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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23화 (123/398)

◈ [123화] 세계수 (3)

에단이 자신의 팔을 붙잡았을 때, 파이론은 조소를 지었다.

‘멍청한 놈.’

파이론은 지금 죽은 마나를 발산하고 있었다.

죽은 마나는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는 극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겁도 없이 달려들다니.

보지 않아도 결과가 예상됐다.

파이론의 무미건조한 입술이 미약하게 비틀렸다. 에단은 파이론의 웃음기를 읽어 냈다.

“웃겨?”

건방지네.

꽈드드득!

에단이 왼손으로 잡았던 멱살을 놓고 파이론의 목을 움켜쥐었다. 에단의 악력은 이미 범인의 경지를 초월한 지 오래였다.

“크윽!”

파이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에단의 무모한 행동을 보고 방심을 했다.

파이론이 팔을 들어 에단을 떨쳐 내려 했지만, 꽉 쥐어진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에단의 사나운 안광이 파이론을 주시했다.

“야.”

으르렁거리는 듯한 에단의 목소리와 함께 죽은 나무의 힘이 발현되었다.

끼에에에에엑!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에단과 맞닿아 있는 파이론에게는 뚜렷하게 보였다.

빼빼 마른 고목.

하지만 죽기 직전의 피폐한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저건 지금 생명을 탐하고 있었다. 요사스럽고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나무는 자신에게 뿌리를 내린 것이었다.

파이론은 본능적으로 저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죽은 나무!’

파이론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던 힘을 애송이가 쥐고 있었다.

‘저게 어째서!’

죽은 마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파이론은 엄청난 고통과 인고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했다.

본래 죽은 마나는 산 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이론의 몸은 인간과 달라졌다. 이미 반쯤은 언데드라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그러한 대가를 치러 얻은 힘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파괴적이고 패도적인 힘을 무한히 발산할 수 있었다.

평생 넘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벽도 단숨에 부술 수 있었다.

전능함과 함께 갈증을 느꼈고, 그만큼 힘을 더욱 찾게 되었다.

신체의 욕망은 점차 옅어졌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고, 열량은 최소한만 섭취해도 충분했으며, 감정의 기복도 옅어졌다.

파이론을 움직이는 것은 힘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가장 원초적으로 포식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죽은 나무였다.

파이론의 눈에 검은 혈관이 돋아났다. 파이론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 힘은 네놈 따위가……!”

“가질 게 아니라고?”

에단의 입이 반달처럼 휘었다.

“너 그거 존나 식상한 말인 거 알아?”

에단이 비아냥거리며 파이론의 고간을 걷어찼다.

끔찍한 고통에 파이론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몸을 숙였다. 상체를 숙인 파이론은 에단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에단이 파이론의 턱을 걷어차자, 파이론이 뒤로 밀려났다.

곧바로 에단이 지면을 박찼다. 파이론의 동공이 움직였다. 비록 편법으로 벽을 부쉈지만 파이론도 마스터였다. 에단의 움직임에 대응할 기량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이윽고 파이론의 팔이 꿈틀거리자 검이 휘둘러졌다.

쾅!

하지만 에단의 오른발이 파이론의 검을 걷어차는 바람에 그의 공격은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뭐 하냐?”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는 에단의 다리가 한 번 더 움직였다. 이번에는 파이론의 가슴팍을 향해 딮 킥(Deep Kick)을 날렸다.

딮 킥은 타격을 입히기보다는 상대를 밀어내기 위한 발차기였다. 에단은 상대를 넘어트릴 생각이었다.

강한 충격에 파이론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중심을 잡기 위해 발을 내디뎠지만 그걸 두고 보고 있을 에단이 아니었다.

“어쭈.”

에단이 파이론의 목을 움켜쥔 채로 다리를 걸었다.

화악―!

파이론의 시야가 반전됐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지면으로 향했다.

파이론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재빠르게 일어서려 했지만 에단의 발이 더 빨랐다.

빠악!

