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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121화 (121/398)

◈ [121화] 세계수 (1)

크르르르.

야수화한 휴고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예민한 상태였다.

마수를 포식하면서 체내에 죽은 마나가 상당량 쌓였기 때문이다.

죽은 마나는 휴고를 더욱 포악하게 만들었다.

그 탓에 손짓 한 번에 찢기거나 날카로운 어금니에 으깨질 녀석들이 도망가고 있다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내 군침을 흘렸다. 열심히 도망쳐 봤자 어차피 곧 자신의 먹잇감이 될 녀석들이니까.

그런데 놈들의 앞을 막아서는 새로운 먹잇감이 나타났다.

검을 든 채 사나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저 인간에게서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다른 먹잇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쾌했다.

이성을 잃은 휴고는 그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턱이 욱신거리는 기분이었다. 휴고는 이빨을 딱딱거리며 이 이상한 기분을 털어 내려 했다.

그런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에단과 제대로 눈이 마주치자, 휴고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

“크르르…….”

“아이고, 많이 무서웠나 보네.”

에단이 부드러운 어조로 휴고에게 말했다.

“크아아!”

에단이 손을 뻗으려고 하자, 휴고가 살기를 폭사시켰다. 그와 동시에 에단의 손이 치켜 올라갔다.

“씁!”

“……크르.”

“크르? 너 이빨 드러내려고?”

에단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최근 죽은 마나를 포식하면서 에단의 존재감은 과거와 차원이 달라졌다.

게다가 휴고는 각인된 트라우마 탓에 본능적으로 에단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휴고는 포식자였다. 하지만 포식자 간에도 서열이 있는 법이다.

고양이는 호랑이를 두려워하고, 개는 결코 늑대를 넘지 못한다.

휴고의 꼬리가 말리기 시작했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트마와 보헨, 키얀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

방금 전까지 긴박하게 쫓기고 있던 보헨과 키얀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에단의 시선이 휴고에게서 리트마로 돌아가자, 그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에단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어, 아까 마을에서 뵌 분 아닙니까?”

“…….”

리트마가 입을 다물었다. 에단이 익살맞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분들과는 아시는 분입니까? 분명 외지인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

에단의 말에 리트마의 얼굴이 짜증과 분노로 물들었다. 그의 시선이 보헨과 키얀에게로 향했다.

눈치가 빠른 보헨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일이 귀찮아졌군.’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었으나, 저 인간 때문에 일이 꼬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어때.’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마다 목격자와 증거를 지우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상대의 실력인데.’

은연중에 서로 간의 서열이 드러났다. 저 괴물 같은 짐승보다 서열이 높은 것 같았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고, 기회는 지금뿐이다. 저 늑대 짐승이 잠잠해진 지금 이 순간을 노려야 했다.

보헨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가 키얀을 향해 힐긋 시선을 던지자, 키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트마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분위기의 흐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싸늘해진 공기로 인해 팽팽한 긴장감이 주변에 감돌았다.

물론 에단에게는 예외였다. 에단이 여유를 잃지 않으며 미소를 머금었다.

“왜 대답이 없으시죠?”

“……알 필요 없다.”

리트마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보헨과 키얀이 뛰쳐나가려는 순간.

바스락.

수풀 속에서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한둘이 아니었다.

“……리트마?”

르니엘이 리트마를 보며 말했다. 리트마의 얼굴이 다시금 굳었다.

“네가 여긴 왜…….”

‘……제기랄.’

리트마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저 인간 하나쯤이야 죽여서 입을 봉할 수 있었지만 르니엘은 경우가 달랐다.

르니엘의 기동력은 마을에서 최상위권이었다. 이 자리를 벗어나면 마을에 소문이 퍼질 게 분명했다.

어색한 침묵을 바라보던 에단이 씩 웃으며 르니엘에게 물었다.

“장로님은?”

르니엘이 뒤를 바라봤다. 어느새 툰나와 함께 네이드와 가토도 도착해 있었다.

한 걸음 뒤에 있던 툰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곤 빠르게 눈치챘다.

“……리트마.”

늘 인자하게 웃으며 말하던 그였는데, 이번엔 엄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네.’

그렇지 않아도 리트마의 정체를 어떻게 까발려야 할까 고민하던 에단이었다.

한데 현장에서 리트마를 발견한 덕분에 생각보다 상황이 쉽게 흘러갈 듯싶었다.

에단은 놈들을 이곳까지 데려온 휴고를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에단이 손으로 휴고의 머리를 쓰다듬자, 휴고의 몸이 흠칫 떨렸다.

휴고는 지금 간신히 야성을 억누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눈앞에 있는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턱이 아려 오고, 심장이 옥죄였다. 원초적인 두려움이 휴고의 발을 묶어 놨다.

마치 사자 앞에 선 토끼가 된 기분에 휴고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끼, 끼잉…….”

휴고가 신음을 흘렸다. 에단의 눈이 다시금 살벌해졌다.

‘감히 내 귀여운 멍멍이를.’

때릴 곳 하나 없는 애를 얼마나 복날 개 두들겨 패듯 팼으면, 이렇게 겁에 질려 있단 말인가.

에단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야.”

에단이 쌍심지를 켠 채 노려보자, 세 사람의 몸이 떨렸다.

피부가 저릿했다. 숨통을 짓누르는 살기가 자신들을 향하고 있었다.

몸이 얼어 버린 세 사람을 바라보던 에단은 짜증이 치솟았다.

‘명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우호적인 관계 따위는 나중으로 밀어 놔도 됐다.

‘내가 가진 걸 이용하면 그만이야.’

