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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22화 (122/398)

◈ [122화] 세계수 (2)

‘뭐야, 이 녀석은……!’

키얀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기세에서 밀린 탓에 이미 승세는 기울었다.

수라장 속에서 살아남은 키얀은 기세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고 있었다.

키얀이 빠르게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보헨은 이미 끝이 났고, 남은 전력은 리트마 하나였는데…….

콰직! 콰직!

리트마의 아름다운 얼굴은 지금 곤죽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리트마를 짓밟고 있는 에단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이건 미쳤어…….’

다리가 후들거렸다.

키얀이 재빠르게 몸을 돌렸지만, 그와 동시에 지면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닷!

그대로 등을 보이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키얀은 재빠르게 몸을 돌려 검을 빼 들었다.

채앵!

검과 검이 부딪치며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되자, 키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힘 싸움은 키얀의 주특기나 다름없었다.

“나를 얕잡아 보지 말…….”

그 순간, 키얀이 헛숨을 들이마셨다.

꽈드드득!

키얀의 검이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밀리다 못해 키얀은 이윽고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쿵!

무릎을 꿇은 키얀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가토의 힘은 키안의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무, 무슨 힘이……!’

믿기지가 않았다. 가토의 덩치는 평범했다. 눈에 띄게 건장한 체격이 아님에도 가토는 규격 외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키얀을 찍어 누르던 가토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왜? 당황스러워?”

“이, 이 애송이가!”

키얀이 분통을 터트렸지만, 당장 할 수 있는 대응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가토의 검을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그러게 운동 좀 하지 그랬어!”

말을 마친 가토가 이를 악물고 힘을 더했다. 키얀은 더는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검을 포기하고 몸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촤악!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한 키얀의 팔에 상흔이 생겼고, 곧이어 팔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상처가 그리 깊진 않았으나, 전투의 양상에 확실히 지장을 줄 정도는 되었다.

‘……제기랄.’

키얀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젖살도 안 빠진 애송이에게 이런 수모를 겪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키얀이 고개를 돌렸다.

흉포하기 그지없던 저 늑대 놈은 무슨 이윤지 갑자기 얌전해졌고, 일행은 모두 당해 버린 암담한 상황이었다.

도주를 꾀하자니 움직이지 않고 있는 적들이 많았다. 이 많은 사람을 뚫고 몸을 피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영향력이 약해졌다 한들 숲은 엘프의 편이었다. 리트마의 도움이 없이는 무사히 빠져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때 리트마를 밟고 있던 에단이 고개를 돌렸다.

‘좀 쓸 만해졌군.’

백 프로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조금 전의 가토는 기가 죽어 있었다. 그래서는 될 일도 되지 않을 터.

그렇기에 가토를 사지에 던졌고, 예상했던 대로 그는 에단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한편 전투를 지켜보던 다른 이들은 모두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저 인간도 평범한 자가 아니야.’

마을의 전투원 중 하나인 르니엘은 가토의 실력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뛰어난 기본기와 변수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평정심, 그리고 상대를 찍어 누르는 완력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르니엘이 가토를 주시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의 뒤에서 굉음이 터졌다.

쾅!

그와 동시에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바람이 휘몰아쳤다.

에단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기는 다른 이들도 매한가지였다.

에단이 눈살을 좁혔다.

건장한 체격, 어깨까지 내려오는 황갈색 머리와 갈색빛 눈.

소란 속에서도 무심해 보이는 눈빛과 다문 입술에는 우직함과 더불어 위엄이 서려 있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거무죽죽하던 키얀의 안색이 환해졌다.

에단이 눈살을 좁혔다. 외향적인 특징을 보면 대충 누군지 예상이 가는 인물이었다.

“네이드.”

“네, 도련님.”

네이드의 표정이 돌변했다.

부드럽고 인자하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살기를 머금고 있는 눈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네이드는 곧장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우웅!

단검이 공명하며 마나가 밀집되었고, 이내 완성된 마나 소드가 나타났다.

‘이런 미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키얀의 입이 벌어졌다.

마나 소드.

그것도 불안정한 상태가 아닌, 제대로 구현된 마나 소드였다.

‘마스터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가 차원에서 귀빈 대접을 받는 존재가 바로 마스터였다. 그런 자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키얀이 파이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웅!

파이론이 검을 뽑자 새하얀 검신이 검게 물들었다. 죽은 마나로 형성된 마나 소드였다.

키얀의 입이 한 차례 더 벌어졌다.

‘저, 저 양반도 마스터…….’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마스터의 경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스터씩이나 되는 놈들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키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때.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키얀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바닥에 엎어졌다.

“어딜 보고 있는 거지?”

네 상대는 나인데.

가토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마스터 둘과 비교해서 손색이 있을 뿐, 가토 또한 맹수였다. 키얀이 빠득 이를 갈았다.

“……오냐. 상대해 주지.”

키얀이 허리춤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가토와 키얀을 슬쩍 바라본 에단이 다시 네이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역량은 네이드가 위고.’

네이드는 마스터 중에서도 수위에 드는 노련한 이였다.

비록 어쌔신이라는 특성 탓에 대인전에서는 다른 마스터들보다는 조금 취약한 편이지만.