에단이 그대로 파이론의 얼굴을 걷어찼다.

“어휴 시원해.”

수위 높은 반칙 공격인 사커 킥은 에단도 사용해 보지 못했다.

파이론의 고개가 들렸다.

흰자위가 드러나려 했지만 파이론은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곧장 몸을 굴러 자리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볼 에단이 아니었다.

에단은 파이론을 따라가 다시금 발을 들어 올렸다.

퍼억!

에단의 발이 복부에 꽂혔고, 파이론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에단이 무릎으로 파이론의 가슴팍을 짓눌렀다.

“어딜 가려고?”

에단의 왼손이 다시금 파이론의 목덜미를 짓눌렀다.

키에에에에에―!

죽은 나무가 파이론의 힘을 갉아먹고 있었다. 파이론은 에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렸지만, 에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가 볼 테면 나가 보든가.”

이미 승기는 기울었다. 파이론의 체력은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편 네이드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에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해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에단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스터의 벽은 그리 쉬운 게 아니야.’

에단의 움직임은 분명 마스터의 것이었다. 저자는 네이드에게도 쉽지 않은 상대였다. 마스터의 비기를 꺼내야 이길 수 있는 상대.

물론 자신이 비기를 꺼내면 저자도 똑같이 꺼내 들 테지만, 더욱 오랜 시간 마스터로 있었기에 비기 싸움에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에단은 마스터의 비기를 꺼내지도 않은 채 손쉽게 제압하고 짓누르고 있었다.

정체 모를 힘을 사용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패자는 말을 하지 못하니까.

‘……지금 도련님과 겨룬다면.’

이길 수 있을까?

비기를 빼고 생각하면 회의적이었다.

네이드는 어쌔신이었다. 정면 승부는 그의 주특기가 아니었다. 빈센트나 첸과는 결이 달랐다.

하지만 네이드도 엄연한 마스터였고, 노련한 전사였다.

관록은 편법으로 얻을 수 없는 법이다. 네이드가 보기에 에단은 노련했고 교활했다.

상대의 심리를 관통하고 있는 저 완숙함은 재능만으로 얻을 수가 없었다.

네이드가 고개를 돌렸다. 야수화한 휴고가 멀뚱멀뚱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네이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휴고 씨.”

네이드가 휴고를 부르자 그의 귀가 쫑긋거렸다. 누렇게 물든 동공이 네이드를 향했다.

눈을 마주친 네이드가 쓰게 웃었다.

‘그렇게 된 거였군.’

어째서 말들이 휴고를 기피했는지, 어째서 휴고의 신체 능력이 그렇게 뛰어났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수고하셨습니다.”

“……크릉.”

휴고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네이드와 휴고는 시선을 돌려 이번에는 가토를 바라봤다.

“같이 감상해 볼까요?”

“…….”

네이드의 말에 휴고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의도는 이해했는지 가토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챙! 채재쟁!

가토는 지금 전투를 통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열 번의 연습보다 한 번의 실전이 유익했다.

그는 지금 스펀지처럼 경험을 흡수하고 있었다.

키얀은 사선을 넘어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비록 파이론과는 비교하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어디 가서 칼밥으로는 꿀리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토의 기본기는 탄탄했다. 체계적인 수련을 거듭해 온 것이 움직임에서 보였다.

하지만 흐름을 끊는 것은 키얀 같은 이들의 주특기였다.

변초와 허초를 섞어 상대를 교란하면 흐름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토는 흔들리지 않았고, 진실을 판별해 검을 찔러 넣었다.

‘이런 애송이에게 이 정도의 판별력이 있다고?!’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키얀은 점점 초조해졌다. 가토는 기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키얀에겐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 그래 파이론은…….’

파이론을 향해 힐긋 시선을 던진 키얀의 동공이 거칠게 떨렸다. 파이론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위에 있는 자는 에단이었다.

‘제, 제기랄! 저 새끼는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온갖 유세를 떨며 무게 잡던 파이론도 쓰러졌다. 희망의 빛이 점점 사라졌다.

