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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44화 (144/398)

◈ [144화] 피는 속이지 못한다 (2)

모두의 이목이 빈센트의 찻잔에 쏠렸다. 찻물이 쏟아지고 파편이 비산했지만 옷이 더렵혀지지 는 않았다.

빈센트가 마력으로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태연하게 마력으로 물과 파편 조각을 태워 버리고 무심하게 물었다.

“……계획이 뭐지?”

― 저거 뭐냐?

― ……딸 사랑이 지극하군.

카이나가 황당해하며 말했고, 페온도 거기에 첨언했다.

‘미치겠네.’

빈센트의 물음에 에단은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그럼에도 씰룩거리는 입술이 티가 났는지 빈센트의 미간이 좁혀졌다.

에단이 멋쩍은 헛기침을 내뱉다가 빈센트를 바라봤다.

“하나부터 열까지 구구절절 설명드리는 것도 좋지만…….”

자신은 그럴 성격이 되지 못했다.

“들어와.”

에단의 말에 문이 열리며 드레이가 나타났다. 드레이의 굳은 얼굴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뭘 쫄고 있어?”

에단이 씨익 웃으며 손짓하자, 드레이가 어색한 발걸음으로 에단에게 다가왔다.

리사가 미묘한 표정으로 드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빈센트는 흥미가 있어 보였다.

“이 녀석은 누구지?”

“제가 가르치는 학생입니다. 그리고 저희의 조커 카드이기도 하죠.”

“제대로 설명해 보거라.”

에단은 말을 길게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한 번의 설명을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드레이.”

“……네.”

“보여 줘 봐.”

에단의 말에 드레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드러내고 싶지 않던 힘이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아, 잠깐.”

막 성력을 방출하려는 순간 에단이 저지했다.

드레이가 눈을 끔뻑거리며 에단을 바라보자, 에단이 드레이에게 검 한 자루 건넸다.

“제가 이 검을 줄 사람이 있다고 했죠?”

좌중을 둘러본 에단이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걸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자, 보여 줘.”

진짜 성자의 힘을.

드레이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성력을 끌어올렸다.

시작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레이는 반쪽짜리이지만 분명한 성자였다.

그가 뿜어내는 성력은 일반적인 성직자와는 궤를 달리한다.

성력이 꿈틀거리며 몸속을 질주하기 시작하자, 드레이의 머리칼이 광채에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성검의 힘이 더해졌다. 타오르는 빛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짙어졌다. 순간 눈이 멀 정도로 환한 빛이 발광했다.

리사와 에밀라가 눈을 가렸다. 하지만 빈센트와 첸, 에단은 확실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툴툴거려도 말은 잘 들어주신단 말이야.’

에단은 드레이에게 검을 건네기 전, 카이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좀 도와주시죠.’

물론 카이나는 걸걸한 욕설로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드레이의 모습을 보니, 말은 그렇게 해도 확실하게 도와주는 것 같았다.

‘이거 기대 이상인데?’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성검의 위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엄청난 회복력, 그리고 마수나 사특한 존재를 상대할 때 얻는 막강한 위력.

‘지금은 크게 끌리지 않는 점들이지.’

회복력.

에단은 자신의 몸을 알고 있었고, 얻은 힘을 알았다. 에단의 몸에는 대해 같은 마나가 잠재되어 있었다.

마나의 총량을 따진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인물의 마나를 더해도 에단과 비교되지 않을 것이다.

에단은 지금 숨 쉬고 있는 세계수나 매한가지였으니까.

‘그게 꼭 무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빈센트를 보고 다시금 느꼈다. 가야 할 길은 멀었다. 그렇다고 그게 에단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이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더군다나 신체 능력, 내구력까지 크게 상승했다.

‘성검’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제일 큰 건 사실…….

너무 시끄러웠다. 드레이의 표정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저 표정의 원인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증폭된 신성력 때문도 있겠지만.’

난처함과 당황함이 공존하는 얼굴이 된 데에는 카이나의 영향이 지대한 것 같았다.

에단은 고소를 머금은 채 시선을 돌렸다. 빈센트를 비롯한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에단이 믿고 있는 제일 큰 후원자가 이거였다.

“성자가 저희를 지지합니다.”

“……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지?”

빈센트가 기가 차다는 얼굴로 에단을 바라봤다.

짧은 시간이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 흐른 시간에 비해 에단이 몰고 온 폭풍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아카데미, 그리고 성자.

가벼운 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신성 왕국은 대륙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었다.

대륙의 국교는 유일신 하나였고, 그 유일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신성 왕국이었다.

일반 시민에게나 귀족에게나 할 것 없이 막대한 입김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무력 또한 지니고 있었다.

‘피바람이 불겠군.’

빈센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에단이 가지고 있는 패가 너무 강한 탓에 대륙 전체가 흔들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빈센트가 가늘게 뜬 눈으로 에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에단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자, 이제 됐어.”

에단이 드레이에게 손짓하자, 흘러넘치던 신성력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뭐, 이건 나중에 뒤통수칠 때 이용할 거고……. 그전에 초석이 더 필요하겠죠?”

“초석이라……. 한번 말해 봐라.”