‘그것도 상대가 첸이나 아버지일 경우에나 해당되는 말이지.’

그 둘을 제외한다면 네이드는 최강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평범한 마스터가 아니었다.

검신에 돋아 있는 죽은 마나.

요사스러운 기운을 줄기차게 흘리고 있는 저 죽은 마나는 낯이 익었다.

데스 나이트가 사용하던 기운이다.

그때는 에단이 가진 특성 덕에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었지만 네이드는 쉽지 않을 터였다.

데스 나이트는 아니지만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남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이잉.

성검이 진동하는 소리에 에단이 시선을 돌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예상이 갔지만, 에단은 피식 웃으며 그대로 리트마 위에 걸터앉았다.

털썩.

그러고는 팔장을 낀 채 네이드의 결투를 지켜보았다.

“어디, 우리 집사가 얼마나 강한지 볼까?”

에단의 태도에 르니엘과 툰나가 눈을 끔뻑였다.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챙! 채재재재재쟁!

연신 불똥이 튀겼다. 검이 맞부딪치며 일어나는 충격파와 풍압에 몸이 밀려났고, 대지가 떨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쟁터를 떠올리게 하는 굉음의 연속이었다. 귀가 멀 것 같았으며, 몸은 소리에 맞춰 연신 움찔거렸다.

전투는 점차 과열되었다. 르니엘은 두 마스터에게 압도되어 뒷걸음질 쳤다.

그때, 툰나가 르니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리를 옮기자꾸나.”

툰나의 말에 르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리는 너무 가까웠다. 툰나와 르니엘이 에단의 곁으로 다가갔다.

“좋은 구경하시는군요.”

에단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하자, 툰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대체…….”

“쉿.”

에단이 검지를 들었다.

“지금은 지켜보기만 하시죠.”

잠시 전투를 지켜보던 에단이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몸이 달아오른 것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휴고였다.

휴고는 아직까지도 야수화를 벗어나지 못했다.

‘흡수한 죽은 마나가 원인이겠지.’

에단이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는 휴고가 성장할 수 없었다.

지금 휴고는 죽은 마나의 탁기(濁氣)를 모두 태워 내야 했다.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 미친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구나.

에단의 생각을 읽은 페온이 혀를 찼다.

수인의 내구력은 인간과 궤를 달리하며, 성장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들은 전투와 포식을 통해 성장한다. 그리고 그 힘을 온전히 체득하기 위해서는 실전이 필요했다.

‘암, 실전만 한 게 없지.’

그런 점에서는 블란테의 교육 방침과 이상하리만큼 흡사했다. 에단이 휴고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휴고!”

에단의 부름에 휴고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서는 번들거리는 안광이 줄줄 흘렀고,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멈추지 않고 새어 나왔다.

“가서 도와.”

휴고는 에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마치 이해했다는 듯이 귀를 쫑긋했다.

크르르!

휴고가 상체를 숙였다. 마치 도약을 위한 준비 자세 같았다.

파밧!

휴고가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네이드는 휴고가 달려드는 타이밍에 맞춰 슬쩍 몸을 빼 길을 만들어 줬고, 덕분에 휴고의 날카로운 발톱이 파이론의 가슴팍을 노릴 수 있었다.

콰앙!

파이론이 검을 들어 휴고의 공격을 막았다. 지금껏 별다른 표정을 드러내지 않던 파이론의 눈썹이 미미하게 떨렸다.

공격이 생각보다도 무거웠기 때문이다. 휴고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휘릭!

휴고의 몸이 뒤로 넘어가며 유연하게 휘었다.

휘익!

딸려 오는 휴고의 다리가 파이론의 턱을 노렸고, 파이론은 검을 회수하며 거리를 벌렸다. 간발의 차이로 휴고의 발이 파이론을 지나쳤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칠 네이드가 아니었다.

스르륵.

그림자처럼 파이론의 뒤를 잡은 네이드가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푸른 마나가 둘린 네이드의 단검은, 강철도 두부 썰듯 썰어 낼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후웅!

파이론의 미간이 좁혀졌다. 돌파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마스터급의 경지에 이르면 찰나의 순간에 승패가 결정된다.

더군다나 역량에서 또한 네이드가 앞선다는 걸 파이론은 알았다. 그런 상황에 빈틈을 보였으니 네이드가 놓칠 리 만무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파이론은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을 알고 있었다.

“원래라면 여기서 쓸 게 아니었지만.”

파이론이 검을 지면에 찔러 넣었다.

쿠웅!

그 순간 죽은 마나가 폭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반발력이 네이드와 휴고를 밀어냈다.

“지금이냐?!”

바로 그때, 에단이 활짝 웃으며 달려들었다. 성검 대신 세계수의 목걸이를 쥐고 있던 에단이 목걸이를 힘껏 던졌다.

지이잉!

목걸이를 기점으로 보호막이 전개되며 파이론이 일으킨 죽은 마나의 폭풍과 맞부딪쳤다.

에단은 펼쳐진 보호막을 지나쳤고, 그대로 파이론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힘 다 썼어?”

그럼 이제 내놔야지.

에단의 품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죽은 나무가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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