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새로운 계획 (1)
일행은 게이트가 있는 도시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아무리 둘의 발이 빠르다 한들 그 먼 거리를 쉬지 않고 주파할 수는 없었다.
도시에 도착한 일행은 지체 없이 곧장 게이트를 이용해 영지 인근의 도시로 이동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
“그럴 수밖에.”
헨리의 말에 에단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변방을 호령하던 블란테가 예고 없이 움직였으니 전운이 감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전쟁이 될 수도 있고.’
상대가 굴복하지 않고 이빨을 들이민다면 어쩔 수 없었다.
‘칼을 뽑아야지.’
대륙의 규합은 결국 에단의 과제였다. 분열된 상태로는 지하 놈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아무 데나 잡자고.”
날이 저물고 있었다. 에단은 특출한 것 없는 무난한 여관 하나를 선정해 들어갔다.
허름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은, 적당한 여관.
에단이 들어서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마중을 나왔다.
“어서 오세요. 방이 필요하신가요?”
“인원은 세 명. 방은…….”
에단이 고개를 돌려 헨리와 휴고를 흘겨봤다.
휴고와 헨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은 기색을 풍겼다. 그 모습에 에단은 고개를 저으며 주인에게 물었다.
“방이 얼마나 있죠?”
“방은 많습니다. 각자 따로 드릴까요?”
“부탁드리죠.”
“알겠습니다. 식사도 하시겠습니까?”
주인의 물음에 에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끼니를 거른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기회가 있을 때 적절한 열량을 섭취하는 게 좋았다.
“그것도 부탁드리죠.”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해 드리죠. 방은 위쪽에 빈방이라고 쓰여 있는 곳 아무 데나 쓰시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주인은 주방을 향해 사라졌다. 에단과 일행이 계단을 올랐다.
“방이 많군.”
에단이 중얼거렸다. 주인이 따로 객실을 안내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거의 대부분의 방에 빈방이라는 팻말이 적혀 있었다.
‘이것도 블란테의 영향인가.’
엄밀히 말하면 이 지역은 블란테의 영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블란테라는 거물의 입김이 닿는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블란테의 최근 동향이 심상치 않은 만큼 뒤숭숭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각자 적당한 방으로 흩어져 짐을 풀었다. 사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대부분 빈손으로 온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략 하루 정도인가.”
에단과 휴고가 제대로 뛰기 시작하면 영지까지 하루면 충분하다.
‘가문에 들를 필요는 없으니.’
곧장 산맥을 오를 생각이었다.
에단이 짐을 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몇몇의 테이블만 차 있었고 대부분 한산했다.
에단이 적당한 테이블에 앉아 있자, 주인이 먼저 맥주 한 잔을 가지고 왔다.
“잘 마시지.”
에단이 피식 웃으며 은화 하나를 건네자, 여관 주인이 고개를 숙였다.
에단이 대충 맥주를 마시고 있자, 휴고와 헨리가 내려왔다. 헨리는 벌써부터 맥주가 그리운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에단 옆에 앉은 휴고는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했다.
“도련님, 하나만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말해 봐.”
“가문에 들르는 이유가 뭔가요?”
휴고의 질문에 헨리도 궁금하다는 기색을 띠었다.
에단은 말없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글쎄, 뭘 것 같아?”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가문 내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나 보지 않았습니까? 구태여 지금 가문으로 복귀하는 이유가…….”
‘이 녀석은 모를 만하군.’
에단이 고소를 머금었다. 휴고는 그곳에 들렀지만 기억이 없었다.
“가 보면 알아.”
에단의 의미심장한 대답에 휴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단은 그 이상 설명해 주지 않았다.
백 번의 대답보다 한 번의 설명이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주인이 금세 음식과 맥주 두 잔을 추가로 내왔다. 꽤나 먹음직해 보이는 음식이었다.
‘그래도 역시 현대와 비할 바는 아니지.’
음식 맛은 평이했으나, 현대의 자극적이고 깔끔한 맛과는 비할 바가 없었다.
“정말 전쟁을 준비한다고?!”
“……쉿! 이 사람이, 어디서 큰일 날 소리를……!”
그때 일행의 귀를 파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화를 경청했다.
“아니, 가만히 있던 블란테가 뭣 하러 전쟁을 준비한단 말이야?”
“정기 토벌 아니면 꼼짝도 않던 블란테가 움직이는 이유는 당연하지 않나? 지금 파다한 소문이 그것에 관한 얘긴데, 자네는 귀라도 먹은 건가?”
휴고와 헨리도 대화를 들은 건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달그락.
셋은 별다른 대화 없이 맥주 한 잔과 음식을 비웠다. 헨리는 맥주가 더 고픈 듯 보였지만, 어림도 없었다.
* * *
새벽이 되자 일행은 빠르게 움직였다. 구태여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낼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눈을 비비며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가 미묘한 표정으로 헨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등을 내밀었다.
폴짝.
헨리가 휴고의 위에 올라탔다. 이제는 민망하지도 않은지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럼 가자.”
“하암, 네에∼”
“…….”
헨리가 하품을 내뱉으며 대답했고, 휴고는 고개를 저었다.
타닷.
에단이 지면을 박차며 달리기 시작하자, 휴고가 곧장 그 뒤를 따랐다. 풍경이 빠르게 변화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이제는 체력 훈련도 힘들겠네.’
