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입성 준비 (1)
체이베르 백작.
에단이 향하는 체이베르 령의 영주이자, 라온 왕국의 귀족이다.
체이베르 백작에 관한 정보는…….
‘나는 몰라.’
에단은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사소한 엑스트라 캐릭터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소설을 읽지는 않으니까.
애초에 인물 조사는 따로 할 녀석들이 있었다.
‘당부는 해 뒀으니 알아서 하겠지’
정보 길드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밥값을 할 시간이었다. 녀석들은 신설된 용병단의 소문을 퍼트리고, 명성을 높여 줄 장치이기도 했다.
에단이 팔장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았다.
덜그럭덜그럭.
마차의 탑승감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꽤나 긴 시간이 흘렀을 때, 줄리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왜?”
에단이 고개를 돌리자, 줄리엔이 멋쩍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적들입니다.”
“뭐?”
에단이 기가 차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줄리엔도 민망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 하하……. 어떻게 할까요?”
“반대로 내가 묻자. 어떻게 해야 할까?”
“……음, 타일러 볼까요?”
“아니, 죽여.”
에단의 말에 줄리엔이 샐쭉한 표정이 되었다.
“전부 말입니까?”
“아니, 한두 명은 살려 보내. 보내면서 용병단 이름 좀 흘려 두고.”
“……용병단 이름이요?”
줄리엔이 ‘그런 게 있었습니까?’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여 있어 보이는 이름을 지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쓰임새는 한정돼 있었고, 급조한 용병단에 불과했다.
에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주먹 용병단.”
“……주먹 용병단이요?”
진짜 별론데.
질색하는 줄리엔의 얼굴을 보며 에단이 미간을 좁혔다.
“왜, 불만 있어?”
“아니요. 그럴 리가요. 주먹 용병단이라니, 기억하기도 편하고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 의외네. 난 되게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
“뭐, 일단 그래도 명색이 주먹 용병단인만큼 무기나 그딴 걸 쓰지는 않겠지?”
“……네?”
“주먹으로 죽여.”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차별성을 가져가자고.
* * *
“히, 히익……!”
약탈하러 달려왔던 도적들 대부분이 죽었다. 그리고 에단의 명령대로 몇 명은 살려 보냈다.
겁에 질린 채 부리나케 도망가는 도적 하나에게 줄리엔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크하하핫! 우리가 바로 ‘주먹 용병단’이다!”
줄리엔이 내뱉은 말에 다른 산적들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뭡니까? 그 엿 같은 이름은?”
“쪽팔리니까 하지 마쇼.”
“그 이름 내가 지었는데?”
어느새 마차에서 내려온 에단이 말하자, 산적들의 얼굴이 굳었다.
“……농담이었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에 드는 이름인뎁쇼?”
순식간에 돌변하는 태도에 줄리엔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새끼들이……!’
어찌 된 녀석들이, 두목이었던 자신은 개무시하는 주제에 에단에게는 쩔쩔맨단 말인가.
그때 에단의 눈이 줄리엔에게로 향했다. 줄리엔이 순식간에 고개를 푹 숙였다.
“얘들이 전부야?”
“그렇습니다. 뭐 크게 실력 있는 녀석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뭐, 도적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자기소개하냐?”
“…….”
정곡을 찌르는 에단의 말에 줄리엔이 입을 다물었다. 에단이 휴고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 것 같아?”
“음…….”
휴고가 침음을 흘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는데요?”
“아니, 도적들 말고 얘들 말이야.”
에단이 산적들을 향해 턱짓했다. 휴고가 그제야 산적들을 바라봤다.
“……하하.”
휴고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에단의 이마에 줄이 그어졌다.
“글러 먹었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 흐음…….”
에단이 산적들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에단의 시선이 닿자 산적들이 몸을 떨었다.
“야, 산적 놈들아.”
“넵!”
에단의 부름에 산적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중에 자신이 아직도 곰 세 마리니 뭐시기니 하는 산적이라고 생각하는 놈 있으면 거수.”
“…….”
당연히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아. 없다 그거지?”
에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줄리엔이 침을 꿀꺽 삼켰다.
‘……또 무슨 짓을 시키려고.’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에단이 말을 이었다.
“너희는 이제부터 주먹 용병단이다.”
“…….”
산적들, 아니, 주먹 용병단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대부분의 단원들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닙니다!”
“좋아, 맘에 드는 눈치니까 다행이군. 이제 너희들은 무기를 들면 안 돼.”
“설마 이유가…….”
한 단원이 묻자, 에단이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주먹 용병단인데 무기를 쓰면 어떡해?”
“…….”
너무나도 황당한 이유에 단원들이 입을 벌렸다.
“……그게 가능합니까?”
“왜 불가능해?”
에단이 손가락을 들어 휴고를 가리키다 본인을 가리켰다.
“쟤, 나.”
못 할 게 뭐 있어?
“…….”
아, 그렇네. 못 할 게 없긴 하네. 그렇지…….
단원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들도 에단과 휴고가 싸우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저 둘은 애초에 예시로 둘 수가 없는 괴물들이었다. 어떻게 괴물과 인간을 동일 선상에 둔단 말인가.
“물론 지금은 힘들겠지. 시간도 꽤나 오래 걸리겠고, 방금도 대부분은 휴고가 처리했지.”
에단이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에단의 말대로 도적들의 대부분은 휴고가 처리했다. 산적들도 주먹질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날붙이를 든 상대를 주먹으로 상대하는 일은 어지간한 담 없이는 쉽지 않았다.
