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120화 (120/398)

[120화] 배신자 찾기 (3)

‘……뭐지 이 괴물은?’

눈앞에 있는 괴물은 마수가 아니었다. 이 숲에 존재하는 마수는 자신들을 적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수냐, 아니냐 따위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본능이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위험하다. 상대하면 안 된다.

파이론이 진심을 내비칠 때와 흡사한 감각이었다.

‘이 짐승 새끼가 그 정도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보헨은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았고, 용기라는 이름의 만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피해야 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지원을 해 줄 인력도 없었다. 여기서 부상을 입어 봤자 자신만 손해였다.

그러나 보헨은 함부로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지금 몸을 돌리면 곧바로 목이 물어뜯길 것 같았다.

보헨이 검을 뽑은 채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기회가 보이면 당장에라도 내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은빛 늑대는 보헨이 도망치려는 낌새를 눈치챘다는 듯 비웃음 섞인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크르르르.”

“저 개새끼가…….”

자존심이 상했다. 이 정도 힘을 얻고서 저딴 몬스터에게 겁을 집어먹다니.

하지만 보헨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보헨이 눈을 빠르게 굴렸다.

‘어디 쓸 만한 거 없나?’

그때 보헨의 눈에 돌멩이 하나가 보였다. 그는 자세를 틀어 돌멩이를 그대로 걷어찼다.

빠악―!

걷어찬 돌멩이가 은빛 늑대를 향해 쇄도했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파밧!

크아아!

자신을 향한 공격에 휴고의 야성이 폭발했다.

휴고가 사족 보행으로 거칠게 내달렸다. 그 모습을 본 보헨이 아연실색하며 몸을 돌렸다.

“제, 제기랄!”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그러면 개죽음이다.

하지만 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보헨은 몸을 빼면서 검을 찔러 넣었다. 앞뒤 없이 돌진하는 몬스터들에게는 곧잘 먹히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휴고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몸을 슬며시 비틀며 마치 비웃듯 공격을 피해 냈다. 손톱이 돋아 있는 휴고의 손이 보헨의 검을 붙잡았다.

콰지직!

마나 어린 검이 단번에 분질러졌다. 그것으로 보헨은 전의를 잃었다.

“제기라아아알―!”

보헨이 괴성을 내지르며 도주했다. 은밀함과 임무의 수행은 지금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존이 우선이었다.

보헨은 본능적으로 생존 가능성이 제일 높은 방향으로 뛰었다.

협조하는 엘프와의 접선 장소, 그 인근에는 키얀도 있을 테니 그곳에만 도착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터였다.

크르릉!

야수화한 휴고가 방해물을 모두 산산조각 내며 보헨을 쫓았다. 휴고의 손에 닿는 모든 게 가루가 되었다. 압도적인 살기가 뒤에서 들이닥치자, 보헨은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느꼈다.

“살려 줘―!”

보헨이 간절하게 소리쳤다.

* * *

“흠, 대충 이쯤인가.”

에단이 땅을 파헤치며 근방에 있는 보석들을 모두 회수했다. 이 보석이 마수를 만든 원흉이었다.

에단이 손바닥 위에 있는 보석을 바라보다 주먹을 쥐었다. 파편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파편에 잔재하던 기운은 에단에게로 흡수되었다.

― ……마음에 들지 않는군.

카이나의 불만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카이나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성검과 죽은 마나는 상극의 기운.

자신의 힘을 다루면서 동시에 죽은 마나의 힘을 흡수하려는 에단을 아니꼽게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에단은 원래 타인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았다.

그것과는 다른 이유로 에단은 파편의 마나를 흡수하는 것을 포기했다.

‘저질이군.’

마나의 질이 상당히 저급했기 때문이다.

과거 마나의 양이 아쉬웠던 상황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보석의 힘을 흡수했겠지만, 지금의 에단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저품질의 마나는 에단이 힘을 쌓는 데 방해가 되었다. 그가 지금껏 흡수한 죽은 마나는 모두 상급이었다.

밤의 일족인 벨몬트와 블랙 오우거의 마나는 모두 정순하고 농도 높은 죽은 마나였다.

‘고유의 특성도 있고 말이야.’

전부터 느껴 왔다.

벨몬트에게서 죽은 마나를 흡수한 이후로 어둠에 있어 제약이 사라져 밤 또한 낮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블랙 오우거의 마나를 흡수했을 때는 녀석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피어를 얻었다.

그 이후 데스 나이트와 리치의 힘을 흡수했을 때는 벽을 부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권능감과 예리한 감각을 깨우쳤다.

그런 순도 높은 죽은 마나만 흡수하던 에단에게 이딴 저급한 기운이 눈에 찰 리 만무했다.

‘그래도 다 부수기는 아까우니.’

에단이 작은 주머니에 파편을 모아 뒀다.

‘자, 그러면 대충 상태는 알았네.’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숲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이제 분위기를 반전시켜 볼까.’

지금껏 거침없이 뚜드려 맞던 세계수였다.

상태가 어찌나 안 좋은지 헨리 또한 가수면 상태였다.

‘먼저 배신자부터 척살해야지.’

이쯤 되면 명분은 필요 없었다. 이미 장로와 르니엘의 지지를 얻은 상태다. 대충 상대하다가 정 안 되면 뒤집어엎으면 되었다.

