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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45화 (145/398)

◈ [145화] 묘한 기류 (1)

잔잔한 목소리였지만 빈센트의 목소리는 좌중을 압도했다.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사자의 등장이었다.

블란테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은 없었지만, 빈센트의 얼굴을 아는 자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빈센트라는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대륙을 호령하는 사자들의 우두머리.

그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학생들 중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에단은 단상의 뒤편에서 휘파람을 불며 빈센트의 연설을 바라봤다.

‘카리스마 지리네.’

확실히 가주라는 타이틀은 아무나 다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말 한마디로 모두를 휘어잡았다. 반론이나 의심의 목소리 따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에단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빈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침묵하던 빈센트가 입을 열었다.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다. 이곳에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지?”

“…….”

빈센트의 물음에 학생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함부로 입을 열만큼 담이 큰 자도 없었을뿐더러, 빈센트의 의중이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학생들을 주시하다 말을 이었다.

“이곳의 교육 방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수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기사는 검을 들어야 하고, 그 검은 피를 묻히며 날을 세우는 존재다.”

블란테의 훈련 방식은 독특하다. 극히 실전과 가깝고, 그 방식을 지향한다.

마나 수련법도 그랬다. 블란테의 마나 수련은 전투 중 체득하는 것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다.

천혜의 수련 장소도 있었다. 해마다 몬스터가 범람하고, 기사들은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쓰며 실전을 경험한다.

그게 블란테가 철혈의 기사로 대륙에서 군림하는 이유였다.

학생들은 침묵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아카데미에 입학한 만큼 자존심이 강했다.

그런 자존심이 순식간에 뭉개진 것이다. 학생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학생들을 바라보던 빈센트의 시선이 순간 에단에게로 돌아갔다.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던 에단과 시선이 교차했다. 빈센트의 입꼬리가 조금 비틀렸다.

빈센트가 다시 학생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최근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블란테가 고수하는 방식만이 모두 정답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

빈센트가 내뱉은 말에 기사들이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오히려 첸과 네이드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빈센트가 저 말을 내뱉은 이유가 바로 에단 때문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에단의 수련법은 기존의 수련 방식과 매우 달랐다. 독특하고 특이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블란테의 연무장에도 에단이 남기고 간 방식이 조금씩 차용되고 있었다.

당연히 뛰어난 효능을 보이고 있었고, 가주인 빈센트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바뀌지 않은 생각이 있다면.”

스르릉.

맑고 청명한 금속음과 함께 빈센트의 검이 꺼내졌다.

검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가 보아도 뛰어난 명검이라는 것을 알아챌 정도로 훌륭한 검이었다.

빈센트가 지면에 검을 밀어 넣었다.

“검에 있어서만큼은 블란테가 최고라는 것이다. 불만이나 의의가 있다고 한들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빈센트가 웃음기를 머금으며 말했다.

“우리가 너희들을 가르치기로 한 이상, 너희들은 모두 최고를 꿈꿔야 할 것이다.”

빈센트의 말에 학생들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상황을 인지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학생들이 감격에 찬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빈센트가 지금 공표한 것이다. 블란테의 검을 알려 주겠다고.

모두가 숭상하는 검술 명가의 검을 배우게 된 것이다. 학생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에단이 휘파람을 불었다.

‘아버지 말 한번 기똥차시네.’

예상보다 뛰어난 언변이었다. 빈센트 자체가 지닌 위압감으로 순식간에 학생들을 휘어잡았다.

조금 머리가 큰 애들이라면 이후의 파장을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학생들은 어렸다.

‘그건 내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이고.’

이제부터는 어른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해야만 했다.

* * *

빈센트가 학장으로 취임했다.

물의를 일으킨 렉사르는 기사들과 함께 가문으로 복귀를 명받았는데, 예상외로 그는 고분고분하게 가문으로 복귀했다.

“너는 남아 있을래?”

에단이 카론을 향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카론은 거의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사양하겠습니다.”

질색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킥킥 웃음을 흘린 에단이 카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그럼 조만간 또 보자.”

“…….”

카론은 말없이 대열에 합류했고, 절반가량의 기사들이 떠났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생들이 가진 불만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블란테에게서 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검술을 주력으로 하지 않는 학생들은 불만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아카데미의 위상 자체가 상승하는 것이니 나쁠 것은 없었다.

‘문지기의 존재는 크게 필요 없겠고.’

고메드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에단도 레벨린이 이 정도까지 잔혹한 일을 벌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고메드 같은 존재를 다시 뽑을 이유는 없지.’

고메드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편의주의적 전개를 위해 조형된 캐릭터였다.

별로 의미가 없는 캐릭터라는 소리였다. 소설적 과장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

‘기왕 철문이 허물어진 김에 적당한 검문소로 바꾸면 될 노릇이고.’

