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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42화 (142/398)

◈ [142화] 야수의 눈 (2)

휴고는 렉사르에게 패한다.

정해진 사실이었다. 에단이 준 것은 작은 마석 파편. 흡수의 의미도 없는 미세한 파편이다.

‘죽은 마나에 반응하니.’

휴고의 야성이 드러날 것이다.

‘완벽한 야수화가 될지 반쪽짜리일지는 모르지만.’

에단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다.

‘어떻게 되든.’

렉사르는 폭발한다. 에단이 한 내기는 승리를 점치는 게 아니었다.

‘렉사르에게서 살아남는 것.’

그 정도면 충분히 휴고의 가치를 증명해 낼 수 있다.

쾅! 콰광!

굉음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에단이 바지를 털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보실까요?”

싸움 구경은 해야지.

* * *

휴고는 완전히 야수화가 되지는 않았다. 외적인 변화는 누렇게 물든 동공, 그리고 돋아난 어금니가 전부였다.

이전처럼 울부짖거나 야성을 터트리지도 않았다. 그저 호흡이 조금 거칠어지고 짜증이 치밀 뿐이었다.

‘……뭐지 이건?’

이전의 야수화와 달라진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휴고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이전처럼 본능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닌, 생각하고 판단을 했다.

휴고가 가늘게 뜬 눈으로 렉사르를 응시했다.

움직임이 멎은 렉사르에게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스산한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휴고는 두렵지 않았다.

두근두근.

오히려 호승심이 생겼다. 속이 들끓는다. 휴고는 지금 느껴지는 이 기운이 바로 ‘마나’라는 것을 인지했다.

‘이렇게 쓰는 건가?’

탓!

한 번의 도움닫기로 휴고는 렉사르의 앞으로 이동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말도 안 되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휴고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전 같았으면 강철 같은 손톱과 이빨로 적을 물어뜯으려 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휴고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슉, 슈슈슉!

휴고가 주먹을 뻗었다. 군더더기가 없는 날카로운 주먹질이었다. 마치 에단이 펼치던 펀치 콤비네이션과 흡사했다.

경로를 예측하는 공격, 피해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렉사르는 다시 한번 사슬을 휘둘렀다. 휴고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콰직!

휴고가 사슬을 지르밟았다.

“다 보고 있습니다.”

“……건방지구나.”

스스스.

렉사르가 마나를 끌어 올렸다. 사슬이 마치 춤을 추듯 움직였다. 휴고는 그 모습을 두고 보지 않았다.

휘릭.

휴고의 몸이 회전하며 렉사르의 복부에 뒤차기를 꽂았다.

뻐억!

렉사르가 몇 차례 뒷걸음질 쳤다.

방금 전 기술은 에단이 애용하는 일격이었다. 휴고는 지금 에단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휴고의 동체 시력과 신체 능력은 범인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렇기에 에단은 휴고에게 따로 격투술을 알려 주지 않았다.

하지만 휴고는 배우지 않고도 구사할 수 있었다.

‘도련님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에단이었으면 방금의 일격으로 렉사르를 제압했을 것이다.

렉사르가 후드를 벗었다. 그의 얼굴에는 빼곡한 상처가 가득했다. 사람들이 침음을 흘렸다.

누런 동공,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덥수룩한 검은 머리.

휴고보다도 더 짐승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너는 뭐냐.”

“음……. 휴고입니다. 에단 도련님의 기사죠.”

휴고는 스스로를 블란테의 기사가 아닌, 에단의 기사라고 생각했다.

그 점이 부끄럽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휴고가 에단의 전투 자세와 유사한 자세를 취했다.

“……그래, 대답이야 천천히 들으면 되겠지…….”

비릿한 미소를 지은 렉사르가 품에서 또 다른 무기를 꺼냈다. 흉측한 외향의 사슬낫이었다.

“……후우.”

휴고가 한 차례 한숨을 내쉬더니 표정을 굳혔다.

파밧!

그러고는 곧장 질주를 시작했다. 사슬낫이 휴고의 경로를 따라 날아갔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머리가 낫이라는 것이다. 공격로를 예측하기 힘들고 한 번의 실수가 치명상으로 이어진다.

렉사르의 공격은 사냥꾼의 것과 매우 흡사했다. 사슬낫의 추격을 피해 휴고가 공중으로 도약했다.

“멍청하기는!”

마나가 어린 사슬낫이 휴고를 쫓았다. 경이적인 마나 컨트롤이었다. 휴고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회전했다.

홱!

그러면서 낫의 손잡이 부분을 낚아챘다. 렉사르의 눈이 커졌다. 휴고의 움직임이 마치 기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후읍!”

한 번 했던 행동이다. 휴고가 숨을 들이마시며 힘을 주자, 얼굴에 실핏줄이 돋아났다.

렉사르도 이번에는 사슬을 놓치지 않았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휴고는 공중에 떠 있다는 점.

쑤욱!

애초에 휴고가 노린 점이 그것이었다. 공중에 떠 있던 휴고가 사슬을 잡아당겨 순식간에 접근했다.

휴고는 오른쪽 무릎을 들어 올렸고, 그걸 본 렉사르는 사슬을 놓으며 팔을 들었다.

콰직!

팔로 휴고의 공격을 막아 냈지만 충격까지 모두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렉사르가 뒤로 밀려났다. 휴고는 사뿐하게 지면에 착지하며 손을 털었다.

