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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40화 (140/398)

◈ [140화] 또 다른 앙숙 (2)

휴고의 얼굴이 패닉으로 물들었다.

에단이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들을 벌이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도, 도련님……!”

휴고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이 뱉은 말이기에, 그가 나서서 해명해 주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야.”

하지만 에단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휴고는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알았다.

‘아……. 물 건너갔구나.’

에단의 짓궂은 눈만 봐도 알 수 있었기에 휴고는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솔직히 말해 봐. 쟤가 무서워?”

에단이 휴고의 어깨를 치면서 속삭였다. 휴고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렉사르를 바라봤다.

렉사르의 표정은 살벌했다. 당장에라도 눈앞에 있는 놈들을 찢어 죽일 것 같은 표정이었다.

휴고가 멀뚱멀뚱 렉사르를 지켜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휴고의 대답에 에단의 입꼬리가 보기 좋게 휘어졌다.

“자, 들었지?”

에단이 씨익 웃으며 렉사르를 바라봤다. 에단은 렉사르의 귀가 밝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뜩이나 흘러넘치는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에단이 렉사르를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

“기분 나빠?”

에단이 등을 치자, 휴고가 몇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밀린다 싶으면 이걸…….”

에단이 끝말을 흐리며 휴고에게 당부했다. 휴고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진짜로요?’

휴고가 입 모양으로 그렇게 묻자, 에단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자신감을 북돋아 주듯 휴고의 둥을 두드린 뒤 건물로 향했다. 휴고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와주려나?’

휴고가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일행을 바라봤다.

가토는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휴고를 보고 있었고, 네이드와 헨리도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듯 웃음을 머금었다.

‘어휴, 내 팔자야.’

휴고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렉사르는 당장이라도 휴고를 찢어 죽이려는 기세를 표출하고 있었다.

“음……. 혹시 대화로는 안 될까요?”

“대화? 무슨 대화를 말하는 거지?”

듣기 거북한 목소리와 함께 절그럭거리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휴고의 동공이 렉사르의 팔 쪽으로 옮겨졌다.

휴고의 눈에 순간 노란빛이 맴돌았다.

꽈드득.

주먹을 움켜쥔 휴고는 자연스럽게 전투를 대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드레이가 한 발짝 물러섰다.

‘……이 사람은 누구지?’

얼굴에 큰 자상이 있기는 하나, 아직 앳된 모습을 감출 수는 없었다. 잘 쳐 봐야 자신의 또래로 보인다.

하지만 전혀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 아니었다. 겁을 먹었다기보단 오히려 당황해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렉사르는 자신이 앞에 서도 오금이 저리는 상대였다. 그런데 또래로 보이는 녀석이 조금도 기죽지 않아 하는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에단 교수님과 관계된 사람 같은데……. 누구지?’

휴고가 드레이를 힐끔 보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음……. 조금 피해 계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휴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드레이가 라프를 들쳐 메고 자리를 옮겼다.

라프가 뾰족한 시선으로 드레이를 노려봤지만, 드레이는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라프를 옮겼다.

“너…….”

“닥치고 있어.”

드레이의 서늘한 목소리에 라프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언성을 높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에단은 건물로 들어서면서 휴고와 렉사르를 힐긋 바라봤다.

‘생각보다 일찍 모습을 드러냈네.’

에단은 렉사르가 꽤나 오랜 시간 음지에 숨어 있던 것으로 기억했다. 무슨 변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렉사르는 양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꽤 쉽게 해결할 수도 있겠군.’

결국 이 또한 처리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그래야만 ‘지하’ 놈들과 대적이 가능했다.

문득, 에단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자는 카론이었다.

‘쟤도 왔네?’

설마 아카데미에 카론까지 찾아왔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완전히 밀려났나 보군.’

가뜩이나 입지가 좁았던 카론이었다. 에단이라는 방패막이 없었다면 애당초 승계 구도에 발을 담글 수도 없는 위치였다.

에단이 피식 조소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에 카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재수 없는 새끼.’

카론이 속으로 에단을 씹으며 눈앞의 렉사르와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었다.

에단이 가장 먼저 거둔 수하이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평민 출신 기사.

아직 에단은 정식으로 작위를 계승받지 못했다. 당연히 기사 임명 같은 높은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빈센트와의 모종의 협의를 통해 기사 임명권을 얻게 되었고, 에단은 약조대로 휴고와 가토를 정식 기사로 임명했다.

예외적인 일이었다. 가주가 아닌 자가 기사 임명을 하다니.

기사들 사이에서도 많은 말이 오갔다.

하지만 빈센트에게는 그 어떤 반론이나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블란테에서는 빈센트가 곧 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휴고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는 했다.

하인 출신 새내기가 과연 어떠한 실력을 지니고 있을지. 단순히 에단의 변덕에 혜택을 얻은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학생들과 기사들 모두 흥미로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에단은 건물 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에밀라가 있을 장소는 예상이 갔다.

아카데미의 접견실은 하나이니까 빤하지.

에단이 계단을 오르고 있자, 페온이 말을 걸었다.