에단의 육체는 이미 마스터의 반열에 오르며 벽을 부순 상태였다.
당연히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어지간해서는 지치지가 않는다.
자고로 신체는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성장하는 법이었지만, 에단의 신체는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았다.
에단이 힐긋 뒤를 바라봤다. 휴고의 호흡이 조금은 거칠어졌다.
‘이 녀석을 단련시키기는 아직 충분하겠어.’
에단이 속도를 올리자, 휴고가 이를 악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에단이 웃음을 머금었다.
* * *
“하나!”
“흐읍! 후우!”
우렁찬 기합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기괴한 조합이다. 웃통을 까고 있는 남정네들과 몬스터, 그리고 밤의 일족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대열을 갖춘 채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절도 있는 모습.
“둘!”
“흐읍! 후우!”
줄리엔의 구령에 맞춰 사람들(?)의 팔이 움직였다.
가슴에 자극을 유지하며 행하는 수축과 이완에 그들은 모두 열의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버겁습니까?!”
“그럴 리가!”
줄리엔의 물음에 가장 먼저 벨몬트가 대답했다. 벨몬트는 더 이상 앙상하고 가녀린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비록 우람한 몸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보기 좋은 몸이었다. 짧은 시간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벨몬트는 난생처음으로 열정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가 뜨거운 시선을 교환했다. 비좁은 동굴에는 진한 땀 냄새가 가득했지만, 불쾌해하는 기색을 띠는 자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셋!”
“흐읍! 후우!”
줄리엔의 구령이 이어지자, 다시금 몸이 움직였다. 모두 일제히 팔이 굽혀지고, 펴졌다.
자극을 온전히 느끼며 모든 신경을 집중하던 그 순간에.
터벅.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은 채 모두 근육의 자극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너희들 뭐 하냐?”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제야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허억.”
헛숨을 마시는 소리와 함께 남성 하나가 바닥에 엎어졌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선량한 시민이었던 자신들을 악몽에 몰아넣었던 얼굴.
“뭐 하냐고.”
재차의 질문에서 불쾌한 심기를 감지해 낸 줄리엔이 섬광처럼 달려와 에단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 말씀하신 대로 훈련 중이었습니다!”
“그래? 대답이 늦은 건 훈련 때문이지?”
“그렇습니다! 모두 근육 한 올 한 올 자극을 느끼며 최대한의 집중을 발휘…….”
“사족은 집어치우고.”
말을 끊은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선이 향한 줄리엔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등줄기에 소름이 타고 올랐다.
“너 누구냐?”
“……네?”
줄리엔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아니, 누구냐고.”
“……줄리엔입니다.”
“줄리엔?”
에단이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아, 네가 그 추잡하게 생긴 산적이야?”
“…….”
무례하기 그지없는 언행에 줄리엔이 입을 다물었다.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것 같았다.
쪼그려 앉은 에단이 줄리엔과 눈을 마주쳤다.
‘……제기랄 다시 봐도 오금이 저리네.’
숱한 사람을 만나 온 줄리엔이었지만, 에단처럼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은 처음 겪었다.
줄리엔이 마른침을 삼키며 에단의 대답을 기다리자, 에단이 감탄하는 얼굴로 줄리엔을 바라봤다.
“이야, 수염 좀 밀었다고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지? 어울리지 않게 이름이 곱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이랑 매치가 잘되네.”
“……감사합니다.”
여기서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숙였다.
에단이 몸을 일으켜 뒷짐을 쥐었다. 수컷의 진한 향취가 가득했다. 그 말인즉, 땀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다는 소리.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리니 휴고는 거의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이 안쓰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휴고의 후각은 인간보다 극도로 예민한 편이었으니 이런 반응을 보여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에단은 천천히 사람과 군데군데 속해 있는 몬스터들을 훑어봤다.
‘이건 뭔 놈의 조합이야?’
낯섦을 넘어서 황당함이 느껴졌다. 에단이 기가 차다는 눈으로 저편을 바라보니 벨몬트의 얼굴이 보였다.
에단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다?”
“…….”
벨몬트가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벨몬트의 몸을 바라본 에단이 작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과거 피죽도 못 먹은 몸을 하고 있던 벨몬트가 지금은 나름대로 보기 나쁘지 않은 몸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낮게 깔리는 벨몬트의 음성에 에단이 눈을 끔뻑였다.
“군?”
“그대 덕분에 적지 않은 성취를 얻었다.”
“다?”
“위대한 밤의…….”
“야, 내 말 씹냐?”
에단의 눈초리가 사나워지자, 벨몬트가 순식간에 눈을 내리깔았다.
“죄송합니다.”
“그래, 처음부터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뭐 나름 시킨 대로 잘한 것 같긴 한데……. 보고는 나중에 듣고.”
에단이 휴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린 채 있는 헨리와 창백한 얼굴로 구역질을 하던 휴고가 고개를 들었다.
“우욱! 도련님, 이건 너무…….”
휴고가 고개를 들어 에단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벨몬트를 향해 시선이 돌아갔다.
“…….”
“…….”
순간 주변에 정적이 맴돌았다.
“……설마 저 녀석은.”
벨몬트가 설마 하는 그때, 휴고의 동공이 가늘어지고…….
“지금은 안 돼.”
빠악!
에단이 뒤통수를 후려치자, 휴고는 그대로 머리부터 바닥에 엎어졌다.
쿵!
지면에 쓰러진 휴고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