“……후우, 힘드네.”

휴고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물러난 렉사르를 추격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정말 감이 좋군. 마치 짐승 같아…….”

렉사르의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르르륵.

렉사르가 다시 사슬을 끌어당겼다. 전투가 재개될 것 같은 조짐이 보이자, 휴고가 자세를 갖췄다.

“거기까지.”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좌중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그곳에는 에단이 웃음기를 머금으며 휴고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련님.”

휴고의 부름에 에단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휴고에게 다가갔다.

“고생했다.”

에단이 휴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휴고가 눈을 끔뻑이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에단을 바라봤다.

“제가 무슨 개입니까?”

“아니었어?”

“……그게 무슨.”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휴고를 뒤로한 채 에단이 몸을 돌렸다.

빈센트와 첸이 에단의 곁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도 적지 않게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휴고의 동공이 누런색에서 본래의 흑갈색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빈센트는 눈썹을 미묘하게 꿈틀거렸지만, 감정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에단은 그 변화를 지켜봤다.

‘아직은 지켜볼 생각인가.’

빈센트는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대단하군.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까지 성장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누가 키웠는데요.”

“허, 그렇게 말하니 더 욕심이 나는구나. 어떠냐, 흑사자 기사단에 자리를 마련해 주지. 이런 놈팡이 녀석 밑에 있지 말고 올 생각이 있나?”

빈센트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흑사자 기사단의 단원. 대륙 제일이라고 명성을 떨치는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토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방금 빈센트가 내뱉은 제의는 모든 기사들의 염원과도 같은 것 아니던가.

가토는 복잡한 마음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하지만 휴고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아니요. 저는 에단 님 밑에 있겠습니다.”

“호오……. 따로 이유가 있더냐?”

빈센트의 물음에 휴고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에단 님 밑에 있는 게 더 좋아서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단이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휴고의 어깨를 두드렸다.

“들으셨죠? 제의를 하려면 그런 것보다는 다른…….”

에단과 빈센트, 그리고 첸의 시선이 돌아갔다.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선이 향한 장소에는, 렉사르가 이를 갈면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 멋대로 여기서 끝내려고 하십니까?”

렉사르가 거친 음성을 토해 냈다. 격렬한 분노가 그의 목소리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빈센트는 차게 식은 표정으로 첸을 호출했다.

“첸.”

“네, 가주님.”

첸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려 할 때, 에단이 팔을 들어 첸을 만류했다.

“잠시만요.”

“지금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제가 하죠.”

에단이 미소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가볍게 목을 풀며 렉사르에게로 나아갔다.

첸과 빈센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에단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저 나이에 저런 실력을 갖추게 된다면 힘에 취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잘못됐다. 지금의 렉사르는 위험했다.

“아빠. 저건…….”

리사도 얼굴을 굳혔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고, 상대를 가늠할 수 있다면 렉사르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느낄 수 있을 터.

하지만 반대로 휴고는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아들놈 밑에 있겠다더니 걱정은 안 되느냐?”

“……아, 도련님이요?”

빈센트의 물음에 휴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제가 보기에 제일 걱정이 필요 없는 사람이 도련님인 것 같습니다.”

휴고의 눈에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다. 마치 에단이 위험해 처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았다.

‘처음 시험해 보는군.’

세계수의 힘까지 흡수한 뒤, 힘을 휘두르기는 지금이 처음이었다. 몸이 근질거렸는데 적당한 상대를 만났다.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렉사르를 바라봤다.

“왜, 이렇게 뿔이 잔뜩 났을까?”

비아냥거리는 에단의 어조에, 살벌한 눈빛이 그의 얼굴로 꽂혔다. 렉사르는 다시금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이구, 얼굴에 흉터도 많은데 구기니까 살벌하네.”

그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크아아아아!”

렉사르가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광폭한 마나가 터져 나왔다. 가만히 지켜보던 에단이 히죽 웃으며 검을 쥐었다.

‘힘 좀 써 볼까?’

― ……엿 같은 새끼.

카이나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에단은 그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앞발을 내디뎠다.

후웅!

허리가 비틀리며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함께했다. 에단이 마나의 편린을 끄집어냈다.

그가 느끼기에는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지만,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후우웅!

이성을 잃은 것처럼 달려들던 렉사르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그의 본능이 경고했다. 당장 자리를 피해야 했다.

거대한 해일이 자신을 덮치고 있었다.

‘……이걸 피할 수 있나?’

사람이 과연 자연재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렉사르의 발이 멎었다. 당황하기는 에단도 매한가지였다.

‘……이런 옘병.’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일부분을 끄집어냈다고 생각했건만, 그 일부의 여파가 이 정도일 줄이야.

저 마나의 해일을 방치하면 아카데미의 상당수가 증발하고 말 터였다.

에단이 질주했다. 순식간에 반대편에 도달한 에단이 렉사르의 뒷목을 움켜쥐었다.

“너는 꺼져 있어.”

마치 짐짝을 대하듯 무심하게 말한 에단이 그대로 렉사르를 멀리 던졌다.

훽!

렉사르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에단이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려 들었지만, 어느새 다가온 빈센트와 첸이 에단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버지?”

빈센트가 묘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그 힘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이르구나.”

첸이 나서려 하자, 빈센트가 팔을 뻗어 막고는 한 걸음 내디뎠다.

“됐네. 나도 가끔은 몸을 풀어야지.”

키이잉.

빈센트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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