― ……그 녀석은 위험한 놈이다.

‘알고 있습니다.’

― ……알면서도 그 아이를 그렇게 두고 왔단 말이냐?

‘제가 보기엔 휴고도 위험한 놈입니다.’

당연히 지금의 휴고라면 렉사르를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렉사르는 휴고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에단은 휴고와 렉사르를 붙여 둔 것이었다.

‘애당초 그렇게 만들어진 녀석이니까.’

렉사르라는 존재 자체가 순리에서 벗어난 존재다. 그리고 그렇기에 휴고에게 가장 적합한 상대이기도 했다.

휴고에게는 스승이 없다. 구태여 말하자면 스승이 필요가 없는 존재다. 휴고의 가장 큰 장점은 야성에서 비롯된 본능이니까.

‘지금이라면 야수화를 해도 상대하기 힘들겠지만.’

운이 좋다면 보다 일찍 야수화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본래라면 에단이 직접 도와주는 게 맞겠지만…….

‘귀찮아.’

일일이 수준을 맞춰 주면서 상대하는 일은 에단과 맞지 않았다.

‘여차하면 네이드도 있고.’

아무리 렉사르가 요주의 인물이라고는 하나, 네이드와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에단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크흠, 크흠.”

에단이 목을 가다듬으며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들이 다수 보였다.

에밀라, 리사, 빈센트, 첸까지.

모두의 시선이 에단에게로 향했다.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늦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에단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빈센트가 미간을 좁혔다.

“건방지구나.”

“죄송하게 됐습니다. 급한 일을 처리하고 오느라.”

에단은 빈센트 앞에서도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거산을 보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빈센트의 경지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괴물이군.’

에단이 내심 혀를 내둘렀다. 내적으로 에단은 이미 마스터의 경지를 넘어섰다.

아직 부족한 게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에단에게는 마스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에단의 경지가 빛바랜 것은 아니었다. 세계수와 죽은 나무의 기운을 흡수한 에단의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고, 안정된 상태였다.

말없이 에단을 지켜보고 있던 빈센트가 눈살을 좁혔다. 얼굴이 굳은 것은 첸도 매한가지였다.

빈센트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에단에게 물었다.

“……그동안 어디서 뭘 하다 온 거냐?”

“어디서 잠깐 수련 좀 하고 왔습니다.”

에단이 히죽 웃으며 대꾸하자, 빈센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빈센트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늘 무표정을 고수하던 첸의 얼굴에도 동요가 생겨났다. 에단이 가문을 떠난 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에단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지금 에단이 이룩한 경지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해명을 요구하는 빈센트와 첸의 시선을 느낀 에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설명할 수도 없고.’

여기서 구구절절 설명해 봤자, 아버지와 첸이 자신의 말을 믿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능청스럽게 자리에 앉은 에단이 다리를 꼰 채 주변을 둘러봤다. 리사와 에밀라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에밀라는 안도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리사는 짜증을 억누르고 있는 얼굴이었다.

“오빠 보니까 좋냐?”

“……뒈질래?”

“어허, 아버지 앞에서 그런 말 쓸래?”

까득―

리사가 낮게 이를 갈았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에밀라가 눈을 끔뻑였다.

‘……정말 남매지간이긴 하구나.’

그것도 모르고 예전에 오해했던 일을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얘기는 어디까지 했습니까?”

에단이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담화를 나누는 것도 좋았지만,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빈센트의 눈이 가라앉았다.

“대강의 이야기는 들었다. 한마디 물으마.”

“편하게 말씀하시죠.”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지?”

“별로 꾸미는 건 없습니다. 감히 저에게 엿을 먹이는 놈들의 골통을 부숴 버렸을 뿐이죠. 그게 블란테의 방식 아닙니까?”

“…….”

말을 듣던 빈센트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은 태연했다.

“아버지께도 좋은 기회 아닙니까?”

에단의 말에 빈센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회? 어디 한번 지껄여 보거라.”

에단의 말이 심기에 거슬렸는지 빈센트의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

“언제까지 변방에서 방벽 노릇만 할 겁니까. 그렇게까지 맹약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겁니까?”

에단의 말에 빈센트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표정이 굳은 것은 첸도 매한가지였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빈센트의 물음에 에단이 상체를 숙이며 말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이제는 설득과 협상의 영역이다.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이미 저희는 너무 많은 견제를 당하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모두를 적으로 돌려서는 가망이 없습니다. 지금 이건 기회입니다. 명분은 저희에게 있죠.”

“……전쟁이라도 벌일 셈이냐?”

빈센트의 말에 리사와 에밀라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스케일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에단이 미소를 지우며 표정을 굳혔다.

“두려우신 겁니까?”

“두려워? 블란테가 전쟁을 두려워할 것 같으냐?”

빈센트의 음성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 대답은 에단이 기다리고 있던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됐습니다. 아무리 맹약에 묶여 있다고는 하나, 뒤통수를 얻어맞고 넘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더 말해 보거라.”

“간판만 좀 빌려주시죠.”

에단이 벌이려는 일은, 블란테라는 간판만 있으면 충분히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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