파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고, 성검의 정화 능력이 있는 한 에단은 이미 명분을 얻은 상태다.

‘이것만으로는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하기에는 상황이 안 좋았다.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내야 했다. 에단이 의식을 집중하고 감각을 퍼트렸다. 가장 먼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뭐 하냐?”

에단이 르니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르니엘이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에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용사…….”

“야, 얘 좀 치워.”

에단이 무심하게 말하자, 가토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용사님의 뜻이라면…….”

꽈드득.

에단이 주먹을 움켜쥐자 살벌한 소리가 퍼졌다. 눈에서 살기가 줄줄 흐르는 모습을 본 가토가 화들짝 놀라며 르니엘을 붙잡았다.

“바, 방해하지 마시죠.”

르니엘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든 말든 에단은 집중하여 감각을 넓혔다.

살려 줘―!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이의 목소리였는데 동시에 익숙한 기운도 느껴졌다.

거칠고 흉포한 기운이었다. 에단에게는 익숙한 휴고의 기운이었다. 에단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찾았다.”

생각보다 일이 쉬워질 것 같았다.

* * *

리트마는 예정된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인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방진 녀석들…….’

리트마가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계획에 차질을 줄 수 있는 외지인을, 협력자들을 이용해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접선 장소에는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히 인간 주제에 자신을 기다리게 만든다는 사실에 짜증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었다.

‘이번에는 약소한 것으로 끝내지 않을 거다.’

리트마는 이미 인간이 건네는 뇌물에 익숙해져 있었다.

소박하고 소소한 삶을 영위하는 엘프들과는 다르게, 리트마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인간들의 사치품에 매료되었다.

바라보고, 몸에 두르는 것만으로도 고양감이 치솟았다. 리트마는 점점 사치품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리트마의 몸에는 점점 인간들의 사치품이 걸리기 시작했다.

‘……두고 보자고.’

리트마가 이를 갈았다. 인간 놈들이 오는 순간 짜증을 토해 낼 생각이었다.

살려 줘―!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의 목소리였다. 리트마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봤다.

“무, 무슨…….”

자신과 인간들이 접선한다는 사실은 절대 외부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사항이었다.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만남에서 갑자기 괴성을 지르다니.

리트마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사태를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인간의 목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거친 살기가 느껴졌다.

‘마수?’

아니 마수 따위가 아니었다.

“제, 제기랄!”

수풀을 헤치며 보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뒤로 야수화한 늑대가 달려들었다. 순간 리트마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이, 이게 무슨……!”

“사, 살려 줘!”

“크르릉!”

휴고가 팔을 휘둘렀다. 리트마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거대한 나무가 수수깡 부서지듯 산산이 조각났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진 리트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제, 제기랄!”

보헨이 다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하자, 리트마도 우왕좌왕하다가 그의 뒤를 쫓았다.

“이, 인간 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나도 몰라 귀쟁이년아!”

오히려 보헨이 묻고 싶은 상황이었다. 이런 돌발 상황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으니까.

‘이 새끼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한시가 촉박한 상황에 동료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초조함이 앞섰다.

‘차, 찾았다.’

그때 멀리서 키얀의 모습이 보였다. 파이론 만큼은 아니어도 키얀이라면 힘을 합쳐 늑대를 상대할 순 있을 것 같았다.

“키, 키얀!”

“뭐, 뭐야?!”

키얀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보헨에게는 지금 상황을 설명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 새끼 좀 어떻게 해 봐!”

뒤에서 미친 듯이 쫓아오는 늑대를 발견한 키얀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이윽고 보헨이 몸을 던져 지면을 굴렀다.

휴고의 앞발이 한 끗 차이로 보헨의 머리를 스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보헨이 자세를 잡았다. 경험이 많은 만큼 노련한 대처였다.

“후욱, 후욱.”

보헨의 호흡이 거칠었다. 그 옆에는 리트마도 같이 있었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키얀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보헨이 짜증을 냈다.

“나도 몰라! 갑자기 저 늑대 새끼가 날 덮쳤다고!”

“후, 빨리 처리하자. 이거 파이론한테 걸렸다가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지 키얀이 몸을 떨었다. 보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는 무리였지만 둘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귀쟁, 아니, 리트마 씨?”

보헨이 리트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트마의 얼굴에는 당혹과 짜증이 가득했다.

“지금 이게 무슨…….”

“저희도 당혹스러운 상황인 건 마찬가지니까 일단 눈앞에 있는 저것부터 처리하시죠.”

“하…… 알겠다.”

리트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리트마는 엘프였다. 하지만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의 나무는 더 이상 엘프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지 않았다.

대신 리트마는 다른 것을 얻었다.

리트마의 손에서 죽은 마나가 피어올랐고, 눈도 검게 물들었다. 그의 손끝이 늑대를 향했다. 죽은 마나로 형성된 화살이 목표물을 포착했다.

화살이 쏘아져 나가려는 그때, 또 다른 외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쾅!

에단이 거칠게 검을 휘두르며 나타났다. 에단의 검에 주변 나무들이 사정없이 뭉개졌다.

“누가 우리 댕댕이 건드렸어?”

뒈질라고.

에단이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0