답했다.

‘문제는…….’

에단의 말이 허황되게만 들리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이번에도 에단이 무언가 일을 벌일 것 같았다.

― 처리해 두도록 하죠.

메이가 씨익 웃으며 답하자, 에단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다.”

에단이 담백한 인사와 함께 통신을 끊었다. 수정구를 다시 품에 집어넣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헨리가 물었다.

“에단 님…….”

“왜?”

“혹시 무슨 계획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헨리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였다.

“궁금해?”

“궁금합니다.”

“네 빚 갚으려고 발악하는 거잖아.”

“…….”

할 말을 잃은 헨리가 입을 다물었다.

“빚쟁이 주제에 아주 때깔이 좋다?”

“죄송합니다.”

헨리가 고개를 숙였다. 빚에 관한 말만 나오면 할 말이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그때 마부석 방향에서 줄리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원자와도 같은 줄리엔의 목소리에 헨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단이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전운이 감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길을 지나고 있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공기가 무거웠다.

성문 앞에는 꽤나 긴 행렬이 서 있었고, 일행과 일행의 마차도 그 행렬에 함께해 있었다.

‘시작인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