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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48화 (148/398)

◈ [148화] 뜻밖의 수확 (2)

블란테가 아카데미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륙 전역에 퍼질 게 분명했다.

권력자들은 결코 블란테의 진출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철저히 견제하고 배제하는 것.

그게 그녀가 알고 있는 귀족들이었다.

‘……정말 가능할까?’

에단의 계획은 들었다.

대륙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하고 무모한 계획이다.

‘……하지만.’

에단이라면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단의 얼굴에는 한 치도 걱정이나 의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감이 가득한 얼굴을 보자, 그녀가 품고 있는 고민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지?”

“……아닙니다.”

“내가 또 할 일이 생겼거든? 대충은 알고 있지?”

“……바로 가시는 겁니까?”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떠난다는 말인가.

야속함이 들었다. 에단이 에밀라를 말없이 바라봤다.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놀러 가냐?”

황당하다는 듯 물어 오는 에단의 말에 에밀라가 미간을 좁혔다.

“제 표정이 뭐가 어때서 말입니까?”

“나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가는 거니까 시비 걸지 말고, 넌 따로 뭐 좀 하고 있어라.”

“……뭘 말씀이시죠?”

에단이 서류 몇 장을 건네줬다. 헨리가 가져온 장부의 사본이었다.

서류를 받아 들어 훑어보던 에밀라의 눈이 점차 커졌다.

“이건…….”

“익숙한 이름이 있나?”

“네. 레벨린 님이 저와 함께 이동할 때 만났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어. 조만간 네가 해야 할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수업에 대한 부담은 꽤나 줄었겠지? 아무렴 블란테가 검술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마다할 녀석이 누가 있겠어?”

“…….”

배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에단의 언행에 에밀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그렇게 얼굴 구기지 마. 여기 있는 동안 노인네 옆에서 기술이나 좀 익혀.”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아, 너는 아직 모르겠구나?”

에단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아명의 모티브. 아무래도 원조한테 배우는 게 여러모로 낫지 않겠냐?”

“그게 대체 무슨…….”

에단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밝은 달.”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에단의 말에 에밀라의 몸이 흠칫했다.

“명색이 새벽의 달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 제대로 배워 봐야 하지 않겠어?”

“설마…….”

에밀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굳혔다.

“빨리 가 봐. 말은 해 뒀으니까.”

배울 거면 제대로 배워야지.

* * *

떠날 채비는 빠르게 끝났다. 인원이 적은 만큼 마차는 필요하지 않았다.

‘마부도 없고.’

가토가 따라나서지 않는 이상 말과 마차는 짐에 불과했다. 말들은 본능적으로 휴고를 두려워했으니까.

구태여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에단은 이미 빈센트와 다른 인원들에게 떠난다는 언질을 해 놨다.

“그럼 잘 좀 부탁드립니다.”

“건방진 놈.”

빈센트가 눈살을 좁히며 말했다. 에단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있느냐?”

“제가 누구 아들인데요.”

“여전히 입은 살았구나.”

“제가 언제 증명 못 할 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래, 이번에도 어디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

“그럼 고생 좀 해 주십쇼. 제가 큰 거 하나 준비해서 오겠습니다. 그전까지는 자신 있으시죠?”

에단의 물음에 빈센트가 코웃음을 쳤다.

“너야 말로 나를 뭐로 보는 게냐?”

“노파심에 한번 해 본 소리였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도록 하죠.”

씨익 웃은 에단이 몸을 돌렸다.

다음 에단이 향한 장소는 드레이가 있는 곳이었다. 드레이는 에단이 따로 마련해 둔 연무장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나?”

능글맞은 표정으로 등장한 에단을 향해 드레이가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냈다.

“왜 그렇게 죽상을 쓰고 있어?”

“……그걸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드레이가 성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체 저건 뭡니까?! 정말 성검이 맞습니까? 무슨 욕을 이렇게……. 저 이러다가는 정신병 걸릴 것 같습니다.”

드레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퀭한 눈빛을 보니 허언이나 과장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불쌍한 새끼.’

에단은 드레이의 절절한 마음을 백분 이해했다. 에단이 몸소 겪던 일인데 어떻게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성검은 더 이상 에단에게 크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다.

에단보다 드레이가 쥐는 것이 훨씬 효율이 높았다.

드레이의 한탄을 들어주던 에단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여동생 구하기 싫어?”

“……!”

드레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걸 어떻게…….”

“내가 그것도 모르고 너한테 저걸 쥐여 줬겠어?”

에단이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드레이를 바라봤다. 서늘한 시선에 드레이의 얼굴이 굳었다.

“정 힘들겠으면 말해. 네가 거기까지인 거니까.”

에단의 무덤덤한 말에 드레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방법이…… 있는 겁니까?”

“내가 말했지, 쫄지 말라고. 신성 왕국? 뭐 어쩌라고?”

에단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리는 블란테야. 정면으로 붙으면 우리가 밀릴 것 같아?”

오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에단의 말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자신감에는 분명한 힘이 있었다.

드레이가 입술을 깨물며 에단을 바라보았다. 분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에단이 핏발 선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부족한 건 명분뿐이야. 내가 말했잖아. 저걸 소화 못 하겠어? 그러면 포기해도 돼.”

