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36화 (136/398)

◈ [136화] 불쾌한 도발 (1)

리사의 승리를 목격한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평민이라고 알려진 리사가 명문가의 적자인 라프를 압도적으로 이기다니.

귀족의 입장에선 평민이 주제 넘는 짓을 벌였다고 생각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광경을 본 학생들은 리사가 로만을 죽였다는 소문을 다시금 떠올렸다.

“라프 경!”

같은 동급생이면서 ‘경’이라는 호칭을 부르며 달려 나가는 학생.

그 학생은 라프를 부축하며 리사를 노려봤다.

“알량한 실력을 믿고 까부는 거 같은데, 그게 얼마나 갈 것 같아? 보아하니 로만을 죽인 것도 사실 같은데.”

리사가 로만의 목을 베는 모습은 같은 반 학생들이 목격했다. 에밀라가 주의를 줬다지만, 모든 학생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리사에게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비난하는 학생을 바라봤다.

“어쩌라고.”

“뭐 저런 무뢰배 같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귀족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이래서 평민은 안 된다는 자도 있었고, 당장 부모님에게 연락을 취해야겠다고 협박조로 읊조리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리사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빠가 오면 다 입 다물 것들이.’

리사도 믿는 구석 없이 일을 벌인 게 아니다. 아버지가 아카데미에 도착해 이 꼴을 본다면 눈을 뒤집고 격분할 것이 분명했다.

빈센트는 명백한 딸바보였다. 리사는 빈센트의 과한 애정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까지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에단이 떠나기 전 전달한 말도 있었다.

― 막무가내로 들이박아. 네가 잘하는 것 중 하나잖아.

― ……왜 갑자기 시비야?

― 사리지 말라고.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지금은 에단의 의중을 알 것 같았다.

귀족 출신 학생들이 신랄하게 리사를 씹어 대고 있었다. 이것은 결국 그들의 업보로 돌아갈 것이다.

리사는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렸다. 라프가 저주 어린 욕설을 지껄였으나, 리사는 중지를 치켜들며 가볍게 응수했다.

“끄아아악! 반드시 죽여 버린다!”

라프가 광분하며 괴성을 질렀지만, 리사에게는 같잖을 따름이었다.

드레이의 눈에서 복잡한 감정이 드러났다.

“……어쩔 생각입니까?”

“뭘 어째?”

리사의 태연한 반응에 드레이가 눈살을 좁혔다.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을 텐데. 설마 정말 에단 교수님의 동생인가……?’

드레이는 리치가 있던 동굴이 무너질 때 그녀가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 뭐? 갑자기? 아직 오빠랑 교수님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나온 해프닝 정도로 여겼다. 너무 허황된 얘기라고 생각했고, 리사의 입장에서는 블란테임을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블란테라고?’

그녀가 이미 저지른 일이 많았기에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드레이가 혼란스러워하는 그때, 율리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리사의 팔을 붙잡았다.

“리사아아…….”

거의 울기 직전인 율리를 향해 리사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정말로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 * *

아카데미에는 다양한 클래스가 있었다. 다비는 아직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다.

본과에 들어갈 수는 없는 나이였기에 어린 학생들을 수용하는 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10대 초반 학생들이었다. 재능과 천재성을 인지하고 입증하기에도 부족한 나이다.

당연히 그 어린 학생들은 모두 하인이나 시종을 대동한 높으신 분들의 자제였다.

어리지만 알 건 아는 나이. 그들의 행동거지는 날 때부터 배워 온 예식이 몸에 밴 상태다.

반면 다비는 여관의 종업원 출신이다. 험한 용병들의 행동거지를 보고 자랐고, 사미라 또한 거칠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이미 권력의 맛을 깨우친 학생들은 대놓고 다비를 깔봤다.

다비는 눈치가 빨랐다. 동급생들이 높으신 분들의 자제라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자신을 먹잇감처럼 본다는 것도 느껴졌다.

‘귀엽네.’

하지만 아이들이 거칠게 살아왔다면 얼마나 거칠게 살아왔겠는가.

다비는 비록 어렸으나, 여관의 종업원 생활을 하면서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베테랑이었다.

눈치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고, 사람을 구슬리는 데에는 도가 텄다.

“너는 어디 가문 사람이야?”

시비를 걸려는 듯 다가오는 남학생이 보였다. 나이를 보면 다비의 또래로 보였다.

“앗, 저 말씀인가요?”

다비가 해맑게 웃자, 남학생이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 그래. 우리들은 서로의 가문을 다 알고 있어서 말이지. 참고로 우리 가문은 아델이야.”

‘그게 뭔데.’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와! 정말 그 아델 가문이란 말씀인가요?”

다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기를 죽이려고 한 말이었지만, 다비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다가간 학생은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어린 나이었다. 다비의 반응을 의심할 만큼 성장한 수준은 아니란 소리였다.

남학생의 콧대가 높아졌다. 으스대는 표정으로 다비를 바라봤다.

“오! 너도 들어는 봤나 보지? 그 유명한 대마법사 아이작 아델이 바로 우리 아버지야.”

“와! 정말 대단해요! 혹시 나중에 뵙게 되면 인사를 드려도 될까요? 정말 영광이에요!”

다비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예상한 상황과는 달라졌지만, 결과적으로 남학생은 기분이 좋아졌다.

“뭘 좀 아는 녀석이네. 너는 이름이 뭐야?”

“아, 저는 다비라고 합니다! 제가 여쭤봐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이름을 물어도 될까요?”

“……안 될 건 없지. 내 이름은 로이스 아델이야.”