‘이, 이런 괴물 새끼들이 도대체 어디서…….’

마음이 꺾이니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피부에 하나둘 자상이 생겨나며 키얀의 몸이 피에 젖어 갔다. 안색이 파리해지며 동공이 불안함에 떨렸다.

‘아, 안 되겠어.’

키얀이 다시 한번 모래 더미를 발로 찼다. 먼지구름이 일었음에도 가토는 눈살만 찌푸릴 뿐 당황하지 않았다.

키얀은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가토가 코웃음을 쳤다.

이윽고 가토의 상체가 숙어지더니 그대로 질주했다. 도주하는 키얀을 향해 달려 나가던 가토가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평소 같았다면 대응했을 키얀이었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채 도주를 택한 순간 가토의 검을 피할 수는 없었다.

키얀의 입에서 진한 선혈이 흘러나왔다.

“끄아악!”

키얀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는 지면을 기어 다니며 삶을 갈구했다.

가토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판별할 수 없었다.

실망감인지 동정심인지, 감정을 알 수 없었지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가토는 기사였다. 그리고 주군의 명을 받은 기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가토가 무심한 눈으로 검을 붙잡아 뽑아냈다.

촤악!

“끄아아악!”

피가 솟구치며 키얀이 다시금 비명을 내질렀다. 그 순간 에단에게서 힘을 갈취당하던 파이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파이론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가만히 그걸 듣고 있던 에단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때 페온과 카이나가 동시에 소리쳤다.

― 막아라!

― 빨리 막아!

에단은 자세를 바로잡아 엘보우로 파이론의 얼굴을 찍었다.

콰지직!

“커헉!”

파이론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주문을 막았나 싶던 그 순간.

파이론은 검은 잿더미가 되어 잘게 부서져 내렸다. 이윽고 잿더미 사이에서 음산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에단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뒤편에서 지켜보던 툰나와 르니엘이 몸을 떨었다.

“지금 무슨 일이…….”

소름 끼치는 기운이었다.

비단 연기에서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숲 곳곳에 저것과 같은 기운이 만연해 있었다.

화아아악!

검은 연기가 모여들어 그 크기가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에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토!”

에단이 빠르게 달려가 가토의 뒷덜미를 붙잡아 당겼다.

가토가 뒤로 끌려오며 바닥을 굴렀다. 몸집을 불린 검은 연기가 죽어 가는 키얀에게 흡수되었다. 키얀의 동공이 검게 물들었다.

에단이 지면에 박혀 있는 성검을 잡아 뽑았다.

― 너……!

카이나가 분통을 터트렸지만, 에단은 가볍게 무시했다. 에단의 팔에 힘줄이 돋아났다.

마나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미 에단의 몸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죽은 마나였다. 죽은 마나는 성검과 상극이었다.

지금 사용 가능한 것은 순수한 완력과 성검 자체의 능력.

촤아악!

성검이 휘둘러지며 성스러운 기운이 키얀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검게 물든 키얀은 그 일격을 피해 냈다.

“쯧.”

에단이 혀를 찼다. 귀찮아지기 전에 처리하기에는 늦어 버렸다.

“■■■■■.”

키얀의 검은 눈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입을 열 때마다 검은 연기가 넘실거리는 것이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에단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상태 안 좋으면 곱게 뒤지지 그러냐.”

뭐라고 지껄이는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오히려 편해진 걸 수도 있으니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은 감 잡았다.

‘저건 지금 힘을 당겨쓴 거잖아?’

뿌려 둔 씨앗이 싹트기도 전에 힘을 모조리 끌어온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불리했기 때문에 한 선택이겠지만.

에단이 고개를 돌렸다. 휴고가 인간의 형상을 되찾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

‘쯧, 이건 아쉽네.’

휴고는 오히려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뭐, 대신에 내가 크면 되지.’

입맛이 돋은 에단의 눈꼬리가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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