당연히 그 역할은 당분간 블란테가 맡을 예정이다. 블란테의 상징인 검은 정복을 입은 채.

‘도발과 홍보가 모두 필요하니까.’

방문하는 모두가 감히 아카데미를 가벼이 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블란테를 도발하는 것일 테니.’

에밀라는 수업 스케줄 재구성을 담당했다. 학생들은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외의 일도 벌어졌는데, 생각보다 휴고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전 보여 준 전투.

얼굴에 큰 흉터가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앳된 얼굴이다. 나이도 학생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또래였다.

그런데도 그런 실력이라니. 학생들이 주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휴고는 멋쩍어하면서도 학생들의 질문을 들어 주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거예요?”

“제가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전부 도련님 덕입니다…….”

휴고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대부분이 휴고에 관한 질문이었지만, 때때로 에단과의 관계를 묻는 학생들도 있었다.

가토는 근처에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뭔가 기분이 묘했다. 주목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저런 모습을 보니 배알이 꼴렸다.

‘……지금껏 고생은 내가 더 하지 않았나?’

가토가 피땀 흘리며 고생할 동안, 휴고는 침대에서 가만히 쉬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가토가 뾰로통한 얼굴을 한 채 휴고에게 다가섰다.

“야, 대련 한번 하자.”

“대련?”

학생들의 시선이 가토에게로 쏠렸다. 둘의 대련은 늘상 있는 일이었기에 휴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그럼 저는 이만…….”

휴고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학생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맴돌았다. 그때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저도 지켜볼 수 있을까요?”

“……대련을요?”

휴고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물어본 학생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보고 싶어요!”

연쇄 작용으로 옆에 있던 학생들도 같이 대답했다. 휴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가토를 바라봤다.

“마음대로 해.”

가토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자, 학생들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쟤네 뭐 하고 있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단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어린애들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하는 짓들이 귀여워 보였다.

에단과 같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리사가 물었다.

“……쟤네는 뭐야?”

리사의 물음에 에단이 잠깐 동안 말없이 둘을 바라봤다.

“동료.”

“동료?”

리사가 눈을 깜빡이며 예상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에단이 이런 대답을 할 줄이야.

“왜, 이상하냐?”

“어. 엄청 이상해.”

“그래도 내가 기른 녀석들이야. 너보다는 강할걸?”

“……장난해?”

리사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에단과의 실력 차이는 인정하는 바였지만, 리사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가토와 휴고는 또래로 보이는 나이대였다. 리사는 자기와 비슷한 나이대의 상대에게 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친다.”

“오빠야말로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내기 한번 할까?”

에단이 휴고와 가토에게로 다가갔다.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이런 이벤트도 지켜보지 못할 정도로 촉박하지는 않았다.

에단이 다가가자, 가토와 휴고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둘의 시선이 리사에게도 향했다.

‘……예쁘다.’

둘 모두가 같은 감상을 느꼈다. 리사의 외모는 객관적으로 봐도 출중했다.

찰랑이는 머릿결, 날카로운 듯 보이면서도 맑은 눈빛, 아름다운 얼굴선,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약간 표독스러운 인상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인상이 오히려 리사의 매력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예전에 봤을 때도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훨씬 예뻐지셨구나…….’

한창 수습 기사로 훈련을 하던 도중 연무장을 지나가던 리사를 본 기억이 얼핏 남아 있었다. 그때도 순간 넋을 잃었었다.

두 사람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자, 에단이 눈을 끔뻑였다.

“……뭣들 하냐?”

“아, 아닙니다.”

가토가 정신을 되찾고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흐음……. 누가 좋으려나.’

잠시 고민하던 에단이 입을 열었다.

“가토야.”

“네, 도련님.”

“내 동생이랑 대련 한번 해봐.”

“……네?”

에단의 말에 가토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리사와의 대련이라니.

“왜, 무서워?”

에단이 입꼬리를 올리며 묻자, 가토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럼 됐네.”

그때 리사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리사가 가토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단련 상태는 나쁘지 않네.’

옷 너머로도 단련된 육체가 느껴졌다. 수련을 게을리한 몸이 아니었다.

“우리 혹시 본 적이 있었나?”

“예전에 연무장에서 봤던 적은 있습니다. 리사 아가씨께서는 저를 못 봤겠지만…….”

“어, 난 못 봤어.”

날카로운 대답에 가토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사가 웃음기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오빠가 그렇게나 자랑하던 실력을 한번 볼 수 있을까?”

“……저야 영광입니다.”

“그럼 됐네. 연무장으로 옮기자.”

리사가 가토의 팔을 붙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가토의 동공이 거칠게 떨렸다.

동공이 떨린 것은 가토 혼자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휴고의 눈도 거칠게 떨렸다.

‘……이 녀석들 봐라?’

에단이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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