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 쓰며 판단했단 말인가.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일이었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툰나를 바라봤다.

“아시죠?”

“……괜찮습니다.”

툰나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건 곧 툰나의 허락이라는 소리였다. 그 속뜻을 알아차린 에단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에단이 휴고에게 다가가자, 휴고의 몸이 흠칫 떨렸다.

에단의 손이 다시금 휴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휴고는 잠자코 에단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빈틈투성이처럼 보였지만 에단을 공격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에단의 손길이 닿자 다리를 후들거렸다.

“네이드.”

“네, 도련님.”

에단의 부름에 네이드가 곧장 대답했다.

“방해하는 새끼들이 나타나면 알아서 처리해. 내 말 알지?”

“알겠습니다.”

네이드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에단이 손에 들려 있는 성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별로 쓰고 싶지 않네.’

짜증을 풀 때는 역시 맨손이 제격이었다.

푹!

― ……너 진짜.

에단이 지면에 성검을 박아 넣자, 카이나가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에단은 가볍게 무시하고는 손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키얀과 보헨이 뒷걸음질을 쳤다. 에단의 기백에 압도당한 것이다.

‘이 녀석은 뭐지?’

처음 마주하는 감각이다. 사자 앞의 토끼가 된 기분이었다.

그 괴물 같은 파이론과 마주했을 때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보헨의 눈이 거칠게 떨렸다. 칼밥을 먹고 자란 이들은 모두 기민한 눈치를 자랑한다.

그런 그가 봤을 때 눈앞에 있는 자는 절대 대적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보헨이 리트마를 향해 물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한 리트마는 입을 다물었다.

르니엘이 데려온 인간 놈들 때문에 일이 꼬이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르니엘 혼자였다면 그녀를 처리하면 그만이다. 일이야 좀 복잡해지겠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잠깐.’

리트마의 표정이 돌변했다. 증거의 인멸이라는 전제를 놓는다면 이번 일도 해결할 수 있었다.

리트마는 정체되어 있는 마을과 일족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머저리 같은 르니엘과 머저리를 두둔하는 툰나가 있었다.

‘이번 일은 기회다.’

리트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에단은 바뀐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해 냈다.

저렇게 대놓고 살기를 흩뿌리고 있는데 눈치를 채지 못하면 이상한 일일 터.

타닷!

에단이 지면을 박찼다.

순간 당황한 리트마가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 에단의 행동이 더욱 빨랐다.

에단의 발끝이 리트마의 명치에 꽂혔다. 깔끔한 프론트 킥이었다.

명치가 관통되는 것 같은 강한 충격에 리트마의 허리가 크게 휘었다.

“커헉!”

리트마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겪어 본 적 없는 강렬한 고통이었다.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어디서 눈깔을 굴리고 있어?”

뒈질라고 새끼가.

갑작스러운 에단의 돌발 행동에 일행이 화들짝 놀랐다.

보헨과 키얀이 뒤늦게 몸을 움직이려 해 봤지만, 에단의 눈과 마주치자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 순간 가토가 두 사람에게로 달려들었다.

네이드도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에단의 명령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이드는 그 자리에 있어!”

뛰어가던 가토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나 혼자서 가능할까?’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의심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 의심을 잘라 낸 이는 에단이었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해!”

그 짧은 말 한마디에 가토의 머릿속 상념이 모두 지워졌다.

“쪽팔리지 않게 해.”

에단이 경고하듯 으르렁거리자, 가토가 이를 악물었다.

‘그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거야. 나는 지금 할 일에만 집중하면 돼.’

마음을 다잡은 가토가 검을 뽑아 들었다.

관리되지 못한 명검. 하지만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검에는 가토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빠르게 달려든 가토가 근처까지 다가오자, 보헨과 키얀의 고개가 돌아갔다.

보헨과 키얀은 경험이 풍부했다. 그리고 그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경지보다도 경험이었다.

가토의 앳된 얼굴만 봐도 경험이 그리 많지 않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머릿수에서도 그들이 앞섰다.

‘저 녀석이라면.’

머리가 기민하게 회전했다.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승부가 늘어지면 안 된다. 최대한 빠르게 저 애송이를 제압하고 인질로 이용해야 했다.

“키얀!”

보헨이 키얀을 향해 눈을 흘겼다. 키얀은 보헨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파앗!

키얀이 지면을 걷어찼다. 흙더미가 가토의 안면을 향해 튀었다.

‘기사라는 족속들은 이딴 변칙에 약하지!’

명예와 신의를 중요시하는 기사들은 이런 변수에 대응을 못 하기 마련이다.

보헨과 키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하지만 그 순간.

쐐액!

흙더미를 관통한 가토의 검이 그대로 쏘아져 왔다. 갑작스레 등장한 검에 당황한 보헨이 팔을 들어 올렸다.

푸욱!

팔에 검이 들이박히자, 화끈한 통증에 보헨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 개……!”

보헨이 분노를 터트리려 하는 그때, 모래를 뚫고 나온 가토가 달려들었다. 가토의 얼굴에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왜? 이런 거에 처음 당해 봐?”

나는 많이 당해 봤는데.

가토가 지면을 박차며 무릎을 들었다. 에단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는 동작이었지만 깔끔한 플라잉 니 킥이었다.

콰직!

가토의 무릎이 보헨의 턱에 적중했고, 이내 그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하지만 가토는 방심하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진 보헨의 얼굴을 발바닥으로 내려찍었다.

그러고는 보헨의 팔에 박혀 있는 검을 뽑아냈다.

가토는 한 손에 검을 든 채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키얀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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