빈센트는 이제 어디까지 하나 지켜볼 생각이었다. 에단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전에 한 가지 약속을 해 주셔야 합니다.”

“약속?”

“네. 아카데미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미 불만을 억누르는 게 한계에 다다랐을 거 같은데……. 아닌가요?”

에단이 에밀라를 바라보며 말하자, 그녀는 그림자 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제가 학생이라도 그래요. 개판 오 분 전인데 뭣 하러 다닌단 말입니까?”

에단이 주변을 훑어본 뒤 말을 이었다.

“학생들이 혹할 만한 보상을 줘야죠.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식시킬 만한 보상.”

“…….”

에단이 빈센트를 응시했다.

“애들 한번 가르쳐 보시죠.”

“허, 블란테가 그래야 할 이유가…….”

빈센트가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려 하자, 에단이 리사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리사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벌떡 일어나 빈센트의 곁에 다가갔다.

“아, 아빵…….”

“…….”

빈센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단이 음흉한 웃음을 머금었다.

* * *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블란테는 아카데미에 잔류해 있기로 했다.

많은 수의 기사들은 필요하지 않았기에 일부는 가문으로 복귀하기로 결정됐다.

그렇다고 당장 복귀하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지금 상황을 세간에 알리는 게 우선이었다.

‘복잡한 일이 많겠군.’

이제부터는 진짜 귀찮고 피곤한 일들의 연속이다.

‘로만의 관한 것을 언급할 수도 있지만.’

마크가 사라진 이상 로만의 가문에서 말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용해 먹으려는 새끼들은 있을 수 있지만.’

블란테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세력들이 이번 기회에 승냥이처럼 달려들 수도 있었다.

정치권은 명분 싸움이다. 정치에 문외한인 에단도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 놈들은 처절하게 응징할 거고.’

에단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사정을 봐줄 생각은 없었다. 에단은 원작 주인공처럼 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상황을 뒤집어엎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공표해야 한다. 에밀라와 크러쉬, 그리고 에단이 학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혼란스러운 것은 이해가 됐다. 하룻밤 사이에 아카데미의 기류가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쿵!

하지만 금세 적막에 휩싸였다. 기사들의 위압감에 기가 눌린 것이다.

단상 위에 먼저 에단이 올라섰다. 유려한 언변 따위는 구사하지 못한다. 에단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학생들을 둘러봤다.

에단의 시선이 지나가자,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학생들을 둘러보던 에단의 눈에 밟히는 학생이 있었다.

‘잘 지내나 보네.’

다비였다. 다비는 여전히 천진한 미소를 지은 채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는 또래들도 보였는데, 모두 다비를 바라보며 쩔쩔매고 있었다.

‘맹랑한 꼬맹이.’

에단이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다시 학생들을 바라봤다.

“나를 모르는 녀석들은 없겠지? 자, 다들 잘 지냈나?”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에단은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왜? 아카데미 다니기 뭐 같아?”

에단의 말에 학생들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에단의 언행이 너무 가볍고 거침없었기 때문이다.

“이해는 해. 갑자기 교수와 직원들이 잠적해 버렸으니까. 이게 뭔가 싶고, 당장 가문에 돌아가고 싶겠지. 굳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잖아?”

“…….”

“내가 그래도 명색이 너희들을 가르치는 교수인데 방치할 수는 없지. 너희들은 결국 여기에 배우러 온 거잖아.”

에단의 말에 한 학생이 용기 내어 물었다.

“어,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죠?”

에단과 학생들의 시선이 그 학생에게로 향했다. 에단은 히죽 웃었다.

“좋은 질문이다. 뭘 어떻게 하겠냐고? 전과 다를 거 없어. 책임감 없는 쥐새끼보다 양질의 교육을 시켜 주마.”

“쥐, 쥐새끼요?”

“그래 쥐새끼. 황당하지 않아? 아무런 대비 없이 사라진 학장과 직원들. 아, 걔네에게 희생당한 이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흑…….”

에단의 말에 한 여학생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고메드의 곁에 있던 학생이었다.

고메드가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이미 모든 학생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멀쩡하던 녀석이 이유 없이 폭사당할 리가 없지.”

에단의 말에 학생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근거를 댈 수는 없다. 하지만 의심의 씨앗을 뿌려 두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게 곧 명분이 되고 지지가 되니까.

‘꿀릴 것도 없고.’

거짓을 말한 것도 아니다. 지지 세력도 충분하다.

에단이 뒤를 돌아봤다. 빈센트가 흥미로운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다시 학생들을 응시했다.

“걱정하지 마라. 책임은 교수들이 지니까. 우리가 양질의 교육을 시켜 주고, 보호해 주지.”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걸 본 학생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에단이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남은 것은 빈센트뿐이었다.

빈센트가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에단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빈센트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에단에게 말했다.

“……건방진 녀석.”

“칭찬으로 알아듣죠.”

빈센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상 위에 올라섰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정도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빈센트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학생들을 훑어봤다. 어깨를 짓누르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학생들이 헛숨을 삼켰다.

“나쁘진 않군.”

빈센트가 그렇게 칭하며 곧바로 말을 이었다.

“간략하게 소개하지. 블란테의 수장, 빈센트 블란테다.”

빈센트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학생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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