“미래의 대마법사를 이렇게 뵐 줄이야! 영광입니다. 혹시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다비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로이스를 바라봤다. 로이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 그래! 너는 착하니까 친하게 지낼 수도 있지.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구나. 나중에 아버님을 뵙게 되면 인사를 시켜 줄 수도 있어.”

“와아!”

다비가 손뼉을 치며 폴짝폴짝 뛰었다. 그 반응에 로이스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귀, 귀여워.’

천한 평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로이스는 이미 다비에게 호감이 생겼다.

그가 보기에 다비는 다른 사람들처럼 전형적으로 입에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반응과 표정을 보여 주는 듯했다.

때문에 욕심이 깃들지 않은 그 순수한 표정과 행동에 로이스의 마음이 녹았다.

“로이스 님과 같은 수업을 들으려면 더 노력을 해야겠어요! 다음에 좀 알려 줄 수 있으신가요?”

“……못 해 줄 건 없지.”

“우와! 로이스 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다비가 활짝 웃었다. 로이스는 그 해맑은 미소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가슴이 왜 이렇게 아프지?’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다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로이스 님한테 배우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 먼저 가 봐도 될까요?”

싹싹한 다비의 말의 로이스는 차마 거부를 할 수 없었다.

‘……더 얘기하고 싶은데.’

공부를 하러 간다는데 어떻게 붙잡는단 말인가. 그러나 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로이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해. 내가 알려 주려고 해도 너무 모르면 힘들지.”

“네! 로이스 님한테 배울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할게요!”

“그래…….”

총총거리며 멀어지는 다비의 모습에 로이스가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로이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몸을 돌렸다. 친하게 지내는 동급생이 눈을 끔뻑이며 로이스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야?”

“너 아까 주제 파악을 시켜 준다고 하지 않았어?”

“울려 줄 거라고 하더니.”

“그건 그렇고…… 쟤 좀 귀여운 것 같은데?”

마지막 동급생의 말에 로이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야.”

“어, 어……?”

“너, 쟤 건들지 마.”

“……왜?”

“내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언제부터 내 말에 토를 달았어?”

로이스의 사나운 눈초리에 기가 죽은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

로이스가 같이 있던 학생들도 노려봤다.

“너희들한테도 하는 소리야. 내 말을 무시했다가는…… 알지?”

“으, 응…….”

동급생들은 불만이 있었지만, 차마 로이스 앞에서 그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로이스는 무리 중에서 가장 힘도 세고, 가문의 위세도 드높았다.

* * *

다비는 멀어지면서 로이스를 슬쩍 흘겨봤다.

‘병신.’

다비가 피식 조소 지었다.

‘그나저나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얼마 전, 에밀라가 자신에게 찾아왔다. 다비는 에단이 데려온 학생이기에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행히 여기는 별문제가 없지만…….’

본과 학생에 비해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고, 이곳의 교사들은 레벨린의 수하가 아니었는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무너지면 결국 이곳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싫은데.’

다비는 아카데미 생활을 더 즐기고 싶었다. 이제 갓 입학했는데 이렇게 끝나는 건 너무 아쉬웠다.

‘에단 오빠가 어떻게든 해 주겠지?’

수많은 사람을 봤지만 에단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에단이 나선다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도 타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믿어요.’

다비는 에단을 믿었다.

* * *

“……나. 우울하다.”

날씨는 좋았다. 아카데미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고메드와는 큰 연관이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구름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던 고메드가 눈을 끔뻑였다.

고메드는 자신의 신력(信力)에 자부심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만 하던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사실에 더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문을 지키는 것에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거대한 문은 자신만 열고 닫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의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에단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이후 트라우마 비슷한 것이 생겼다.

에단은 자신이 힘껏 열어 재끼던 거대한 철문도 가벼운 발길질로 열어 버렸다.

고메드는 침울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고메드. 사는 이유. 궁금하다.”

후우.

고메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메드의 눈이 우수에 젖어 있었다.

그때, 옆에 같이 쭈그려 앉아 있던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고메드, 너무 상심하지 마.”

“고맙다. 하지만 고메드, 쓸모가 없다.”

“그러지 마! 그래도 나랑 친구들은 고메드가 있어서 늘 든든한걸?”

“……정말인가? 고메드, 든든한가?”

“그럼! 듬직하고 멋있어!”

“우어어! 고메드! 열심히 하겠다!”

고메드와 자주 대화 친구를 해 주는 학생이었다. 최근 이 학생은 풀이 죽은 고메드가 걱정됐는지 자주 나와서 고메드를 위로해 주고는 했다.

“헤헤, 다행이다. 어?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구지?”

여학생이 앞을 가리켰다. 먼 지평선에서부터 한 무리의 인파가 다가오고 있었다.

찌릿.

피부가 따끔거렸다. 형체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거리임에도 기세가 느껴졌다. 고메드가 일순 긴장감을 머금었다.

“……위험하다. 저놈들.”

고메드가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거체가 문을 막아섰다.

“너, 빨리 들어가라. 여긴, 위험하다.”

“하지만 고메드가 지켜 줄 거 아니야?”

“……일단, 지원을, 요청하겠다.”

고메드가 거대한 종을 울렸다. 문지기 생활을 하며 처음 울리는 종이었다.

고메드가 긴장을 머금은 채 다가오는 무리를 바라봤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자들은 고메드보다 강했다. 에단을 만날 때처럼 두려움이 치솟았다.

그때 고메드의 새끼손가락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메드가 시선을 돌리자 여학생의 가느다란 팔이 보였다.

고메드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 지킨다.’

결의를 다진 표정의 고메드가 정면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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