“이해는 해, 이해는.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겠지?”
에단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단원들의 마음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어,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이시죠?”
“그런 당연한 걸 질문이라고 하고 있어? 당연히 수련이지. 너희들 좋아하는 거.”
“……네?”
단원들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수련으로 되는 문제란 말인가? 지금껏 해 온 근육 트레이닝과는 결이 달랐다.
에단이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기대하라고.”
단원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 * *
도적을 만나고 며칠이 더 흘렀다.
그동안 주먹 용병단원들은 끔찍한 나날들을 보내는 중이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에단이 주관하는 트레이닝은 동굴에서의 운동이 장난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평소라면 불편하기 그지없는 노숙이었지만, 자는 시간만이 기다려졌다.
적어도 잠자는 시간 동안은 해방이었으니까.
‘이건 미친 짓이야.’
‘뭐? 사람의 몸이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에단이 하는 모든 말이 미심쩍었다. 하지만 감히 도주하거나 반항하는 단원들은 없었다.
애당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게 기적인 이들이다. 감히 블란테 인근에서 블란테를 언급하며 에단을 죽이려 들었으니까.
줄리엔을 향한 단원들의 원망이 더욱 깊어졌다. 줄리엔도 그걸 알고 있었으나 차마 할 말이 없었다. 억울함도 들었지만 결국 가장 죄가 큰 것은 줄리엔이었으니까.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피폐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외심도 들었다.
‘……저게 사람이야?’
단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휴고는 자신들이 죽어 나가는 운동량을 가볍게 소화했다.
타닷!
엄청난 거리를 순식간에 주파하며 동시에 물구나무를 서서 푸시업을 하고 있었다.
“…….”
단원들과 줄리엔이 제자리에서 입을 벌리고 있자, 서늘한 음성이 그들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아주 살판났다?”
“히, 히익!”
단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달리기가 끝나면 에단이 주관하는 ‘맨몸 격투’ 강습 시간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관심과 흥미를 느꼈다. 그들이 보기에도 에단이 보여 주는 격투술의 경지는 궤를 달리했으니까.
빠악!
에단의 주먹이 줄리엔의 간을 두드렸다. 줄리엔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누가 꿇으래?”
에단이 줄리엔을 노려봤다. 에단이 줄리엔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일으켰다.
“끄으으으!”
“내가 말했지. 내 허락 없이는 눕지 말라고.”
이건 합법적인 구타였다. 예상대로 에단이 가진 해박한 격투술은 놀랍기 그지없었으나, 격투술 시간 동안은 정말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얻어터졌다.
후웅!
단원 하나가 공중을 날았다.
콰앙!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커헉!”
바닥에 메다 꽂힌 단원이 신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에단의 눈은 무심했다.
“할 수 있겠지?”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단원들이 공포에 떨었고, 휴고는 멀리서 그 강습을 바라보며 안도했다.
‘……나는 약과였어.’
가토와 함께하던 수련은 정말이지 자애로운 편이었다. 지금 에단의 모습은 마계에서 기어올라온 마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칠고 무모하게만 다루지는 않았다.
그들은 전례 없는 가파른 성장을 하고 있었다. 휴고도 에단의 격투술을 이렇게 제대로 보고 관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도련님은 저런 것을 어디서 배운 거지?’
홀로 독학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이해도였다. 그만큼이나 에단의 기술에서는 노련한 관록이 느껴졌다.
에단이 마차에서 목검 한 자루를 줄리엔에게 던졌다.
“자, 네가 기사라고 생각하고 덤벼 봐.”
에단이 손가락을 까딱거렸고, 그와 동시에 줄리엔의 얼굴엔 두려움이 맺혔다. 줄리엔이 머뭇거리고 있자 에단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줄리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으, 으아아아아!”
줄리엔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에단이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검과 주먹. 둘의 리치 차이는 절대적이다. 그리고 살상력 또한 크게 차이가 나지.”
후웅!
목검이 거친 파열음을 일으키며 날아왔으나 에단은 무심한 눈으로 목검을 바라봤다.
“대부분 상대가 노려 오는 것은 머리다. 머리를 기점으로 사선으로 휘두르지. 이유는 단순해. 가장 면적이 넓기 때문이다.”
에단이 가볍게 몸을 틀어 줄리엔의 공격을 피해 냈다.
“거리가 일정 이상 가까워진다면 상대의 이점은 사라진다. 오히려 예상 못 할 공격을 날리는 우리가 더욱 유리해지지.”
콰직!
에단의 발이 줄리엔의 발등을 내려찍었다.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줄리엔은 인내심을 발휘하고는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하지만 그 공격은 줄리엔의 손목이 붙잡힘으로써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이 났다.
“자, 상대의 손목을 붙잡았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을 마친 에단이 발을 들었다. 에단이 노리는 것은 줄리엔의 무릎이었다.
오블리크 킥.
“무릎은 측면에서의 충격은 견딜 수 없어. 여기서 상대의 무릎을 어긋나게 만드는 거다. 평생 목발을 짚게 만들자고.”
에단이 무릎을 지르밟는 시늉을 하자, 줄리엔이 공포 어린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무릎을 작살냈으면, 이제 얼굴이겠지?”
에단이 줄리엔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곧장 무릎을 들이밀었다.
줄리엔의 눈앞에 에단의 무릎이 보였다. 실제로 공격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줄리엔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코도 뭉개 버려.”
“…….”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는 에단의 모습에 단원들은 부르르 몸서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