“……정말로 저 검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그 빌어먹을 새끼들 상대로 숨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그러면 여동생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

드레이의 물음에 에단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안 믿겨?”

그 순간, 에단이 몸속에 잠재되어 있던 기운을 끌어올렸다.

에단의 몸속에는 바다 같은 마나가 잠들어 있었다. 조금만 깨워도 충분하다.

쿠우우우우―!

머리칼과 옷자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압도적인 위압감에 드레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드레이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몸을 짓누르는 마나에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끄으으…….”

드레이의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에단이 가볍게 방출해 낸 기운에 드레이는 호흡조차 통제를 당하고 있었다.

그 순간, 에단이 마나를 거뒀다.

압박하던 기운이 사라지자, 드레이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토해 내는 드레이는 그 잠깐 사이에 머리와 옷이 푹 젖을 정도로 많은 양의 땀을 흘렸다.

드레이가 공포에 젖은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이래도 못 믿겠어?”

“……당신은 대체 뭡니까?”

드레이의 물음에 에단이 눈을 끔뻑였다.

“무슨 놈의 질문이 그딴 식이야? 반대로 네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어?”

에단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드레이가 입을 다물었다. 뭔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대충 납득했으면 어떻게든 성검의 인정을 받아. 다시 말하지만 너는 그 뭣 같은 신성 왕국에 엿을 먹일 수 있는 희대의 조커 카드니까.”

“…….”

까드득.

드레이가 이를 악물었다. 드레이의 얼굴이 결의로 가득 찼다.

이제 드레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에단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후우, 살았다.’

― ……정말 그게 전부냐?

에단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자, 페온이 묘한 어투로 물었다.

‘그게 전부겠습니까? 카이나 님을 진즉에 떼버리고 싶었습니다. 속이 다 시원하네요.’

― 큭큭큭 그럴 줄 알았다. 카이나가 이 말을 들으면 아주 볼 만하겠군.

‘허, 페온 님은 아니던 것처럼 말하시는군요.’

― 내가 언제 아니라고 했느냐? 죽을 맛이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다.

‘역시 그렇죠?’

―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군.

큭큭큭.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 * *

“으으으.”

헨리가 침울한 얼굴로 에단과 휴고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기억을 되찾고 힘을 얻으며 체력이 좋아지기는 했으나, 에단과 휴고와 비교할 수준은 되지 않았다.

안락한 마차 위에 있다가 직접 발을 놀리려고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벌써부터 발에 물집이 잡힐 것 같았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헨리는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조금 걷는다고 물집이 잡힐 리가 없었다.

에단이 이동하는 도중 품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에단이 수정구에 마나를 주입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가면을 쓴 얼굴이 수정구에 비쳤다.

에단이 배시시 웃었다.

“잘 지냈냐?”

―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죠?

메이는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촌각을 다투는 정보 길드의 특성상 한시라도 빨리…….

“내 말은 말 같지도 않다?”

―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에단 님께서는 건강하신가요?

“나야 뭐, 바빠서 힘들지.”

에단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이유라는 걸 알아차린 메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하아, 지금 수많은 목격담과 증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거기서 파생된 예측과 가설들이 우후죽순 퍼지고 있습니다.

“그럴 거 같았어.”

에단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메이는 그런 에단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남 일이 아닌,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한데도 저런 여유로운 태도라니.

― ……뭔가 방책이 있는 겁니까?

무모하고 생각 없이 일을 벌이는 것 같지만, 언제나 에단은 계획하에 움직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면 메이는 그 계획을 알고 싶었다.

에단이 수정구를 휴고에게 던졌다. 휴고가 헐레벌떡 수정구를 받아들었다.

“이쪽으로 돌려.”

에단의 말에 휴고가 뾰로통한 얼굴로 수정구의 방향을 에단에게 조정했다.

에단이 메이 앞에서 서류 뭉치를 흔들었다. 그 모습의 메이의 눈살이 좁혀졌다.

― ……그건 뭐죠?

“실망인데? 명색이 정보 길드라는 녀석들이 눈치도 없어?”

― …….

“비밀 장부.”

― 비밀 장부라고요?

“고리타분한 이름이지만 그만큼 확실한 게 없잖아?”

― 설마…….

메이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에단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비밀 장부에 엮여 있는 사람이 예사롭지가 않다는 것이다.

“레벨린 본인의 관한 내용은 쏙 빠졌지만, 그년이랑 거래한 녀석들은 수두룩 빽빽하던데?”

― 이런 미친…….

“내가 퍼트려도 상관없겠지만, 알다시피 블란테의 힘으로 소문을 내봤자 한계가 있으니까.”

에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에단은 블란테 사람이다. 블란테는 이미 아카데미를 먹었고, 지금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퍼트려 봤자 사람들의 반응은 미지근할 것이다.

― ……그래서 저희들을 이용하겠다는 건가요?

“이용이라는 말은 어감이 좀 그렇네. 어차피 너희들도 이거 퍼트리면서 필요한 이득은 죄다 취할 거잖아. 상부상조라고 하자고.”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자, 메이의 볼이 파들거렸다.

― 좋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그건 그렇고 기분이 좀 상하네. 내가 너희들 좀 이용하면 안 되냐?”

― …….

정신 못 차리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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